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明のターンテーブルThe Turntable of Civilization

日本の時間、世界の時間。
The time of Japan, the time of the world

하지만 이제는 확신이 듭니다. 감사입니다. 특히 2014년 8월 이후.

2024年06月21日 17時05分05秒 | 全般

어젯밤에 암시적인 꿈을 꿨습니다.
주저 없이 천재에 걸맞은 꿈을 꿨어요.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꿈, 거의 노벨상 같은 꿈을 꿨어요.
그리고 저는 금메달을 딴다고 확신했습니다.
어떤 종류의 금메달이었나요? 맛에 대한 금메달이었어요.

한동안 천재성에 관한 논문을 써볼까 생각했었죠.
하지만 개인적인 문제가 얽혀 있어서 "노트"에 처음으로 유료 기사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 기억으로는 바로 전날 밤이었습니다.
유료 기사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노트'를 열었습니다.
기사를 제출하려고 했더니 "일시적으로 기사를 제출할 수 없습니다. 시간이 좀 걸릴 것입니다..." 메시지가 나타났습니다.
다시 시도해 보니 놀랍게도 2023년 9월 9일 이후 거의 매일 작성하던 모든 챕터가 일시 중단된 상태였습니다.

저는 이미 2010년 7월 16일에 일본과 전 세계에 이 상황에 대한 진실을 알리기 위해 인터넷에 출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한 바 있습니다.
처음에는 구, 아메바, FC2 등 세 개의 다른 사이트에서 같은 글을 계속 보냈습니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고,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랐습니다.
같은 기사를 두 개도 아니고 세 개의 웹사이트에 게시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FC2가 음란물 게시로 평판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듣고 FC2 사용을 중단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할 일이 하나 줄어든 것 같아 안도했습니다.
그때부터 작년 8월 8일까지 거의 매일 두 회사에 20만 개가 넘는 기사를 계속 게시했습니다.
그러던 중 8월 8일 아메바에 기사를 올렸을 때 '점검 중입니다'라는 메시지가 떴습니다.
운영사로부터 그런 공지를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의심스러워서 이리저리 검색을 해봤습니다.
로그인 화면이 뜨는 것이 이상해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했습니다.
상황은 해결되지 않았고 20만 개가 넘는 챕터 전체가 삭제된 상태였습니다.
그 이후의 상황은 이미 설명했습니다.
저는 운영사인 사이버에이전트를 상대로... 정신적 손해까지 포함하여... 20만 건이 넘는 글을 작성하는 데 소요된 시간과 노력을 금전으로 환산하여 저작권 침해 등 범죄 행위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요구함과 동시에 막대한 손해배상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고 싶습니다.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할까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소송을 시작하려면 최소 수백만 엔의 비용이 들고, 일본 법원의 소송 기간이 길다는 점, 미국과 달리 개별 손해배상은 보통 큰 금액이 아니라는 점 등을 이미 경험한 바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중병에 걸려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저는 이 회사를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회사는 언론 분야에서 웹사이트를 운영하며 크게 성장한 상장 기업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자유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돈벌이 회사이기 때문에 결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언론을 미끼로 삼아 돈을 버는 방식은 인간의 가장 저급한 행동입니다.
이 회사의 경영진과 직원들은 자신들이 성공한 사람이고 인생의 봄날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현생에서는 정죄가 없더라도 지옥의 야마 왕이 그들을 심판 할 것입니다.

이제 노트에 대해 살펴봅시다.
이름은 알지만 어떤 회사인지 몰라서 검색을 해봤습니다.
이럴 때 항상 마음이 급한 저는 비스듬히 쳐다보다가 제가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딘가에 썼던 것 같은데, 저는 바로 전날까지 이 회사의 대표(창업자)가 오사카 대학을 입학하고 졸업한 사람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친한 동기 중 한 명이 오사카 대학에 입학하여 졸업하고 대기업 무역회사에 근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당시 중견사원으로 입사해 하세코에서 근무하던 중 인생의 방향을 틀어야 했던 제가 요도야바시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그를 다시 만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하세코가 건설하여 분양한 료쿠치 공원의 콘도미니엄에 살고 있었는데, 그의 집에 초대받아 저녁을 먹었던 그날 밤은 제 인생에서 가장 잊지 못할 추억 중 하나였습니다.
제가 센다이에 있을 때 이미 그가 어떤 학생과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거든요.
당시 센다이에 있는 제 동기들은 "오사카대학에 미녀가 있나?"라고 말하곤 했어요.

