ニョニョのひとりごと

バイリンガルで詩とコラムを綴っています

追憶8.  出発の日に(バイリンガル)

2012-01-06 23:19:25 | 詩・コラム
  「 出発の日に 」

        
学校よ
愛する 私の学校よ

祖国の日差しを たっぷり受け
同胞達の 至誠で 建ち
燦然と 光を放つ
大阪朝鮮高級学校よ

歳月はとめどなく流れたけれど
あなたを忘れることが出来なかったのは
あなたの歩んできた半世紀の道のりが
輝かしいだけでは 無かったから

すっかり 忘れていた
幸せに浸っていたときは

だけど 私の母校よ
人生の節々
私が一番涙した いばらの道で
どれほどあなたを捜し求めた事か

ウリマルを守り 堂々と生きなさいと
手を取り 導いて下さった 恩師達
明日を信じて生きようと誓った 学友達
きびしい批判も 懐かしい思い出

祖国をもっと良く知ろうと
夜明けまで本を手にした満ち足りた日々
祖国に繋がった自分の未来について
時を忘れ 議論しあった日々

サマースクールで訪ねた分会で
生れて初めてウリマルを教えた日
きらきら輝いていた子供達の瞳が
教えてくれた 私の生きる道を

たしかに その日だった
孫のような学生達と談笑しながら
ウリマル、ウリ文字を教える
幸せな 私の今日が 始まったのは

あなたの 暖かい懐があったから
冷たく荒々しい雨風が
進む道をふさぎ 邪魔立てしょうとも
突き進んでこれた 恐れをも知らず

つらいときも 楽しいときも
いつでも 私が帰れるところ
あなたは 恋しい ふるさとの家
私達みんなの 永遠の出発点

再出発をしよう 
ここはまさしく 私達が巣立った麓
私達の明日が 始まるところ
数千数万 後代たちの
未来を切り開く 出発点なのだ

        2002年作(2011年訳)

(大阪朝鮮高級学校創立50周年に際し)
 

  「출발의 날에」
           

학교여
사랑하는 나의 학교여

조국의 해살 담뿍 받으며
동포들의 지성으로 층층이 솟아
찬연한 빛을 뿌리는 
오사까조고여

내 머리에 흰 서리 내렸어도
그 언제나 그대를 잊을수 없음은
반백년의 그대 력사가 
눈부시기때문만은 결코 아니여라

행복속에만 잠겨있을 땐
까마득히 잊었어라

허나 나의 모교여
내 인생의 갈피갈피
가장 눈물 나던 고비고비에
얼마나 애타게 그대 품을 찾았던가

우리 말 지키며 굳세게 살아가라고
손 잡아 이끌어주신 고마운 스승들
래일을 안고 살자 약속했던 학우들
따끔한 비판도 그립기만 하누나

조국을 하나라도 더 알자고
밤 새우며 공부하던 흡족한 나날
조국과 이어진 자신의 미래를 두고
시간 가는줄 모르게 토론한 나날들 

하기선전대로 묵은 분회사무실에서
난생처음 우리 말 배워준 날
반짝반짝 빛나던 아이들의 눈동자가 
내 갈 길 똑똑히 깨우쳐주었거니

정녕 그날이였구나
손자같은 학생들과 마주보고 웃으며
우리 말 우리 글 익혀주는 
보람찬 나의 오늘이 시작된것은

그대 품이 있었기때문이여라
모질고 사나운 비바람이
가는 길 막아서며 아우성쳐도
두려움 모르고 나아갈수 있었음은

어려울 때나 기쁠 때나
그 언제나 내 돌아갈 곳 있나니
그대는 나의 정다운 고향집
우리모두의 영원한 출발점

새 출발을 하자 쫄업생들이여
여기는 바로 우리가 떠나간 첫기슭
우리들의 래일이 시작되는 곳
수천수만 우리 후대들의 
미래를 펼치여갈 출발점이여라
           
   2002년

-오사까조선고급학교창립 
    50돐에 즈음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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追憶7.   いつも青春 (バイリンガル) 

