ニョニョのひとりごと

バイリンガルで詩とコラムを綴っています

「朝鮮新報と私」が掲載されました。ハングル版です。

2015-07-31 10:40:58 | 詩・コラム

朝鮮新報創刊70周年を記念してエッセー<「朝鮮新報」と私ー歯を食いしばって40数年間作品を投稿>ハングル版に掲載されました。




〈《조선신보》와 나〉이를 악물고 40년간 어김없이 작품을 투고

1968년 내가 스무살이 되는 해였다.

오사까조선가무단에서 활동하던 나는 문학이 무엇인지 잘 모르면서도 《5개 학교건설》에 나선 오사까동포들의 애국적인 모습에 감동되여 한편의 시를 지었다. 그 시를 제1차 전국가무단 예술경연대회에서 읊었더니 1등의 영예를 지녔을뿐만아니라 그 시 《어버이 숨결속에서》가 난생처음 《조선신보》지상에 발표된것이다. 그날의 감격을 무슨 말로 다 표현할수 있으랴. 지면에 구멍이 뚫릴 정도로 보고 또 본것이 어제일 같다.

그런데 그 다음해도 계속하여 창작한 두편의 시가 우연히 창작상의 영예를 지니게 되자 자연히 어깨가 무거워져 전혀 시를 못짓게 되였다.

1년 남짓한 기간 한편의 시도 못쓰고 모대기던 어느날 조선신보사의 의뢰를 받고 마지 못해 지은 시가 《조선신보》에 실렸는데 며칠이 지난 후 뜻밖에도 그 시에 대한 《비평》이 신보에 소개되였다.

그러지 않아도 고민하던 때에 《비판》까지 받아보니 나는 자기의 부족함을 돌이켜볼대신 이젠 절대로 시를 짓지 않겠다는 시시한 생각을 가지게 되였다.

그런데 후날에 알게 된 사실이 나의 그릇된 생각을 바로잡아주고 본격적인 시창작의 길로 이끌어주었던것이다.

총련중앙 한덕수의장께서 서투른 나의 시를 읽으시여 곧 조선신보사 편집국에 전화를 걸어주셨다는것이다. 그리하여 시의 한구절한구절을 분석하시면서 부족점을 다 지적해주시고나서 그 《비평》을 곧 지면에 실어 새싹들을 잘 키워주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셨다는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그 자리에 서있기가 힘들 정도로 부끄러워 얼굴을 들수가 없었다. 피타는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좀 비판을 받았다고 건방지게 펜을 놓으려 한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그후 얼마 안있어 총련중앙이 마련해준 문학창작통신교육을 받게 된 나는 문학의 기초로부터 하나하나 배우면서 다시 시를 짓게 되였다.

통신교육을 수료하면서 내가 결심한것은 단 한가지, 1년에 한편이상 반드시 조선신보사에 작품을 보낸다는것이였다.

그때로부터 오늘까지 40여년간 조선신보사에 작품을 보내지 않았던 해는 한번도 없다. 나는 기쁠 때도 시를 지었지만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나날에도 자신을 채찍질하여 이를 악물고 계속 시를 짓고 그 고비를 넘어왔다.

300편을 넘는 작품들은 시집 《산진달래》, 《봄향기》, 《출발의 날에》가 되여 나의 영원한 보물이 되였다.

내가 할머니가 되였어도 계속 시를 짓고 랑송을 하고 후대들과 함께 우리 말 공부를 할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것은 바로 《조선신보》라고 마음속으로부터 고맙게 여기고있다.

기쁠 때도 어려울 때도 언제나 이끌어주었고 일본각지에 흩어져 사는 동포들과 벗들, 시우들과 이어주고 만날수 있는 기쁨을 안겨준 《조선신보》!

《조선신보》는 나의 스승이며 동지이며 내 삶과 활동의 원동력이다.

(문예동오사까 고문)

산진달래 -학생들과 함께 야외활동의 길에서-


싱그러운 흙냄새 온몸으로 맡으며

비탈진 산길 톺아오르더니

살며시 얼굴 내밀어

손저으며 반겨주는 산진달래



가도 가도 산진달래

선들바람에 설레는 어여쁜 꽃잎들

봄비 품어 시원한 연보라색 네 모습

그리움에 사무쳐 내 가슴 높뛰네



진달래야 너는

억수로 퍼부운 큰비도 아랑곳없이

오히려 싱싱하게 키돋움하였구나

오히려 탐스럽게 망울을 터쳤구나



너를 가꾼 사람 따로 없고

너를 지킨 사람 따로 없어도

이름없는 산발에 남먼저 피여나

방긋 웃고 맞아주는 정다운 꽃이여



겨울을 이겨핀 산진달래야

그저 돌길을 걷던 나는

그저 바쁘게만 길가던 나는

살뜰한 네 모습 보고 정신을 차렸단다



화려하지 못해도

꾸밈없이 곱게 살아야 함을!

순탄하지 못해도

하루를 힘껏 살아야 함을!



아, 산진달래

너를 안고 나는 살리

너같이 나는 살리

살뜰한 꽃이여

티없는 마음의 거울이여


「 山つつじ 」
          

          
ここちよい 山の気を
全身に 浴びながら
急斜面を あえぎ あえぎ 登りきて
ふと 山つつじ
花 いっぱいに 山つつじ

行けども 行けども 山つつじ
そよ風に そよぐ 可憐な 花びら
春雨にぬれて 清い
うす紫の おまえに
こみあげてくる 懐かしさに 心打つ

つつじよ おまえは
打ちつける 雨にも 負けず
空に 向かって 背をのばし
両手いっぱいに 花びらを ひろげた

おまえを 育てる 人も なく
おまえを 守る 人も なし
人知れず そっと 咲き
あたたかく迎えてくれた やさしい花よ

冬を うち勝った 山つつじよ
ただ ひたすらに 歩いていた 私は
ただ 心せわしく道を急いでいた 私は
すがすがしいおまえの姿に 心を打たれた

華やかじゃ なくとも
まこと 美しく 生きる事を
険しいけれど
一日を 力いっぱい 生きる事を

ああ 山つつじ
おまえを 胸にいだきて 生きたし
おまえの 様に 生きたし

清い 花よ
澄んだ 心の鏡よ

   1987年 5月  (2011年訳)

 (能勢青少年キャンプ場にて)


(1987년 5월에 지은 시 《산진달래》는 필자가 1989년 1월에 펴낸 첫 시집의 제목이 되였으며 평생의 생활신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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