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吉城との対話

日々考えていること、感じていることを書きます。

추모

2021年01月31日 05時57分57秒 | エッセイ
전 호주 시드니대학 교수 한상대를 추모한다. 그는 나의 고등학교 시절부터의 오랜 친구이고 많은 대화 사연 즐거운 추억이 많은 사람입니다.
한군의 죽음을 들으면서 나에게는 생각나는 것이 많습니다. 나는 단거리를 달리는 것 같은데 그는 천천히 장거리 선수처럼 유연하게 산다는 생각을 하고는 하였지요.
내가 줌 강의를 하던 날 그가 나타나 젊은날을 회상하면서 노래를 불렀지요. 그리고 대기한 간호원의 안내로 퇴장하는 장면이 눈에 걸렸습니다.
그의 죽음은 바로 나의 죽음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그와의 긴 시간 너무나 많은 추억들이 밀려 옵니다. 그는 내가 할 줄 모르는 것들만을 할 수 있고, 바둑, 음악 등 수없이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인품입니다. 부인이 가끔 투고하는 글에서도 잘 읽을 수 있었습니다. 마음이 넓고 인자하고 늘 남을 관용하는 성품입니다. 아버님 한글학자 한갑수선생의 광채가 비쳐지고 있는 것인가.
나는 시골 원시적인 촌에서 태어나서 서울에 올라와 촌닭처럼 늘 당황하고 어려운 일들 속에서 부드키면서 살아온 어려운 삶입니다. 그래서 많은 친구들의 도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행복한 삶을 추모한다는 것이 좀 무안하지만 곧 나도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밀려 옵니다. 그가 이런 코로나 위기에 떠나서 아쉬운 마음 가득합니다. 명복을 빌 뿐입니다.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최길성
 
 
オーストラリア·元シドニー大学教授の韓相大氏を追悼したい。彼は私の高校時代からの友人で、会話や楽しい思い出が多いです。
ハン君の訃報を聞きながら、私には思いだすことがいっぱいです。私は短距離を走るような生き方だが、彼はゆっくり長距離選手のように柔軟に生きておられましたた。「ズーム」で講義をした日、彼は語り、そして若い頃を思い出しながら、すばらしい歌声を聞かせてくれて、そして、待機していた看護師が押す車椅子で退場するところが目に残っています。
 彼の死はまさに私の死を暗示するようです。彼との長い時間の思い出があまりにもたくさん押し寄せてきます。彼は私ができない多くのことをうまく出来る方でした。囲碁、音楽など数え切れないほどたくさんの趣味を持っている人です。
一番うらやましいのは彼の人柄です。奥さんが時々投稿する文でもよく読むことができました。心が広くて慈しみ深く、寛容な人柄です。父親のハンガプス先生の光彩が透けているのだろうか。
 私は田舎の原始的な村に生まれ、ソウルへ上京し、田舎の鶏のように常に狼狽し、困難な状況の中で何とか暮して来た苦しい生活でした。それでより、たくさんの友達の助けがあったのです。今思うと、幼いころから沢山の方々に支えられた私の人生も幸せだと気ずかされました。
 彼の幸せな人生を追慕しながら、私にもこの世での時間は多くないという考えが押し寄せてきます。彼がこのようなコロナ危機に逝かれたことが残念な気持ちでいっぱいです。心からご冥福を祈るばかりです。 ●日本・下関で崔吉城
 
 
 
 

『野口米次郎と「神秘」なる日本』

2021年01月30日 06時56分13秒 | エッセイ

美しく秀麗な文章を読みながら考える。私は大学に入るやいなや、たくさんの文章を書き始めた時、国文科の元老先生から文章を整えなさいと言われた。小説創作を志した私には大きな衝撃だった。田舎暮らしで語彙も乏しいことに気づいた。
 読んだり鑑賞したりして評価をする評論家になろうとした。しかし美術や音楽について勉強したが、理論的には知っていても田舎出身の私は美術、音楽に接する機会はなかったし、その能力にも失望した。そこから研究者への道へ。そして恩師たちの言葉どおり古典文学、そして民俗学へ、後に文化人類学に定着した。そして、たくさんの本を書いたが、常に文章に対する関心から離れることはなかった。
 長い縁で知り合った堀まどかさんの文を読んで感心。彼女の活動を見守ってきた。彼女のお母さんは俳句作家、お父さんは画家、彼女のおばあさんは私ととても親しい故堀麗子さんなど、数え切れない背景におられる方々を思い出す。
まどかさんの博士論文著書を読んだ感想が私の頭にしみている。今回出した本も、いい文章、いい内容だ。『野口米次郎と「神秘」なる日本』は秀麗な文章、素晴らしいレトリックで、読みやすいが深く読める。かつて日本文学を西欧に知らせ、今日の日本文化の水準を知らせる内容である。
 私が執筆する上で大いに参考になる。韓国で1960、70年代にキリスト教の聖霊運動「オカルト」の気運が起こり、キリスト教が栄えた国になった韓国社会を説明するのに役立つ。


