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서울에서 초청받은 국립예술학교(대학교)세계민족무용연구소 허영일소장에게 유감스럽게도 사양하는 전화를 했다. 부산동아대학교와 무용연구소에서 초청강연을 받은 것이 친일파 학자라는 오명으로 무산된지 수개월 뒤의 일이다. 이제 그 것 나의 실체가 바뀌어서 생긴 변화라고는 볼 수 없다. 단지 지난번 8월 9일 KBS 추적에서 인터뷰가 좀 반일적인(?) 것이라서 인식의 변화가 있는지는 모른다. 아마 시기와 계기의 변화일 것이다. 친일 반일의 혼성인지 어떤 일본인은 자보고 확실한 태도를 선언하라는 투고도 했다. 그저 학문적 중립적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외국에 사는 교포들은 모국과 거리도 그렇고 경험 등으로 일반적으로 국내학자들보다는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취직을 소개해서 일본 국립대학에서 정년한 한 사람은 반일사상 때문에 일본에서 별로 적응하지 못하고 귀국하고 말았다.
나와 좀 비슷한 사회학자가 호주에 살고 있다. 아직 면식이 없으나 나의 좋은 페친이다. 그의 글을 좋아한다. 여기에 그의 투고를 소개한다. 호주에 살고 있는 한국출신 Sejin Pak씨의 글의 요약이다. <나는 위안부운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전제하고, 호주 여성 위안부 피해자 얀씨 장례식에 참석한 감상을 투고를 하였다. 인도네시아에서 태어난 화란인 20세 여성이 일본군의 포로가 되어 위안부로 끌려간 이야기이다. 숨기고 살던 그녀가 1992년 한국의 위안부 운동에 찬동하여 자신도 위안부였다고 선언한 백인 위안부이다. 한국 영사관에서 권유의 전화가 왔어도 장례식에는 "정치 색", "운동색"이 전혀 없고 신앙으로 살아온 인생, <자신을 결코 victim피해자라고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 등의 위안부 피해자들과 달리 자신을 피해자로 보지 않았다는 것, 연구 과제라고 하였다. 내가 읽은 많은 위안부 글 중에 아주 귀중한 것이다. 참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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