그의 아내를 보자마자 바로 이해했습니다.
인품과 외모가 훌륭했던 그가 왜 학생 시절에 결혼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죠.
그녀는 아름다웠을 뿐만 아니라 훌륭한 여성이었죠.
이따금 이타미 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발코니 너머를 바라보며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도 그의 사랑스러운 아내는 적절한 타이밍에 맛있는 요리를 꺼내주곤 했습니다.
그는 결혼 후 살이 쪘다고 말했지만... 아내는 남자의 이상형인 멋진 여자였으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학생이었을 때 결혼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가 뉴욕 지사로 발령받았을 때, 우리는 그의 요청에 따라 일본을 대표하는 명문 회사에 그의 집을 사택으로 임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것도 잘 맞았습니다.
그가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으로 돌아오지 않아 문의를 했더니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현재 뉴욕의 유명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제 모교 인문학과의 수석 학생이었어요.
앞서 언급한 가정적 불행이 없었다면 저는 그를 유일한 라이벌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어쨌든 그의 영어 실력은 뛰어났죠.
세계사 수업에서 한 단원을 두 시간 동안 두 번이나 가르쳤는데, 선생님이 "키사라가 나보다 이 부분을 더 잘 아는데..."라고 말할 정도였죠. 
그의 영어 실력도 선생님과 대등한 수준이었죠.

모교 시절에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한 번은 그가 저에게 "무슨 일이야?"라고 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네가 그런 상황에 처한 줄 몰랐다, 나도 몰랐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는 저를 위로할 방법이 없다고 중얼거렸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의 집에서 만찬을 하고 있을 때쯤 그는 이미 그 일을 잊어버린 뒤였습니다.
결국 그는 최고의 동반자와 함께 최고의 삶을 살며 순조롭게 항해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교토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오사카대학 명예교수로 재직 중인 가지 노부유키입니다.
그래서 노트의 창립자에 관한 기사에서 오사카 대학의 이름을 보자마자 바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괜찮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전날 "오사카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검색해본 결과 제가 부주의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오사카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요코하마 시립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오사카대학에서 대학원생으로 몇 가지 과목을 공부한 적이 있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요코하마 시립대학과 오사카대학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언론의 자유, 언론의 중요성, 언론의 본질, 사물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저의 좋은 친구이자 카지 노부유키 씨만큼 깊을 리가 없습니다.
그들은 언론을 돈을 버는 수단으로 생각하거나 돈을 버는 수단으로 사용하지만 언론의 자유와 언론의 본질에 대해서는 무지하다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 모든 작품의 20만 개가 넘는 챕터 =를 갑자기 삭제하고도 여전히 면죄부를 받고 있는 아메바보다는 낫습니다.
아메바의 악랄한 점은 그들이 믿을 수 없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고도 여전히 '좋은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팔로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아메바의 악의성은 그들이 믿을 수 없는 일을 저지르고도 매일 "멋진 게시물에 감사드립니다", "팔로우 중인 XXX의 새 게시물이 여기 있습니다..." 등의 이메일을 보낸다는 사실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런데 이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 그때까지 저를 팔로우하던 사람들과는 다른 이상한 사람들이 노트에서 저를 팔로우하기 시작했습니다.
제품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것 같은 블로그도 있었고, 최근 세 명의 여성에 관한 에로 소설을 그럴듯한 스토리로 꾸며서 시작한 남성의 블로그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상 화폐를 통한 자산 형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블로그도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좋아요'가 갑자기 도착하기 시작했습니다.

X에서는 국적을 알 수 없는 외국인 여성이 야한 옷을 입고 수신자를 위험한 사이트로 유도하는 아이디로 '좋아요'를 수없이 보냈습니다.
매번 신고하고 차단했지만 어느 날은 '좋아요' 수가 20개가 넘었습니다.
그러던 중 전날 밤에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제가 2010년 7월 16일부터 계속 연재하고 있는 이 칼럼은 일본의 한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진짜 웹사이트입니다.
작년 8월 8일, 아메바 사건 발생과 동시에 '알림'란에 네 개의 글이 사이트에서 정지되었다는 알림을 받았습니다.
네? 어떤 챕터인지 확인하기 위해 해당 챕터를 클릭했습니다. 
모든 챕터가 츠지모토 키요미에 대해 인터넷에 게시된 기사(모두 사실임이 분명함)를 독자들에게 소개하려고 시도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즉, '문명의 턴테이블'의 본질과는 전혀 상관없는 챕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런데 그 챕터 중 하나를 삭제하고 나니 이 챕터도 삭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머지 세 장은 남겨두자고요.
츠지모토 키요미인지 아니면 그녀와 관련된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이런 일을 하는지에 대한 사례로 남겨두면 어떨까요? 
어떻게 이런 식으로 말을 억압할까요?

