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m.sgtv.co.kr/news/articleView.html?idxno=658
「올레티비세종공주방송」2017.02.24 22:21:09
■‘韓国戦争民間人虐殺遺骸発掘共同調査団’ 第4次遺骸発掘調査することに
24日から3月2日まで...慶尚南道晋州市鳴石面発掘地
【写真】2014年、忠清北道報恩郡北面峨谷里で一時的に遺骸発掘したあと、遺骨を採取し祭礼儀式をしている様子
停戦協定が締結されてから60年が過ぎたが、韓国戦争当時、犠牲になった無辜の民間人の遺骸は、全国各地に放置されたままだ。
共同調査団は、過去3回の遺骸発掘調査につづいて、2月24日から3月2日まで、慶尚南道晋州市鳴石面龍山里山425番地で第4次遺骨発掘調査をおこなう。
共同調査団は、去る2014年2月24日から3月4日まで、慶尚南道晋州鳴石面龍山里“晋州地域保導連盟事件関連の民間人虐殺の犠牲者”の1次遺骸発掘調査をつうじて、少なくとも39人の遺骸、弾頭と薬莢、バックルなど多数の遺品を発掘した。2015年2月23日から3月2日まで大田広域市東区郎月洞では、“大田刑務所事件関連民間人虐殺の犠牲者”の2次遺骸発掘調査をつうじて、少なくとも20体の遺骸、弾頭、薬莢、義眼など多数の遺品を発掘している。
【写真】2014年、忠清北道報恩郡内北面峨谷里遺骸発掘現場をKBSが取材している。
また、2015年11月15日、忠南洪城郡広川邑淡山里山92番地の試掘調査をつうじて、多数の遺骸と弾頭を発見したため、2016年2月25日から29日、3月4日から8日にかけて、第3次遺骨発掘調査をおこない、最小21人の遺骸と、ライターなど、多数の遺品を発掘した。
今回の第4次発掘調査地域は、第1次発掘地から約20メートル離れたところに位置している。第1次発掘地をはじめ、龍山とうげ(別名龍山峙)一帯は、晋州地域でもっとも多くの犠牲者がでたところで、当時の村の住民の証言によると、龍山峙の3つの谷の5か所に718人の遺体が埋めたと証言している。
真実和解委員会報告書でも、目撃者は、“死んだ人はすべて40歳未満の成人男性であった。 囚人服に髪を短く刈った人たちもいた ”、“兄の遺体を探して龍山里の谷に行くと、縄に縛られたまま銃で撃たれた遺体がひっくり返っていた。ひとつの穴に40〜50人の遺体があり、そうした穴が20〜30個あった”と証言している。
【写真】2014年忠清北道報恩郡内北面峨谷里遺体発掘をしている様子
韓国戦争遺族会、晋州遺族会会長であるカンビョンヒョン会長は、戦争犠牲者の遺族として、韓国戦争当時、オモニがあたらしくゆでていた麺を村役場から戻って食べると言って、ちょっと家を出たまま戻ってこなかったアボヂを、一生の恨として胸に抱いて生きている。カンビョンヒョン会長はいまでも龍山とうげに入ると胸がつまると、共同調査団の遺骨発掘作業を積極的に推進してきた。
韓国戦争当時、数多くの民間人が明確な理由もなく殺されたあと、地下鉱山や名前の分からない山の中に棄てられ、数十年間放置されてきた。わずかに真実和解委員会が一部の遺骸と遺品を収拾し、忠北大学校に一時的に安置していたが、昨年、世宗市追慕の家に移して安置している。しかし、真実和解委員会の活動が終了したあとは、国家レベルでのなんらの後続措置もないのが現実である。
国が被害者と遺族にとうぜん持つべき法的、政治的責任はさておき、最小限の倫理的責任すら負わないのだ。わが国が過去の傷を克服し、社会統合を成し遂げ人権国家として成長するためには、国家暴力の犠牲になった方がたの真相究明が優先的におこなわれなければならない。
【写真】忠清北道報恩郡北面峨谷里で収拾した遺骸
今回の遺骸発掘共同調査は、盧武鉉政権後中断された過去清算作業の一環として、民間人犠牲者の遺骸を人道的次元で発掘・安置することにある。また、実質的な過去清算に必要な法と制度が完備されるように国民の関心を集める一方で、今後民間レベルでの過去清算作業を継続的につづけていくきっかけを用意するために推進するものである。
