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明のターンテーブルThe Turntable of Civilization

日本の時間、世界の時間。
The time of Japan, the time of the world

在工人階級中造成家庭的解體是不對的。

2024年04月14日 17時44分38秒 | 全般

2011/1/31
我堅信,網路的出現向我們展示了 21 世紀的民主應該是什麼樣子。
事實上,其中有很多“粗俗”,這是很自然的,因為他們是和電視一起長大的,但這並沒有削弱網路的重要性,而且它只會繼續發展。

2011/1/31
菁英的角色,第 2 集。
我們以S先生為例。
對於上班路上發S相關公司宣傳冊的小伙子,或是電器店應門的小伙子(無論是全職還是兼職),S先生只有三張要做的事情

(1)如果其中有一個年輕人具有與S先生相同的能力,即有能力進入精英階層,佔人口的10%,就應該及時建立制度來培養他。

(i) 沒有S先生同等能力的人,即使倒立=終生工作,年收入500萬日元,但不需要為管理層花費或賭上一生的人國家、都道府縣、市或公司政府,佔人口的90%。
他們誠實、無憂無慮,不說謊、欺騙或傷害他人。
只有到了選舉的時候,你才必須盡自己的一份力量,認真地考慮這些人,以免誤判他們。
其他時候,你可以想著家人的幸福或家人的幸福而生活,而不是一輩子工作,享受最高500萬日圓的年收入。

如果他們在您的公司工作,享受最高年收入為 500 萬日圓的工人群體,您必須盡最大努力確保他們能夠在您的公司工作(無論他們是 60 歲還是 70 歲)順利。

一、如果這個工人階級的孩子中出現了聰明的頭腦和心靈的孩子,我們應該及時將他們帶入社會的領導層,並每天努力建立一個鼓勵他們努力工作和相互競爭的製度。

評論。

佔人口10%的精英階層,自然要有24小時打磨自己的苛求角色。
以「庸俗」來誤導民族,不是他們的本性。

即使你今生只有工人階級90%的能力,上帝同樣關心所有人,除了那些生來邪惡無可救藥、必須等待上帝或佛陀來照顧的人,結婚,養育孩子,一家人幸福快樂地生活。 擁有妻子、養育孩子、家庭幸福生活的能力是所有人所賦予的。

補充。

本來,家庭的解體只應該發生在精英階層的人身上,那些人因為工作太專注,妻子都離自己而去,或者是那些作為精英階層賺了太多錢,沉迷於享樂的人。這個世界是一個痛苦的世界,或是一個有偉人追求感官享受的人。
這種事應該只發生在那些人身上。

在工人階級中造成家庭的解體是不對的。
因為他們生活的破裂主要導致了勞工階級家庭的破裂。

2024/4/12 in Kyoto


在工人阶级中造成家庭的解体是不对的。

2024年04月14日 17時38分30秒 | 全般

2011/1/31
我坚信,互联网的出现向我们展示了 21 世纪的民主应该是什么样子。
事实上,其中有很多“粗俗”,这是很自然的,因为他们是和电视一起长大的,但这并没有削弱网络的重要性,而且它只会继续发展。

2011/1/31
精英的角色,第 2 集。
我们以S先生为例。
对于上班路上发S相关公司宣传册的小伙子,或者电器店应门的小伙子(无论是全职还是兼职),S先生只有三张 要做的事情

(1)如果其中有一个年轻人具有与S先生相同的能力,即有能力进入精英阶层,占人口的10%,就应该及时建立制度来培养他。

(i) 没有S先生同等能力的人,即使倒立=终生工作,年收入500万日元,但不需要为管理层花费或赌上一生的人 国家、都道府县、市或公司政府,占人口的 90%。
他们诚实、无忧无虑,不说谎、欺骗或伤害他人。
只有到了选举的时候,你才必须尽自己的一份力量,认真地考虑这些人,以免误判他们。
其他时候,你可以想着家人的幸福或者自己家人的幸福而生活,而不是一辈子工作,享受最高500万日元的年收入。

