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月9日午後
<韓国 ソウル>
東大門付近のチョンゲチョン
清渓川とは?!
約30年前までソウル中心部の西から東に流れていた全長約8kmの川。仁王山や白岳山南部、南山北部の山麓に端を発し、東大門(トンデムン)を過ぎたあたりから南下、中浪川と一緒になり漢江へ流れていた清渓川。
李氏朝鮮時代にはこの川を境に北側( 現在の景福宮と昌徳宮の間の三清洞あたり)を「北村(プッチョン)」、南側( 現在の忠武路、明洞あたり)を「南村(ナムチョン)」といい、地理的だけでなく、政治や社会、文化的にもソウルを分け隔てる川だったとか。 特に鍾路近くの橋の周辺は商人たちが集まる中心地として活気にあふれ、川辺は庶民たちの集落として、都の中でももっとも人口が密集していたエリアでもあった。
当時から市民の生活排水を流す清渓川は下水の匂いや洪水などの問題が常にあり、幾度の工事でも改善されず、結局1978年までに川を暗渠化する工事が終了。
その後はソウルの高度成長のシンボルともいえる高架道路が川の上に建設され、清渓川はソウルか完全に消えてしまったんです。
しかし、1968年に建設された清渓川高架道路が築30年を経て老朽化し、補強や大型車両の通行が規制されるなどの対策がとられましたが、そのままでは危険な状態となりました。
そこで高架道路を作り直すか、以前ここに流れていた清渓川を復元させるかで大議論となり、2002年の市長選挙で清渓川復元を公約に掲げたイ・ミョンバク市長が当選。
一気に清渓川復元事業が具体化することになりました。
清渓川高架道路を撤去し、河川を復活させる都市再開発事業では世界でも例がなく、世界的にも注目されていた大工事。そうして2005年の10月、とうとう清渓川が復元されました。
<한국 서울>
동대문 부근의 톨게톨
세이케이강이란? !
약 30년전까지 서울 중심부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고 있던 전체 길이 약 8 km의 강. 인왕산이나 시로다케 산난부, 남산 북부의 산록으로 발단해, 동대문(동대문)을 지난 근처에서 노우게, 중랑천과 함께 되어 한강에 흐르고 있던 세이케이강.
이씨 조선 시대에는 이 강을 경계로 북측(현재의 경복궁과 창덕궁의 사이의 삼정동 근처)을「키타무라(풋톨)」, 남쪽(현재의 충무로, 명동 근처)을「미나미무라(남톨) 」라고 해, 지리적 뿐만이 아니라, 정치나 사회, 문화적으로도 서울을 차별대우강(이었)였다고인가. 특히 종로 가까이의 다리의 주변은 상인들이 모이는 중심지로서 활기에 넘쳐 강변은 서민들의 취락으로서 도 중(안)에서 모모와도 인구가 밀집하고 있던 에리어이기도 했다.
당시부터 시민의 생활 배수를 흘리는 세이케이강은 하수의 냄새나 홍수등의 문제가 항상 있어, 여러 번의 공사에서도 개선되지 않고, 결국 1978년까지 강을 지하 배수로화하는 공사가 종료.
그 다음은 서울의 고도 성장의 심볼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고가도로가 강 위에 건설되어 세이케이강은 서울인가 완전하게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1968년에 건설된 세이케이 카와타카가도로가 축 30년을 거쳐 노후화 해, 보강이나 대형차 양의 통행이 규제되는 등이 대책이 취해졌습니다만, 그대로는 위험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거기서 고가도로를 다시 만드는지 , 이전 여기에 흐르고 있던 세이케이강을 복원시킬까로 대논의가 되어, 2002년의 시장선거로 세이케이강복원을 공약으로 내건 이·몰바크 시장이 당선.
단번에 세이케이강복원 사업이 구체화하게 되었습니다.
세이케이 카와타카가도로를 철거해, 하천을 부활시키는 도시재개발사업에서는 세계에서도 예가 없고, 세계적으로도 주목받고 있던 목수일. 그렇게 해서 2005년의 10월, 드디어 세이케이강이 복원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