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吉城との対話

日々考えていること、感じていることを書きます。

파문

2021年07月04日 05時52分19秒 | エッセイ
 人と会って話すなど、直接的な人間関係が遠のき、ネットSNSなどでコミュニケーションが多くなった。 対面ではとても言いにくいことも、非大面ではより率直に表現しやすい。筆談がそのような流れであると言える。朝鮮通信使の筆談を読んで感じたことである。 雨森芳洲が親しくなった申維翰に、「なぜ、朝鮮人は日本人を蛮族の犬と言うのか」と尋ねた。申曰く「壬辰倭乱(文禄·慶長の役)を思えば、日本人を噛んで食べても怒りが収まらない」という答えを書いた。今の韓国の反日感情は、このように文禄·慶長の役三国時代に遡及する。通訳者が介入していない筆談では非常に率直である。 私の親しいソウルの友達が、悪口のような書評を一般の本に載せた。私が遺憾の意を伝えると、彼は「誉めた文だが…」というメールが来た。電話で話す時は友情のこもった会話ができる。ネットの書き込みは危険だ。
 今朝、私が知っている某教授の文章がSNSに上がった。既に「破門」で絶たれた師弟関係の文章である。私は多くのことを思い出した。私の師弟間の問題をよみがえらせる。私の恩師たちに関する文を本欄でも取り上げたことがあるので、それは差し置いて私も弟子たちに残念に思うこともあるが、 恩という感情が問題だ。筆談やSNSでは、そのような感情はうまく伝わらない。聖書を読めばそのようなくだりが多い。キリストは弟子たちと政治家たちから逼迫を受け、十字架にかけられて死んだ。イエスはこうした人間の「恨」の問題を解決しようとしたようだ。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하는 등 직접적인 인간관계가 뜸해지면서 넷트 SNS 등으로 커뮤니케이션이 많아졌다. 대면해서는 차마 말하기 어려운 것도 비대면에서는 보다 솔직하게 쓰기 쉽다. 필담이 그런 류라고 할 수 있다. 조선통신사의 필담을 읽으면서 느낀 것이다. 아메모리호슈가 친해진 신유한에게 왜 조선사람들은 일본 사람들을 오랑캐 개같은 놈이라고 말하느냐고 물었다. 신왈 임진왜란을 생각하면 일본 사람을 잡아서 씹어먹어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고 답글을 썼다. 지금의 한국의 반일 감정은 이렇게 임진왜란 삼국시대로 소급된다. 통역이 아닌 필담은 아주 직설적이고 위험하다. 나의 친한 서울 친구가 악담 같은 서평을 일반 책에 실었다. 내가 유감스러운 뜻을 보내자 그는 칭찬한 글인데라고 메일이 왔다. 전화를 할 때는 우정어린 대화가 된다. 넷트 글이 필담처럼 위험하다.
오늘 아침 내가 아는 某教授의 글이 SNS 에 올랐다. 이미 「破門」끊어진 사제 관계의 글이다. 나는 많은 일들을 떠올렸다. 나의 사제간의 문제를 되살린다. 나의 은사들에게 대한 글을 본란에서도 다룬 적이 있으니 그것은 제껴 두고라도 나 자신의 제자들에게 섭섭한 것들이다 。은혜라는 감정이 문제이다. 필담과 SNS 에서는 그런 감정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 성경을 읽으면 그런 대목이 많다. 예수는 제자들과 정치인들로부터 핍박을 받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예수는이런 인간의 「恨」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던 것 같다.

最新の画像もっと見る

コメントを投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