如果他们在您的公司工作,享受最高年收入为 500 万日元的工人群体,您必须尽最大努力确保他们能够在您的公司工作(无论他们是 60 岁还是 70 岁) 顺利。

一、如果这个工人阶级的孩子中出现了聪明的头脑和心灵的孩子,我们应该及时将他们带入社会的领导层,并每天努力建立一个鼓励他们努力工作和相互竞争的制度。

评论。”

占人口10%的精英阶层,自然要有24小时打磨自己的苛求角色。
以“庸俗”来误导民族,不是他们的本性。

即使你今生只有工人阶级90%的能力,上帝同样关心所有人,除了那些生来邪恶无可救药、必须等待上帝或佛陀来照顾的人 ,结婚,养育孩子,一家人幸福快乐地生活。 拥有妻子、抚养孩子、家庭幸福生活的能力是所有人都赋予的。

补充。

本来,家庭的解体只应该发生在精英阶层的人身上,那些人因为工作太专注,妻子都离自己而去,或者是那些作为精英阶层赚了太多钱,沉迷于享乐的人。 没有意识到这个世界是一个痛苦的世界,或者一个有伟人追求感官享受的人。
这种事应该只发生在那些人身上。

在工人阶级中造成家庭的解体是不对的。
因为他们生活的破裂主要导致了工薪阶层家庭的破裂。

2024/4/12 in Kyoto


노동계급에서 가족을 해체시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2024年04月14日 17時35分51秒 | 全般

2011/1/31
저는 21세기 민주주의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인터넷이 등장했다고 확신합니다.
TV와 함께 자랐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저속함"이 많이 있다는 사실은 인터넷의 중요성을 감소시키지 않으며 계속해서 발전할 것입니다.

2011/1/31
엘리트의 역할, Take 2.
S씨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출근길에 S 관련 회사 팜플렛을 건네주는 청년이나 전자상가에서 문을 여는 청년(정규직이든 아르바이트든)에게 S씨는 딱 세 개밖에 없다. 해야 할 일

(1) 그들 중에 S 씨와 같은 능력, 즉 전체 인구의 10%인 엘리트 계층에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청년이 있다면, 그를 육성할 수 있는 시스템을 조속히 구축해야 한다.

(i) 머리를 써도 S씨와 같은 능력은 없는 자 = 평생을 일하고 연봉 500만엔을 벌지만 경영에 목숨을 걸거나 돈을 쓸 필요가 없는 자 인구의 90%를 차지하는 국가, 현, 시, 기업 정부의 경우입니다.
그들은 정직하고 평온하며 거짓말을 하거나 속이거나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오직 선거 때만이 그들을 오판하지 않도록 진지하게 고려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때로는 평생을 일하며 최대 연 500만엔의 소득을 누리는 대신 가족의 행복, 자기 가족의 행복만을 생각하며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연소득 500만엔 이하의 근로자 집단으로 회사에 근무하는 경우, 60세, 70세 여부를 불문하고 회사에서 근무하며 생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차질없이.

1. 로동계급의 자녀들 가운데서 뛰어난 정신과 마음을 가진 아이들이 나온다면 그들을 하루빨리 사회의 지도자로 끌어들이고 그들이 열심히 일하고 서로 경쟁할 수 있는 체제를 매일같이 건설하여야 합니다.

해설."

인구의 10%에 달하는 엘리트 계층은 당연히 하루 24시간 자신을 연마해야 하는 힘든 역할을 맡게 됩니다.
"저속함" 속에서 국가를 오도하는 것은 그들의 본성이 아닙니다.

현생에서 노동계급의 90% 정도의 능력만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관심을 갖고 계시지만, 어쩔 수 없이 악하게 태어나서 하나님이나 부처님이 돌봐주실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사람은 제외합니다. ,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고, 가족으로서 행복하게 사는 것. 아내를 갖고, 자녀를 키우고, 가족으로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은 누구에게나 주어졌습니다.

보충.

애초에 가정의 해체는 엘리트 계층, 일에 너무 열중해서 아내들이 도망갔거나, 엘리트로서 돈을 너무 많이 벌어서 쾌락에 빠진 사람들에게만 일어나야 했습니다. 세상은 고통의 세계이고,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위대한 인물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만 그런 일이 일어나야 합니다.

