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나는 고령임에도 컴퓨터에 강하다는 자랑을 하고는 하였는데 이제 크게 당하고 있다. 연구소에서 발행한 책을 아마존에 3년전에 출품한 것이 취소되지 않은채 매달 자동 지불되고 있는 것을 늦게야 발견하고 수 개월 전에 회사에 전화하여 취소된 것으로 생각했는데 여전히 매달 6천엔 정도 지불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놀라서 어제 12시간 회사에 전화 문의를 하여도 해결되지 않았다. 아내가 전화하고 나는 컴퓨터로 작동하였으나 회사쪽의 전화 상담자 모두 다른 의견으로 더 어려운 다운로드를 시켜 상담자가 바뀌면 메일을 기다리라고 한다. 또 다른 상담자가 다시 보내 온 메일은 여전히 같은 것이거나 더 어려운 작업이 이어진다. 많은 컴퓨터 수업을 한 셈, 컴퓨터에 자신감을 소실하고 말았다.
日本の女子学生たちが好む女性警察の親善訪問。私の日韓警察体験史のような話をした。突然「銃を撃ってみた?」と質問をした。国民が銃を所持することは社会的問題でもあるが、私は遊牧民族調査から日常的である社会があること、一方身体的差別のない平等思想があるということも指摘した。女性が銃を所持するということは恐ろしいことだが、男女差別から平等思想へと考えることもできる。考えることを望む私の論説のような言葉だった。白車で超速で走る素敵な職業であると同時に国民の安全を守る貴重で難しい職業である。これから時々お会い出来たら私の警察観を述べてみたい。
일본 여학생들이 선호하는 한 여성 경찰이 친선 방문해 왔다. 나의 한일 경찰 체험사 같은 이야기로 시작해서 <총을 쏴 보았는가>라고 질문도 하였다. 국민이 총을 소지한다는 것은 사회적 문제이기도 하지만 나의 유목민족 조사에서는 일상적이라는 것에 충격을 받았으나 한편 신체적 차별 없는 평등 사상이 있다는 것도 지적했다. 여인이 총을 소지한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지만 남녀차별에서 평등사상으로 볼 수도 있다. 사고하기를 바라는 나의 논설같은 말이었다. 백차를 타고 달리는 멋진 직업인 동시에 국민을 보살피는 어려운 직업이라는 것도 말했다. 앞으로 자주 만나서 나의 경찰관을 논하고 싶다.
회의가 끝나고 대학의 톱 레벨의 인물들이 나의 연구실에 들어와 길게 환담을 하였다. 한 분이 우리들의 공통점은 특이 취미라는 것이 없다는 것이라 하였다. 취미가 재미와 즐거움이라면 무취미의 우리들은 건조한 사람들이라는 말인가. 무취미에 덧붙여 한 가지 공통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일이다. 일과 취미는 어떻게 다를까. 일이 취미인가. 일과 취미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일이 괴로운 것인가. 일을 통해 우리들은 함께 산다. 함께라는 즐거움을 알아차리자 마자 독거노인인 혼자사는 것이 아주 행복하다고 하여 어언이 벙벙해졌다.
会議が終わって大学のトップレベルの人たちが私の研究室にこられ、歓談をした。座中の一人が「私たちの共通点は、特異な趣味というものがないことだ」と話した。趣味が楽しさなら、無趣味の私たちは無味乾燥な人であろうか。ただ一つの共通点は仕事が好きだ(?)。仕事と趣味はどう違うのか。仕事が趣味なのか。仕事と趣味の仕分けがあいまいになっている。仕事は辛い。人生は苦海。それでも 仕事を通じて楽しみ、喜び、私たちは共に暮らす。 「共に、一緒に」というのが楽しみで、幸せと話が纏まりそうなとき、「一人暮らしがとても幸せだ」と言う話が出て、呆気に取られた。行動を制限されないことが幸せだとのこと、私は寂しくて生きて行けないと思った。
회의가 끝나고 대학의 톱 레벨의 인물들이 나의 연구실에 들어와 길게 환담을 하였다. 한 분이 우리들의 공통점은 특이 취미라는 것이 없다는 것이라 하였다. 취미가 재미와 즐거움이라면 무취미의 우리들은 건조한 사람들이라는 말인가. 무취미에 덧붙여 한 가지 공통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일이다. 일과 취미는 어떻게 다를까. 일이 취미인가. 일과 취미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일이 괴로운 것인가. 일을 통해 우리들은 함께 산다. 함께라는 즐거움을 알아차리자 마자 독거노인인 혼자사는 것이 아주 행복하다고 하여 어언이 벙벙해졌다.
