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国民日報●(韓国語)
「『ヒマラヤ~風がとどまる所』チョン・スイル監督インタビュー」
>"유명하지 않은 저에게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有名でない私に関心を持って下さって有難うございます。”)
>전수일(50·사진) 감독은 인터뷰를 이렇게 마무리했다. 그는 유명하지 않다. 대중에게 각인된 영화를 만든 적이 없으며, 대형 배급사를 통해 영화를 공급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설경구 조재현 추상미 등 유명배우와 함께했고, 이제껏 연출한 '검은 땅의 소녀와' 등 6개의 영화는 모두 베니스, 칸 등 세계 주요 영화제에 초청됐다. 현재는 부산 경성대 연극영화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チョン・スイル(50・写真)監督はインタビューをこのように終えた。彼は有名ではない。大衆に刻印された映画を作ったことがなく、大型配給会社を通じて映画を供給することもなかった。しかしソル・キョング、チョ・ジェヒョン、チュ・サンミなど有名俳優と共にしたし、今まで演出した『黒い土地の少女』等、6作品は皆ベニス、カンヌなど世界の主要映画祭に招請された。現在は釜山慶星(キョンソン)大の演劇映画学部教授として在職中だ。)
>11일 개봉을 앞둔 영화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은 4년이란 공백을 깨고 배우 최민식이 복귀하는 작품으로 관심을 얻고 있다. 그러나 출연 배우가 스타이든, 아니든 그의 영화는 여전히 불친절하다. 이번 영화에서도 갑작스러운 장면 전환과 모호한 암시를 통해 감독은 적확한 메시지를 관객에게 주입하지 않는다. 영화 속 시간과 공간의 전후가 불분명한 만큼, 관객은 여백이 넉넉한 영화에서 자유로운 상상을 그리게 된다.
(11日封切りを控えた映画『ヒマラヤ~風がとどまる所』は4年という空白を破って俳優チェ・ミンシクが復帰する作品として関心を得ている。しかし出演俳優がスターでも、そうでなくても、彼の映画は相変らず不親切だ。今回の映画でも突然の場面転換と曖昧な暗示を通しており、監督は的確なメッセージを観客に注入しない。映画の中の時間と空間の前後が不明なので、観客は余白が豊かな映画から自由な想像を描ける。)
>"나라는 사람이 흥행 영화와 어울리나 싶기도 해요. 종이 두 장 정도 콘티를 잡은 다음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영화를 완성하는 편이라 방법적으로도 대형 자본과 맞지 않다는 생각도 들고요."
(”私のような者が興行映画と似合うのかと思うこともあります。紙2枚程度のコンテを持ち、あちこち歩き回りながら映画を完成する方だから、方法的にも大型資本と合わないという考えも持っていますよ。”)
>이번 영화도 갑작스럽게 떠난 여행이 계기가 됐다. 2002년 어느 날, 여권만 손에 쥔 채 방콕으로 떠난 그는 공항 전광판에 첫 번째 뜬 목적지를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네팔의 카트만두였고, 히말라야였다.
(今回の映画も突然行った旅行がきっかけとなった。2002年ある日、パスポートだけ手にしたままバンコクへ発った彼は、空港の電光掲示板に最初に浮かび上がった目的地を行くことに決心した。そのようにして到着した場所が、ネパールのカトマンズでありヒマラヤであった。)
>전 감독의 모습은 영화 속 최(최민식 분)에게 투영돼 있다. 죽은 네팔 노동자의 유골을 전해 주기 위해 히말라야로 도착한 최는 차마 죽음을 전하지 못하고, 유가족과 생활하며 마음의 치유를 얻는다.
(チョン監督の姿は映画の中のチェ(チェ・ミンシク扮)に投影されている。死んだネパール労働者の遺骨を届けるためヒマラヤに到着したチェは、とても死を伝えることができず、遺族と生活しながら心の治癒をうける。)
>"히말라야라는 곳이 제게는 삶과 죽음이 함께하는 곳이었어요. 남이 보는 데서 변(便)을 보면서도 지나가는 사람과 웃으며 인사하는 모습에서 순수함이 느껴졌지요."
(”ヒマラヤという所が、私には生と死が共にしている所でした。他人が見ているところで便をしながらも過ぎ行く人と笑って挨拶する姿から純粋さが感じられましたよ。”)
>인터뷰 내내 "그저 개인적인 고민들"이라며,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전 감독처럼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은 내향적인 영화다. 바람이 잠깐 쉬었다 가는 히말라야는 주인공의 내면을 정화하거나, 심한 강풍으로 극한의 공포를 경험하게 한다.
(インタビューの間、終始”ただ個人的な悩み”と心の内をあまり表わさないチョン監督のように『ヒマラヤ~風がとどまる所』は内向的な映画だ。風が少しの間休んで行くヒマラヤは、主人公の内面を浄化したり、激しい強風で極限の恐怖を経験するようになる。)
>"저에게는 사라져 가는 공간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요. 공간의 변화에 따라 사람 사는 모습도 달라지게 마련이고, 황폐한 지역은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게도 하지요."
(”私には消えていく空間に執着する傾向があります。空間の変化により人が生きる姿も変わるもので、荒廃した地域はむしろ自身を振り返らせてくれるでしょ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