노동계급에서 가족을 해체시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들의 삶의 파탄은 주로 노동계급 가족의 파탄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2024/4/12 in Kyoto


但战后 70 年的 2015 年发生的情况却恰恰相反。

2024年04月14日 16時29分42秒 | 全般

2020/11/2
以下内容摘自山岩纯夫在本月《花田》杂志上的专栏。
韩国团体等在德国柏林市中心日本大使馆附近的公共土地上设置慰安妇雕像,引发当地政府撤销设置许可并要求拆除雕像。
然而,据报道,由于韩国相关团体的抵制,当地政府决定暂时安装该雕像。
未来会发生什么还无法预料。
雕像的揭幕仪式于 9 月 28 日举行,当地政府于 10 月 8 日撤销了安装雕像的许可。
日本外相元木敏充要求德国外长拆除雕像。
日本对这一问题的迅速回应是富有成效的,但在这一阶段放弃该项目表明了慰安妇问题的严重性。
在德国,韩国组织十分活跃,在私人领地上竖立了两座慰安妇雕像。
此外,教堂和其他设施中也展示了慰安妇雕像。
慰安妇被宣传为一种战争罪行,就像纳粹大屠杀一样,这是一个严重的问题。
柏林这座和平雕像所附的纪念碑上写道:
第二次世界大战期间,日本军队从亚太地区绑架了无数女孩和妇女,强迫她们成为性奴隶。这座和平雕像提醒人们不要忘记这些被称为慰安妇的妇女的悲痛,以纪念那些在 1991 年 8 月 14 日打破沉默的勇敢受害者,并要求这种暴行永远不再发生在世界上。
当然,慰安妇并不是被迫的性奴隶。
她们是在战争期间为军方工作的妓女,获得补偿,在当时是合法的。
但日本仍然因其虚假的历史而受到谴责。
但为什么每次都是在战后 75 年发生这种情况呢?
2015年《日韩慰安妇协议》中,前首相安倍晋三在任时再次向慰安妇道歉,日本从政府预算中拿出10亿日元以示道歉,这又是怎么回事?
日本政府当时的解释肯定是,永远不会重提慰安妇问题。
然而,即使在日韩达成协议之后,慰安妇雕像的数量仍在继续增加。
据较早在日本处理慰安妇问题并在最近将活动扩展到联合国的 "抚子行动 "称,除韩国外,美国、德国、加拿大、澳大利亚、菲律宾、台湾等地约有 30 座。韩国有慰安妇雕像和慰安妇纪念碑。
其中大部分是在安倍政府时期扩建的,约有一半是在日韩协议签订后设置的。
这表明《日韩慰安妇协议》在解决慰安妇问题上毫无建树。
在世界上,日本被认为是 "承认并为其性奴役道歉"。
当柏林地区当局取消了设置慰安妇雕像的许可时,韩国外交部发言人在提到日本的道歉时反驳道。
"政府参与人为拆除女孩雕像无助于问题的解决,也违背了日本向公众表明的道歉和悔过精神。
韩国不断翻炒这个问题,把它变成一出日本犯规的戏码,却因为首相为虚假历史道歉而被推翻,这是非常可笑的。
在朝鲜危机最严重的时候,我们向日韩慰安妇协议施压,希望日韩和解,但日本不应该在历史问题上让步,哪怕是美国。
前安倍政府上台后,希望恢复被虚假历史损害的日本自尊心。
但在战后 70 年的 2015 年发生的事情却与此完全相反。
7月,日本政府在争取将明治日本工业革命遗产列入《世界遗产名录》时,大肆渲染承认 "强征劳工 "的错误。
8 月,"安倍声明 "实际上告诉世界,战争就是侵略战争。
10 月,中国申请将南京大屠杀列为联合国教科文组织世界记忆遗产。
12 月,"日韩慰安妇协议 "达成。
安倍晋三先生在接受《产经新闻》采访时(10 月 15 日)表示,他可以通过核实河野声明来 "结束历史问题"。
中间部分的遗漏
在前总理施罗德夫妇写给柏林米特区区长的信中,他们写道:"德国已经清算了纳粹历史,并赢得了全世界的尊重。德国绝不能成为掩盖日本战争罪行的同谋。
历届政府和安倍政府都有继续为其虚假历史道歉之嫌。

