ニョニョのひとりごと

バイリンガルで詩とコラムを綴っています

許玉汝詩集から P134~P138 ふるさと(バイリンガル)

2021-11-01 16:53:06 | 詩・コラム





 「 ふるさと 」  



生まれ育ったところが故郷だと
誰が言ったのだろう
私には故郷なんてなかった
ふるさとがなかった

60年が過ぎた今も
両足首に残ったゴム紐の痕を見ると 
知らぬ間に涙が出る
優しかったオモニを思い出す 

北海道にいるという父を訪ねて
身重の母は姉と次兄の手を引き
幾度も幾度も列車を乗り継いだ
風呂敷包みひとつ頭に載せ

突然津波のようにやって来た陣痛
青森の小さな旅館の布団部屋で 
私をこの世に生み出してくれたオモニ 
自分の歯でへその緒を切ってくれた母

6ヶ月後に北海道に渡り
馬小屋で寝起きした日々 
函館の海でいか裂きしながら 
私達を育ててくれたオモニ

零下20度の凍て付くような浜風
私をおぶって浜で働いたオモニは
私の靴下が脱げない様
ゴム紐をきつくきつくまきつけた

青森から北海道へ
北海道から東京へ
東京からやっと京都に戻ったとき
私は5歳になっていた

生まれて初めて会ったハラボジ
空襲で1本足になったハラボジ
ハラボジのリヤカーに毎日乗って   
声張り上げた《ボロおまへんか》と
 
あの路地この路地、一緒に回った日々
いつも聞かせてくれた故郷のはなし
ハラボジが出してくれた出生届
出生地はいつの間にか京都市になっていた

家族そろって大阪に移り
りっぱな朝鮮人になれと
父、母が送ってくれたウリハッキョ
満員電車に押し込められて通った学校

初めて通ったウリハッキョは
藻川に沿った小さな小さな学校
体育の時間は広い川原でころげまわり
図工はのどかな川辺でいつも写生

麦飯とキムチだけの弁当
雨の日あちこちにバケツが並んでも
暖かい先生や友達に囲まれて
ちっともイヤじゃなかった、楽しかった

ア、ヤ、オ、ヨ…
歌う様にハングルを習い
子ども心に誓った
将来は故郷のアナウンサーになるんだと
    
ウリハッキョで学んだ日々
恋もし、喧嘩もし、悩みもしながら
進路について話し合った懐かしい日々
一度もなかった。孤独な時なんて

同胞のために頑張ろうと仕事を選び
済州島に住む長兄に会う日を夢見ながら
集会にも、デモにも参加した日々
夢は近づいては遠のいたり

疲れを知らなかった青春時代
休むことを忘れてた中年時代
突然悪夢の様に悲しみが押し寄せた日

それでも踏ん張れよと諭してくれた
それがウリハッキョ
オモニの様に温かかったウリハッキョ

生まれ落ちた場所さえ知らない私に
思い出と友と夢と勇気をくれ
愛する心を育ててくれたウリハッキョ

私にも祖国が在る事を教えてくれた
ウリハッキョはゆるぎない心の柱
私のふるさとは ウリハッキョ

決して誰も奪えない
私が通い、子供達が学び、孫達が通う
ウリハッキョ 心のふるさとを!

     2010.7

*ウリハッキョ 私達の学校〔朝鮮学校〕
*ウリマル朝鮮語 *ハラボジ祖父 *オモニ母




 「 내 고향 」
             

나서 자란 곳이 고향이라고
그 누가 말했던가
내게 고향 따위는 없었다
내 고향이 없었다

60년이 지난 지금도
두 발목에 남은 고무줄 자국을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자상하시던 어머니가 생각난다

홋카이도(北海道)에 계시다는 아버지를 찾아
홀몸이 아닌 어머니는 언니와 둘째 오빠 손을 끌고
몇 번 또 몇 번을 열차를 갈아타셨다
봇짐 하나 머리에 이고서

돌연 쓰나미처럼 엄습해온 진통
아오모리(青森)의 작은 여관 이불 수납실에서
날 세상에 낳아주신 어머니
당신의 이로 탯줄을 끊어주신 어머니

여섯 달 후에 홋카이도로 넘어가
마구간에서 기거하던 날들
하코다테(函館) 바다에서 오징어를 손질하며
우리를 키워주신 어머니

영하 20도의 얼어붙을 것만 같던 갯바람
나를 업고 바닷가에서 일하신 어머니는
내 양말이 벗겨지지 않도록
고무줄을 단단히 감곤 하셨다

아오모리에서 홋카이도로
홋카이도에서 도쿄로
도쿄에서 어렵사리 교토(京都)로 돌아왔을 때
나는 다섯 살이 돼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나 뵌 할아버지
공습으로 한 쪽 다리를 잃으신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손수레에 매일같이 몸을 싣고
큰 소리로 외쳤다 “넝마 없나요?”

이 골목 저 골목을 함께 누빈 나날
언제나 들려주신 고향 이야기
할아버지가 제출해주신 나의 출생신고
출생지는 교토시 시모교(下京)구로 돼있었다

가족 모두가 오사카로 이사한 후
훌륭한 조선사람이 되라며
부모님이 보내주신 우리학교
만원전차에 실려 통학한 학교

처음 다녔던 우리학교는
모가와(藻川) 옆의 작디작은 학교
체육시간엔 강가의 넓은 모래밭을 뒹굴고
미술시간엔 화창한 강변에서 언제나 스케치

보리밥과 김치뿐인 도시락
비 오는 날이면 여기저기 양동이가 늘어섰어도
다정한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조금도 싫지 않았다, 즐겁기만 했다

아, 야, 어, 여……
노래하듯 한글을 익히며
어린 마음에 결심을 했다
나중에 크면 고향의 아나운서가 돼야지, 하고

우리학교에서 공부한 나날들
사랑도 하고 싸움도 하고 고민도 해가면서
진로에 대해 이야기 나눈 그리운 날들
단 한 번도 없었다, 외로울 때라고는

동포를 위해 힘써보자는 마음으로 일을 선택하고
제주도에 사는 큰 오빠와 상봉할 날을 꿈꾸면서
집회와 시위에도 참가한 나날
꿈은 다가왔다가는 다시 멀어지고

지칠 줄 몰랐던 청춘 시절
쉬는 것도 잊고 지낸 중년 시절
돌연 악몽처럼 슬픔이 밀려왔던 날

그래도 버텨내야 한다고
꼭 껴안아준
그것이 우리학교
어머니처럼 포근했던 우리학교

태어난 곳조차 모르는 나에게
추억과 벗과 꿈과 용기를 주고
사랑하는 마음을 자라게 해준 우리학교

나에게도 조국이 있음을 깨우쳐준
우리학교는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기둥
나의 고향은 우리학교

결코 누구도 빼앗지 못하리라
내가 다니고 자식들이 공부하고 손자들이 다니는
우리학교, 마음의 고향을!

   (2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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