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한국 ヨギチョギ韓国

韓国のこと いろいろ あれこれ いまむかし

1970年代から現在の韓国なんでも情報いろいろ目と足で集めました。

宗廟の正殿東南側に位置する御楽室

2009-11-17 18:29:35 | Weblog
9月9日午前

<韓国 ソウル 鐘路区>

御楽室(オスッシル)
宗廟の正殿東南側に位置する御楽室は、王が祭礼を行う前に斎戒沐浴して衣服を清め、世子とともに祭祀を行う準備をしていた場所。

斎宮(チェグン)、または御斎室(オジェシル)ともいいます。

王をはじめとする祭官は、祭祀を行う7日前から飲酒歌舞が禁じられ、弔問も行かず、死刑の執行や宣告もせず、また夫婦が床を共にしなかったそうです。

そして祭祀の3日前からは毎日沐浴をし、祭祀の前日にここ御楽室に来ることになっていたそうです。

塀で囲まれた御楽室の区域内には、北側に御斎室(オジェシル)、東側に世子斎室(セジャジェシル)、西側に御沐浴聴(オモッヨッチョン)があり、祭礼時に王と世子は御楽室の正門を入り、斎戒沐浴後に祭礼服に着替え、西門を出て正殿の東門をくぐって祭礼を行いました。

御楽室は、正殿の規模が大きくなるたびに東のほうへ、東のほうへと移動して建てられたそうです。


<한국 서울 종로구>

락실(오숫실)
종묘의 정전 동남 측에 위치하는 락실은, 왕이 제례를 실시하기 전에 목욕 재계해 의복을 맑은, 세코와 함께 제사를 실시할 준비를 하고 있던 장소.

사이쿠(체군), 또는 재실(오제실)이라고도 합니다.

왕을 시작으로 하는 제관은, 제사를 실시하는 7일 전부터 음주 가무가 금지되고 조문도 가지 않고, 사형의 집행이나 선고도 하지 않고, 또 부부가 마루를 모두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사의 3일 전부터는 매일 목욕을 해, 제사의 전날에 여기락실에 오게 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담으로 둘러싸인 락실의 구역내에는, 북측으로 재실(오제실), 동쪽으로 세코재실(세쟈제실), 서쪽으로 목욕청(오못욧톨)이 있어, 제례시에 왕과 세코는 락실의 정문을 들어가, 목욕 재계 후에 제례옷으로 갈아 입고 니시몬을 나와 정전의 동문을 빠져 나가고 제례를 실시했습니다.

락실은, 정전의 규모가 커질 때마다 동쪽에, 동쪽으로 이동해 지어졌다고 합니다.
コメント
  • X
  • Facebookでシェアする
  • はてなブックマークに追加する
  • LINEでシェアする

宗廟、香路

2009-11-17 18:09:58 | Weblog
9月9日午前

<韓国 ソウル 鐘路区>

宗廟、香路

韓国語と英語で説明されている。


<한국 서울 종로구>

종묘, 향로

한국어와 영어로 설명되고 있다.
コメント
  • X
  • Facebookでシェアする
  • はてなブックマークに追加する
  • LINEでシェアする

宗廟 中池塘(チュンジダン)

2009-11-17 16:50:47 | Weblog
9月9日午前

<韓国 ソウル 鐘路区>

中池塘(チュンジダン)
望廟楼(マンミョル)の横にある池で、1443年(世宗25年)に造られたもの。

四角形の池の真ん中には丸い島があります。

これは「天圓地方(天は丸く地は四角である)思想」と「陰陽思想」に深く関わりがあり、四角形の池は地を象徴すると同時に「陰」を意味し、丸い島は天を象徴すると同時に「陽」を象徴しているそうです。

また、ほとんどの宮殿の池には松の木が植えられていますが、ここにはイブキ(ヒャンナム)が植えられていることと、中央の島にあずまやがないということが特徴!中池塘に蓮の花がなく、周辺にも花の咲く木が植えられていないのは、祭礼空間という特徴からだそうです。


<한국 서울 종로구>

나카이케당(틀지단)
망묘루(만묘르)의 옆에 있는 연못에서, 1443년(세종 25년)에 만들어진 것.

사각형의 연못의 한가운데에는 둥근 섬이 있습니다.

