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吉城との対話

日々考えていること、感じていることを書きます。

인권문제

2021年01月14日 05時09分29秒 | エッセイ

私の知人の中に読書家がいる。ところが、彼が最近、投稿文で本を読むよりはネットなどを読むようになったという書いておられる。多くの人が目を覚ますと同時にテレビやパソコンをつけて、一日中生活をしていると思う。文字から離れ、絵や言葉の文化が中心となる。私も多くの時間がそうである。しかし依然として文を読み、そして書く。
 この度、研究所で文字で機関紙を出すことになり、準備を進めているが、意外と多くの人の関心と協力があって嬉しい。ソウルから送られた本がコロナや大雪などで滞っている。江戸時代にも船便制度があった。当時は日本から朝鮮まで1ヵ月ほどかかった。開化期に日本の影響で韓国にも郵便制度ができた。 ソウル安国洞には最初の郵便局の建物が保存されている。
 サハリンで調査した時、植民地被害を訴えるの裁判の判決が繰り返されたが無理だと聞いた。植民地被害訴訟を数十回敗訴した時だった。その時、アメリカの女性弁護士が人権問題なら裁判になり得るとした。それに備えるために急いで慰安婦問題として、コンドーム配送等の記録を探していた。その後、ソウル安養にサハリン移住した人から「人権問題の証拠を探す」と聞いた。その後には、慰安婦が愛国者の象徴のようになって銅像も建てられたのである。
 人権運動は人間の尊厳を取り戻すことだが、今はそれで不幸な韓日関係を続けている。世の中が大きく変わっても、変わらないのは互いに争って不和競争をしている韓日関係である。

내가 아는 사람 가운데 독서가가 있다. 그런데 그가 최근 투고문에서 책을 읽기보다는 넷트 등을 읽게 된다는 글을 올렸다. 많은 사람들이 눈뜨면서 텔레비죤이나 컴퓨터를 켜고 하루가 시종되는 생활이다. 문자에서 멀어지고 그림이나 말의 문화가 중심을 이룬다. 나도 많은 시간이 그렇다. 그러나 여전히 글을 읽고 쓴다. 
이번에 연구소 문자기관지를 내게 되어 준비를 하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의 관심과 협조가 있어서 기쁘다. 
 서울에서 부친 책이 코로나와 폭설 등으로 우편이 많이 지체되고 있다. 통신사 시절에도 특급 운편제도가 있었다. 일본에서 조선까지 한 달 쯤 걸렸다. 개화기에 일본의 영향으로 한국에도 편제도가 생겼다. 서울 안국동에는 최초의 우체국건물이 보존되어 있다.
 식민지 패해를 소송하는 것은 무리라는 판결이 되풀이되었다. 내가 사할린을 조사할 때 들은 말이다. 일본인 변호사들이 식민지 피해소송을 수십차례 패소하던 때였다. 그 때 민국인 변호사가 인권문제라면 재판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에  갑자기 위안부 문제 콘돔 배송 등의 기록을 찾고 있었다. 그 후 서울 안양에 사할린 이주자들로부터 인권문제의 증거를 찾는다는 말을 들었다. 그것이 위안부가 애국자의 상징처럼 되어 동상도 세워진 것이다.
 인권운동은 인간의 존엄성 찾기이지만 지금 그것으로 불행한 한일관계를 지속시키고 있다. 역사가 많이 변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서로 다투고 싸우는 한일관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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