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重県木本で虐殺された朝鮮人労働者の追悼碑を建立する会と紀州鉱山の真実を明らかにする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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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南島朝鮮族千人坑」

2011年12月17日 | 「朝鮮報国隊」
 http://www.konas.net/article/article.asp?idx=6261

■日軍만행 현장, 해남도 '朝鮮族千人坑'을 아시나요?
  일제 강제징용 한국인 1천여명 학살·매몰 현장
                    정미란  2005-04-07
 일본이 일제시대의 만행을 숨기며 역사교과서를 왜곡하고 있지만 그 만행의 증거는 곳곳에 널려있다. 지금까지 한국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중국 '海南島 한국인 학살' 사건도 그 중 하나다.
 이 사건은 일제때 일본군이 한국인들을 중국 하이난도(海南島)에 끌고가 강제노역을 시키고 패전 직후 1천여명을 칼로 난자해 살해하고 현지에 암매장한 천인공노할 사건이다. 이 사실은 중국 하이난성(海南省) 정협(政協,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발간자료에 의해 처음으로 밝혀졌고, 이 사실을 조선일보가 1998년 3월 2일 보도하여 국내에 알려졌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역사교과서 왜곡 등으로 반일 감정이 극에 달한 이때 예비역 영관장교단이 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일제 만행의 역사적 현장을 확인하고 돌아왔다.
 대한민국 육.해.공군.해병대 예비역 영관장교연합회(회장 權五剛 (예)육군대령)는 지난 3월 27일 오후 4시 권 회장과 회원 25명이 한인 징용자 1천여명이 무참히 살해된 '조선족천인갱(朝鮮族千人坑)' 현장을 찾아 추모와 참배 행사를 한 것이다.
 권 회장 등에 따르면 1945년 8월 15일 일본 패망뒤 중국 남쪽 하이난도(海南島) 지역에 고립된 일본군 부대가 조선인 징용자 1,000여명을 이곳 해남도 삼아시(三亞市) 남정촌(南丁村, 일명 朝鮮村) 산기슭에 굴을 파게하고 칼로난자 한 후 이들을 나무에 매달아 쇠못을 박고 휘발유에 불을 질러 태워 죽이고, 휘발유가 모자라자 산채로 생매장하는 등 인간으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현지거주 원주민 대표인 촌장(村長) 왕기영(王其永, 50세)씨가 현장에서 직접 방문회원들에게 증언한 것이라고 권 회장이 밝혔으며, 왕씨는 전후세대로서 부모와 이웃사람들로부터 이같은 내용을 전해들은 것이라고 말했다. 왕씨는 또 이 지역 주민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로서 이 지역을 조선촌(朝鮮村)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자가 확인한 중국 정부의 일제 침략기록 자료 '日軍海南省侵攻實錄'에도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 자료에 따르면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망 뒤 海南島 縣 지역에 고립된 일본군 부대가 조선인 징용 1천여명을 동원, 三亞市 南丁村 부근의 산기슭에 굴을 파고 무기와 군수물자를 은익하면서 이 작업에 동원된 조선인들에게 은익장소 옆에 굴을 파게 한 뒤 총알을 아끼기 위해 이들을 칼로 무자비하게 살해하고 매장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자료에는 이곳이 현재 '南丁 千人坑'으로 불려지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중국 하이난성 싼야시(三亞市) 정협(政協)이 발행한 이 자료는 1995년도에 싼야시 간부와 70년 이상 현지에서 살아 온 노인 50명의 구술을 토대로 작성된 것이며, 살해 암매장된 1천여명은 모두 조선인 강제 징용자라는 상황조사표도 수록하고 있다.
 한편 현지를 방문하고 돌아 온 권오강 회장은 중국 정부 당국에서 신우공사(信宇公司-三亞市南丁朝鮮村)로 하여금 '千人坑' 발굴 사업을 올해부터 추진키로 하였다는 소식을 전했다.
 권 회장은 "현장은 해남도 싼야시(三亞市)로부터 버스로 약 1시간 거리의 인가도 간혹있는 농촌 산간 벽촌 산기슭으로 관광버스로는 우리가 처음 타고 왔다는 현지 주민의 말을 들을 때 방문객은 거의 없는 세인들의 관심에서 벗어난 곳인 듯 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장 2Km 전방 길가에 "朝鮮族千人坑"이란 간판(信宇公司부착)이 있고 그로부터는 버스가 다닌 흔적은 볼수 없었다"고 덧 붙혔다.
 현장을 방문한 회원들은 위령추모비 옆에 위치한 임시건물 내에 준비된 방명록에 서명하고 관리인에게 성금을 낸뒤 벽에 걸린 태극기 앞에서 고개숙여 대한민국을 불러보며 현장에서 발굴한 유골들이 진열된 유리상자(5위의 유골)를 확인했다.
 한편 권 회장은 현장 방문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내 민족, 내 가족이 일군에게 끌려가 잔인하게 학살된 채 이역땅 해남도에 뭍혀있다는 사실을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 정부가 모르고 있다니 국민으로써 부끄럽기 짝이 없고 한편으론 울화가 치민다"고 말하면서 "과거사 정리는 이런 일 부터 시작해야 한다. 하루빨리 정부가 나서서 유해 발굴사업을 추진하라"고 주문했다.
 그는 또 "일반 국민들은 해남도가 아시아의 하와이 라는 관광지로만 알려져 있어 여행객들이 골프치고 관광하는데만 열중인데 이제부터라도 千人坑을 꼭 방문하여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写真】 한국인 강제징용자 1천여명이 무참히 학살되어 매몰돼 있는 일제 만행의 현장 千人坑 입구에 서 있는 권오강 영관장교연합회장...<영관장교연합회>
【写真】개척자처럼 풀밭 길을 만들며 버스를 타고 가던중 현장 500m 전방에 잡초가운데 "千人坑"이란 푯말 간판하나가 우리들의 마음을 슬프게하고 있었다. 우리들은 버스에서 내려서 간판을 바라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영관장교연합회>
【写真】걸어서 현장을 찾으니 이름 모를 공동묘지 옆에 "朝鮮同胞死亡追慕碑(1999.9.1, 신우회원 일동)"가 세워져 있고 옆에는 한맺힌 사연이 담긴 비각(지은이 선우가족 이미현, 1999.9.1)이 보는 이로 하여금 힘없는 민족의 한을 원망하며 울음을 터틀이기도 하였다...<영관장교연합회>
【写真】우리들은 다같이 추모비 앞에서 헌화 참배하고 준비해간 본국의 소주를 받쳐 올리며 모두들 눈물로 영령들의 한을 달랬다...<영관장교연합회>
【写真】중앙 우측 셔츠차림에 머리긴 사람이 현지주민 대표 촌장 王其永씨, 중앙 좌측 흰색와이셔츠 입은 이가 신우공사 직원... 동행한 회원 중 일부는 눈물을 못이겨 기념촬영을 못하였다...<영관장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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