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重県木本で虐殺された朝鮮人労働者の追悼碑を建立する会と紀州鉱山の真実を明らかにする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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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南島近現代史研究会『会報』第2号 4

2009年06月11日 | 海南島近現代史研究会
 海南島近現代史研究会『会報』第2号の序言(朝鮮語版)です。

■『회보』제2호 발행에 즈음하여
 오늘 해남도근현대사연구회 「회보」 제2호를 발행합니다.
 70년전의 1939년 2월 10일 미명 일본군이 해남도에 기습상륙했습니다.
 그 24일전인 1939년 1월 17일 천황 히로히트는 일본군의 해남도 침입을「재가」했고 같은 날 대본영 육군부와 대본영 해군부는 해남도를 공동으로 점령한다는「북부 해남도작전 육해군 중앙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일본정부와 대본영이 2월 10일에 일본군을 해남도에 기습상륙시킨 것은 「기원절」인 2월 11일에 해남도의 수도 하이코우(海口)를 점령함을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본이 선전포고없이 해남도 침략전쟁을 개시한 지 7개월 후 1939년 9월 독일군이 서방으로부터 소련군이 동방으로부터 폴란드로 침입하고 분할점령했습니다.
 2008년 12월 27일 오전 11시 반 팔레스타인의 가자시 상공에 침입한 이스라엘군F16 전투기 60기는 인구 밀집지역에 대한 무차별폭격을 개시했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군은 전투기, 지대지 미사일, 무인기, 군용헬리콥터등으로 매일같이 폭격을 계속하여 건물을 파괴하고 팔레스타인민중을 살상했습니다. 2009년 1월 3일 오후 7시반 이스라엘육군이 가자지역으로 침입하여 공격을 개시했습니다.   그 때부터 1월 18일 오전 2시까지 이스라엘 공 륙 해군은 미사일, 백인탄, 폭탄, 전차, 불도저……를 사용하여 1400명을 넘는 사람들을 살해했습니다.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던 해남도로 일본군이 침입했을 때부터 1945년 8월 중간까지의 6년반 일본정부, 일본군, 일본기업은 계속적으로 해남도 사람들에게 큰 재앙을 가져왔습니다.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던 팔레스타인에 유태 민족주의자의 군대가 침입한 것은 1948년이었습니다. 유태 민족주의자는 이 해 5월 14일 점령한 팔레스타인 대지를 이스라엘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이 때부터 유태 민족주의자는 팔레스타인 민중에게 큰 재앙(나크바)을 계속적으로 가져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사는 팔레스타인인이외 「이스라엘국민」의 대부분은 가자지역에서의 이스라엘군의 범죄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일본국민의 대부분은 대만 영토화, 조선 영토화, 중국동북부·몽골동남부 영토화……때와 같이 해남도 침략 때에도 점령지 확대를 환영하고 군사행동을 지지했으며 일본정부, 일본군, 일본기업의 침략 범죄에 가담했습니다.
 일본이 점령했던 시기(해남도 민중이 일본의 침략에 저항했던 시기)의 일본 근현대사, 패전 후의 일본 근현대사는 동시대의 해남도 근현대사와 서로 겹치고 있습니다.
 해남도 근현대사는 팔레스타인 근현대사와 서로 겹치고 있습니다.
 70년전에 일본국민은 왜 해남도 침략을 저지할 수 없었던 것인가라는 문제는 지금 왜 유태 민족주의자의 팔레스타인 침략을 세계 민중이 계속 허락하고 있는가 라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아이누모시리 피식민지화 140년후, 「유구 처분」130년후, 3·1 조선독립운동 90년후, 일본의 해남도 침략 개시 70년후의 2009년 본지가 이 문제를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나가는 하나의 계기가 될 것을 우리는 바라는 바입니다.

                  2009년 2월 10일
                           海南島近現代史研究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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