明日2月23日、新大阪のメルパルクホールに於いて
「北大阪朝鮮初中級学校創立55周年記念公演ーチェジャリ」が行われます。
1幕 草創期の部分のナレーションを書かせていただきました。6年生の皆さん方と共に朗読させていただきます。
朗読はウリマルでしますが対訳を掲載してみました。
未熟ですが北大阪のウリハッキョの歴史を伝えるのに少しだでも役立ってくれることを願い掲載いたします。
たくさんの皆さんのご来場を切に願っています。朗読は6時に始まって間もなくいたします。
(対訳)
「チェジャリ」(自分の場所)
55年の歳月が川のように流れました
日本で生まれ育った子供たちが
心のふるさとと呼ぶ 「ウリハッキョ」!
まさに 北大阪朝鮮初中級学校は
同胞たちの血と汗と涙で築き上げた
温かい「ゆりかご」、大切な宝物なのです
嬉しい時も苦しい時も 探し求める所
私たちみんなが 心に抱き生きる
永遠の拠り所 「チェジャリ」なのです
X X X
1945年8月15日
亡国の苦しみから解き放たれた1世同胞たちが
解放の喜びを胸に 最初に始めたことは
後世のための学び舎「国語講習所」の開設でした
「奪われた民族の魂を取り戻すため
子供たちにウリマルとハングルを学ばせよう」
此処 北大阪の地にも
高槻や東淀川、豊能朝鮮学院で
数百名の朝鮮の子供たちが学び始めました
校舎はみすぼらしく机一つまともな物は無かったけれど
自国の言葉と文字を学ぶ 喜びに溢れていました
自国の歴史と文化を学び 雄々しく育って行きました
しかし 1948年4月 身を切るような風が
草創期のウリハッキョに吹き荒れました
日本の反動たちは 校内に消防車まで引き入れ
学生たちと同胞たちに冷水を浴びせたばかりか
1949年 強制的にウリハッキョを閉鎖しました
だが同胞たちは 嘆いてばかりはいませんでした
祖国の温かい日差しを全身で感じながら
同胞たちは また 学校を築き始めました
そうして 1957年4月1日
遂にわが北大阪初中級学校の前身である
東淀川朝鮮初級学校が創立されたのです
驚いたことに その1週間後
戦後の復旧建設に拍車を懸けていた祖国から
教育援助費と奨学金を送られてくることを
誰が予想しえたでしょうか
祖国の配慮に限りなく励まされた同胞たちは
1959年8月に学校建設委員会をつくり
翌年3月に 木造2階建ての校舎を建設したのです
そればかりか 4月には中級部を併設し
その年1960年5月には その名も誉れ高い
北大阪朝鮮初中級学校が誕生したのです。
「1番良いものを子供たちのために」との
主席の偉大な教えを高く掲げ
1963年7月には大きなプールも作りました
そればかりか 共和国創建20周年を記念して
同胞たちは「100日間革新運動」を力強く押し進め
鉄筋校舎建設に起ちあがったのです
「力のある人は力を、知識のある人は知識を、
お金のある人はお金を出して
この地に誰もが羨むような鉄筋校舎を建てよう!」
「一つの分会で一つの教室を作る運動」が
2教室、3教室作る運動に発展し
同胞たちの熱意は高まるばかりでした
国を奪われたために
見知らぬ異国の地に引っ張って来られ
牛馬よりも過酷な人生を歩んだ同胞たちが
自国の言葉も知らず歴史も知らねば
またもや国を奪われてしまうと
あらゆる犠牲を乗り越え学校建設を押し進めました
1968年1月18日 ついに
新幹線が見える上新庄の真ん中に
地上を見渡すように4階建ての鉄筋校舎が
にょっきり そびえ立ちました
階段を上り下りする足取りも軽やかに
皺だらけのお爺さんやお婆さんの顔にも
幼いちびっこたちの顔にも
幸せの笑みがこぼれました
新校舎を見回す同胞たちの目からは
感激の涙があふれ
昨日までの苦労が吹き飛んだように
喜びに溢れました
同胞社会の宝であり
いつでも私たちを待ってくれている
心のよりどころ―「チェジャリ」を築き上げたのです
*チェジャリー自分の場所
-기다오사까조선초중급학교 창립 55돐기념공연-
<제자리>
제 1막
3期生女 55년의 세월이 강물처럼 흘러갔습니다
일본에서 태여나 자란 아이들이
마음의 고향이라 부르는 우리 학교!