2012-01-06 23:16:14 | 詩・コラム
  「 いつも青春 」 
          

赤い ヘルメット
黒い 皮ジャン
ナナハンバイクにさっそうとまたがり
今日も疾風の如く走る 黄先生

《休め!気を付け!》
《前に進め!》
校庭に鳴り響く先生の号令
学生達の瞳がキラキラ輝く

《幸福も仕事も健康が基本です》

胸に深く刻んできた主席の教え
廊下を行き来するときも
学生達の姿勢に心を配り
顔色も逃さずチェックしている先生

規律違反には虎のように恐い先生
だけどアボジの様に優しい先生
先生の周りはいつも ワイワイガヤガヤ
気軽に生徒と交わり縄跳びやフォークダンス
言葉のキャッチボールにも温かさが溢れる

ボンヤリ過ごされた日があったろうか
マスゲームの創作に注がれた先生の心血
録音機と体操の図面を道連れに
休む事を知らなかった先生の情熱
後ずさりを知らなかった青春の心

先生が創作された数十種のマスゲームは
学生達の心から心へ繋がれ
信念と勇気と誇りになり
常に巻き起こした 感動のつむじ風を

民族教育の路程にくっきりと足跡を残し
東中の歴史と共に歩んでこられた先生
掘建て小屋から鉄筋校舎へと
限りなく時は流れたけれど
変わりなくウリハッキョを守ってこられた先生

年齢など 気にした事もありません
白髪としわは 先生の勲章
熱い熱情は 先生の息吹
先生はいつも 青春 真っ只中

赤い ヘルメット
黒い 皮ジャン
ナナハンバイクにさっそうとまたがり
先生は今日も走ります
30年を走り続けた この道を

 *1988年 還暦をお祝いして (2011年訳)

*東中(東大阪朝鮮中級学校の略称)


 「 언제나 청춘 」
            

붉은 헤르메트
검은 가죽쟘바
七半바이크에 몸을 싣고
오늘도 질풍같이 달려온 황선생님

≪쉬엿,차렷≫
≪앞으로 갓!≫
교정에 메아리치는 그의 구령
학생들의 눈동자가 유난히 반짝이네

≪행복도 혁명도 건강이 기본입니다≫

심장에 새겨온 주석님의 가르치심
랑하를 거닐다가도
학생들의 자세 바로잡아주고
안색도 놓칠세라 살펴주는 그

규칙위반엔 범같이 무서운 선생님
하지만 아버지마냥 다정한 선생님
그의 둘렌 언제나 학생들이 와글와글
허물없이 어울려 줄넘기며 군중무용
오고가는 말마디에 사랑이 흐른다네

어느 하루 사색없는 날이 있었으랴
집단체조 창조에 바쳐진 그의 심혈
록음기며 체조도면 길동무 삼아
휴식모르던 그의 열정이여
후퇴 모르던 청춘의 마음이여

그가 창조한 수십종의 집단체조
학생들의 가슴가슴에 
신념을 주고 용기를 주고
오사까동포들의 자랑이 되여
감동의 회오리를 일으키지 않았던가

민족교육 로정우에 또렷이 자국 찍으며
동중의 력사와 더불어 걸어온 그
판자집으로부터 철근교사로
끊임없이 세대는 바뀌여져도 
변함없이 그는 민족교육 지켜섰구나

나이를 물어 무엇하리
백발과 주름은 그의 훈장
뜨거운 정열은 그의 숨결
그는 영원히 청춘을 안고사는 사람

붉은 헤르메트
검은 가죽쟘바
七半바이크에 몸을 싣고
그는 오늘도 달리누나
30년을 달려온 청춘의 마음으로… 
  
-교육일군근속30년상 수상,
환갑을 축하하여 황하구선생님께-
 
       19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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追憶6.   大晦日の日に(バイリンガル)