호리마도카

2021年01月30日 06時13分45秒 | エッセイ

 아름답고 수려한 문장을 읽고 있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많은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국문과의 원로 선생님께서 문장을 다듬으라는 말을 들었다. 소설 창작을 뜻하던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시골 출신으로서 어휘도 부족한 것을 깨달았다.
 읽고 감상하는 예술 평론가로 뜻을 바꾼 것이다. 미술이나 음악에 대한 공부를 했지만 이론적으로는 알아도 시골 출신으로서 미술 음악에 대한 나의 능력이 부쳐 실망이었다. 연구자의 길로, 그리고 은사들의 말대로 고전 문학 그리고 민속학으로 나중에 문화인류학으로 정착되었다. 그리고 많은 책을 썼으면서 늘 문장에 대한 관심은 떠나지 않았다.
 오랜 여러 인연으로 알게 된 호리마도카씨의 글을 읽고 감탄하여, 그녀의 활동을 지켜 보아 왔다. 그녀의 어머니가 하이쿠 작가, 아버지는 화가, 그녀의 할머니는 나와 아주 친한 고 호리레이코씨 등등 헤아릴 수 없는 배경 인물들이 떠오른다.
 마도카씨의 박사논문 저서를 읽었던 감상이 나의 머리에 젖어 있다. 이번에 낸 책, 좋은 문장, 좋은 내용이다. <노구치고메지로와 신비스러운 일본>은 수려한 문장, 훌륭한 레토릭으로, 쉽고 깊게 읽을 수 있다. 일찌기 일본 문학을 서구에 알려 오늘에 일본문화의 수준을 알게 하는 내용이다.
 지금 내가 집필하는 데에 크게 참고된다. 한국에서 1960,70년대 기독교 성령운동 오칼트 기운이 일고, 기독교가 번성한 나라가 된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1914年英国のロンドン各所やオックスフォード大学で、国際派詩人・野口米次郎は従来の俳句の価値を転換させるような講演をおこなった。どのような雰囲気のなかで何を語ったのか、彼は何を求められていたのか。どうしてそのような英詩の伝統に対する挑戦的な主張がそのとき可能だったのか。野口米次郎の前半生をたどりその時代性を捉える。そこには神秘主義・心霊主義ブーム、神秘なる「日本」の伝統や東洋の宗教思想が注目された時代の潮流がみえてくるだろう。


한국 기독교

2021年01月29日 06時38分00秒 | エッセイ

 コロナ時代を経ながら最近私は学問に対する態度が大きく変わった。学生が講義を聴かなくても該博な論文を送ってくることから、おそらく多くの研究者もそうだろうと思うようになった。稀貴な資料などを引き写して本を出した人が多い。今のように、インターネット時代に資料のコピーを本で出す研究者が多いのは可笑しい。評論家のようにオンラインに載せる人も多い。広告や視聴率などのメディアをただ見るだけではいけない。
 経験哲学と理論哲学があるなら、私は前者を信じる方だ。文献を写す人々、ネット情報を写す人々が悪いのではない。自分の経験と知識によって再吟味し、判断する過程、すなわち思考過程が必要だということである。それが本を書いたり、研究したりする学問の楽しみである。
  今、韓国キリスト教の成長に関する本を書いている。シャーマニズムが土台になっているという故・姜元龍牧師の言葉を思い出す。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요즈음 나는 학문이란 것에 대한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 학생들이 강의를 듣지 않고 해박한 논문 같은 글을 보내오는 것에서 나는 많은 연구자들도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인이 모르는 희귀한 자료 등을 베껴서 책을 낸 사람이 많았다. 지금처럼 인터넷 시대에 자료의 베끼기로 책을 쓰는 연구자들이 많다. 평론가처럼 온라인에 올리는 사람들도 많다. 광고와 시청률 등의 메디어를 그냥 보아서는 안된다.
 경험철학과 이론철학이 있다면 나는 전자 믿는 편이다. 문헌을 베끼는 사람들, 넷트 정보를 베끼는 사람들이 나쁜 것이 아니다. 자기 경험과 지식에 의해 재음미하고 판단하는 과정, 즉 사고과정이 필요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책을 쓰고 연구하는 학문의 즐거움이다.
 지금 한국 기독교 성장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 샤머니즘이 바탕이 되어 있다는 고 강원룡 목사의 말이 생각난다. 

