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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のこと いろいろ あれこれ いまむかし

1970年代から現在の韓国なんでも情報いろいろ目と足で集めました。

宗廟での祭礼は国の最高行事

2009-11-18 18:55:45 | Weblog
9月9日午前

<韓国 ソウル 鐘路区>

宗廟は李氏朝鮮時代、正殿では毎年春・夏・秋・冬と師走(陰暦12月)に大きな祭祀を行い、永寧殿では毎年春秋と師走に祭享日(祭祀を行う日)を別に設けて祭礼を行ったそうです。

それほど宗廟での祭礼は国の最高行事であり、王朝の正統性を明らかにする統治秩序の基本でした。

宗廟祭礼は日本の植民地時代に一度中断されましたが、独立後の1965年から宗廟祭礼保存会により毎年5月の第1日曜日に1度だけ奉安されるようになりました。

ちなみに宗廟の正門・蒼葉門前には宗廟市民公園がありますが、ここはソウル市内でお年寄りがもっとも集まる公園で、散歩や一休みにくるお年寄りで一日中にぎやかな憩いの空間となっています。


<한국 서울 종로구>

종묘는 이씨 조선 시대, 정전에서는 매년춘·하·추·동과 12월(음력 12월)에 큰 제사를 실시해, 영녕전에서는 매년 춘추와 12월에 제향일(제사를 실시하는 날)을 따로 마련하고 제례를 실시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종묘로의 제례는 나라의 최고 행사이며, 왕조의 정통성을 분명히 하는 통치 질서의 기본(이었)였습니다.

종묘 제례는 일본의 식민지 시대에 한 번 중단되었습니다만, 독립 후의 1965년부터 종묘 제례 보존회에 의해 매년 5월의 제1 일요일에 1도만 봉안되게 되었습니다.

덧붙여서 종묘의 정문·창엽문전에는 종묘 시민 공원이 있습니다만, 여기는 서울시내에서 노인이 가장 모이는 공원에서, 산책이나 휴식하러 오는 노인으로 하루종일 떠들썩한
휴식의 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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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廟は李氏朝鮮時代の歴代王と王妃の位牌を祀った神宮

2009-11-18 16:57:21 | Weblog
9月9日午前

<韓国 ソウル 鐘路区>

宗廟は李氏朝鮮時代の歴代王と王妃の位牌を祀った神宮。

1394年(太祖3年、太祖[テジョ]は李朝第1代王、1335~1408、在位1392~1398)10月、朝鮮王朝が漢城(現在のソウル)に遷都、同年12月に着工され、翌年9月に完成しました。

その際、開城(高麗の首都)から太祖から4代祖である穆祖(モッジョ)・翼祖(イッジョ)・度祖(ドジョ)・桓祖(ファンジョ)の位牌を宗廟へ移し、安置しました。

歳月が流れるにつれて宗廟に祀る位牌が増え、現在では正殿の19室に、太祖から純宗(スンジョン・李朝第27代王で李朝最後の王、1874~1926、在位1907~1910)までの48位の位牌が、永寧殿の16室に太祖の4代祖である穆祖から桓祖など主に死後称号を贈られた王と王妃を中心とした32位の位牌が、そして正殿の庭前にある功臣堂(コンシンダン)には李氏朝鮮時代の功臣83位の位牌がそれぞれ祀られています。

このように、宗廟は位牌の数が多くなるにしたがって既存の建物の側面に相次いで増築を行ったため、李朝時代の他の建築物とは違い、独特で固有の空間形式をもつようになりました。宗廟建築の特徴は、自然、地勢に順応し、建物の軸を統一せず、それぞれの建物が個別の軸に沿って建てられていること。

それぞれの建物自体は対称でありながら、建物の全体的は配置は非対称構造になっています。



<한국 서울 종로구>

종묘는 이씨 조선 시대의 역대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신 신궁.

1394년(태조 3년, 태조[테죠]는 이조 제 1대왕, 1335~1408, 재위 1392~1398) 10월, 조선 왕조가 한성(현재의 서울)에 천도, 동년 12월에 착공되어 다음 해 9월에 완성했습니다.

그 때, 개성(고려의 수도)으로부터 태조로부터 4대 선조인 목조(못죠)·익조(잇죠)·도 조(드죠)·환조(판죠)의 위패를 종묘에 옮겨, 안치했습니다.

세월이 흐르는 것에 따라 종묘에 모시는 위패가 증가해 현재는 정전의 19실에, 태조로부터 순종(슨젼·이조 제 27대왕으로 이조 마지막 왕, 1874~1926, 재위 1907~1910)까지의 48위의 위패가, 영녕전의 16실에 태조의 4대 선조인 목조로부터 환조등 주로 사후 칭호를 주어진 왕과 왕비를 중심으로 한 32위의 위패가, 그리고 정전의 정전에 있는 공신당(콘신단)에는 이씨 조선 시대의 공신 83위의 위패가 각각 모셔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종묘는 위패의 수가 많아지는에 따라서 기존의 건물의 측면으로 연달아 증축을 실시했기 때문에, 이조 시대의 다른 건축물과는 달라, 독특하고 고유의 공간 형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종묘 건축의 특징은, 자연, 지세에 순응해, 건물의 축을 통일하지 않고, 각각의 건물이 개별의 축으로 따라 지어지고 있는 것.