2012-01-06 23:11:15 | 詩・コラム
  「大晦日の日に」


大晦日だった あの日は
身を切るような風が容赦なく頬を叩き
ときおり 雪も降っていた日

日直の交代で校庭に入った私は
釘付けされたように立ち止まった

誰もいないはずの運動場で
学生達が走っているなんて
北風を 力いっぱいはね返しながら

学生達に混じり
黙々と走る貴方を見つけた瞬間
胸は高鳴り 熱くなった目頭

コタツの中でのんびり過ごしていた私は
貴方の姿が あまりにも眩しすぎて
うつむいてしまった 恥ずかしさのあまり

そう 貴方でしたね 
学生たちの成長が 自分の青春だと
学生たちの笑顔が 自分の幸せだと
休日も 冬休みも 返上されたのは

中央マラソン大会で
優勝旗をはためかせた時も 今日も
貴方は いつもそうだった
自己満足を知らず 人の目など気にもせず

忘れかけていた 青春の熱情
失いかけていた 教師の真心
貴方は 黙って教えてくれた
貴方は 鏡のように映してくれた

木枯らしがひゅうひゅう吹き続いても
小春日のように暖まった私の心
凛々しい貴方の姿に魅せられ
胸がいっぱいになった 大晦日

私も走った 貴方と共に
一生懸命走った 心の中で
まばゆい元旦の 日の出に向かって

    1986年12月31日 (2011年訳)

 *体育の先生 朴先生へ

 
  
 「섣달 그믐날에」
         
        
섣달 그믐날이였다 그날은
맵짠바람 사정없이 볼을 때리고
이따금 눈마저 내리던 그날

일직교대로 교정에 들어선 나는
못박힌듯 굳어졌다 뜻밖의 광경에

텅 빈줄 알던 운동장에선 
학생들이 땀 흘리며 달리고있지 않는가 
칼바람을 불사르며 불사르며

학생들과 흠없이 섞이여
묵묵히 달리는 그대 찾은 순간
가슴은 덜컹,얼굴은 화끈…

난로앞에서만 지내던 나는
그대 모습 눈부시여 고개 숙였다
제 모습 부끄러워 고개 숙였다

그대가 아니였던가
학생들의 성장이 내 청춘이라고
학생들의 웃음이 내 행복이라고
휴일도 방학도 뒤로 미룬 이는

남들이 단잠 잘 때
학생들 생각으로 밤을 밝히고
남들이 쉴 때 
학생들 가슴에 신념 심어준 그대

≪중앙이어달리기≫ 대회에서
우승기 휘날린 그날도 오늘도
그대는 언제나 이렇게 일하였다
자만을 모르고 누가 보건말건

잊을번했던 청춘의 열정
잃을번했던 교원의 본분
그대는 말없이 배워주었더라
그대는 거울처럼 비쳐주었더라

맵짠바람 사정없이 몰아치는데
봄날처럼 훈훈해진 내 가슴
름름한 그대 모습에 매혹되여
떠날줄 모르던 섣달 그믐날

마음은 한살 젊어진것만 같아
내 마음도 달렸구나 그대와 함께
밝아오는 새날의 해돋이를 향하여

  1986년12월31일

 -박명준체육교원을 노래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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追憶5.  会長さんの自転車(バイリンガル)

2012-01-06 23:08:31 | 詩・コラム
  「会長さんの自転車」
  
            
チリリン チリリン
さわやかな 秋風の中を
今日も走る 会長さんの自転車
紺色の自転車、素朴な自転車

あの路地 この路地
どこでも見かける 会長さんの自転車
生野の隅々 ずっと向こうの八尾まで
同胞の家を訪ねて チリリン チリリン

次代を担う子供達を 育てるため
この道で倒れるならば本望だと
白髪をなびかせて 走り続けます
真実一路の道を 走り続けます

坂道は何百里 じゃり道は何千里
真夏の日差しを まともに受けながら
三十年一日のごとく 走り続けた
会長さんの自転車 愛の自転車

新しくはないけど 眩しい自転車
会長さんのご苦労が沁みた 輝く自転車
車輪に刻まれた 子供達への真心
代を継ぐ種火となり広がって行きます

        1985年10月 (2011年訳)
 
 *梁教育会会長さんへ
    


 「회장님의 자전거」
         
         
따르릉 따르릉
산들한 가을바람 싣고서 
오늘도 달리는 회장님의 자전거
남색 자전거,수수한 자전거

이 골목 저 골목
어디서나 봅니다 회장님의 자전거
이꾸노의 구석구석 저 멀리 야오까지
동포집을 찾아서 따르릉 따르릉

대를 이을 역군들 고이 키우는
이 길에서 쓰러지면 한이 없다고
백발을 날리시며 달리고달립니다
충성의 한길을 달리고달립니다

비탈길은 몇백리 돌길은 몇천리
소낙비 헤치며 뙤약볓 맞받으며
삼십년을 하루같이 달리고달린
회장님의 자전거 사랑의 자전거

새롭지는 않아도 눈부신 자전거
회장님의 로고 깃든 빛나는 자전거
차바퀴에 새겨진 숨은 충성심
대를 이을 불꽃되여 번져갑니다
      
  1985년10월

 <량행표회장님께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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追憶4.  アボジ(義父)に(バイリンガル)