* 前天,我在网上搜索了已故前总理施密特的一段话,带着发自内心的愤怒和对德国人民最大的蔑视,写了一篇反驳文章。
日本对战后战败的处理是人类历史上最伟大、最出色的。
它向世界表明,日本已经付出了全部代价。
这是对战争中所有不合理要求的补偿,甚至是对非战斗伙伴的补偿。
与此同时,它也用世界语言表明了这一点,这是对向朝鲜提供所有官方发展援助的恩人的回应。
包括我在内的大多数日本人都不知道这些事实。
当然,原因是直到 6 年前的 8 月,日本一直被《朝日新闻》所控制。
山木和先生的社论并没有错,但他认为安倍对局势的处理有问题,这并没有完全击中要害。
已故前总理施密特在安倍上台之前发表的言论是基于德国人民真正卑劣的反日意识形态。
德国用虚假的纳粹罪行历史损害日本,转移了国际社会对其自身犯下的人类历史上最严重罪行--纳粹迫害犹太人--的注意力。
德国在国际社会中将日本置于与纳粹相同的政治犯地位。
美国记者编造的南京大屠杀被德国人约翰-拉贝篡改。
不仅如此,德国还是一个国家和民族,就像韩国人和中国人一样,每年年底,他们的国家电视台都会播放约翰-拉贝编造的南京大屠杀。
在谴责安倍的苦心之前,我们应该对德国的卑劣和以《南德意志报》等为代表的德国人民的恶毒感到愤怒。
我们必须纠正德国和德国人民。
读者都知道,我从 2010 年第一次出现在中国和韩国的舞台上开始,就一直在以抗日教育的名义向世人纠正纳粹主义。

2024/4/12 in Kyoto


그러나 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지난 2015년에 일어난 일은 정반대였다.