 キリスト教会が土着化する中でシャーマニズム化された現象が起きている。教会の中で病気治療のための祈りなどはシャーマニズムと変わらない。特に聖霊運動と復興会を通じて急成長している。そういう理由についてはキリスト教の神官の相通性、日帝時代以来抑えられている韓国人の精神的活路、そして政治、経済、科学など西欧化によるものだという説明などがある。これについてクリスチャンアカデミー院長の姜元龍牧師は次のように述べた。

 

70年代後半からはこのような対立はしばしば変わりました。韓国の教会に関心のあり方は、韓国で起きている全く新しい事態に深い関心を示してきましたが、その事態の様相とは、ほとんど奇跡的だと言える韓国の教会の急成長現象です。これは聖霊運動、三拍子祝福、按手治療と逐鬼を通じた治病運動などを内容とする運動で、燎原の炎のように全国に広がり、韓国人が住んでいる世界各地で起きたことです。この運動は韓国教会内だけで大きな衝撃を与えることではありません。全世界の教会が注目を集めており、韓国社会全体に否定的または肯定的な反応を呼び起こすようになりました。(中略)

このような巨大な流れは、過去のように進歩勢力と保守勢力などで分けることができない現象であり、70年代前半までは主に外国、特に米国やヨーロッパなどから入ってきた外来思想に影響を受けたものですが、これは外国との関係がありながらも、韓国内で独自に発生したものがより多い運動だという点に新しい現象と考えるべきでしょう 。


선거

2021年01月28日 06時19分01秒 | エッセイ

 先日、本欄で菅首相の言葉がよく伝わらないことを話題に日本教育の課題を提示し、皆様の賛成や批判のコメントがあった。ところが、昨日、参議院予算審議会で立憲民主党の蓮舫議員が総理の面前で総理は力不足ではないかという非常に激しい非難をしたのを見て驚いた。彼女こそスピーチが分っていないという印象だった。対話討議の論戦方法を知らない、それこそ説得力のない発言だったと思われる。首相が「失礼じゃないか」と言ったことは正しかった。
 日本では質問者が非常に優位に立ち、返答者は被疑者のように訊問式で行われる。質問者は「国民の代表だから何を言ってもいい」というような討議方式こそ是正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
 3月には下関市長選がある。私の親しいお二人の方が立候補している。一人は現役の市長の前田氏、もう一人は長い間市会議員をしてきた田辺よしこ女史である。昨日、我家の近所で選挙本部を開いた。久しぶりの散歩がてら寄ってみた。コロナ危機のため距離を置くことを意識して立ち話で、応援だけを表現し、ちょっとだけマスクを外してもらい写真を一枚撮らせていただいた。選挙公約などは主にSNSで行われるだろう。障害を持って生きてきた彼女の明るい表情、彼女の人生が市民に伝わるメッセージがたくさん出ることを期待する。帰路、コロナ禍で閑散とした観光地の古木が怪物のように見えた。

일전에 본란에서 스가총리의 말이 잘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화제로 일본 교육의 과제를 제시한 바 있고, 여러 분들의 찬성 비판이 있었다. 그런데 어제 참의원 예산심의회에서 蓮舫씨가 면전에서 스가수상에게 発信力不足이라는 아주 심한 비난을 한 것을 보고 놀랐다. 그녀야 말로 스피치를 모르는 것이라는 인상이었다. 대화 토의 논전 방법을 모르는 그야말로 설들력 없는 발언이었다고 생각된다. 수상이 <실례가 아닌가>라는 반응, 옳았다. 일본에서는 질문자가 아주 높은 우위에 서고, 답신자는 피의자처럼 심문식으로 진행된다. 질문자는 국민의 대표이니 무슨 말을 해도 된다는 이런 토의 토론 식이야 말로 시정되어야 한다.
 3월에는 시모노세키 시장선거가 있다. 나의 친한 두 사람이 후보이다. 한 분은 지금 현역의 시장이고, 다른 한 분은 오래 동안 시의원을 한 다나베 여사이다. 어제 우리 집 근처에서 선거본부를 열었다. 오랜만의 산보처럼 들렸다. 코로나 위기로 인해 거리두기를 의식하고 선전 응원만을 표하고 나왔다. 선거공약 등이 주로 SNS로 이루어질 것이다. 장애를 가지고 살아 온 그녀의 밝은 표정, 그녀의 삶이 시민들에게 다가 오는 메시지가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한산한 관광지에 고목이 괴물처럼 보일 뿐이다.    


