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重県木本で虐殺された朝鮮人労働者の追悼碑を建立する会と紀州鉱山の真実を明らかにする会

三重県木本で虐殺された朝鮮人労働者の追悼碑を建立する会と紀州鉱山の真実を明らかにする会

『京郷新聞』記事「日帝強制動員犠牲者遺族、中国海南島追悼巡礼」について 2

2012年12月24日 | 「朝鮮報国隊」
 『경향신문(京郷新聞)』2012年5月3日号に、「일제 강제동원 희생자 유족, 중국 하이난성 추도순례(日帝強制動員犠牲者遺族、中国海南島追悼巡礼)」と題する김향미記者の記事が掲載されていました。紀州鉱山の真実を明らかにする会がこの記事を知ったのは、先月末でした。
 「朝鮮村」の朝鮮人遺骨の紛失問題とこの記事にかんして、紀州鉱山の真実を明らかにする会は、対日抗争期強制動員被害調査及び国外強制動員犠牲者等支援委員会に、12月21日に、つぎのような質問を郵送しました。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 및국외강제동원희생자등지원위원회 귀중■

  기주광산의 진실을 밝히는 회는 2005년6월 23일부로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에 「남방파견 보국대 (조선보국대)」 및 「일본군대제 성노예로서 하이난섬에 연행된 조선인」의 피해진상조사 신청을 했습니다.
  또한 그 후 지금까지 몇차레에 걸쳐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에 「남방파견 보국대 (조선보국대)」로서 하이난섬으로 끌려간 옥중자의 명부공개와 한국정부로의 인도를 일본정부에 요구함을 포함하여 몇가지 제안을 했습니다만 일절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2010년3월이후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의 업무를 계승한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및국외강제동원희생자등지원위원회에 「남방파견 보국대 (조선 보국대)」에 대한 기주광산의 진실을 밝히는 회의 진상조사 신청에 연관되어 있으니 질문합니다.

■一、「조선촌」의 「전시관」에 있었던 유리케이스 안의 5구 유골이 없어졌다는 것에 대해.
 작년 2011년10월10일날에 기주광산의 진실을 밝히는 회의 김정미와 佐藤正人이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및국외강제동원희생자등지원위원회의朴聖圭사무국장(당시)을 만나 「조선촌」현상과 「조선촌」의 「전시관」 (「迎樂齋」)에 있었던 유리케이스 안의 5구 유골이 없어졌음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 없어졌던 5구 유골에 대해 1언제, 2누가, 3 왜, 4어디로, 가져 갔는지를 조사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朴聖圭사무국장(당시)은 그 사안은 외교부를 통해 중국정부에 문의할 수 있는 것이므로 재 중국 廣州 한국총영사관에 조사의뢰를 하갰다고 언명했습니다.
 그 후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우리 회가 이 전시관에 있었던 유골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은 2009년6월26일 기주광산의 진실을 밝히는 회의 제17회 하이난섬 「현지조사」때였습니다. 이 때는 전시관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었고 유리 케이스안에 유골이 없는 것을 창 밖으로부터 확인했을 뿐이었습니다만 지난 제22회 하이난섬 「현지조사」때 11월3일에 「조선촌」을 방문하여 전시관안으로 들어가고 유골이 없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 일에 관해 지난11월에 중국에서는 신문과 텔레비전에서 한국에서 텔레비전에서 보도되었습니다.

■二、『경향신문』2012年5月3日付 記事에 대해.

  김향미기자에 의한 이 기사는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 및국외강제동원희생자등지원위원회밖에 파악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및국외강제동원희생자등지원위원회에 직접 질문합니다.

 1、이 기사에서는 “중국 하이난을 찾은 유족은 모두 15명”이라고 돼 있는데 이 유족분들
  은 다 “남방파견 조선보국대”유족들입니까?

 2、이 기사에서는 “애초 추도제를 천인갱에서 지내려 했으나 일본측에서 반대했다”고
  돼 있습니다.
   이것은 시실입니까?
   사실이면 이번 경우 일본측에서는 언제 어떤 방법으로 반대했 습니까?
  “일본측”이라는 것은 일본정부를 말합니까? 그렇다면 일본정부의 어느 기관입니까?

 3、이 기사에는 “추도순례 프로그램의 예산 중 3분의 1을 일본에서 부담하고 있다. 위원
  회 관계자는 “예산의 일부를 부담하면서 일본이 추도제 장소나 일정에 간섭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고 씌어져 있습니다.
   “추도순례 프로그램의 예산 중 3분의 1을 일본에서 부담하고 있다”는 것은 시실입니
  까?
   또한 “일본이 추도제 장소나 일정에 간섭을 하기도 한다” 는 것은 시실입니까?
   사실이면 일본 측에서는 어떤 식으로 간섭을 해 옵니까?

 4、이 기사에는 “일본은 ‘천인갱’에서 조선인 강제동원과 학살은 그 당시 기업이 진행
  한 일이라 일본군에 의해 동원했던 조선인들과는 달리 책임이 없다는 뜻을 밝힌 것이
  다” 고 씌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시실입니까? 사실이면 일본 측에서는 언제 어떤 형식으로 이런 입장을 표시
  했습니까?
   일본 측에서 이런 입장을 표시하기 전에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및 국외강제동
  원희 생자지원위원회(강제동원피해조사위원회)는 이 문제에 관해 일본 측에 대해
  어떤 문의를 했습니까?
   이 문제에 관해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 및국외강제동원희생자지원위원회(강제
  동원피해조사위원회)는 일본 측의 주장을 받아들었습니까? 받아들었다면 그 근거는
  무엇입니까?

 5、이 기사에서는 “위원회는 2006년 하이난섬 실태조사를 거쳐 113명의 피해자를 확인
  했다” 고 씌어져 있습니다.
   2006년에 하이난섬 실태조사를 했다는 것은 사실입니까?
   사실이라면 진상조사신청을 한 기주광산의 진실을 밝히는 회에 하이난섬 실태조사
  의 경과와 조사내용을 알리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6、또한 이 기사에서는 “113명의 피해자를 확인했다”는데 그 113명은 모두「조선촌」에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 근거는 무엇입니까?

 7、이 기사에는 「유족들의 바람은 유해를 한국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위원회 측은 “일제
  동원 피해지역이 중국, 일본, 러시아 각국에 넓게 퍼져있는 데다
   고국으로 봉환하는 절차를 밟으려 해도 외교적인 문제가 걸려 있다”며 “유해 송환과
  함께 추모비를 건립하는 방안을 고려해보겠다”고 말했다」라고 씌어져 있습니다.
   “위원회 측”이 이렇게 말한 것은 사실입니까?
   사실이면
     ①、위원회는 현재까지 하이난섬의 조선인 희생자의 유골을 「봉환」하는 구체적인
       노력을 외교적으로 한 적이 있습니까?
     ②、위원회 측은 현재 하이난섬의 조선인 희생자의 「유골송환」과 「추도비석
       건설」을 위해 어떤 「방안」을 구체적으로 고려하고 있습니까?

  2013年1月말까지 회신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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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年12月21日
                                       기주광산의 진실을 밝히는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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