각각의 건물 자체는 대칭이면서, 건물의 전체적은 배치는 비대칭 구조가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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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廟は日本人の観光客が多い

2009-11-18 16:36:33 | Weblog
9月9日午前

<韓国 ソウル 鐘路区>

宗廟(チョンミョ)を訪れている観光客は日本人が多いようだ・・・

おばさん達に混ざって若い女の子も多い。


<한국 서울 종로구>

종묘(종묘)를 방문하고 있는 관광객은 일본인이 많은 듯 하다···

아줌마들에게 섞여 젊은 여자 아이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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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廟、テレビ取材が行われていた。

2009-11-18 11:38:02 | Weblog
9月9日午前

<韓国 ソウル 鐘路区>

宗廟、テレビ取材が行われていた。

正殿(チョンジョン)
宗廟の中心をなす建物で、最も西側に安置された太祖をはじめ、道徳に適った政治を行ったとされる19人の王とその王妃の位牌、計49位が安置されている。

位牌が新たに安置されるたびに増築が重ねられ、単一の木造建築物としては世界最長(総101m)を誇る。

位牌が安置された各部屋の扉「板門(パンムン)」は、祭礼儀式の時以外は堅く閉じられているが、表面をよく見ると所々隙間がある造りになっている。

これは魂が自由に出入りするためであるとともに、内部の湿度を調節するためである。

<한국 서울 종로구>

종묘, 텔레비전 취재를 하고 있었다.

정전(정 존)
종묘의 중심을 이루는 건물에서, 가장 서쪽으로 안치된 태조를 시작하고 도덕에 필적한 정치를 실시했다고 여겨지는 19명의 왕과 그 왕비의 위패, 합계 49위가 안치되고 있다.

위패가 새롭게 안치될 때마다 증축을 거듭할 수 있어 단일의 목조 건축물로서는 세계 최장(총 101 m)을 자랑한다.

위패가 안치된 각부가게의 문「판문(팡)」은, 제례 의식시 이외는 딱딱하게 닫혀지고 있지만, 표면을 잘 보면 군데군데 틈새가 있는 구조가 되어 있다.

이것은 영혼이 자유롭게 출입하기 위해(때문에)인 것과 동시에, 내부의 습도를 조절하기 위해(때문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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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廟の中心の建物 正殿(チョンジョン)

2009-11-18 08:02:06 | Weblog
9月9日午前

<韓国 ソウル 鐘路区>

正殿(チョンジョン)
国宝第227号。宗廟の中心の建物で、もともと宗廟とよばれていましたが、永寧殿が建てられてからは太廟(テミョ)と呼ばれたりもしました。

李朝時代の初期には太祖の4代祖の位牌を祀り、それ以降は当時の在位王の4代祖と歴代王のなかでも特に功績のある王と王妃の位牌を祀り、祭祀を行いました。

現在正殿には西側を最も上とし、第1室である西側1番目の間に祀った太祖(1代目)の位牌をはじめ、李氏朝鮮の最後の皇帝である純宗皇帝(スンジョンファンジェ・27代)まで、各王と王妃あわせて計49位の位牌が19室に祀られています。

正殿の建築様式は単純ですが、韓国の単一建物としては最長の建物(101m)で、前面に長く整えた石を積み上げて作った広い月台(東西109m、南北69m)を置き、祀廟建築としての品位と荘重さを表わしています。

このように建物が長い理由は、朝鮮王朝が続き奉安する歴代王の位牌が増えたことで、幾度にわたって建物を横に増築していったからだそうです。


<한국 서울 종로구>

정전(정 존)
국보 제 227호. 종묘의 중심의 건물에서, 원래 종묘라고 불리고 있었습니다만, 영녕전이 지어지고 나서는 태묘(테묘)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조 시대의 초기에는 태조의 4대 선조의 위패를 모셔, 그 이후는 당시의 재위왕의 4대 선조와 역대왕중에서도 특히 공적이 있는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셔, 제사를 실시했습니다.

현재 정전에는 서쪽을 가장 위로 해, 제1실인 서쪽 1번째의 사이에 모신 태조(1대째)의 위패를 시작해 이씨 조선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황제(슨젼판제·27대)까지, 각 왕과 왕비 아울러 합계 49위의 위패가 19실에 모셔지고 있습니다.

정전의 건축 양식은 단순합니다만, 한국의 단일 건물로서는 최장의 건물(101 m)에서, 전면에 길게 정돈한 돌을 쌓아 올려 만든 넓은 월대(동서 109 m, 남북 69 m)를 두어, 사묘건축으로서의 품위와 장중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건물이 긴 이유는, 조선 왕조가 계속 되어 봉안하는 역대왕의 위패가 증가한 것으로, 여러 번에 걸쳐서 건물을 옆에 증축하며 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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