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そぞろ歩き韓国』から『四季折々』に 

東京近郊を散歩した折々の写真とたまに俳句。

エッセイ3 동경 일일 구경 東京一日観光3

2016-06-10 10:20:52 | 日記・エッセイ・コラム

 

6.단자에몬 저택의 터(弾左衛門 屋敷 跡)

스미다 강가인 이마도에 간다.  거기서 에도 시대에 피차별민 중의 에타()라고 불린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요시와라와 같이 담으로 둘러싸인 동네는 신정(新町)이라고 했다.

막말에는 417채 가구가 살고 있었다.  에타는 죽은 소나 말의 가죽을 독점적으로 생산해서 가공・판매하거나 심지(灯芯)를 제조해서 에도에서 독점적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특히 심지를 독점적으로 판매해서 막대한 돈을 소유했고 고리 대금업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에타 금(金)이라고 한다. 이마도 1가에 동경 도립 아사쿠사 고등학교가 있다.  이곳이 옛날 에타 두목 단자에몬 저택 의 터(弾左衛門 邸宅 跡)이다. 단자에몬은  막부(幕府)에서 관동(関東) 지방 일대의 피차별민에 관한 재판이나 형벌 집행을 위임 받았다. 그 저택 안에서 재판을 하거나 죄수를 유치하거나 형벌을 집행했다.

에도 시대 중기무렵 단자에몬의 지배하에서 빠져 나간 피차별민이 있다.  신분을 올려서 평민이 된 자는 안마사와 가부키 배우이다. 그래서 비인들도 단자에몬의 지배하에서 빠져 나가려고 에도 관청에 신청했다. 그렇지만 각하되어서 중심 인물이 여러명 처형되었다.

그무렵 무숙인이 아니라 비인들이 에도 시내에서 방화를 많이 하고 있었다.  처형된 비인도 많으며 섬으로 보낸 비인도 많았다. 신분제도가 저변에서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막부 말기에 단자에몬이 자기 신분을 올리려 막부에 다액의 자금을 주거나 에타 군대를 창설하고 협력했다. 드디어 도바 후시미(鳥羽伏見)전쟁에 지고 돌아온 15대 장군 도쿠가와 요시노부(徳川慶喜)가 단자에몬을 무사 신분으로 그 부하60여명을 평민 신분으로 올렸다. 게다가 단자에몬은 막부에 50만냥을 주고 피차별민 전부의 신분을 올리려 요청했다.  하지만 막부가 무너져서 그것은 실현되지 않았다.

메이지 시대에 들어와 피차별민이 모두 해방되고 평민이 되었다.  그렇지만 신분 제도와 연결되어 있는 경제적인 기반을 잃었다.  단자에몬은 사재를 들여 미국에서 구두 제조 기술자를 부르고  에타등에 구두 제조 기술을 가르쳤다. 만년의 단자에몬은 구두 회사는 잘 할 수 없었지만 구두 장인으로 수백명이나 자란 것을 마음에서 기뻐했다고 한다.

7.이마도 신사(今戸神社)

이마도 신사는 도립 아사쿠사 고등학교 건너편에 있다. 옛날은 이마도 하치만(今戸八幡)신사였다. 쇼와(昭和)초기에 하쿠산(白山)신사와 합병했다. 다른 신사와 달리 하쿠산 신사는 ‘ 더러운 패거리를 구제한다 ’「濁穢不浄の輩を済度する」고 하는 기본적인 방침을 가지고 있다. 관동 지방의 피차별 촌에는 하쿠산 신사가 많단다.  지금 이마도 신사에는 아사쿠사 7 복신중의 하나인 복록수(福禄寿)가 있다. 결혼과 아이 양육을 축복하는 신이다.

【日本語訳】

6.弾左衛門の屋敷跡

隅田川岸の今戸に行く。そこに江戸時代に被差別民の中のと呼ばれた人々が住んでいた。吉原のように塀に囲まれた町は新町といった。幕末に417世帯が住んでいた。は死んだ牛や馬の皮を独占して生産し加工・販売したり、灯芯を製造して江戸市内で独占して販売したりしていた。特に灯芯を独占販売して莫大なお金を所有し、高利貸しをしていた。

これを金という。今戸1丁目に東京都立浅草高校がある。ここが昔の頭目の弾左衛門の屋敷の跡だ。弾左衛門は幕府に関東地方一帯の被差別民に関する裁判や刑罰の執行を任された。その屋敷内で裁判をしたり、囚人を留置したり、刑罰を執行したりした。

江戸時代中期ごろ、弾左衛門の支配下から抜け出した被差別民がいる。身分を向上させて平民になったのは座頭と歌舞伎役者だ。それでも弾左衛門の支配下から抜けようと、町奉行所に申し出た。しかし却下され、中心人物が数人処刑された。

その頃、無宿人ではなくたちが江戸市内で放火をたくさんしていた。処刑されたも多いし、島へ送られたも多かった。身分制度が底辺で大きく揺らいでいた。幕府末期に弾左衛門が自分たちの身分を引き上げようと幕府に多額の資金をわたしたり、軍隊を創設して協力した。ついに鳥羽伏見の戦いで負けて戻ってきた15代将軍徳川慶喜が、弾左衛門を武士身分にその部下60余名を平民身分に引き上げた。さらに弾左衛門は幕府に50万両をわたして被差別民全部の身分を引き上げるように要請した。しかし幕府が倒れてそれは実現されなかった。

明治時代に入って被差別民が全部解放され平民になった。しかし身分制度とむすびついていた経済的な基盤を失った。弾左衛門は私財を投じて米国から靴製造技術者を呼んで、などに靴製造技術を教えた。晩年弾左衛門は靴会社はうまくいかなかったが、靴職人として数百人も育ったことを心から喜んだという。

7.今戸神社

今戸神社は都立浅草高校の向かいにある。昔は今戸八幡神社だ。昭和初期に白山神社と合併した。ほかの神社と違って、白山神社は「濁穢不浄の輩を済度する」という基本方針をもっている。関東地方の被差別民の村には白山神社が多いそうだ。今、今戸神社には浅草7福神の一つの福禄寿がある。結婚と子どもの養育を祝福する神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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