おりしも20代国会が開院して以来、“張俊河事件など真相究明と正義実現のための過去史清算特別法案”をはじめ、“真実和解のための過去史整理基本法改正案”などが議員立法で発議されて係留中である。国会は、国民の代議機関として、国家暴力の被害者にたいする真相究明と名誉回復のためにあらゆる努力を払うべきである。
今後共同調査団は、“継続的な遺骸発掘をつうじて民間人虐殺事件の実状を記録し、一日も早く国が立ち上がるよう強力に働きかけ要求する。そのために、国民もまた、力と知恵を集めてくれることを期待している”と語った。 <写真提供:韓国戦争民間人犠牲者忠清北道遺族会>
イヂャンウォン記者 jangwon1604@hanmail.net
佐藤正人訳
http://m.sgtv.co.kr/news/articleView.html?idxno=658
「올레티비세종공주방송」기사승인 2017.02.24 22:21:09
■‘한국전쟁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제4차 유해발굴조사 키로
24일부터 3월 2일까지...경남 진주시 명석면 발굴지
【写真】2014년 충북 보은군 '아곡리 임시 유해발굴 후 유골을 채취해 제례의식을 하고있는 모습.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0년이 넘었지만, 한국전쟁 당시 무고하게 희생된 민간인들에 대한 유해들은 전국 곳곳에 아직까지 방치되어 있다.
공동조사단은 지난 세 차례의 유해발굴조사에 이어 오는 2월 24일부터 3월 2일까지 경남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 산 425번지에서 제4차 유해발굴조사를 벌인다.
공동조사단은 지난 2014년 2월 24일부터 3월 4일까지 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리 “진주지역 보도연맹사건 관련 민간인 학살 희생자”에 대한 1차 유해발굴조사를 통해 최소 39명의 유해와 탄두와 탄피, 버클 등 다수의 유품을 발굴한 바 있으며, 2015년 2월 23일부터 3월 2일까지 대전광역시 동구 낭월동 “대전형무소사건 관련 민간인 학살 희생자”에 대한 2차 유해발굴조사를 통해 최소 20구의 유해와 탄두, 탄피, 의안 등 다수의 유품을 발굴한 바 있다.
【写真】2014년 충북 보은군 '아곡리 유해발굴 장면을 KBS가 취재하고있다.
또한 2015년 11월 15일 충남 홍성군 광천읍 담산리 산 92번지에 대한 시굴조사를 통해 다수의 유해와 탄두를 발견함에 따라 2016년 2월 25일부터 29일, 3월 4일에서 8일에 걸쳐 3차 유해발굴조사를 벌여 최소 21명의 유해와 라이터 등 다수의 유품을 발굴하였다.
이번 4차 발굴조사지역은 지난 1차 발굴지에서 약 2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1차 발굴지를 비롯한 용산고개(일명 용산치) 일대는 진주지역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곳으로서, 당시 마을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용산치 3개 골짜기 5군데에 718구의 시신이 매장되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에서도 목격자들은 “죽은 사람들은 전부 40대 미만의 성인 남자였다. 죄수 복장에 머리를 짧게 깍은 사람들도 있었다.”, “형의 시신을 찾으러 용산리 골짜기에 갔더니 포승에 묶인 채 총을 맞은 시신들이 엎어져 있었다. 한 구덩이에 4~50구의 시신이 있었고 그런 구덩이가 2~30개가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写真】2014년 충북 보은군 '아곡리 유해발굴을 하고있는 모습.
