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극에 달한 세계의 달인
뉴스위크 일본어판 2013/8·13/20호로부터.
The Van Gogh of Sumi-e
눈으로부터 비늘의 묵화를 보다자유롭게 대담하게
Ilan Yanizky(이스라엘)
●묵화화가·서도가
글 중 흑자화는 아쿠타가와(芥川).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에서 자란 Ilan Yanizky는, 5세로부터 그림 붓을 잡고 있었다. 20대로 병역을 마치면, 로마나 런던, 텔아비브등의 예술학교에서 서양회화를 배웠다.
묵화와 만난 것은, 문득 한 계기로 일본을 방문한 27세의 때. Yanizky는 처음으로, 자신이 배워 온 서양회화의 음울함을 알아차리게 했다.
인상파도 포함시켜 서양의 근대회화는, 열등감이나 성적 욕망등 마음 속이 어두운 것을 완전히 드러내게 하자로 한다. 그러한 그림은 이미 그리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묵화는, 그가 익숙해져 친숙해 온 유화와는 무엇이든 모두가 틀렸다. 산수화도, 꽃이나 야채의 그림도 자연에의 자애와, 수면을 たゆたう 같은 낙낙한 시간과, 애초부터의 밝음이나 유머(humor)에 가득 차 있다. Yanizky에 말하게 하면, 중국에서 전해진 묵화는 전한창인 시기를 맞이한 무로마치(室町) 시대 당시, 【레오나루도】·다빈치보다 나아간 모던아트(modern art)이었다.
그것을 확신한 것은, 다빈치와 거의 동시 값을 산 화가, 눈배의 산수화를 보았을 때다. 단숨에 지불한 일필로 산의 능선을 그리고, 먹의 짙은 담색으로 깊이를 표현한다. 화면의 3분의 2은 희었던 채 남겨져, 그 여백에 바람이 통과하는 것이 보인다.
묵화는 항상 이 여백을 소중히 여긴다. 서양회화를 배워 온 Yanizky에는, 과일이나 꽃을 그리면 책상이나 식탁보(tablecloth)까지 그리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고정 관념이 있었다. 「묵화와의 만남은, 눈으로부터 비늘이 몇장도 떨어지는 체험이었다」라고, 그는 한다.
이하 계속된다
쓰는 사람의 기자는 지바(千葉) 가요코(香代子)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