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sunki

韓国と日本について

人間の実相 9

2009年03月03日 | 韓国語
첫 번째로 채찍의 그림자를 보고 놀라는 말은
지는 꽂, 화장터에서 솟아오르는 연기를 보며 언젠가 나에게도
닥쳐올 일이야 라며 죽음을 놀라워하는 사람을 말한다.

두 번째로 채찍이 털끝에 닿아 놀라는 말은 장례식의 행렬이나
영구차를 보고 자신의 일대사에 놀라는 사람.

세 번째로 채찍이 몸에 닿아 놀라는 말은 이웃집이나 친척의 장례식에 대면해
무상을 보고 놀라는 사람.

네 번째로 뼈에 사무쳐 놀라는 말이란 부모를 잃고 자신의 죽음에 대해 놀라는
사람을 예를 들어 말한 것이다.

사고, 살인, 테러, 자살,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뉴스가
보도되지 않는 날은 없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들도 여행자와 같이 백골이 흩어져
있는 광야에 홀로 서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과연 나 자신은 이 사마의 비유의 어디에 속할까?

맹호는 예를 들어 말한 것이며 무상 자신의 죽음이고 뒤쫓아오는 것은
무상의 바람이 휘몰아치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들 배후에 굶주린 맹호가 다가오는 있다는 것은 어떻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느 한 환자는 투병기에게 있어서는 갑자기 왔다고 밖에는
느끼질 못하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것에 안심해 버린 마음은 죽음에 대한 준비가 아무것도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은 와서도 안될 때도 온다.
와서는 안될 장소에도 아무 거리낌없이 온다.
그건 깨끗이 청소를 한 방에 신발을 신은 채 구둣발로 성큼성큼 들어오는
무법자와 같은 것이다.

그건 너무한 일이다.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지만 결코 기다리려 하지 않는다.
인간의 힘으로써 어떻게 막을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괴물이다.

여행자는 등나무 줄기를 타 절벽에 매달려 있다.
이 등나무 줄기는 인간의 수명을 말하고 있다.

흰색과 검은색의 쥐가 예를 든 것은 밤과 낮이다.
두 마리의 쥐가 교대로 등나무 줄기를 갉아먹으며 돌아가는 것처럼
우리들의 생명을 낮과 밤이 번갈아 가며 깍아내고있는 것이다.

설날도 추석도 휴일도 한시라도 쉬지 않고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흰쥐 아니면 검은 쥐에 의해서 끊어질 때가 꼭 온다.

어느 날 석가모니가 수행자들에게 생명의 길이에 대해서 물으셨다.
수행자의 한 사람은 생명의 길이는 5,6일간입니다.
그 다음 사람은 생명이란 5,6일도 없습니다.
그저 식사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간입니다.
그 다음 사람은 아닙니다 생명의 길이란 숨쉴 사이도 없습니다.
들이쉰 숨을 뱉을 수 없다면 그것으로써 끝입니다.

석가모니 맨 마지막 대답을 칭찬하시며 그렇다 자네가 말한 그대로
생명의 길이란 들이쉰 숨을 뱉을 것을 기다리지 못할 정도의 길이에 불과하다.

생명이 정말 짧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면 느낄수록 인간은 인간다운 생활을
하게 된다 라고 가르치고 계신다.

죽으면 어떻게 돼나?

심해, 새 마리의 용, 다섯 방울의 꿀.

등나무 줄기가 끊어짐과 동시에 여행자는 끝을 모르는 심해
깊디깊은 바다 속으로 떨어져 간다.

이것을 후생의 일대사라고 한다.

후생이란 한 숨 끊어진 뒤의 사후를 말한다.
무슨 일이 일어나 들이쉰 숨을 내 뱉을 수 없거나 뱉은 숨을
들이 쉴 수 없을 때 그때부터가 후생이다.

얼마나 평균 수명이 늘었다고 해도 죽지 않게 된 것은 아니다.
100퍼센트 직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후생이다.
그러니 후생과 관계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 다음 일대사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가?

つづ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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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コメン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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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실상 (조정오)
2009-03-05 13:04:48
인간의생명이 아무리짧다고 들어도
죽는다는 생각은 절대로 들지않습니다
생명이 짧다고뼈저리게느끼면 인간다운생활을 하게 된다라는 가르침에
많은생각을 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返信する
 (gosungi)
2009-03-06 14:58:59
제가 조상에 대한 멘트를
블로그에 올려놓았습니다.
한번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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