한국전쟁유족회 진주유족회장인 강병현 회장은 전쟁 유복자로서, 한국전쟁 당시 어머니가 새참으로 삶고 있던 국수를 면사무소에 다녀와서 드시겠다며 잠시 집을 나섰다 영영 돌아오시지 못했던 아버지를 가슴에 평생의 한으로 품고 살아가고 있다. 강병현 회장은 지금도 용산고개에 들어서면 가슴이 먹먹하다며, 공동조사단의 유해발굴 작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
한국전쟁 당시 무수히 많은 민간인들이 뚜렷한 이유도 없이 죽임을 당한 뒤, 지하 광산이나 이름 모를 산속에 수 십 년 동안 버려진 채 방치되어 왔다. 그나마 진실화해위원회가 일부 유해와 유품을 수습해 충북대학교에 임시 안치하였다가 지난해 세종시 추모의집으로 옮겨 모셨으나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이 종료된 후에는 국가 차원의 아무런 후속조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국가가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마땅히 가져야 할 법적․정치적 책임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윤리적 책임조차 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사회통합을 이뤄내 인권국가로 발돋음 하기 위해서는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분들의 진상규명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写真】충북 보은군 아곡리에서 수습한 유해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 유해발굴 공동조사는 노무현 정부 이후 중단된 과거청산 작업의 일환으로 민간인 희생자들의 유해를 인도적 차원에서 발굴 · 안치하는데 있다. 또한 실질적인 과거청산에 필요한 법과 제도가 구비될 수 있도록 국민적 관심을 모아내는 한편, 이후 민간 차원에서 과거청산 작업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 추진하는 것이다.
마침 20대 국회가 개원한 이후 “장준하사건등진상규명과정의실현을위한과거사청산특별법안”을 비롯하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개정안” 등이 의원입법으로 발의되어 계류 중에 있다. 국회는 국민의 대의기관으로서 국가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향후 공동조사단은 "지속적인 유해 발굴을 통하여 민간인학살 사건의 실상을 기록하고, 하루속히 국가가 나설 수 있도록 강력하게 촉구하고 요구할 것이다. 이를 위해 국민들 또한 힘과 지혜를 모아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진제공: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충북유족회〉
이장원 기자 jangwon1604@hanmail.net
「올레티비세종공주방송」2017.02.24 22:21:09
■‘韓国戦争民間人虐殺遺骸発掘共同調査団’ 第4次遺骸発掘調査することに
24日から3月2日まで...慶尚南道晋州市鳴石面発掘地
【写真】2014年、忠清北道報恩郡北面峨谷里で一時的に遺骸発掘したあと、遺骨を採取し祭礼儀式をしている様子
停戦協定が締結されてから60年が過ぎたが、韓国戦争当時、犠牲になった無辜の民間人の遺骸は、全国各地に放置されたままだ。
共同調査団は、過去3回の遺骸発掘調査につづいて、2月24日から3月2日まで、慶尚南道晋州市鳴石面龍山里山425番地で第4次遺骨発掘調査をおこなう。
共同調査団は、去る2014年2月24日から3月4日まで、慶尚南道晋州鳴石面龍山里“晋州地域保導連盟事件関連の民間人虐殺の犠牲者”の1次遺骸発掘調査をつうじて、少なくとも39人の遺骸、弾頭と薬莢、バックルなど多数の遺品を発掘した。2015年2月23日から3月2日まで大田広域市東区郎月洞では、“大田刑務所事件関連民間人虐殺の犠牲者”の2次遺骸発掘調査をつうじて、少なくとも20体の遺骸、弾頭、薬莢、義眼など多数の遺品を発掘している。