이즈미

2021年01月27日 05時50分35秒 | 研究業績
 私の歩みを振り返ってみると、本当に劇的だと言える。 昨日、そのような自分の人生を振り返った授業をユーチューブにアップロードすると、数人の方から直接会って話を聞きたいというコメントが届いた。大いに 歓迎する。ただ、今はコロナ危機で先送りにした。本当に直接会って討論できる そのような集まりの機会を作りたい.。 昨日も書いたように、私は我家の行きつけの巫女研究から始まり、日本留学、帰国して日本研究、さらに植民地研究者になった。
韓日国交正常化直後、韓国を訪れた東京大学の泉靖一教授は、スペイン植民地・インカ帝国に関する本を書かれ、それがベストセラーになった方である。   私が初めて先生とお会いした時は、京城帝国大学の秋葉先生のシャーマニズムをひき継いで研究するために韓国に来たのだと言っておられた。後日 韓国で昔の友達に会おうとしたが、戦争動員した人だとそっぽを向かれるハプニングがあった。 私が同席した高麗大大学院のチョン·ジェガク院長は「泉が教授になった」ことに意外だと面と向かって言ったのを聞いたことがある。
私は彼を我家の行きつけの巫女に二度ほど案内した その現地調査記を『世界』に発表した。 彼が早く亡くならなかったら、戦前の研究が戦後に引き継がれただろう。とても残念である。 鵜沢教授は、彼のインカ研究時代の写真を探して見せて下さった。 実に感慨深い。

살아 온 것을 돌아보니 정말 극보다 극적이라 할 수 있다. 어제 그런 자기 인생을 돌아 본 수업을 유튜브에 올리자 몇 사람으로부터 직접 와서 듣고 싶다는 분들이 있다. 환영한다. 다만 지금 코로나 위기로 뒤로 미루었다. 그런 모임의 기회를 만들고 싶다. 나의 인생이란 결코 영웅담이나 성공담이 아닌 것이다.  우리집 무당 연구를 위해 일본 유학, 귀국하여 일본연구로, 다시 식민지 연구자로 되었다.
  한일국교 정상화 직후 한국에 찾아 온 동경대 이즈미 교수는 스페인 식민지로 인카제국이 전멸된 것을 책을 써서 베스트 셀러인 분이다. 그가 경성제국대학의 아키바선생의 샤머니즘을 이어서 연구하려 한국에 온 것이라 하였다. 한국서 옛친구들을 만나고자 하였으나 전쟁동원한 사람이라고 외면당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내가 동석한 고려대 대학원 정재각원장은 <이즈미가 교수가 되었다>는 것에 의외란 말을 면전에서 한 것을 들었다.
 나는 그를 우리집 단골무당에 두번이나 안내하였다. 그 현지조사기를 <세계>에 발표하였다. 아마 그가 일찍 사망하지 않았더라면 전전의 연구가 전후로 이어졌을 것이다. 우자와교수가 그의 인카연구 시절의 사진을 찾아 보여 주었다. 참으로 감회가 깊다.   


유우라시아

2021年01月26日 06時37分25秒 | 講義

ユーラシア財団の支援講座4年目を昨日終えたが、今後引き続き深化するだろう。全講義を担当した鵜澤教授と崔吉城が討議を行い、総括をした。アジアから出発してユーラシア、世界に広がったまさにグローバルな講義だった。鵜沢教授は長い間ペルーなどで動物の骨を発掘して研究する自然人類学、数万年前という年代が無限大に広がる研究である。伝染病が人類史において大きく社会に影響を与えたと説明した。 今のコロナもその一つの現象として理解できる。 
  私の研究に対する質問に対して、私は韓国38線近くの貧しい村で生まれ、朝鮮戦争の時には、村が売春村になったこと、そんな体験もあって、慰安婦に関する本を書いたこと。また迷信のようなシャーマニズムの母胎信仰から近代的青年に変身しようとする時に私の故郷、我家のお抱え巫女を研究した京城帝国大学の秋葉教授、その弟子である私の恩師によって私はシャーマニズム研究をすることになり、さらに、植民地研究者になった経緯があった。つまり、私の子供の頃からの生活環境が研究の原動力となっていることを語った。

https://youtu.be/fVxxNykGfcw

 

유우라시아재단의 지원 강좌 4년째를 어제 마쳤다. 계속해서 심화할 것이다. 전강의를 담당한 우자와 최길성의 감상과 토의를 하여 마감하였다. 아시아에서 출발하여 유우라시아, 세계로 확대된 그야말로 글로벌로 강의였다. 우자와 교수는 오래동안 페루 등에서 동물의 뼈를 발굴하여 연구하는 자연인류학, 수만년 전이라는  연대가 무한대로 연장되는 연구이다. 전염병이 인류사에 있어서 큰 사회적 지위 등에 영향을 주었다고 설명했다. 지금의 코로나도 그 하나의 현상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나의 연구에 대한 질문에 대해 나는 한국 38선 근처의 빈한한 마을에서 태어나 조선 전쟁 때에 매춘 마을이 된 것, 최근에는 위안부에 대한 책도 썼다. 또 미신과 같은 샤머니즘의 모태신앙에서 근대적 청년으로 변신하려는 때에 나의 고향 우리집 단골무당을 연구한 일본 제국의 경성제국대학의 아키바교수의 제자인 나의 은사들에 의해 내가 무속연구를 하게 되고, 그것이 식민지 연구자가 된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의 환경이 나의 몸에 살아 있어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スピーチ論