2024年04月14日 16時27分21秒 | 全般

2020/11/2
다음은 이번 달 하나다 매거진에 실린 야마기와 스미오의 칼럼입니다. 
독일 베를린 중심부에 있는 일본 대사관 인근 공공부지에 한국 단체 등이 설치한 위안부 동상을 두고 현지 당국이 동상 설치 허가를 취소하고 철거를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한국계 단체의 반발로 현지 당국은 일단 동상을 설치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동상 제막식은 9월 28일에 열렸고, 현지 당국은 10월 8일에 동상 설치 허가를 취소했습니다.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은 독일 외무장관에게 동상 철거를 요청했습니다. 
일본의 발빠른 대응은 성과가 있었지만, 이 단계에서 사업을 포기한 것은 위안부 문제의 깊이를 보여줍니다. 
독일에서는 한국 단체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사유지에 두 개의 위안부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또한 교회 등 여러 시설에 위안부 동상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위안부가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같은 전쟁 범죄로 선전되고 있다는 사실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베를린의 평화의 소녀상에 붙어 있는 기념비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수많은 소녀와 여성을 납치하여 성노예로 강제 동원했습니다. 이 평화의 소녀상은 1991년 8월 14일 침묵을 깬 용기 있는 피해자들을 기리고 다시는 이러한 잔혹한 일이 세상에 일어나지 않도록 요구하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슬픔을 기억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물론 위안부는 강제 성노예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전쟁 중 군을 위해 일했고 보상을 받았으며 당시에는 합법적인 매춘부였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잘못된 역사로 인해 계속해서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전쟁이 끝난 지 7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왜 매번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아베 전 총리가 재임 중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다시 한 번 사죄하고 일본이 사죄의 표시로 정부 예산 10억 엔을 지출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는 무엇이었을까요? 
당시 일본 정부의 설명은 위안부 문제를 다시는 거론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한일 합의 이후에도 위안부 동상의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일찍이 위안부 문제를 다루고 최근 유엔까지 활동 영역을 넓힌 '나데시코 액션'에 따르면 한국을 제외한 미국, 독일, 캐나다, 호주, 필리핀, 대만 등 전 세계에 약 30개가 있습니다. 위안부 동상과 위안부 기림비가 있습니다.
대부분 아베 정권 하에서 확대되었고, 절반 정도는 한일 합의 이후에 설치되었습니다. 
이는 한일 위안부 합의가 위안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전 세계에서 일본은 "성노예를 인정하고 사죄했다"고 인식되고 있습니다. 
베를린 지방 당국이 위안부 동상 설치 허가를 취소하자 한국 외교부 대변인은 일본의 사과를 언급하며 반박했습니다. 
"정부가 소녀상 철거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일본이 국민에게 밝힌 사죄와 반성의 정신에도 어긋난다. 
일본 총리가 잘못된 역사에 대해 사과했다고 해서 한국이 이 문제를 일본의 반칙으로 몰아가며 계속 되풀이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우리는 북한 위기가 한창일 때 한일 위안부 합의를 통해 한일 화해를 압박했지만, 일본이 아무리 미국이라도 역사에 양보해서는 안 되는 문제였다. 
전 아베 정부는 잘못된 역사로 인해 훼손된 일본의 자존심을 회복하겠다며 집권했습니다.
하지만 전후 70년이 지난 2015년에 일어난 일은 이와 정반대였습니다.
7월, 일본 정부는 메이지 일본의 산업 혁명 유산을 세계 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징용 노동자 강제 노동'을 인정하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8월에는 '아베 담화'를 통해 전쟁이 침략 전쟁임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10월에는 중국이 난징 대학살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신청했습니다.
그리고 12월에는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아베 총리는 10월 15일 산케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고노 담화를 검증함으로써 "역사 문제를 종식시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중간 부분의 누락
슈뢰더 전 총리 부부는 베를린 미테 지역 시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독일은 나치 역사를 해결하고 전 세계의 존경을 받고 있다. 독일은 일본의 전쟁 범죄를 은폐하는 데 연루되어서는 안 됩니다. 
역대 정부와 아베 정권은 잘못된 역사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있습니다.

* 저는 어제 인터넷에서 검색한 고 슈미트 전 총리의 발언에 대해 진심 어린 분노와 독일 국민에 대한 경멸을 담아 반박문을 썼습니다.
일본의 전후 패전 처리 방식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훌륭했습니다.
전 세계에 일본이 모든 대가를 치렀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전쟁의 모든 불합리한 요구, 심지어 비동맹국의 요구까지 모두 수용한 것입니다.
동시에 한국에 대한 모든 원조를 감당해준 우방국들의 노고에 대한 보답으로 전 세계 언어로 알린 것이기도 합니다.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물론 그 이유는 6년 전 8월까지만 해도 일본은 아사히신문이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야마기야 씨의 사설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아베의 상황 대처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데 있어서는 정곡을 찌르지 못했습니다.
아베 총리 취임 이전인 고 슈미트 전 총리의 발언은 독일 국민의 진정으로 비열한 반일 이데올로기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독일은 나치와 같은 범죄의 거짓 역사로 일본을 깎아내림으로써 인류 역사상 최악의 범죄인 나치의 유대인 박해로부터 국제 사회의 시선을 돌리고 있습니다.
독일은 국제 사회에서 일본을 나치와 같은 정치범의 위치에 올려놓았습니다.
난징 대학살은 미국인 저널리스트 존 라베에 의해 발명된 용어로, 독일인 존 라베가 공동 집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독일도 한국이나 중국과 마찬가지로 매년 연말이면 국영 텔레비전에서 존 라베가 조작한 난징 대학살을 방송하는 국가이자 민족입니다.
우리는 아베의 만행을 비난하기 전에 쥐트도이체 차이퉁 등으로 대표되는 독일의 천박함과 독일 국민들의 악랄함에 분노해야 합니다.
우리는 독일과 독일 국민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독자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저는 2010년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중국과 한국에서 반일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나치즘에 대해 전 세계에 바로잡고 있습니다.