【写真】2014年、忠清北道報恩郡内北面峨谷里遺骸発掘現場をKBSが取材している。
また、2015年11月15日、忠南洪城郡広川邑淡山里山92番地の試掘調査をつうじて、多数の遺骸と弾頭を発見したため、2016年2月25日から29日、3月4日から8日にかけて、第3次遺骨発掘調査をおこない、最小21人の遺骸と、ライターなど、多数の遺品を発掘した。
今回の第4次発掘調査地域は、第1次発掘地から約20メートル離れたところに位置している。第1次発掘地をはじめ、龍山とうげ(別名龍山峙)一帯は、晋州地域でもっとも多くの犠牲者がでたところで、当時の村の住民の証言によると、龍山峙の3つの谷の5か所に718人の遺体が埋めたと証言している。
真実和解委員会報告書でも、目撃者は、“死んだ人はすべて40歳未満の成人男性であった。 囚人服に髪を短く刈った人たちもいた ”、“兄の遺体を探して龍山里の谷に行くと、縄に縛られたまま銃で撃たれた遺体がひっくり返っていた。ひとつの穴に40〜50人の遺体があり、そうした穴が20〜30個あった”と証言している。
【写真】2014年忠清北道報恩郡内北面峨谷里遺体発掘をしている様子
韓国戦争遺族会、晋州遺族会会長であるカンビョンヒョン会長は、戦争犠牲者の遺族として、韓国戦争当時、オモニがあたらしくゆでていた麺を村役場から戻って食べると言って、ちょっと家を出たまま戻ってこなかったアボヂを、一生の恨として胸に抱いて生きている。カンビョンヒョン会長はいまでも龍山とうげに入ると胸がつまると、共同調査団の遺骨発掘作業を積極的に推進してきた。
韓国戦争当時、数多くの民間人が明確な理由もなく殺されたあと、地下鉱山や名前の分からない山の中に棄てられ、数十年間放置されてきた。わずかに真実和解委員会が一部の遺骸と遺品を収拾し、忠北大学校に一時的に安置していたが、昨年、世宗市追慕の家に移して安置している。しかし、真実和解委員会の活動が終了したあとは、国家レベルでのなんらの後続措置もないのが現実である。
国が被害者と遺族にとうぜん持つべき法的、政治的責任はさておき、最小限の倫理的責任すら負わないのだ。わが国が過去の傷を克服し、社会統合を成し遂げ人権国家として成長するためには、国家暴力の犠牲になった方がたの真相究明が優先的におこなわれなければならない。
【写真】忠清北道報恩郡北面峨谷里で収拾した遺骸
今回の遺骸発掘共同調査は、盧武鉉政権後中断された過去清算作業の一環として、民間人犠牲者の遺骸を人道的次元で発掘・安置することにある。また、実質的な過去清算に必要な法と制度が完備されるように国民の関心を集める一方で、今後民間レベルでの過去清算作業を継続的につづけていくきっかけを用意するために推進するものである。
おりしも20代国会が開院して以来、“張俊河事件など真相究明と正義実現のための過去史清算特別法案”をはじめ、“真実和解のための過去史整理基本法改正案”などが議員立法で発議されて係留中である。国会は、国民の代議機関として、国家暴力の被害者にたいする真相究明と名誉回復のためにあらゆる努力を払うべきである。
今後共同調査団は、“継続的な遺骸発掘をつうじて民間人虐殺事件の実状を記録し、一日も早く国が立ち上がるよう強力に働きかけ要求する。そのために、国民もまた、力と知恵を集めてくれることを期待している”と語った。 <写真提供:韓国戦争民間人犠牲者忠清北道遺族会>
イヂャンウォン記者 jangwon1604@hanmail.net
佐藤正人訳
http://m.sgtv.co.kr/news/articleView.html?idxno=658
「올레티비세종공주방송」기사승인 2017.02.24 22:21:09
■‘한국전쟁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제4차 유해발굴조사 키로
24일부터 3월 2일까지...경남 진주시 명석면 발굴지
【写真】2014년 충북 보은군 '아곡리 임시 유해발굴 후 유골을 채취해 제례의식을 하고있는 모습.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0년이 넘었지만, 한국전쟁 당시 무고하게 희생된 민간인들에 대한 유해들은 전국 곳곳에 아직까지 방치되어 있다.
공동조사단은 지난 세 차례의 유해발굴조사에 이어 오는 2월 24일부터 3월 2일까지 경남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 산 425번지에서 제4차 유해발굴조사를 벌인다.