世の中の出来事を見ると、どうも真理というものが存在しないようなので、自分が生きてきたことを元に生きていくしかないように感じられる。 自分の経験には多くの失敗と後悔、そして多くの恩と感謝が込められている。 自分を見ることが私の老後の生活である。 それを元に拙稿を書いているところなのでとても忙しい.。最後の仕上げ段階の日本語での<私のシャーマニズムとキリスト教>、韓国語では<朝鮮戦争と売春婦>の出版に向けて準備に夢中になっているうちにすでに春がやってきたようである。
세상일들을 보면 도무지 진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자기가 살아 온 것을 바탕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세상과 달리 자신의 경험에는 많은 실패와 후회 그리고 많은 은혜와 감사가 들어있다. 자신을 보는 것이 나의 노후생활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책을 쓰고 있는 중이라 아주 바쁘다. 마지막 마무리를 하는 일본어판 <나의 무속과 기독교>, 한국에서 <한국전쟁과 매춘부> 발행이 많이 진행되었다.
昨日の午前、オンラインで確定申告をしようとしたが、到底できない。 「とても簡単だ」という言葉とは全く違って、電話で数回問い合わせをしたのにできない。 私のようにコンピューターで暮す人がこんなに困難なのはなんだろうか。日本のネット後進性を責めながら現場に駆けつけた。意外に申請者が多くなく、職員が親切にして下さり1時間以内に終えた。昨年、提供された暗証番号が間違っているという。新しい番号をもらった。来年は問題がないだろうと言われた。オンライン上の煩雑さはあったが職員の親切で迅速な対応に感謝した。
もう一つ問題があった。アマゾンに出品した本をキャンセルしたにもかかわらず、自動的に手数料等支出された領収書が送られてくるので電話で問い合わせをし、いろいろ長く調べてもらったところ、大学の研究所と私個人の2ヵ所に指定されていて、一つはキャンセルされたが、もう一つには私が数年間費用を払っている状態だという。コンピュータの技術が問題ではなく、私のせいだと分かった。取り消す作業が残っている。結局、これは私の問題に過ぎず、コンピューター技術の問題ではない。そんな私は今朝もパソコンをつけながら日課を始める。
어제 오전 온라인으로 세금신청을 하는데 도무지 되지 않는다. 아주 쉽고 간단하다는 말과는 전혀 달라 전화로 수차 문의를 하였는데도 되지 않는다. 나처럼 컴퓨터로 사는 사람이 이렇게 어렵다면 무엇일까. 일본의 넷트 후진성을 나무래면서 현장으로 달려 갔다. 의외로 신청자가 많지 않고 직원들이 친절하게 맡아 주어 1시간 이내에 마쳤다. 이전 제공받은 암호번호가 잘 못된 것이라는 것이다. 새 번호를 받았다. 내년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세무서가 잘못 준 온라인 번화이지만 직원들의 친절하고 빠른 대응에 감사하였다.
다른 하나의 문제가 있다. 아마존에 출품한 책을 취소하고서도 자동 지출된 영수서가 와서 전화 문의를 길게 하니 대학연구소와 내 개인의 두 곳으로 지정되어 하나는 취소되었으나 다른 하나를 수년간 비용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컴퓨터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내 잘못이라는 것을 알았다. 취소하는 작업이 남아 있다. 결국 나의 문제일 뿐 컴퓨터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오늘 아침도 컴퓨터를 켜면서 일과가 시작된다.
研究所機関紙の校正のため印刷所に寄った。大きな建物に、広い駐車場が一杯だ。盛業中だ。ある出版関係者は文字文化が消えていくと悲観した。古典的な本を主に出す出版社の文章が分かりやすい文章に変わっていく。前を見ながら生きなければならない。死んだ魚は流れる。生きた魚は逆流する。名言。
文大統領が3·1節記念演説で未来志向的な韓日両国は重要な隣人だと述べた。正しい言葉だ。文氏の言葉が間違っているわけでもないのに、信頼できないのはなぜだろうか。良い言葉を言うと金言や名言になるわけではない。政策と人格が裏付けられなければならない。「世の中を見習うな」という名言、どこにあるだろうか。
연구소 기관지 교정 때문에 인쇄소에 들렸다. 큰 건물에 넓은 주차장이 꽉 찼다. 성업중이다. 어느 출판관계자는 문자문화가 사라져 간다고 비관했다. 고전적인 책을 주로 내는 출판사의 글이 알기 쉬운 문장으로 바뀌어 간다. 앞을 보면서 살아야 한다.
