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俳優チェ・ミンシク氏ファンが綴る覚え書き+韓国旅+勉強ブログ。

【記事】<話題の人物>信じて見る”国民俳優”チェ・ミンシク(後編)

2014-08-31 | チェ・ミンシク氏
●日曜時事●(韓国語)
「<話題の人物>信じて見る”国民俳優”チェ・ミンシク」

‘명불허전’ 이제는 할리우드 스타
최민식 신드롬 어디까지 이어지나
(”名不虚伝”今やハリウッドスター
チェ・ミンシク症候群どこまで続くか)


>최민식은 한때 연출에 뜻을 뒀으나 고등학교 시절부터 배우를 꿈꿨다.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한 그는 뛰어난 연기력을 보이며 후배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고 알려진다. 최민식의 연기생활은 단역을 맛보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당시 젊은 배우들이 자신의 재능을 한껏 살리는 작품으로 유명했던 연극 <에쿠우스>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리고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재학 중 박종원 감독의 데뷔작 <구로 아리랑>(1989)에 단역으로 출연한 그는 대학 졸업 후 연극계에 뛰어들어 연극배우 생활을 했다. 영화나 TV에서는 낯선 얼굴이었지만 연극계에서는 잔뼈가 굵었다.
(チェ・ミンシクは一時演出に関心を持ったが、高校時代から俳優を夢見た。東国大学演劇映画科に入学した彼は、優れた演技力を見せ、後輩から羨望を買ったりもしたと知られる。チェ・ミンシクの演技生活は端役を味わって本格的に始まった。当時若い俳優が自身の才能を精一杯生かす作品で有名だった演劇「エクウス」で頭角を現わした。そして東国大学演劇映画科在学中にパク・ジョンウォン監督のデビュー作『九老アリラン』(1989)に端役で出演した彼は、大学卒業後演劇界に飛び込み、演劇俳優生活をした。映画やTVでは見慣れない顔だったが、演劇界では成長していった。)

>이후 1989년 KBS드라마 <야망의 세월>에서 이휘향의 아들(극중 별명 ‘꾸숑’) 역으로 데뷔했다. 이 작품에서 보인 거친 이미지는 한동안 최민식의 상징이 될 것이라 여겨졌으나 이후 변신을 시도해 ‘거칠기는 한데 덜 떨어진 동네 날건달 아저씨’로 이미지를 만들었다. 또 폐인스러운 몰골까지도 넘나들면서 점차 사람들의 머릿속에 반항적인 ‘꾸숑’의 모습을 서서히 지우는 데 성공했다.
(以後、1989年KBSドラマ「野望の歳月」でイ・フィヒャンの息子(劇中のニックネーム”クション”)役でデビューした。この作品で見せた乱暴なイメージは、しばらくチェ・ミンシクの象徴になると思われたが、以後変身を試みて、「荒いところはあるが、未熟な町内のゴロツキおじさん」とイメージを作った。また、廃人らしいみすぼらしい姿までも出し入れし、次第に人々の頭の中に反抗的な”クション”の姿を徐々に消すことに成功した。)

>94년 MBC드라마 <서울의 달>에서는 상경해 해맑게 생활하는 순박한 시골총각 박춘섭 역할을 맡아 김홍식(한석규)과 함께 2류를 꿈꾸는 3류 인생 연기를 펼쳤다. 이때 찍은 전설적인 광고가 바로 운지천이다. 그리고 다음해인 95년에 MBC에서 방영한 <제4공화국>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역할을 연기했다. 96년엔 드라마 <그들의 포옹> 촬영 중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인해 한동안 연기를 쉬기도 했다. 당시 부상 후유증으로 슬럼프를 겪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94年MBCドラマ「ソウルの月」では上京して明るく生活する素朴な田舎独身男パク・チュンソプ役を受け持ち、キム・ホンシク(ハン・ソッキュ)と共に2流を夢見る3流人生の演技をした。この時に撮った伝説的な広告がまさにウンジチョン(=滋養強壮剤の名前)である。そして翌年95年にMBCで放映された「第4共和国」で、キム・デジュン前大統領の役を演技した。96年にはドラマ「彼らの抱擁」の撮影中、アキレス腱の負傷によりしばらく演技を休んだりもした。当時負傷の後遺症でスランプを体験したりもしたと伝えられる。)


모든 캐릭터
소화 가능
(すべてのキャラクター
消化可能)


>이후 97년 영화 <넘버 3>를 통해 스크린에 정식 데뷔해 깡패보다 더 깡패 같은 3류 검사 마동팔 역으로 다시 돌아와 그 다음해인 1998년, 김지운 감독의 <조용한 가족>에서 그의 특기인 어수룩한 삼촌 역을 맡았다. 그리고 <서울의 달>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던 한석규와 함께 강제규 감독의 <쉬리>에 최종보스인 북한 특수 8군단 박무영 소좌 역할로 등장해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以後97年映画『ナンバー3』を通じてスクリーンに正式デビューしてチンピラよりさらにチンピラのような3流検査馬洞マ・ドンパル役にまた戻ってその翌年である1998年、キム・ジウン監督の『静かな家族』で彼の特技である無邪気な叔父役を担った。そして「ソウルの月」で共演したハン・ソッキュとともにカン・チェギュ監督の『シュリ』に最終ボスである北朝鮮特需8軍団パク・ムヨン少佐の役で登場して人々に強い印象を残した。)

