権海考さんのエッセー「私の心の中の朝鮮学校」から抜粋して少しずつ掲載します。日本語訳は本をご購入下さい。
내 가슴속 조선학교
권 해 효
발취
(61페지)
딱 3년의 시간이 흘러2005년10월의 휴일이였습니다.
오사카의 한 시장통을 걷다 조선학교를 발견했습니다.
(63페지)
조.선.학.교
잠겨진 철문에 매달려 학교안을 들여다 보았지요.
운동장은 좁았고,시설은 낡아보였습니다.
(64페지)
깜짝 놀랐어요.
어떻게 저런 곳에 학교가 있을가 싶을 정도로┅
초라했지요.
바로 옆의 일본학교와는 하늘과 땅 차이일 정도로┅.
그때 3년전 만났던 그 학생들이 다시금 생각이 났지요.
조선학교 아이들이┅
(70페지)
이 아이들은 왜 여기서 우리 말을 배우고있을가?
(71페지)
얼마나 힘들가?
(72페지)
얼마나 외로울가?
(73페지)
그만 부끄러워져ㅆ습니다.
(74페지)
모른채 지나온 시절이 부끄러워ㅆ습니다.
내 자신이 부끄러워ㅆ습니다.
(75페지)
난 어릴 때부터 한반도의 근현대사에 대해 제대로 배워본적이 있을가?
우리 분단의 현실에 대해 피부에 와닿듯 느껴본적 있을가?
정작 일본에 와서보니 갈라진 조국의 아픔이 일본사회에 그대로 존재함을 느낄수 있었지요.
(78페지)
1965년, 내가 태여난 그 해 체결된 한일협정 이전까지는 “조선적”이라는 일종의 무국적자 신세를 스스로 자처했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남측도 아니고 북측도 아닌, 남과 북이 하나되는 통일조국에서만 자신의 국적을 회복하겠다고 고집을 부린 이들 ┅
(79페지)
조선적.
남도 북도 아니고 일본적은 더더욱 아닌 난민에 가까운 지위, 조선적.
(80페지)
해방이 되였어도 한반도의 상황은 무척이나 불안했기에
남과 북, 어느 한쪽을 택해서 돌아가지 못한,
남과 북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았기에
도리여 남과 북을 잇는 가교역할을 자처한 사람들,
(82페지)
그 사람들이 만든 학교, 조선학교.
우리 사회에서 마치 철 지난 유행가와도 같이 넘겨버리고마는 통일론의가 되여가고있지만 조선학교는 진지합니다.
우리 말을 배우고, 치마저고리를 입는 리유도 바로 여기에 있지요.
(84페지)
지난 65년간 일본동포사회의 구심점이였던 조선학교.
분단과 차별의 력사를 고스란히 안고있는 학교.
아니,학교라기보다는, 공동체이자 반드시 지켜야 할
숭고한 기발과도 같은 곳.
(90페지)
이 학교가 주는 기쁨이 있답니다.
(91페지)
우리가 외면해왔던것들, 모른척했던것들, 우리가 지키지 못한것들
그냥 내버려둔채 애써 부정해왔던것들 그 너머로 조선학교가 주는
기쁨이 있답니다.
(92페지)
학교란 무엇인가?
반복되는 시험, 치렬한 대학입시
그속에서 서로 경쟁하고, 싸워서 이겨야 하고,
이겨서 더 높은 지위로 올라야 하고, 더 많이 벌어야 하고,
(93페지)
그러기 위해 다시 또 경쟁해야 하고┅
과연┅ 학교란 무엇인가?
(94페지)
조선학교아이들, 일본사회속에서 우리 말을 하고 일본말도 하면서
북을 리해하고 남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아이들.
(95페지)
이 아이들 서로가 이 학교를 자신의 고향이라고 부르고
그속에서 자신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서로를 배려하며
학생과 학부모, 교사가 한마음 한뜻이 되여 가정의 중심이 되고,
나아가 사회공동체의 중심이 되는 조선학교의 모습을 보았답니다.
학교란 무엇인가? 에 대한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난, 그 실마리를 널리 알리고 싶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