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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역사관의 오류는 한국을 살펴보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2024年08月09日 10時35分45秒 | 全般

진보적 역사관의 오류는 한국을 보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근대 국가의 기본 원리인 법치주의는 오늘날까지도 한국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2022년 6월 26일

다음은 오늘자 산케이신문에 실린 후루타 히로시 쓰쿠바대 명예교수의 ' 러시아와 한국'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 '역사는 진보한다'는 거짓말.
이 글은 그가 전후 세계를 대표하는 학자 중 한 명임을 증명하는 글이기도 합니다.
일본 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입니다. 
본문에서 제목을 제외한 강조는 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역사는 진보한다고 믿습니다.
인류는 실수를 반복하면서 한 걸음씩 발전해 왔고, 결국 이상적인 사회에 도달할 것입니다.
전쟁의 경우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의 실수를 통해 교훈을 얻었고, 언젠가는 전쟁과 핵무기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이상을 품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많은 사람들은 지식인과 미디어, 특히 신문과 TV에 출연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사회가 특정 발전 단계를 거쳐 발전하고 모든 국가가 현대화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는 진보의 역사 관점에서 세계를 논의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그러한 사람들이 진보의 거짓말을 퍼뜨리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의 패배, 소련의 붕괴를 경험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을 핵무기로 위협하며 또 다른 침략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러시아가 약탈, 폭행, 학살, 강간, 수용소로 보내는 등 2차 세계대전 말 소련과 일본의 중립 조약을 파기하고 만주를 침략한 소련군이 일본인에게 했던 것과 같은 행위를 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근대적인 행동을 보면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100년 이상 러시아는 발전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진보적 인 역사관에 사로 잡힌 사람들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소위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를 침공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이 상황의 현실입니다.

현대 국가의 국제 규칙으로는 푸틴 대통령의 말과 행동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는 침공을 시작하면서 "우크라이나의 네오 나치를 타도하고 러시아 국민을 해방시키기 위해서"와 같은 이유를 들었는데, 이는 한국의 "욱일승천기는 군국주의"와 같은 수준입니다. 이는 한국인들이 "일본의 욱일승천기는 군국주의이고 일본은 악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아첨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에브라임 족속은 길르앗 땅의 백성들에게 "다른 나라들이 침략했을 때 왜 에브라임 족속에게 지원군을 요청하지 않았습니까? 이번에는 우리가 그들을 침공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구약성경 사사기).
푸틴 대통령의 생각은 현대보다는 고대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과학의 발전과는 별개로, 정신적인 의미에서 러시아가 처음부터 현대 사회를 원해야 한다는 생각은 이기적인 가정일 수 있습니다.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인의 60% 이상이 소련의 사회주의 시대를 최고로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사회주의는 계급 제도, 폭정, 농노제(공동 농장) 등 고대 사회와 유사한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유사 고대 사회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차르와 농노가 토지를 소유하고 차르의 폭정 아래 세워진 러시아 제국과 유사합니다.

'문재인 보호에 관한 법률' 제정
진보적 역사관의 오류는 대한민국을 보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근대 국가의 대원칙인 법치주의는 아직 한국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근대 국가의 대원칙은 조약 등 다른 국가와 맺은 약속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이미 해결된 문제를 반복적으로 재론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법의 수호자 역할을 해야 할 대한민국 대법원이 일본 기업에 이른바 '징용공'으로 불리는 전시 근로자에 대한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명령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법치주의가 아닌 '반일' 교육에 의해 국민 통합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초기에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반일'이라는 감정적 논리가 법치보다 우선시되고 있습니다.
현대의 국가 지도자라면 이런 현실을 우려하고 법치주의를 확립하기 위해 노력할 텐데, 한국에서는 국가 원수인 대통령이 법치주의를 훼손하려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퇴임하는 대통령을 다음 정권이 체포하는 '전통'이 있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이른바 '문재인 보호법'을 개정해 검찰의 수사권 대부분을 박탈해 체포를 막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진보적 역사관으로는 어떻게 이런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날 수 있는지 설명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윤석열이라는 새로운 대통령이 한국을 바꾸고 한일 관계가 개선되기를 희망하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제가 러시아나 한국에 대해 끔찍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단지 어떤 나라도 발전하고 현대화할 수 있다는 진보적 역사의 관점에서 러시아와 한국을 바라본다면 이 역사관에 결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러시아와 한국은 그런 나라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진보적 역사관에 비추어 '러시아와 한국은 그런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가정을 가지고 그들을 대하면 우리의 이기적인 이상을 그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되고, 이는 그들에게 짜증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마르크스와 그 일파는 꿈의 마지막 흔적입니다.
한 국가가 역사적 진보를 거쳐 사회주의 이상에 도달한다고 믿었던 지식인들의 마르크스주의는 한때 진보적 역사관의 토대였습니다.
과거 일본에서는 "진보적 문화주의자"라고 불리는 지식인들이 아사히신문을 비롯한 신문을 점령하고 자신들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외국의 편리한 사례를 가져와 "일본은 이에 비해 뒤처지고 있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머릿속에는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재의 자본주의는 사회주의라는 이상향으로 나아가고 있고, 그래야만 하며, "역사적 필연"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것입니다 .
스스로를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만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전후 대표적인 지식인 중 한 명인 마루야마 마사오도 그의 강의 노트에서 마르크스주의 학파(일본 마르크스주의자 학파)의 전통에 따라 부르주아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의 이행의 역사적 필연성을 가르쳤습니다.
(요네하라 켄, "마루야마 마사오와 사회주의", 시소, 988호, 2006년 8월)

사회주의 이상이 일본 지식인들을 매료시킨 것은 전후 자본주의 후진국으로 다시 출발한 일본인들의 열등감에 대응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쟁에서 미국에 패한 일본은 정치, 경제적으로 미국을 따라 자본주의의 길을 걸었고, 그 뒤를 따르는 일본 지식인들도 미국을 추종하며 미숙했습니다. 
이러한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들은 미국과는 다른 사회주의의 이상을 추구했습니다.
패배주의적 전쟁 콤플렉스에 빠진 지식인들은 미국의 지식인들과는 달랐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인들의 반미 감정의 이면에는 패배 콤플렉스가 깔려 있습니다. 
예상대로 노쇠한 진보 문화계 인사들의 사회주의는 영향력을 잃었다. 그러나 진보적 역사관 자체는 여전히 살아있고, 그 거짓말을 믿고 뼛속 깊이 사랑했던 노인들의 삶은 더 이상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최근 일본 적군의 최고 지도자였던 시게노부 후사코가 20년 형을 선고받고 출소했습니다.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하며 무작위로 총을 쏘고 무고한 사람을 살해하고 납치하는 등 사회주의 혁명 행위를 저지른 일본 적군도 진보적 역사관의 자식입니다.

여름 풀、남아있는 모든 것、마르크스의 꿈.
진보적 역사관은 죄악입니다.



2024년 8월 8일 후쿠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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