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吉城との対話

日々考えていること、感じていることを書きます。

친구의 죽음

2021年02月13日 21時20分22秒 | エッセイ
 호주의 친구가 얼마전에 세상 뜨고 추도식에서 낭독한 부인 박화서씨의 말이 나왔다.
 
  최고의 환경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고 한국사회의 성공모델로 부족함이 없는 삶이었지만 무언가 채워지지 않은 느낌이었다고 했습니다. 미국에서 지낸 1년 반동안 기독교 가치관, 서양중심 세계관 등을 모두 거부하고 ‘자연으로 돌아가자’ ‘인간 본연의 모습을 되찾자’는 시대였습니다. 한국으로 귀국하여 고독했었다고 합니다. 이방인으로 느꼈었다고 했습니다. 인생을 바꾸기로 결심하였습니다. 호주로 왔습니다. 호주에서 밀도짙고 창조적 시간이었습니다.  속물적 추구를 마다했고, 허위와 위선을 싫어했습니다. 인생이 아름다웠습니다. 사랑하는 남편, 당신과 같이 있기 위해 살았던 삶이였어요. 다음 생에서 또 만나요. 곧 만나요. 

 나와는 비교된다. 나는 서울로 전학되어 어리둥절한 때에 만난 친구이다. 그 때 나는 고생, 그는 행운아이었다.  <속물근성>을 싫어한 것 때문에 우리들은 친했다. 당시 우리들의 가치관이었다. 곧게 살아간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는 허물없는 부러운 인생을 살았다. 세상이 만만치 않다. 
   우연히 옛 어른이 생각나서 찾으니 연세대학 전교수 유동식선생이 100세로서 신년 예배에서 설교를 했다고 한다. 그 분과는 무속과 기독교에 관한 독서회를 같이 한 동인이고, 그 때 나의 무속 연구를 많이 논의한 기억이 있다. 너무 격저하다. 만나 뵙고 싶다.

読者からの手紙:書評『帝国日本の植民地を歩く』拝読しました。色々と勉強になりましたが、とりわけ「広島平和記念資料館」と「南京大虐殺記念館」そして「シンガポールの植民地遺産」=植民者ラッフルズのあしあとには深く考えさせられました。現役時代には広島で5年間ほど勤務し、まだ独身だったので平和公園の近くに下宿していたのを思い出します。大阪生まれソウルと広島で育っています。早稲田の文学部卒で広島に本社のある中国新社に入社、その後中国放送の社長に就任したのち一九九一年の市長選に当選し、市長になりました。市長時代には”原爆ドームに尽力し見事に実現しています。国際平和会議などにも積極的に参加し「希望のヒロシマ」や「無援の海峡」など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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