2024/4/12 in Kyoto


Mas o que aconteceu em 2015, 70 anos depois da guerra, foi exactamente o oposto disso.

2024年04月14日 16時23分50秒 | 全般

2020/11/2
O texto que se segue foi retirado da coluna de Sumio Yamagiwa na edição deste mês da revista Hanada. 
Uma estátua de uma mulher de conforto instalada por um grupo coreano e outros num terreno público perto da embaixada japonesa no centro de Berlim, Alemanha, levou as autoridades locais a revogar a autorização de instalação da estátua e a exigir a sua remoção.
No entanto, devido à resistência dos grupos afiliados à Coreia, as autoridades locais terão decidido instalar a estátua por enquanto.
O que acontecerá no futuro é imprevisível. 
A cerimónia de inauguração da estátua teve lugar a 28 de setembro e as autoridades locais revogaram a autorização de instalação a 8 de outubro.
O Ministro dos Negócios Estrangeiros japonês, Toshimitsu Motegi, pediu ao Ministro dos Negócios Estrangeiros alemão para retirar a estátua. 
A resposta rápida do Japão à questão foi frutuosa, mas o abandono do projeto nesta fase mostra a profundidade da questão das mulheres de conforto. 
Na Alemanha, as organizações coreanas estão activas e foram erigidas duas estátuas de mulheres de conforto em propriedade privada.
Além disso, há estátuas de mulheres de conforto em igrejas e outras instalações.
O facto de as mulheres de conforto serem publicitadas como um crime de guerra, tal como o Holocausto nazi, é um assunto sério. 
O monumento anexo a esta estátua da paz em Berlim diz
Durante a Segunda Guerra Mundial, os militares japoneses raptaram inúmeras raparigas e mulheres da região Ásia-Pacífico e forçaram-nas à escravatura sexual. Esta estátua da paz é uma recordação da dor destas mulheres, conhecidas como mulheres de conforto, em honra das corajosas vítimas que quebraram o seu silêncio a 14 de agosto de 1991, e exigem que tais atrocidades nunca mais voltem a acontecer ao mundo. 
As mulheres de conforto não eram escravas sexuais forçadas, é claro.
Eram prostitutas que trabalhavam para os militares durante a guerra, recebiam uma indemnização e eram legais na altura.
Mas o Japão continua a ser condenado pela sua falsa história. 
Mas porque é que isto acontece sempre, 75 anos depois da guerra?
O que foi o Acordo Japão-Coreia sobre as Mulheres de Conforto de 2015, no qual o antigo primeiro-ministro Abe voltou a pedir desculpa às mulheres de conforto enquanto estava no cargo e o Japão gastou mil milhões de ienes do orçamento do governo como sinal do seu pedido de desculpas? 
A explicação do governo japonês na altura deve ter sido a de que nunca mais voltaria a abordar a questão das mulheres de conforto.
No entanto, o número de estátuas de mulheres de conforto continua a aumentar mesmo depois do acordo entre o Japão e a Coreia. 
De acordo com a "Ação Nadeshiko", que abordou a questão das mulheres de conforto desde o início no Japão e que recentemente alargou as suas actividades às Nações Unidas, o número de estátuas de mulheres de conforto é de cerca de 30 nos Estados Unidos, Alemanha, Canadá, Austrália, Filipinas, Taiwan, etc., exceto na Coreia do Sul. Há uma estátua de uma mulher de conforto e um monumento a uma mulher de conforto.
A maioria foi ampliada durante a administração Abe e cerca de metade foi instalada após o acordo Japão-Coreia. 
Isto mostra que o Acordo Japão-Coreia sobre as Mulheres de Conforto não contribuiu em nada para resolver a questão das mulheres de conforto.
No mundo, o Japão é visto como tendo "reconhecido e pedido desculpa pelas suas escravas sexuais". 
Quando as autoridades distritais de Berlim rescindiram a autorização para instalar a estátua das mulheres de conforto, um porta-voz do Ministério dos Negócios Estrangeiros sul-coreano contra-atacou, referindo-se ao pedido de desculpas do Japão. 
"O envolvimento do governo na remoção artificial da estátua da rapariga não ajuda a resolver o problema e vai contra o espírito de desculpas e remorsos que o Japão tornou claro para o público. 
É ridículo que a Coreia do Sul continue a remexer na questão, transformando-a num jogo sujo do Japão, apenas para a reverter porque o primeiro-ministro pediu desculpa pela falsa história.
Pressionámos o acordo entre o Japão e a Coreia sobre as mulheres de conforto para que se reconciliassem com o Japão e a Coreia do Sul no auge da crise norte-coreana, mas o Japão não devia ter cedido com a sua história, mesmo que fossem os EUA. 
A anterior administração Abe entrou em funções na esperança de restaurar o orgulho do Japão, que tinha sido minado por uma história falsa.
Mas o que aconteceu em 2015, 70 anos após a guerra, foi exatamente o oposto disso.
Em julho, o governo japonês fez um jogo de palavras sobre o reconhecimento do "trabalho forçado de trabalhadores recrutados" na sua tentativa de inscrever o Património Industrial Revolucionário do Japão Meiji na Lista do Património Mundial.
Em agosto, a "Declaração Abe" disse efetivamente ao mundo que a guerra era uma guerra de agressão. 
Em outubro, a China solicitou a inscrição do Massacre de Nanjing na Memória do Património Mundial da UNESCO.
E em dezembro, foi assinado o "Acordo Japão-Coreia sobre as mulheres de conforto". 
Numa entrevista ao Sankei Shimbun (15 de outubro), o Sr. Abe disse que poderia "pôr fim ao problema da história" verificando a Declaração de Kono. 
a omissão de uma parte intermédia
Numa carta escrita pelo antigo chanceler Schröder e pela sua mulher ao presidente da câmara do distrito de Mitte, em Berlim, escreveram: "A Alemanha resolveu a sua história nazi e ganhou o respeito do mundo inteiro. A Alemanha não pode ser cúmplice no encobrimento dos crimes de guerra do Japão. 
Os sucessivos governos e a administração Abe têm sido culpados de continuar a desculpar-se pela sua falsa história.