이것은「천원지방(하늘은 둥글게 땅은 사각이다) 사상」과「음양 사상」에 깊게 관계가 있어, 사각형의 연못은 땅을 상징하는 것과 동시에「그늘」을 의미해, 둥근 섬은 하늘을 상징하는 것과 동시에「햇빛」을 상징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대부분의 궁전의 연못에는 소나무가 심어져 있습니다만, 여기에는 이브키(할남)가 심어져 있는 것으로, 중앙의 섬에 정자가 없다고 하는 것이 특징! 나카이케당에 연꽃의 꽃이 없고, 주변에도 꽃이 피는 나무가 심어지지 않은 것은, 제례 공간이라고 하는 특징으로부터라고 합니다.

コメント
  • X
  • Facebookでシェアする
  • はてなブックマークに追加する
  • LINEでシェアする

宗廟 神香路(シンヒャンノ)

2009-11-17 12:00:49 | Weblog
9月9日午前

<韓国 ソウル 鐘路区>

神香路(シンヒャンノ)、御路(オロ)、世子路(セジャロ)
蒼葉門を入っていくと、地面の上にザラザラで平らな薄石(バッソッ)を用い、3筋ある道のひとつに長く敷いてあるのを見ることができます。

よく見てみると真ん中の道が左右の道よりも少し高くなっているのがわかるかと思います。

この3つの道にはそれぞれ意味が込められていて、最も高い真ん中の道を「神香路」、東側を「御路」、西側を「世子路」といいます。ちなみに真ん中の最も高い道は神が通る道。


<한국 서울 종로구>

신향로(신할노), 로(오로), 세코로(세쟈로)
창엽문을 들어가면, 지면 위에 거슬거슬로 평평한 박석(밧속)을 이용해 3관계 있는 길의 하나에 길게 깔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잘 보면 한가운데의 길이 좌우의 길보다 조금 높아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 3개의 길에는 각각 의미가 담겨져 있고, 가장 높은 한가운데의 길을「신향로」, 동쪽을「로」, 서쪽을「세코로 」라고 합니다. 덧붙여서 한가운데의 가장 높은 길은 신이 통과하는 길.
コメント
  • X
  • Facebookでシェアする
  • はてなブックマークに追加する
  • LINEでシェアする

宗廟は李氏朝鮮時代の歴代王と王妃の位牌を祀った神宮

2009-11-17 06:24:38 | Weblog
9月9日午前

<韓国 ソウル 鐘路区>

写真は案内図の前で英語で説明を受けている観光客、中国人かな?


計163位の位牌を祀った宗廟は、自然、地勢に順応して建築された独特で固有な建築物・・・。

宗廟は、李氏朝鮮時代の歴代王と王妃の位牌を祀った神宮。

1394年(太祖3年、太祖[テジョ]は李朝第1代王、1335~1408、在位1392~1398)10月、朝鮮王朝が漢城(現在のソウル)に遷都、同年12月に着工され、翌年9月に完成しました。

その際、開城(高麗の首都)から太祖から4代祖である穆祖(モッジョ)・翼祖(イッジョ)・度祖(ドジョ)・桓祖(ファンジョ)の位牌を宗廟へ移し、安置しました。歳月が流れるにつれて宗廟に祀る位牌が増え、現在では正殿の19室に、太祖から純宗(スンジョン・李朝第27代王で李朝最後の王、1874~1926、在位1907~1910)までの48位の位牌が、永寧殿の16室に太祖の4代祖である穆祖から桓祖など主に死後称号を贈られた王と王妃を中心とした32位の位牌が、そして正殿の庭前にある功臣堂(コンシンダン)には李氏朝鮮時代の功臣83位の位牌がそれぞれ祀られています。このように、宗廟は位牌の数が多くなるにしたがって既存の建物の側面に相次いで増築を行ったため、李朝時代の他の建築物とは違い、独特で固有の空間形式をもつようになりました。

宗廟建築の特徴は、自然、地勢に順応し、建物の軸を統一せず、それぞれの建物が個別の軸に沿って建てられていること。それぞれの建物自体は対称でありながら、建物の全体的は配置は非対称構造になっています。


<한국 서울 종로구>

사진은 안내도의 앞에서 영어로 설명을 받고 있는 관광객, 중국인일까?