2021年01月25日 05時42分41秒 | 講義

 菅首相の記者会見や説明などが説得力に欠けているという。棒読みのようなことが指摘されている。しかし日本では聴者にうまく伝達、説得しようとするスピーチ、雄弁術が教育されていない。実力者であればあるほど話術は問題でないという。スピーチ術や雄弁にそのような社会的寛容がある。
 一方西欧では古代ギリシア・ローマの雄弁術の伝統があり,アメリカではスピーチ論講義が一般的に行われる。韓国でスピーチ論が注目されたのは戦後である。以前には言語学の一部としてなかったわけではないが、ソウル大学校・師範大学・国語学科の私の恩師、李杜鉉先生がアメリカのピ-バディ大学の交換教授を務めて帰ってきて,国語学科にスピーチの講義が設置された。そこで私は ディベートのトレーニングを受けた。
 後輩のチャ・ベグン氏と東亜放送アナウンサーのチョン・ヨンウ氏が博士号を取得し、ソウル大学にスピーチが教養講義としてとり入れられ、全国的に普及した。全体に 特に映画演劇学科などでは重要な科目となった。スピーチ論では簡潔かつ明瞭に表現するのが良い。それは雄弁だけを指すのではない。
 日本はこのような教育を無視してきた。人の話に自慢だと非難するのが常である。メディアに情報を提供するとすぐにメディアに乗ろうとしていると誤解される。ある日本人は口が達者な人は実力がないと言う。今や国際化。政治、外交面でも、国内のみならず世界に発信すべき、思いを伝えるのに必要なスピーチ教育がなされてこなかった日本の教育者たちがまず反省しなければならない。


스피치

2021年01月24日 18時58分39秒 | 講義

 새로운 스가총리의 기자회견이나 설명 등이 설득력이 없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말로 잘 설득하려 하면 저항감을 얻게 된다. 실력 있는 사람일 수록 숨어서 사는 것처럼 웅변은 금물이라는 사회적 관용이 있다. 서구에는 희랍의 웅변술의 전통이 있고, 미국에서는 스피치론 강의가 일반적으로 행해진다. 간결하고 명료하게 표현하는 것이 좋다.
  한국에 스피치론이 주목된 것은 전후이다. 나의 은사 이두현교수가 피버디 대학 교화교수로 있다가 돌아 와서 국어학과에 스피치 강의가 설치되었다. 디베트의 훈련도 하였다. 서울사대 차배근씨와 동아방송의 어나운서 전영우씨가 박사 학위를 받고 전국적으로 보급되었다.
 서울대학 전체에 교양강의를 넣게 되었고, 전국적으로 보급되었다. 특히 영화연극학과 등에서는 중요한 과목이 되었다. 과잉한 겸손 문화를 빙자한 일본은 이런 교육을 무시하여 왔다. 남이 말하는 것을 자랑이라고 비난하기 일쑤이다. 내가 지역 미디어에 자료를 제공하면 바로 미디어를 타려는 것으로 오해하였다. 어떤 일본 학자는 언변이 좋은 사람은 실력이 없다고 한다. 지금 국제화 정치 외교 등에 문제가 되고 있다. 교육자들이 먼저 반성하여야 한다.   


