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吉城との対話

日々考えていること、感じていることを書きます。

victim被害者と見なかった

2019年08月29日 08時05分24秒 | エッセイ

昨日ソウルから招待された国立芸術学校(大学)の世界民族舞踊研究所ホヨウンイル所長の招請の電話に残念ながら応じられないと返事し心痛い。釜山東亜大学とその国立研究所で講演会が予定されたが行われなかったのはとても残念だった。親日派汚名に霧散されたのか、その数ヶ月後のことでありそれを返す良い機会かもしれないが私が変わるわけではない。ただ学問的には中立客観的であることを強調したい。外国に住んでいる同胞たちは母国との距離もあり、経験などからも一般的に国内の学者たちとは異なる見方もあり、客観的な傾向が強いのではないかと思う。もちろんすべての人がそうではない。
 オーストラリアに住んでいるSejin Pakさん、まだ面識はない。私の良いフエィスブック友である。彼の投稿を紹介する。
  <私は慰安婦運動をする人ではない>と前提して、オーストラリアの女性慰安婦被害者ヤンさんの葬儀に出席した感想を投稿をした。インドネシアで生まれたオランダの20歳の女性が日本軍の捕虜になって慰安婦として連行された人の話である。それを隠して住んでいた彼女が、1992年に韓国の慰安婦運動に賛同して、自分も慰安婦だったと宣言した。唯一の白人慰安婦である。韓国領事館から勧誘の電話が来た葬儀には「政治色」、「運動色」が全くなく、信仰に生きてきた人生、<自分を決してvictim被害者と見なかった>とある。韓国などの慰安婦被害者とは異なり、私が読んだ多くの慰安婦文の中でも非常に貴重なものである。参考にしたい。


위안부 장례식

2019年08月29日 05時41分10秒 | 旅行
 어제 서울에서 초청받은 국립예술학교(대학교)세계민족무용연구소 허영일소장에게 유감스럽게도 사양하는 전화를 했다. 부산동아대학교와 무용연구소에서 초청강연을 받은 것이 친일파 학자라는 오명으로 무산된지 수개월 뒤의 일이다. 이제 그 것 나의 실체가 바뀌어서 생긴 변화라고는 볼 수 없다. 단지 지난번 8월 9일 KBS 추적에서 인터뷰가 좀 반일적인(?) 것이라서 인식의 변화가 있는지는 모른다. 아마 시기와 계기의 변화일 것이다. 친일 반일의 혼성인지 어떤 일본인은 자보고 확실한 태도를 선언하라는 투고도 했다. 그저 학문적 중립적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외국에 사는 교포들은 모국과 거리도 그렇고 경험 등으로 일반적으로 국내학자들보다는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취직을 소개해서 일본 국립대학에서 정년한 한 사람은 반일사상 때문에 일본에서 별로 적응하지 못하고 귀국하고 말았다.
 나와 좀 비슷한 사회학자가 호주에 살고 있다. 아직 면식이 없으나 나의 좋은 페친이다. 그의 글을 좋아한다. 여기에 그의 투고를 소개한다.
호주에 살고 있는 한국출신 Sejin Pak씨의 글의 요약이다. <나는 위안부운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전제하고, 호주 여성 위안부 피해자 얀씨 장례식에 참석한 감상을 투고를 하였다. 인도네시아에서 태어난 화란인 20세 여성이 일본군의 포로가 되어 위안부로 끌려간 이야기이다. 숨기고 살던 그녀가 1992년 한국의 위안부 운동에 찬동하여 자신도 위안부였다고 선언한 백인 위안부이다. 한국 영사관에서 권유의 전화가 왔어도 장례식에는  "정치 색", "운동색"이 전혀 없고 신앙으로 살아온 인생,  <자신을 결코 victim피해자라고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 등의 위안부 피해자들과 달리 자신을 피해자로 보지 않았다는 것, 연구 과제라고 하였다.  내가 읽은 많은 위안부 글 중에 아주 귀중한 것이다. 참고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