바로 기다오사까조선초중급학교는
동포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포근한 요람이며 소중한 보물이거니
기쁠 때나 어려울 때나 애타게 찾는 곳
우리모두가 마음에 품고사는
영원한 <제자리>입니다
X X X
3期生男 1945년 8워15일!
망국노의 설음에서 벗어난 1세동포들이
해방의 기쁨을 안고 처음 시작한것은
후대들을 위한 배움터 <국어강습소>였습니다
“빼앗긴 민족의 넋을 되찾기 위해
아이들에게 우리 말과 글을 배우게 하자 “
이곳 기다오사까 관하에서도
다까쯔끼며 히가시요도가와 도요노 조선학원에서
수백명의 조선아이들이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교사는 초라하고 책상하나 변변치 못해도
제나라 말과 글을 배우는 기쁨이 넘쳐났습니다
제나라 력사와 문화를 배우며 씩씩하게 자라났습니다
男生徒① 허나 1948년 4월 모진 칼바람이
초창기의 우리 학교를 부스려 몰아쳤습니다
일본반동들은 소방차까지 끌어들여
학생들과 동포들에게 찬물을 퍼부었으며
1949년 강제로 학교를 페쇄하고야 말았습니다
女生徒① 그러나 우리 동포들은 주저앉기만은 안했습니다
조국의 따사로운 해살아래 총련이 무어지자
동포들은 또다시 학교를 꾸리기 위해 나섰습니다
女生徒② 그리하여 1957년 4월초하루
드디여 우리 기다오사까초중의 전신인
히가시요도가와조선초급학교가 창립된것입니다
女生徒③ 어머니조국에서는 놀랍게도 그 1주일후
전후복구건설을 다그치던 그 어려운 속에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주시였으니
우리 어찌 감격하지 않을수 있었겠습니까
男生徒② 조국의 사랑에 무한히 고무된 우리 동포들은
1959년 8월에 학교건설위원회를 조직하여
다음해 3월초에는 목재 2층교사를 세웠습니다
女生徒④ 또한 4월에는 중급부를 병설하여
그해 1960년5월에는 그 이름도 자랑찬
기다오사까조선초중급학교를 선포하였습니다
女生徒⑤ “제일 좋은것을 어린이들에게”라 하신
수령님의 위대한 교육사상을 높이 받들고
1963년 7월에는 수용장을 꾸려놓았습니다
뿐만아니라 공화국창건스무돐을 지향한
<100일간운동>을 힘차게 벌려
꿈과 같이 철근교사건설에 떨쳐나섰습니다
男生徒③ “힘있는 사람은 힘을,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을,
돈있는 사람은 돈을 내여
이땅우에 보란듯이 철근교사를 일떠세우자!”
<한 분회 한 교실짓기 운동>이
두 교실,세 교실 짓기로 발전하고
동포들의 열성은 높아만 갔습니다
3期生女 나라를 빼앗긴 탓으로 하여
산설고 물설은 이역땅에 끌려와
마소보다 더한 고생을 다 겪은 동포들이
자기 나라 말과 글을 모르고 력사를 모르면
또다시 망국노의 신세를 겪게 된다고
온갖 희생 무릎쓰고 학교건설에 떨쳐나섰습니다
3期生男 1968년1월 18일 드디여
신칸셍이 바라보이는 가미신죠 한복판에
온 세상을 굽어보듯 4층철근교사가
우뚝 솟아났습니다
生徒① 계단을 오르내리는 발걸음도 가벼이
生徒② 주름잡힌 할아버지 할머니의 얼굴에도
生徒③ 어린 꽃봉오리들의 얼굴에도
生徒④ 행복의 웃음꽃이 활짝 피여났습니다
生徒⑤ 새 교사를 둘러보는 동포들의 눈에선
生徒⑥ 감격의 말대신 이슬이 반짝이고
生徒⑦ 어제날의 고생도 다 풀린듯
生徒⑧ 안도의 숨이 흘러나왔습니다
全員 동포사회의 보물이며
그 언제나 우리가 돌아갈수 있는
마음의 요람, <제자리>가 꾸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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