문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미래지향적인 한·일 양국은 경제, 문화, 인적교류 등 모든 분야에서 서로에게 매우 중요한 이웃이라고 했다. 오른 말이다. 문씨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닌데 믿기지 않고 신뢰되지 않는 것은 왜일까. 그가 시세를 전망하는 사람일까. 좋은 말만 골라서 한다고 금언이나 명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정책과 인격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다. <세상을 본 받지 말라>는 말을 생각한다. 어디에 있을까.
1ヵ月で定年をするという市公務員が研究室を訪ねて来た。 60で定年になり、そして新しい職場が設けられたそうである。入社、転勤などの季節なのに、人々の移動が抑制されている。妻は買い物に私を連れて行く。それでも運動させようとしている。いつも目が行く寄り所がある。ペットショップである。ほぼ高値で販売された表示が付いている。70万円単位と、高価だと妻は驚く。私は結婚費用と比喩する。
犬の猫を飼うということがどんなに大きな負担になるかと私たちは経験的によく分かっている。愛するということがそうである。もう犬を愛するということが負担になるほど年を意識する。たくさんの家具が陳列されている。お荷物になりそうである。ただ、質素に暮らす。
한 달이면 정년을 한다는 시 공무원이 연구실에 들렸다. 60에 정년한다고, 그리고 새로운 직장이 마련되었다고 한다. 입사 전근 등의 계절인데 사람들의 이동이 억제되어 있다. 아내는 장보기에 나를 데리고 간다. 그나마 운동을 시키려 한다. 늘 눈길이 가는 곳이 있다. 애견 센터이다. 거의 고가로 판매된 표시가 붙어 있다. 70만엔 단위이다. 고가라고 아내는 놀란다. 나는 결혼하는 비용과 비유한다.
개 고양이를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큰 부담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잘 안다. 사랑한다는 것이 그렇다. 이제는 개를 사랑한다는 것이 부담될 정도로 나이를 먹었다. 많은 가구들이 진열되어 있다. 짐이 될 것 같다. 그저 조촐하게 살 뿐이다. *photo나의 방 창가를 메운 식물들
日記帳をめくると、最も多いトピックが愛犬と教会の話である。1970年代、妻が馬山で学生から誕生日祝いとしてもらった韓国産犬を育て始め、七匹の犬と共に生活してきたことになる。初めて13坪の部屋で飼うことになった時、 アパートのおばあちゃんたちから反対され、家畜飼育禁止行政通知を受け。大邱に引っ越す日にトラックに荷物を積んで出かけようとしたが、妻が犬を抱いて乗ろうとすると「荷物をすべて降ろせ」という運転手の青天の霹靂など、すべてが鮮やかに思い浮かぶ。そして、日本に連れてきて来て本当に良い愛犬として20歳6か月まで長寿を全うしたミミ。韓、日で過ごした愛犬を書いた日記を読むと涙が出る
シベリア調査旅行記を近く出版される研究所論文集に載せた。
일기장을 들치니 가장 많은 토픽이 강아지와 교회에 이야기이다. 시베리아 조사여행기를 곧 출간되는 연구소 논문집에 실었다. 또 하나 아주 눈에 밟히는 것이 있다. 애견에 대한 것이다. 1970년대 아내가 마산에서 학생으로 받은 한국 토종개를 기르기 시작해서 새끼를 낳고 7 마리를 13평 방에서 기르게 되었다. 아파트에서 가축사육 금지 행정 통지를 받고, 대구로 이사하던 날 트럭에 짐을 싣고 떠나려는데 아내가 개를 안고 타려고 하니 <짐을 모두 풀라>는 운전수의 청천벽력 등 모두 선하게 떠 오른다. 그리고 일본으로 데려와 정말 좋은 애견으로 20살까지 살던 일들, 한일관계의 애견일기를 읽으면 눈물이 나온다.