><서울의 달>에서 맡은 순박하고 부지런한 청년의 느낌이었던 최민식은 이 영화로 그동안 주목을 받아온 주연 한석규를 넘어 큰 관심을 받게 됐다. 그는 조연급 캐릭터에서 순식간에 주연을 넘어, 그해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95년 <태백산맥>으로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받은 김갑수에 이은 두 번째였다. 그리고 같은 해에 개봉한 <해피엔드>에서 무력한 중년남자의 모습을 연기했다.
(「ソウルの月」で演じた素朴で勤勉な青年のイメージだったチェ・ミンシクは、この映画でその間注目をあびてきた主演ハン・ソッキュを越え大きな関心を集めることになった。彼は助演級キャラクターであっという間に主演を越えて、その年の大鐘賞主演男優賞を受賞したりもした。95年『太白山脈』で大鐘賞主演男優賞を受賞したキム・ガプスに続く二番目の出来事であった。そして同じ年に公開された『ハッピーエンド』で無力な中年男性の姿を演技した。)

>2001년 <파이란>에선 지방 삼류 건달 똘마니인 이강재 역을 맡아 웃음과 눈물이 교차하는 연기를 보여줬다.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최민식은 그해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2002년 <취화선>에선 오원 장승업 역을 맡아 혼란스런 자아를 갖고 있는 화가로 등장해 “야! 이 개자식들아!”라는 명대사를 남겼다. 그리고 최민식의 사진은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퍼져 ‘짤방(사진)’이라는 신조어로 강림하기도 했다.
(2001年『パイラン』では地方三流ゴロツキの子分であるイ・カンジェ役を演じ、笑いと涙が交差する演技を見せてくれた。興行には失敗したが、チェ・ミンシクはその年の青龍映画祭主演男優賞を掴んだ。2002年『酔画仙』では吾園(オウォン)チャン・スンオプ役を担って、混乱する自我を持つ画家で登場し「おい!この野郎!」という名セリフを残した。そしてチェ・ミンシクの写真は各種インターネット・コミュニティサイトに広がり、”チャルパン(=削除禁止の略)”という新造語で降臨したりもした。)

>2003년 <올드보이>에서는 오대수 역을 맡아 복수에 굶주린 짐승 같은 연기를 펼치며 남우주연상으로 그랜드 슬램에 올랐다. 당시 군만두를 보면 최민식이 떠오를 정도로 <올드보이>의 파급력이 대단했다. 이후 2010년 <악마를 보았다>에선 잔인무도한 연쇄살인범 역을 맡아 소름돋는 연기를 펼쳐 감독들이 수여하는 디렉터스 컷 어줘즈 시상식에서 남자주연상을 받았다.
(2003年『オールド・ボーイ』ではオ・デス役を担って復讐に飢えた獣のような演技をし、主演男優賞でグランドスラムに上がった。当時焼き餃子を見ればチェ・ミンシクが浮び上がるほど『オールド・ボーイ』の波及力がすごかった。以後2010年『悪魔を見た』では残忍非道な連続殺人犯役を担い鳥肌立つ演技をし、監督が授けるディレクターズ・カット・アワーズの授賞式で主演男優賞を受けた。)


영화계 이끈
천의 얼굴
(映画界導いた
千の顔)


>사실 <명량> 이전까지 최민식에게 1000만 영화는 없었다. 그러나 매 작품마다 스크린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로 관객을 압도하며 폭풍 연기력을 선보였다. <신세계>의 베테랑 형사 강과장, <범죄와의 전쟁>의 반달(민간인도 건달도 아닌) 최익현, <악마를 보았다>의 연쇄살인마까지 다양한 작품 속에서 늘 강렬한 캐릭터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지금의 한국영화계를 이끈 주역 중 하나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実際、『鳴梁(ミョンニャン)』の前までチェ・ミンシクに1000万映画はなかった。しかし毎作品ごとにスクリーンを圧倒するカリスマで観客を圧倒し、嵐のような演技力をリリースした。『新世界』のベテラン刑事カン課長、『犯罪との戦争』のパンダル(=民間人もゴロツキでもない、その間の人という意味)チェ・イッキョン、『悪魔を見た』の連続殺人魔まで、多様な作品の中でいつも強力なキャラクターで観客をひきつけた。今の韓国映画界を導く主役の一人だということを否定する人は、そんなに多くないだろう。)

>한때 최민식은 스크린쿼터 축소에 반대해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옥관 문화훈장을 반납하며 항의의 뜻을 보여 주목을 받았었다. 또한 최민식은 영화계 인사들과의 친분 관계가 좋은 편으로 알려진다.
(一時チェ・ミンシクはスクリーンクォーター縮小に反対して1人デモを行うこともした。花冠文化勲章を返却し抗議の意向を見せ注目をあびた。またチェ・ミンシクは、映画界の人々との親密な関係が良い方だと知られ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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