三重県木本で虐殺された朝鮮人労働者の追悼碑を建立する会と紀州鉱山の真実を明らかにする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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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晋州保導連盟員集団虐殺、韓国戦争当時軍・警よるものであったこと確認」

2017年03月23日 | 韓国で
http://www.vop.co.kr/A00001127894.html
「민중의소리」 발행 2017-02-28 09:35:33 구자환 기자 hanhit@vop.co.kr
■진주 보도연맹원 집단학살, 한국전쟁 당시 군·경에 의한 것으로 확인
 공동조사단 유해발굴 결과 카빈소총과 45구경 권총 및 M1 실탄 탄두 나와

【写真】진주시 명석면 용산고개에서 발굴된 유해들. ⓒ구자환 기자

 한국전쟁 당시 국민보도연맹원 등 민간인이 학살된 것으로 알려진 진주시 명석면 용산고개의 가해자는 국군과 경찰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단장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은 28일 “희생자는 경찰 등이 갖고 있던 카빈소총과 국군이 사용하는 45구경 권총 및 M1 등에 의해 사망했으며, 일부는 확인 사살되었을 가능성도 큰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이번 발굴한 용산고개 2지점에서는 최소 27구가 매장되어 있고, 안경, 버클, 탄두, 단추, 고무줄, 의치 등 총 31점의 유품이 나왔다”며, “유해는 매장지의 습도와 산성도가 높아 보존 상태는 매우 좋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지역은 진주지역에서 가장 많이 학살된 곳인 진주 명석면 용산리 산 425-1 용산 고개(일명 용산치)에 자리한 5개 학살 지점 중 한 곳이다. 유해매장지는 동서로 이어지는 산기슭에 15x8m 정도의 경사를 이루고 있다.
 공동조사단은 “확인 결과 유해는 산등선과 같은 방향으로 이어져 묻혀 있었다”며, “북남방향으로 8m, 동서 방향으로 2m, 깊이 0.5m 정도의 범위에서 유해들이 출토되었는데 유해는 주로 양 옆 부분에 모여 있었다”고 밝혔다.
 이 지점에서 학살된 이들은 대부분 남자 어른으로 추정된다. 특히 안경과 버클 등의 유품으로 볼 때 지식인도 다수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공동조사단은 현재 드러난 유해 아래로 한 겹의 유해들이 있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미발굴 유해가 있는지 더 조사할 예정이다.
 공동조사단은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유해들이 아직도 전국 곳곳에 방치되고 있지만 국가는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마땅히 지켜야할 국가적 책무인 법적· 정치적 책임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윤리적 책임조차지지 않고 있다”며, “민간차원에서라도 먼저 아픈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그 상처를 치유하는 일에 나서고 있다”고 정부차원의 유해발굴을 촉구하기도 했다.

【写真】진주시 명석면 용산고개 유해발굴 현장 모습. ⓒ구자환 기자

★진주 국민보도연맹원과 형무소 재소자 2,000여명 군경에 의해 학살
 당시 목격자들에 의하면 용산고개 3개 골짜기 5개 지점에 718구의 시신을 매장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진주형무소는 전쟁 당시 1,000여 명의 재소자가 수감되어 있었고, 대부분 좌익사범이었다. 이들 재소자는 1950년 7월 중순에서 진주경찰서가 후퇴하기 전날인 26일까지 진주지구 CIC, 진주지구 헌병대, 진주경찰서, 진주형무소 형무관 등에 의해 명석면 우수리 갓골, 관지리 화령골짜기 등 여섯 곳에서 집단 학살됐다.
 또한, 1950년 7월 15일경부터 국민보도연맹원들이 소집되거나 연행되어 진주경찰서 유치시설과 진주형무소와 대한통운 창고에 감금되었다가 진주 명석면 관지리, 용산리, 우수리 등지, 문산읍 상문리, 마산 진전면 여양리 등에서 희생되었다. 진주형무소로 연행된 국민보도연맹원들은 진주뿐 아니라 산청, 하동, 의령 등 인근 지역 주민도 있었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결과 가해집단은 진주 CIC파견대(대장 탁성록)와 헌병대(5사단 진주지구 헌병대장 윤기옥), 진주경찰서, 진주형무소 특공대 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군폭격사건과 부역혐의 사건을 제외한 진주형무소 재소자와 국민보도연맹원은 1,300명~2,000여 명일 것으로 판단된다.
 이번 4차 유해발굴에는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가 총괄지휘를 담당했고, 노용석 부경대 교수와 강병현 진주유족회장이 자문위원을 맡았다.
 또, 4.9통일평화재단 안경호 사무국장이 총괄조사원을 맡았고 조동문, 임영순, 홍수정, 임영순, 송장건, 김영환, 오승래, 김나경, 길가은, 김소현, 이나현, 홍성예 씨 등이 현장발굴을 담당했다. 그리고 한중경, 김병구씨가 지원팀을 맡았고, 강혁민, 김영희, 윤정하, 황미정, 채승언, 성현빈, 평화디딤돌 외 다수 시민들이 자원봉사에 나섰다.
 앞서, 공동조사단은 지난 2014년 진주시 명석면 용산고개 1차 발굴을 시작으로 2015년 대전 골령골, 2016년 충남 홍성군 광천읍에서 한국전쟁을 전후해 학살된 민간인의 유해발굴을 한 바 있다.

【写真】발굴팀이 유해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구자환 기자
【写真】진주시 명석면 용산고개에서 발굴된 민간인의 유품. ⓒ구자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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