과거사는 과거역사

2021年01月24日 06時31分59秒 | エッセイ

과거사는 과거역사
최길성

 한일관계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 원격 강의가 끝나자마자 시 공무원이 찾아와 SNS 등에 내가 한일관계 단절, 국교 단절이라는 의견을 쓴 것을 읽고 그가 물어 온 것이다. 그건 반세기 나의 한일관계에 대한 자사(自史) 같은 것이다.
 내가 이승만시대 당시 어리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일본이라는 존재를 거의 알지 못했다. 다만 '반공·반일'의 표어가 교실에 걸려 있어서 일본을 '왜'라고 불러도, 일본인을 일본놈이라는 멸칭으로 불러도 일본을 미워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부모님으로부터는 <일본인은 정직하고 근면하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러다가 박정희 시대가 되자 <반일>이라는 구호가 사라졌다.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에는 많은 국민이 반대했어도 국교를 맺었다. 일본인이 왕래했고 나도 일본 유학을 했다. 귀국하여 일본어 대학교수가 되었다.
 전두환 시대에는 민족 정신이 대두하면서 독립 기념관이 들어서고 일본 정치가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반대라는 <반일>이라는 정치적 카드가 출현하며 <역사 인식>이라는 유행어 등 한국 내 반일적 독립 정신이 일본 때리기로 전환했다. 인권을 존중한다는 명분을 갖고 일본 내의 위안부 문제를 한국판으로 챙겨 어려운 시대가 계속되고 말았다. 나는 『친일과 반일』『 위안부의 진실 』이란 책도 펴냈다.
 며칠전 문재인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이 핸드폰에 긴급 뉴스로 떴다. 대통령의 기자회견이라지만 일본의 딱딱한, 제한적인 형식적 회견과는 달리 문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이런저런 대화의 말로 긴 방담이었다. 주목할 만한 내용이 있었다. 저녁 9시에 KBS 뉴스를 보았다. 한일 간에 협의해 나간다는 <협의>란 내용이 짧게 소개됐을 뿐이다. 한일관계에 대해서 주목할 만한 뉴스는 아니었다.
 일본 NHK는 사실대로 보도했다. 그러나 일본의 민방 미디어들은 난리다. 문왈 <한일 합의는 양국 정부가 인정한 공식 합의였다>. <과거는 역사>이고 한일간에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했다. 명언이 쏟아졌다. 명언이란 인격과 업적이 바탕이어야 한다. 
 하지만 의심하는 사람이 많다. 미국의 영향이라든지, 선거용이라든지, 선거 여론 등을 의식한 것인지…라고 한다. 정세 변화에 데한 깊은 이해로부터 생각이 바뀌는 것이라면 용기 있는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비위 맞춤이면 그것은 단순한 변절일 것이다.
 2015년도 한일 양국 간에 위안부 합의를 토대로 협의해 나가겠다고 했다. 환영한다.
 한일 양국은 이웃 사랑을 너무 과잉하여 많은 불화를 낳았다. 단교하는 마음으로 냉각시켜 다시 시작하는 한일관계가 되었으면 한다. 


日韓関係

2021年01月24日 06時22分02秒 | エッセイ
東洋経済日報(2021.1.22)寄稿文原稿
 
過去の歴史は過去の歴史
崔吉城
日韓関係に書きたいことがあまりにも多い。遠隔講義が終わるや否や、その時、市公務員が尋ねてきてSNSなどに、私が「韓日関係の断絶、国交断絶」という意見を書いたことを読んで彼がそれに対して意見を聞いてきたのだ。ああそれか、それは半世紀も前の私の昔話のようであった。おそらく韓日関係の自史のようなものであった。
私は李承晩時代、その時は私が幼いからでもあるが、日本という存在をほとんど知らなかった。ただ「反共・反日」の標語が教室に掲げられていて日本を「倭」と呼んでも、日本人を蔑称でいっても日本を憎むことはなかった。むしろ、親からは日本人は正直で勤勉だというのをよく聞いた。
 そのうちに朴正熙時代になる。「反日」というスローガンも消えた。日本との国交正常化に多くの国民が反対しても国交を結んだ。日本人が往来、私も日本留学をした。帰国して大学教員となった。
 全斗煥時代になると民族精神が台頭して独立記念館が建てられて、日本の政治家の靖国神社参拝反対という反日が政治的カードに出現し、歴史認識など韓国内の反日的独立精神が日本叩きに転換した。その上人権を尊重するという名分を持って日本国内の慰安婦問題を韓国版にして、困難な時代が続いていた。私はその時『親日と反日』『慰安婦の真実』という本を出した。
文在寅大統領の新年記者会見で、韓日関係に対する言及した。携帯に緊急ニュースが入った。大統領の記者会見とは言うものの、日本の堅苦しい、制限的なお形式的な会見とは違って、文大統領の記者会見は、あれこれ話だけの長い放談のようだ。注目すべき内容があった。夕方9時にKBSニュースを見た。「韓日間で協議していく」ということが短く紹介された。注目した日韓関係のことが注目するほどではなかった。
ところが、日本のNHKは事実を事実のように報道した。しかし民放メディアは大騒ぎだ。「慰安婦判決の場合2015年度に両国政府間に慰安婦問題に対する合意があった。その合意が両国政府間の公式的な合意だったという事実を認める」。「過去は歴史であり、韓日間で未来志向的に発展していくべきだ」と文大統領がいった。私もショックであった。それはいかにも期待していいだろうか。歓迎する。
しかし疑う人は多い。アメリカの影響とか、選挙とか、世論などの考えたことか…と伸びる。しかし情勢の変化に準じて事実に基づいて考え方が変わることは勇気ある発言だと思う。それはただの変節とは言えない。
2015年度に両国政府間に慰安婦問題に対する合意があった。韓国政府はその合意が両国政府間の公式の合意だったという事実を認める。そのような土台の上で、韓日間で協議していくという。
韓日は隣国という意識過剰であってきた。隣人への愛の物語りは多くの不和を生む。冷却化されて、やり直しの韓日関係になって欲しい。過去の歴史は過去の歴史であり、韓日間で未来志向的に発展していかなければならない。