一昨日は、ここの美術館で郷土出身の高島北海展を見た。以前にも何度も見て、見慣れた作品である。同時代の他の人々の作品も陳列されている。入口からコロナ対策が厳しい。そして高齢者も有料。やや大型映像を展示したことの他に、大した変化も感激もない。展示の方法は非常に厳格な雰囲気。各室に監視員がいて、マスクや撮影禁止などあえて刑務所の中を見ているような気分。他の施設では親みを持てるような展示傾向にあるが、ここでは依然として厳粛な展示をしている。
昨日教会で会った具長老が「教会ではシャーマニズムを警戒しなければならない」に同意するという。その一言が耳に残る。現在執筆中の本の結論だが、私の文章を読んだと言われる。さてどれだろう。 最近SNSに投稿した文を読んだのだろうか。
昨夜、韓国KBSで日本の地震について、日本の特派員は原発の危険性に触れた。日本の報道とは違う。
渋沢栄一のドラマを見た。歴史の教科書を読んでいる気分になった。否、出生から始まり、出世するまでの英雄談の始まりである。私が韓国語に翻訳した彼の孫、渋沢敬三の歴史や佐野真一氏の三代の興亡を書いた実話の方がより劇的だと思うが、NHKの教科書的ドラマはどうだろうか。楽しみに見ていきたい。
그제는 이곳 미술관에서 향토출신의 호카이전을 보았다. 이전에도 수차 보았으니 낯익은 작품들이다. 동시대의 다른 사람들의 작품들도 진열되어 있다. 입구에서부터 코로나 절차가 엄격하다. 고령자도 유료이다. 다소 대형 영상을 전시한 것 외에 별다른 감격을 주는 것은 아니다. 전시 방법이 아주 엄격한 분위기이다. 각실 마다 감시원이 있어서 마스크나 촬영 등을 감히하는 듯 형무소 안을 보는 기분이다. 친해지도록 전시하는 경향으로 가는데 이곳에서는 여전히 엄숙한 전시이다.
어제 교회에서 만난 재일동포 장노가 <샤머니즘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 마디가 귀에 남는다. 지금 집필중인 책의 결론인데 그가 어찌 알아 챙겼을까. 나의 글을 읽었다고 하는데 무슨 글을 읽는 것인가. 최근 SNS에 투고한 글을 읽은 것일까. 나는 재일교포가 아니다. 그들을 이해하지만 그들의 아이덴티티를 공유하고 싶지 않다. 일본에 그냥 살고 있을 뿐이다.
어제 밤 한국 KBS에서 일본 지진에 대해 일본 특파원 황현택씨가 원전의 위험성을 언급하였다. 일본 보도와는 다르다. 시부자와에이치 드라마를 보았다. 고증이 잘 되었다고 생각하여 역사 교과서를 읽는 기분으로 보았다. 출생에서 시작해서 출세를 내리 깔아가는 식의 영웅담 식의 시작이다. 내가 한국어로 번역한 그의 손자 시부자와게이조의 역사, 사노 겐지씨의 삼대의 흥망을 쓴 실담이 더 극적이라고 생각하는데 NHK의 교과서적인 역사 드라마는 어찌 될 것인가. 보아 갈 것이다.
넷트 등 정보들이 넘쳐온다. 텔레비죤에 대해 부정적이면서 실은 아주 잘 보고 있다. 문화인류학의 현지조사가 어려운 때에 텔레비는 많은 연구 자료를 제공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제는 장시간 한국의 <불멸의 명곡>과 <일본의 가라오케 바틀>을 보았다. 즐기는 것 이상이었다.
내가 음악에 대해 얘기를 하면 웃을 것이다. 촌놈이 상경하여 만난 큰 문제는 노래이었다. 문학소년 시절 미국공보원USIS에서 행하는 음악강좌에 매주 참가했다. 레코드로 고전 음악을 감상하는 시간이었다. 책 읽기나 시를 읊는 것이나 노래는 진실한 음악이 아니라고 가사를 무시하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소리 음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나도 가사를 읊는 시, 시조, 민요 등을 무시하는 태도를 갖게 되었다. 피리나 퉁소 등 가사가 없는 음악 그리고 고전 음악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음치가 된 것이다. 참으로 큰 편견이었다. 퉁소를 취미로 하면서 음의 아름다움, 판소리를 들으면서 가사와 음의 조화를 알게 되었다.
어제 한일 노래를 비교하는 시간이었다. 연가 트롯트보다 요즘 젊은이들의 노래는 훨씬 가사와 리듬 멜로디 그리고 소리내기가 다양하다. 한국 노래는 소리내기와 가사에서 볼륨이 크고 거의 연애 사랑만에 집중되어 감정을 고조시켜 울리려고 크게 강조한다. 거기에 비해 일본 노래는 백뮤직을 백으로 두고 가사를 읽는 멜로디가 강조되는 느낌이다. 한국인이 크게 내 뱉는데, 반해 일본인은 조금씩 내 뱉는다. 울면서 듣는 문화와 조용히 생각하면서 듣는 문화의 대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