* Escrevi uma refutação anteontem, com uma raiva sincera e o maior desprezo pelo povo alemão, sobre uma declaração do falecido antigo Chanceler Schmidt que eu tinha pesquisado na Internet.
A forma como o Japão lidou com a sua derrota no pós-guerra foi a maior e a melhor da história da humanidade.
Mostrou ao mundo que o Japão tinha pago na íntegra.
Pagou por todas as exigências irrazoáveis da guerra, mesmo as dos não parceiros.
Simultaneamente, deu também a conhecer nas línguas do mundo, em resposta ao trabalho dos benfeitores que cobriram a totalidade da APD à Coreia.
A maioria dos japoneses, incluindo eu próprio, não tinha conhecimento destes factos.
Claro que a razão é que, até agosto de há seis anos, o Japão era dominado pelo Asahi Shimbun.
O Sr. Yamagiwa não está errado no seu editorial, mas não acerta em cheio ao sugerir que a forma como Abe lidou com a situação foi problemática.
Os comentários do falecido ex-chanceler Schmidt, que antecederam a chegada de Abe, basearam-se na ideologia anti-japonesa genuinamente desprezível do povo alemão.
Ao minar o Japão com uma falsa história de crimes semelhantes aos nazis, a Alemanha distraiu a comunidade internacional do seu próprio pior crime na história da humanidade, a perseguição nazi aos judeus.
A Alemanha colocou o Japão na mesma posição de prisioneiro político que os nazis na comunidade internacional.
O Massacre de Nanquim, inventado por jornalistas americanos, foi cooptado por um alemão, John Rabe.
Para além disso, a Alemanha é uma nação e uma nação, tal como os coreanos e os chineses, cuja televisão estatal transmite no final de cada ano o Massacre de Nanquim inventado por John Rabe.
Antes de condenar os esforços meticulosos de Abe, devemos indignar-nos com a baixeza da Alemanha e com a crueldade do povo alemão, tal como é representado pelo Süddeutsche Zeitung e outros.
Temos de corrigir a Alemanha e o povo alemão.
Como os leitores sabem, tenho vindo a corrigir o mundo sobre o nazismo em nome da educação anti-japonesa na China e na Coreia do Sul desde que apareci pela primeira vez em cena em 2010.

