ニョニョのひとりごと

バイリンガルで詩とコラムを綴っています

故 余日花先生のご冥福を心よりお祈りいたします。 詩「赤チョゴリの先生」

2014-04-24 15:38:47 | 詩・コラム
 4・24教育闘争の生き証人であられる余日花先生が、4・24の前日、午後10時45分ごろお亡くなりになられたそうです。

 先生のご冥福を心からお祈りし、1996年3月退職された日に先生に贈らせていただいた詩を再掲いたします。






  「赤チョゴリの先生」
              

50年前 解放の喜びで沸き立った運動会の日
生まれて初めて赤チョゴリを身にまとった貴女は
運動場の真ん中で 疾風の如く走り
人々を驚かせました

アボジの顔も知らない 遺復女 娘1人を
愛之重之育ててくださったオモニとハルモニが
生絹をゆがき 真っ赤に染めて
夜を明かし縫って下さったチョゴリなんです

その日からいつしか過ぎ去った50年の歳月
貴女は今日も変わりなく
あの日の あの 赤チョゴリを
心の中にまとって歩いておられます

1946年4月 教壇に初めて立った日
足は震え 言葉はどもり
何度も折れてしまった真っ白なチョークが
今日もありありと目に浮かぶと仰る 先生

ひとつのコッペパンを 分け合って食べながら
冷たい風が入り込む教室で
ア、ヤ、オ、ヨ 教えるとき
キラキラ輝いていた瞳が力をくれたそうです

神聖な私たちの学び舎を守ろうと
弾圧者たちに立ち向かい闘った日々にも
鉄格子の中で送り迎えた試練の日々にも
先生は赤チョゴリを脱ぎませんでした

一生涯を専従として捧げられた御主人と共に
民族愛の道一筋を歩んでこられた道程で
ひどい風が吹き荒れたことでしょう
冷たい雨が降りしきったことでしょう

畳 九枚の ふた間だけの部屋で
3代家族が手足も伸ばせず暮らしながらも
息子に娘 4人の子供を 立派に育て
代を担うように導かれた先生

ミルクも買えなくて
子供たちを重湯で育てながらも
いったい何が最後まで貴女を
教壇に立たせたのでしょう

私たちは忘れることができません
勤続30年の年に祖国を訪問されたとき
夢にもお会いしたかった主席の懐に抱かれ
子供のように泣きじゃくられた先生の真心を!

「功勲教員」の栄誉を受けられた日
主席の恩恵を受け 誠の人生を探し
祖国のお陰で教育者に育った自分が
過分な勲章を頂いたと胸詰まらせた先生

人より仕事が少ないことを
誰よりも寂しがり
人よりたくさん働いて初めて
やっと胸を撫で下ろされた先生

若い先生たちにひけを取るものかと
風をかきわけ自転車をこいでおられた姿
顔のしわも教壇に立てばパァッと延び
珠玉のような筆致は まさに我らの誇りでした

あるときは母のように優しく抱いてくださり
あるときは父のように厳格に叱ってくださり
あるときは学生たちと気さくに交わり
競って上り下りされたあの階段

先生の情熱にあふれた授業と
骨折り作られた数知れない教材は
民族愛の種になり
後代の心の中に花を咲かせることでしょう

民族教育50年の歴史と共に
祖国の未来を背負っていく
21世紀の主人たちを育てる道に
一生を捧げられた先生

50年前 先生が初めて身にまとわれた
赤い そのチョゴリは
民族愛一筋を変わりなく歩んでこられた
もえたぎる 先生の心です
もえたぎる 先生の誓いです

(1996年3月退職の日に,2012・2.12 訳)

* 尊敬する余日花先生に



    「빨간 저고리 선생님」
            
              

쉰해전 해방의 기쁨으로 들끓던 운동회날
난생처음 빨간 저고리 입은 그대는
운동장 한복판을 질풍같이 달려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얼굴도 모른 유복녀 딸 하나를
애지중지 키워주신 어머님과 할머님께서
생명주를 삶아 빨간 물을 들여
밤새워 지워주신 저고리랍니다

그때로부터 어느덧 흘러간 50년세월
그대는 오늘도 변함없이
그날의 그 빨간 저고리를 
마음속에 입고 걸어가십니다

1946년 4월 교단에 처음 선 날
발은 떨리고 말은 더듬거려
자꾸만 꺾어지던 새하얀 백묵이
오늘도 눈앞에 삼삼하다는 선생님

한개의 곱빼빵을 나누어먹으며
찬바람 스며드는 교실에서
아,야,어,여 배워줄 때면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가 힘을 주었답니다

신성한 우리의 배움터를 지키려고
원쑤들을 맞받아 싸우던 나날에도
철창속에서 맞고보낸 시련의 나날에도
선생님은 빨간 저고리를 벗지 않으셨습니다

한생을 전임으로 바치신 남편과 함께
애국의 한길을 걸어오실제
칼바람인들 불지 않았습니까
찬비인들 맞지 않았습니까

다다미 아홉장의 두칸방에서
3대가족이 다리 한번 못편채 살면서도
아들딸 네남매를 어엿하게 키워
애국의 대를 잇게 하신 선생님

미르크도 살수 없어 
아들딸을 미음으로 키우면서도
그 무엇이 끝내 그대에게 
교단을 지켜내게 하였습니까

우리는 잊지 못합니다
근속 30년상의 영예로 조국을 찾으셨을 때
꿈결에도 뵙고싶던 주석님의 품에 안겨
어린애마냥 흐느껴 울던 선생님의 진정을!

<공훈교원>의 영예 안으신 날
주석님의 은덕으로 참된 삶을 찾고
주석님의 덕분으로 교육일군으로 자란 몸이
너무나도 큰 훈장 받았다고 목메이시던 선생님

남보다 일을 적게 맡는것을 
누구보다 섭섭히 여기시고 
남보다 많이 일을 해야 
겨우 마음 놓으시던 선생님

젊은 교원들에게 뒤질세라 
바람을 헤치고 자전거를 몰던 모습
주름잡힌 얼굴도 교단에 서면 활짝!
주옥같은 글씨는 정녕 우리의 자랑이였습니다

때로는 어머니처럼 살뜰히 안아주시고
때로는 아버지처럼 엄하게 꾸중하시고
때로는 학생들과 허물없이 어울려
경쟁하여 오르내리던 그 계단을

선생님의 정열에 넘친 수업과
로고가 깃든 수많은 교편물들은
애국의 씨앗되여
후대들의 가슴속에 꽃으로 피여날것입니다

민족교육 반백년의 력사와 더불어
조국의 미래를 짊어지고나갈
21세기의 주인들을 키우는 길에서
한평생을 다 바쳐오신 선생님

쉰해전 선생님이 처음 입으신 
빨간 그 저고리는
애국의 한길을 변함없이 걸어오신
붉고붉은 선생님의 마음입니다
붉고붉은 신념의 맹세입니다

(1996년3월 퇴직하시는 날에)

*존경하는 여일화선생님께 드립니다.

コメン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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