합계 163위의 위패를 모신 종묘는, 자연, 지세에 순응해 건축된 독특하고 고유한 건축물···.

종묘는, 이씨 조선 시대의 역대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신 신궁.

1394년(태조 3년, 태조[테죠]는 이조 제 1대왕, 1335~1408, 재위 1392~1398) 10월, 조선 왕조가 한성(현재의 서울)에 천도, 동년 12월에 착공되어 다음 해 9월에 완성했습니다.

그 때, 개성(고려의 수도)으로부터 태조로부터 4대 선조인 목조(못죠)·익조(잇죠)·도 조(드죠)·환조(판죠)의 위패를 종묘에 옮겨, 안치했습니다. 세월이 흐르는 것에 따라 종묘에 모시는 위패가 증가해 현재는 정전의 19실에, 태조로부터 순종(슨젼·이조 제 27대왕으로 이조 마지막 왕, 1874~1926, 재위 1907~1910)까지의 48위의 위패가, 영녕전의 16실에 태조의 4대 선조인 목조로부터 환조등 주로 사후 칭호를 주어진 왕과 왕비를 중심으로 한 32위의 위패가, 그리고 정전의 정전에 있는 공신당(콘신단)에는 이씨 조선 시대의 공신 83위의 위패가 각각 모셔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종묘는 위패의 수가 많아지는에 따라서 기존의 건물의 측면으로 연달아 증축을 실시했기 때문에, 이조 시대의 다른 건축물과는 달라, 독특하고 고유의 공간 형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종묘 건축의 특징은, 자연, 지세에 순응해, 건물의 축을 통일하지 않고, 각각의 건물이 개별의 축으로 따라 지어지고 있는 것. 각각의 건물 자체는 대칭이면서, 건물의 전체적은 배치는 비대칭 구조가 되어 있습니다.

コメント
  • X
  • Facebookでシェアする
  • はてなブックマークに追加する
  • LINEでシェアする

SEOUL 宗廟(チョンミョ)

2009-11-17 06:15:52 | Weblog
9月9日午前

<韓国 ソウル 鐘路区>

宗廟(チョンミョ)、案内を受けている日本人観光客(写真)。

静けさと荘重な雰囲気が漂う宗廟(チョンミョ)は、朝鮮王朝歴代の王と王妃、およびに没後に位を贈られた王と王妃の神位(位牌)が安置されている、王室の霊廟です。当時、国教とされた儒教の思想に基づき造られた建物は、霊廟らしく控えめな装飾で素朴な印象を与えます。しかし、訪れる者を圧倒する独特の空気感が存在するのは、約500年という朝鮮王朝の歴史がこの場所に集約されているからでしょう。1995年には、その優れた建築様式と歴史性の高さから、ユネスコ世界文化遺産に登録されました。
宗廟では毎年5月にある王室の祭礼儀式「宗廟大祭(チョンミョデジェ)」をはじめ、様々な儀式が今も厳粛に執り行われており、王の子孫らによって当時の伝統が受け継がれる様子を目にすることができます。


世界に類を見ない独特の建築様式
宗廟は1394年、朝鮮王朝が漢陽(ハニャン、現在のソウル)に都を移した際に着工され、翌年完工しました。同時代の単一木造建築物としては世界最大規模を誇り、東西に伸びる珍しい建築様式が目を引きます。こうした造りは、国王らがこの世を去るたびに位牌を安置する空間を一室、一室増築してきたため。宗廟制度の起源は中国ですが、横長の造りは韓国のみの独特なものです。
宗廟内には現在、正殿(チョンジョン)19室に49位、別廟である永寧殿(ヨンニョンジョン)16室に34位、そして正殿の前庭にある功臣堂(コンシンダン)には王のために功を立てた臣下の位牌83位の合計166位が安置されています。


<한국 서울 종로구>

종묘(종묘), 안내를 받고 있는 일본인 관광객(사진).