공동조사단은 지난 2014년 2월 24일부터 3월 4일까지 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리 “진주지역 보도연맹사건 관련 민간인 학살 희생자”에 대한 1차 유해발굴조사를 통해 최소 39명의 유해와 탄두와 탄피, 버클 등 다수의 유품을 발굴한 바 있으며, 2015년 2월 23일부터 3월 2일까지 대전광역시 동구 낭월동 “대전형무소사건 관련 민간인 학살 희생자”에 대한 2차 유해발굴조사를 통해 최소 20구의 유해와 탄두, 탄피, 의안 등 다수의 유품을 발굴한 바 있다.
【写真】2014년 충북 보은군 '아곡리 유해발굴 장면을 KBS가 취재하고있다.
또한 2015년 11월 15일 충남 홍성군 광천읍 담산리 산 92번지에 대한 시굴조사를 통해 다수의 유해와 탄두를 발견함에 따라 2016년 2월 25일부터 29일, 3월 4일에서 8일에 걸쳐 3차 유해발굴조사를 벌여 최소 21명의 유해와 라이터 등 다수의 유품을 발굴하였다.
이번 4차 발굴조사지역은 지난 1차 발굴지에서 약 2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1차 발굴지를 비롯한 용산고개(일명 용산치) 일대는 진주지역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곳으로서, 당시 마을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용산치 3개 골짜기 5군데에 718구의 시신이 매장되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에서도 목격자들은 “죽은 사람들은 전부 40대 미만의 성인 남자였다. 죄수 복장에 머리를 짧게 깍은 사람들도 있었다.”, “형의 시신을 찾으러 용산리 골짜기에 갔더니 포승에 묶인 채 총을 맞은 시신들이 엎어져 있었다. 한 구덩이에 4~50구의 시신이 있었고 그런 구덩이가 2~30개가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写真】2014년 충북 보은군 '아곡리 유해발굴을 하고있는 모습.
한국전쟁유족회 진주유족회장인 강병현 회장은 전쟁 유복자로서, 한국전쟁 당시 어머니가 새참으로 삶고 있던 국수를 면사무소에 다녀와서 드시겠다며 잠시 집을 나섰다 영영 돌아오시지 못했던 아버지를 가슴에 평생의 한으로 품고 살아가고 있다. 강병현 회장은 지금도 용산고개에 들어서면 가슴이 먹먹하다며, 공동조사단의 유해발굴 작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
한국전쟁 당시 무수히 많은 민간인들이 뚜렷한 이유도 없이 죽임을 당한 뒤, 지하 광산이나 이름 모를 산속에 수 십 년 동안 버려진 채 방치되어 왔다. 그나마 진실화해위원회가 일부 유해와 유품을 수습해 충북대학교에 임시 안치하였다가 지난해 세종시 추모의집으로 옮겨 모셨으나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이 종료된 후에는 국가 차원의 아무런 후속조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국가가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마땅히 가져야 할 법적․정치적 책임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윤리적 책임조차 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사회통합을 이뤄내 인권국가로 발돋음 하기 위해서는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분들의 진상규명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写真】충북 보은군 아곡리에서 수습한 유해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 유해발굴 공동조사는 노무현 정부 이후 중단된 과거청산 작업의 일환으로 민간인 희생자들의 유해를 인도적 차원에서 발굴 · 안치하는데 있다. 또한 실질적인 과거청산에 필요한 법과 제도가 구비될 수 있도록 국민적 관심을 모아내는 한편, 이후 민간 차원에서 과거청산 작업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 추진하는 것이다.
마침 20대 국회가 개원한 이후 “장준하사건등진상규명과정의실현을위한과거사청산특별법안”을 비롯하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개정안” 등이 의원입법으로 발의되어 계류 중에 있다. 국회는 국민의 대의기관으로서 국가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향후 공동조사단은 "지속적인 유해 발굴을 통하여 민간인학살 사건의 실상을 기록하고, 하루속히 국가가 나설 수 있도록 강력하게 촉구하고 요구할 것이다. 이를 위해 국민들 또한 힘과 지혜를 모아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진제공: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충북유족회〉
이장원 기자 jangwon160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