섹스

2021年01月23日 05時18分31秒 | エッセイ

 慰安婦たちが日本政府を相手に損害賠償を請求し、勝訴した判決が確定されたという。慰安婦に関する本を書いた私は言及せざるを得ない。性暴力も大きな社会的問題だという点で、犯罪として扱われることは避けられない。ところが、戦争中の「慰安婦」という言葉で、韓国では国家的な偉人や英雄のようにする「セックス・ナショナリジム」をもって、韓日関係を悪化させていることは、とても不快に思っている。セックス、性、売春を社会的、国家的話題にするのは良くない。それは性を無視するのではなく、生物の貴重な本能だからであり、それを日常生活に露出しないようにするのが文化的である。人権という名分を借りてセックスを政治的カードに利用することは決して容認できない。

위안부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 승소한 판결이 확정됐다고 한다. 위안부에 대한 책을 쓰기도 했으므로 나는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성 폭력도 큰 사회적 문제란 점에서 범죄로서 다루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전쟁중의  <위안부>란 말로 국가적 위인 영웅처럼 하는 <섹스 내셔날리즘>을 가지고 한일관계를 나쁘게 하는 것에 나는 아주 불쾌하게 생각한다. 섹스, 성, 매춘을 사회적 국가적 이슈로 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것은 성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생물의 귀중한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일상생활에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것이 문화적 현상이다. 인권을 빙자하여 섹스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그냥

2021年01月22日 07時01分23秒 | エッセイ

 지금은 집에서 칩거 생활을 한다. 밖에 나가서 운동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아마 많은 분들도 그럴 것이다. 산책 같은 건 애견 미미가 살아있을 때는 끌려가는 듯  따라다닌 적도 있었다.
 남자다운 취미는 전혀 없고 여성적인 것이 많다. 취미는 거의 여성적이며 한국에서는 임신 외에는 여자가 하는 일,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취미로 열대어, 새를 키운 적도 있지만 지금은 안 해.  가끔 참새를 관찰한다.꽃꽂이와 실내장식의 취미는 변하지 않는다. 꽃꽂이라고 해서 무슨 자격을 갖춘 것도 아니다. 칭찬을 들으면 그전 예의상 말로 받아들인다.

 방에는 화분이 가득하다. 겨울에는 열대 밀림이 된다. 옆집 사람이 이사할 때 두고 간 클라린도우란은 다른 데서는 본 적이 없다. 몇 년 동안 옆집 현관 앞에 놓여 있어 꽃이 안 필 줄 알았는데 내 집안에서는 갑자기 화려한 꽃이 오래 간다. 그것도 두 달 동안이나 화려한 꽃을 감상하게 해 주었다. 그 밖에 난류, 부겐빌리아, 히비스커스, 행복나무, 선물로 받은 꽃다발에서 뿌리 내린 것들로 창가는 가득 찼다.
 개중에는 화분에 심은 적이 없는 잡초가 핀다. 이런 이름 모를 잡초 같은 꽃에 눈이 끌린다. 꽃꽂이 전시회 등에서는 볼 수 없는 잡초의 꽃, 이름은 모르지만 그 꽃에도 눈길이 간다. 한 독자가 골란케라는 꽃 이름을 알려주었다. 잡초는 수도 많고 번식력도 강해 고교야구 아키타 현 팀이 <잡초>라는 말로 아필했던 기억이 난다. 
 방 구조 개편도 항상 하고 있다. 침실 가구들을 다시 한 번 정돈하고 나니 마치 호텔 같은 기분이다. 기분 전환도 된다. 나이를 먹으면서 빈도는 줄어도 변하지 않고, 여전히 취미처럼 남아 있다. 내가 가구를 옮길 때마다 아내는 청소기와 걸레를 가지고 바쁘다. 훌륭한 조수가 있다. 아내는 잘 도와줄 뿐만 아니라 감탄을 하기도 하고 칭찬을 하기도 한다. 꽃을 키우는 것 같아도 내가 집사람 밑에서 자라고 있다. 대학의 강의나 국제회의 등을 원격으로 행하고 있다. 전혀 사적인 공간이 국제적으로 열린다. 가장 사적인 공간이 일터, 가내 기업의 장소로 돌아오고 있는 것 같다.