고요함과 장중한 분위기가 감도는 종묘(종묘)는, 조선 왕조 역대의 왕과 왕비, 및에 사후에 정도를 주어진 왕과 왕비의 신위(위패)가 안치되고 있는, 왕실의 사당입니다. 당시 , 국교로 여겨진 유교의 사상에 근거해 만들어진 건물은, 사당인것 같고 소극적인 장식으로 소박한 인상을 줍니다. 그러나, 방문하는 사람을 압도하는 독특한 공기감이 존재하는 것은, 약 500년이라고 하는 조선 왕조의 역사가 이 장소에 집약되고 있기 때문이지요. 1995년에는, 그 뛰어난 건축 양식과 역사성의 높이로부터,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록되었습니다.
종묘에서는 매년 5월에 있는 왕실의 제례 의식「종묘 대제(톨묘데제)」을 시작해 여러가지 의식이 지금도 엄숙하게 거행해지고 있어 왕의 자손등에 의해서 당시의 전통이 계승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세계에 유례없는 독특한 건축 양식 종묘는 1394년, 조선 왕조가 한양(하날, 현재의 서울)에 도를 옮겼을 때에 착공되어 다음 해 완공 했습니다. 동시대의 단일 목조 건축물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해, 동서로 성장하는 드문 건축 양식이 눈을 끕니다. 이러한 구조는, 국왕등이 세상을 떠날 때마다 위패를 안치하는 공간을 일실, 일실 증축해 왔기 때문에. 종묘 제도의 기원은 중국입니다만, 횡장의 구조는 한국만의 독특한 것입니다.
종묘내에는 현재, 정전(정 존) 19실에 49위, 별묘인 영녕전(욘놀젼) 16실에 34위, 그리고 정전의 전정에 있는 공신당(콘신단)에는 왕을 위해서 공을 세운 신하의 위패 83위의 합계 166위가 안치되고 있습니다.

コメント
  • X
  • Facebookでシェアする
  • はてなブックマークに追加する
  • LINEでシェアする

宗廟の正門である蒼葉門(チャンヨッムン)

2009-11-17 06:09:28 | Weblog
9月9日午前

<韓国 ソウル 鐘路区>

蒼葉門(チャンヨッムン)
宗廟の正門である蒼葉門は、四廟(高祖の父母、曾祖父母、祖父母、父母4代の位牌を安置した祀堂)を代表する門らしく、宮殿の正門とは異なり、構造形態がとても簡潔で品のあるのが特徴。

例えば景福宮の正門である光化門は5色使用、階数も2階までと華麗で勇壮なのに比べ、蒼葉門は赤と緑の2色だけを使用し、階数も1階だけとシンプルで控えめ。蒼葉門はもともと前面中央にあった階段で上り下りできるようになっていましたのが、日本の植民地時代に道路をつくる際に道路面が高くなったため地面に埋まってしまい、現在はたったひとつ、長台石(長方形の石材)の基壇のみが残っているだけです。

正門の左右は宗廟の外郭を囲む塀とつながり、正門の外には「ここに来れば身分の上下に関わらず全員馬から降りろ」という言葉が込められている下馬碑(石碑)と、ソウル特別市有形文化財第56号に指定されている御井(イジョン・井戸)があります。


<한국 서울 종로구>

창엽문(체욧문)
종묘의 정문인 창엽문은, 4묘(고조부의 부모, 증조부어머니, 조부모, 부모 4대의 위패를 안치한 사당)를 대표하는 문인것 같아서, 궁전의 정문과는 달라, 구조 형태가 매우 간결하고 품위가 있는 것이 특징.

예를 들면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은 5색사용, 계수도 2층까지와 화려하고 웅장한데 비교해 창엽문은 빨강과 초록의 2색만을 사용해, 계수도 1층만과 심플하고 소극적. 창엽문은 원래 전면 중앙에 있던 계단에서 오르내림할 수 있게 되어 있었어요가, 일본의 식민지 시대에 도로를 만들 때에 도로면이 비싸졌기 때문에 지면에 메워져 버려, 현재는 단 하나, 장 대석(장방형의 석재)의 기단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정문의 좌우는 종묘의 외곽을 둘러싸는 담과 연결되어, 정문의 밖에는「여기에 오면 신분의 상하에 관련되지 않고 전원마로부터 내려라」라고 하는 말이 담겨져 있는 시모우마비(비석)와 서울 특별시 유형 문화재 제 56호로 지정되어 있는 미이(이젼·우물)가 있습니다.
コメント
  • X
  • Facebookでシェアする
  • はてなブックマークに追加する
  • LINEでシェアす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