2012-01-06 23:04:54 | 詩・コラム
  「アボジ(義父)に」
 
          
「オホン…」
いつもの 咳ばらい
「ガラガラ」と開かれた 表戸

「フニは もう 起きたのかな?」
にこにこ 笑いながら
フニを しっかり 抱き上げる

アボジ
今日も 来て下さったのですね
痛い腰を さすりながら…

思えば フニを 自転車にのせて
アボジが 行き来された 道のりは
なんと 長かったことでしょう

雨が 降っても
風が 吹いても
アボジが 戸を開く音は
たしかな 一日の はじまりでした

忘れる事ができません アボジ
身動きすらできなくなった フニを抱え
涙さえ 枯れてしまった私に

生きてりゃ いい日もあると
家のことは心配しないで 外に出なさいと
背中を押してくださった あの手のぬくもり

忘れる事が できません
祖国訪問の吉報を得たとき
フニの事が気がかりで 迷っていた私に

祖国に 行ってくれば
力が 湧くもんだと
旅費まで 心配して下さった アボジ

ああ 忘れる事が できません
フニが生まれて初めて歩いた日
夢の様に 歩いた日

飲めない 祝盃を あげ
喜びいっぱいにおっしゃった言葉
「フニが 口をきける様になるまでは…」

フニの 成長と 共に
アボジの髪は 段々と白くなり
アボジのしわは増えるかりでした

今日も来て下さったのですね アボジ
私たちを 支え
民族を 想い
祖国に つながらんとする
それは アボジ
あなたの 信念

アボジの 愛に 支えられ
アボジの 熱い心と共に
今日も私は 教壇に 立つのです
    
   1988年11月10日 (2011年訳)

-処女詩集<山つつじ>完成の日に― 

  

    
 「 아버님에게 」            

 
≪어험…≫
귀익은 기침소리와 함께
덜컥 열리는 현관문

≪여놈,일어났구나≫
싱글벙글 웃으시며
훈이를 안아보시는 아버님

아버님
오늘도 나오셨습니까
허리가 아프다고 하셨는데

훈이를 자전거에 태우시여
오고가신 그 길은 얼마
갈아타신 자전거는 그 얼마

큰비가 와도 찬바람 불어도
아버님의 문 여는 소리
희망의 종소리마냥 울립니다

잊을수 없습니다 아버님
운신조차 못하던 훈이를 부여안고
눈물마저 말랐던 저에게

살아있으면 좋은 날도 온다고
집걱정은 맡겨놓고 사업에 나가라고
따뜻이 부추겨주신 그날의 진정을

잊을수 없습니다
조국방문의 영예 안겨졌을 때
가곺은 맘 가까스로 누르던 저에게

조국을 다녀와야 힘이 난다고
어떻게 아셨는지 용돈까지 쥐여주며
등을 밀어주신 그날의 따스함을

아,잊을수 없습니다
훈이가 난생처음 걷게 된 날
꿈과 같이 걷게 된 날

못자시는 잔을 들고
명절날처럼 웃으시며 하신 말씀
≪창훈이가 말을 할 때까지는…≫

훈이의 성장과 함께 
아버님의 머리는 갈수록 희끗해지고
아버님의 주름은 볼수록 깊어만 가는데

오늘도 나오셨습니까 아버님
손자 ,며느리가 귀해서만이 아닌 
자신의 신념어린 애국의 길로

아버님의 사랑에 떠받들리여
아버님의 뜨거운 마음과 함께
오늘도 교단에 서는 이 며느리는

백마디 천마디 감사의 말대신
한떨기 ≪산진달래≫ 고이 묶어
진심으로 드립니다 아버님에게

   1988.11.10

-첫 시집 ≪산진달래≫가 완성된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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