전날 밤 문득 그 생각이 들어 알림 열을 살펴보니 놀랍게도 알림 수가 12개로 늘어났습니다! 알림 수가 한꺼번에 12개로 늘어났습니다.
클릭해보니 츠지모토 키요미에 대한 인터넷 기사나 제가 짧은 코멘트를 덧붙인 챕터였습니다.
도쿄 도지사 선거가 막 시작되었습니다.
츠지모토 기요미는 일본 입헌민주당(DPJ)의 중진 의원으로 렌호의 강력한 지지자입니다.
그렇군요, 그래서 이런 일이 벌어졌군요.
그래도 작년 9월 9일 사이트를 오픈한 이후 거의 매일 작성해 온 모든 챕터의 게시를 중단하는 것은 정말 분노를 금할 수 없습니다!
노트 사용자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제 블로그에서 마일스톤 포스팅 업적 달성에 대한 보상 마크는 상당한 숫자가 되었습니다.

노트가 도움이 된 가장 큰 이유는 글 상단에 사진을 게시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주로 교토, 나라, 시가, 오사카에서 200,000장 이상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저는 특히 교토에서 세계 최고의 아마추어 사진작가라고 자부합니다.
신사, 절, 사찰에 지불한 입장료와 교통비까지 합치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개인 사진 작가가 될 것입니다.

제 사진은 계속 살아 있습니다.
제 사진을 PC에 저장하는 것만으로는 죽은 공간에 저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드디어 제 사진이 살아 숨 쉬게 될 것입니다.
전 세계 사람들과 제 사진의 아름다움을 공유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결국, 챕터 상단에 제목처럼 게시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칼럼의 기사 마지막에 제 사진을 상단과 하단 사이에 끼워 넣었습니다.

화창한 날에 사진을 찍으러 나갔다가 당일이나 다음 날, 전날 노트에 올린 사진을 챕터 맨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동시에 제가 찍은 사진의 품질도 살펴봤습니다.
많은 챕터를 전 세계로 보내야 하기 때문에 이 작업만으로도 꽤 피곤하고 힘든 작업입니다.
페이지 상단에 사진을 계속 올리다 보니 배탈이 날 지경이었어요.
정말 힘든 작업이었죠.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기쁨은 제가 찍은 사진들이 신문 1면에 실리는 것을 보고 뿌듯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계속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더 이상 점심시간을 연장할 수 없으니 여기서 멈추겠습니다.
여기서 멈추겠습니다만 한 가지 쓰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전날 밤 사건과 동시에이 칼럼의 검색 분석 조작, 이 범죄 행위는 6 월 6 일부터 중단되었습니다.
올해 두 번째입니다.
이번에는 두 번째 주였습니다.
지인은 주식시장에서 돈을 벌고 해외여행을 떠났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이 사건 이후 범죄 활동이 재개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악령이 넘쳐나는 인터넷 세계에서 저는 왜 그렇게 많은 간섭을 받으면서도 계속 글을 쓰고 있을까요?
게다가 전적으로 무료입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쿠카이의 가르침이 이에 대한 가장 좋은 예입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확신합니다.
그것은 바로 감사입니다.
특히 2014년 8월부터.
저는 아사히와 닛케이를 구독하고 NHK와 상업 뉴스 프로그램을 보곤 했습니다.
그런 나쁜 습관을 깨고 다카야마 마사유키가 등장했습니다.
그를 필두로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지성, 세계 최고 수준의 지성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앞으로 170년 동안 이 칼럼을 계속 쓸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
앞으로 170년 동안 이 칼럼을 계속 써서 일본 국민과 전 세계에 일본이 21세기를 살아갈 만한 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릴 것입니다.
이 글은 계속됩니다.


2023/6/10 in Osaka

 


最新の画像もっと見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