エッセイ

2021年01月22日 06時56分18秒 | エッセイ
エッセイ
 
 今は家で蟄居生活をするのが日常的である。外に出て運動などはすることもなく、室内生活だけであり、多くの方々もそうであろう。しかし私はこのような生活が以前からずっと長く、それほど変化がない。特に健康のための運動というものはしていない。半世紀以上前から平行棒にぶら下がることと、足踏み運動、必要あって少し道上を歩くことがすべてだといえる。特に散歩など歩もしない。愛犬ミミが生きていた時は誘われて犬について歩いたこともあった。
 
 男らしい趣味は全くなく、女性的なものが多いと言える。趣味はすべて女性的であり、韓国では妊娠以外は女性の役割,仕事は何でもできるとも言われたことがある。熱帯魚、鳥を飼ったこともあったが今はしない。今はベランダで野鳥のバードウォッチングを楽しむようになった。生け花と室内模様替えの趣味は変わらず続いている。生け花と言っても何か資格を持っているわけではない。何派かと問われても答えはない。それでも周りが褒めてくれるのは礼儀上の言葉として受け入れている。
部屋には植木鉢が一杯。冬には熱帯密林になる。隣の家の人が引っ越しの時、置いて行ったクラリンドウという鉢は他のところでは見たことがない。数年間、隣家の玄関前に置かれていて、花は咲かないと思っていたのに我が家の中で突然華麗さと長持ちする花を披露してくれた。それも二ヶ月間も豪華な花を鑑賞させてくれた。前主から誉め言葉と開花に「飼い主に寄る」とメールがあった。その他に蘭類、ブーゲンビリア、ハイビスカス、幸福の木、プレゼントの花束から根下ろしたものなどで窓際は一杯になった。
 中には私の生け花の趣味を刺激するものがある。鉢に植えたことのない雑草の花が咲く。こんな名前も知らない雑草のような花に目が引かれる。生け花展示会などでは見られない雑草の花、名前は知がないがその花にも注目した。ある読者からゴランケという花名を教えていただいた。雑草は数も多く繁殖力も強く、高校野球の秋田県のチームが雑草は生命力が強いと言ったことを思い出す。雑草の生け花の大家「崔派」として普及させたい(笑)。
 部屋の模様替えも常にやっている。寝室の家具をもう一度整理整頓したら、ホテルのような気分である。気晴らしになり、とてもいい。しかし、家具を移動させるのにちょっと力不足を感じる。加齢によってその頻度は減っても、変わらず、依然としてその趣味は残っている。私が家具を移動させるたびに家内は掃除機と雑巾を持って忙しい。
 私の趣味は変わりなく続けられている。それには優秀な助手がいるからであろう。家内はよく手伝ってくれるだけではなく、感嘆したり、褒めたりする。花を育てる私が家内に育てられている。その私的空間で、今は大学の講義や国際会議などを遠隔で行っている。全く私的な空間が国際的に開かれる。もっともプライベートな空間が仕事の場、家内企業の場に戻りつつあるように感ずる。

アメリカンドリーム

2021年01月21日 05時59分02秒 | エッセイ
 私にはアメリカンドリームがある。それは幼い頃の米軍キャンプで始まった。いままでの米大統領の就任式はほとんど生中継などで見たが、今回はトランプ氏の退任式、バイデン大統領がホワイトハウスに入る姿だけを見た。退任式は惜別の場、平和だった。名残惜しそうに去って行った。
  アメリカ民主主義がトランプの個人主義で混乱したが,すぐに回復するだろう。米国式民主主義の混乱を見た多くの独裁者はうぬぼれているようだが、それは見返えされるだろう。 
 私は思う。 おそらく多くの人がそう考えているだろう。 体験的に言って、政治の世界は私の人生観よりはるかに非道徳的で、より簡単に変わる。 春が来る。まもなく<世界の春>が来る。
 
 나에게는 미국 꿈이 있다. 어린 시절 미군 캠프에서 시작된 것이다. 미국 대통령 취임식은 거의 생중계 등으로 보았으나 이번에는 트럼프씨위 퇴임식,바이덴대통령이 백악관으로 들어 가는 모습만을 보았다. 퇴임식은 석별의 장,평화스러웠다. 아쉬운 듯 사라졌다.
  주주의가 트럼프 개인주의로 혼란됬으나 곧 회복될 것이다. 미국식 민주주의 혼란을 본 많은 독재주의자들은 자만하는 듯하지만 그것을 뒤로 돌릴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체험적으로 말해서 정치의 세계는 나의 인생관보다 훨씬 비도덕적이고 더 쉽게 바뀐다. 봄이 온다. 곧 <세계의 봄>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