2024/4/12 in Kyoto


Mais ce qui s’est passé en 2015, 70 ans après la guerre, était exactement le contraire.

2024年04月14日 16時22分59秒 | 全般

2020/11/2
Le texte suivant est extrait de la chronique de Sumio Yamagiwa dans le magazine Hanada de ce mois-ci. 
La statue d'une femme de réconfort installée par un groupe coréen et d'autres sur un terrain public près de l'ambassade du Japon dans le centre de Berlin, en Allemagne, a incité les autorités locales à révoquer l'autorisation d'installer la statue et à exiger son retrait.
Toutefois, en raison de la résistance des groupes affiliés à la Corée, les autorités locales auraient décidé d'installer la statue pour le moment.
Ce qui se passera à l'avenir est imprévisible. 
La cérémonie d'inauguration de la statue a eu lieu le 28 septembre, et les autorités locales ont annulé l'autorisation de l'installer le 8 octobre.
Le ministre japonais des affaires étrangères, Toshimitsu Motegi, a demandé au ministre allemand des affaires étrangères de retirer la statue. 
La réponse rapide du Japon à cette question a été fructueuse, mais l'abandon du projet à ce stade montre la profondeur de la question des femmes de réconfort. 
En Allemagne, des organisations coréennes sont actives et deux statues de femmes de réconfort ont été érigées sur des propriétés privées.
En outre, des statues de femmes de réconfort sont exposées dans des églises et d'autres lieux.
Le fait que les femmes de réconfort soient présentées comme un crime de guerre, au même titre que l'holocauste nazi, est un sujet grave. 
Le monument attaché à cette statue de la paix à Berlin dit : "Les femmes de réconfort sont un crime de guerre, tout comme l'Holocauste nazi :
Pendant la Seconde Guerre mondiale, l'armée japonaise a enlevé d'innombrables filles et femmes de la région Asie-Pacifique et les a réduites à l'esclavage sexuel. Cette statue de la paix rappelle la douleur de ces femmes, connues sous le nom de femmes de réconfort, en l'honneur des victimes courageuses qui ont brisé le silence le 14 août 1991 et exigé que de telles atrocités ne se reproduisent plus jamais dans le monde. 
Les femmes de réconfort n'étaient pas des esclaves sexuelles forcées, bien sûr.
Il s'agissait de prostituées qui travaillaient pour l'armée pendant la guerre, recevaient une compensation et étaient légales à l'époque.
Mais le Japon continue d'être condamné pour sa fausse histoire. 
Mais pourquoi cela se reproduit-il à chaque fois, 75 ans après la guerre ?
Qu'est-ce que l'accord de 2015 entre le Japon et la Corée sur les femmes de réconfort, dans lequel l'ancien Premier ministre Abe s'est à nouveau excusé auprès des femmes de réconfort alors qu'il était au pouvoir, et où le Japon a dépensé 1 milliard de yens du budget gouvernemental en guise d'excuses ? 
Le gouvernement japonais a dû expliquer à l'époque qu'il ne reviendrait jamais sur la question des femmes de réconfort.
Cependant, le nombre de statues de femmes de réconfort continue d'augmenter même après l'accord entre le Japon et la Corée. 
Selon la "Nadeshiko Action", qui s'est attaquée à la question des femmes de réconfort dès le début au Japon et qui a récemment étendu ses activités aux Nations unies, il y en a une trentaine aux États-Unis, en Allemagne, au Canada, en Australie, aux Philippines, à Taïwan, etc. Il y a une statue d'une femme de réconfort et un monument à une femme de réconfort.
La plupart d'entre eux ont été agrandis sous l'administration Abe, et près de la moitié ont été installés après l'accord entre le Japon et la Corée. 
Cela montre que l'accord Japon-Corée sur les femmes de réconfort n'a rien fait pour résoudre la question des femmes de réconfort.
Dans le monde, le Japon est perçu comme ayant "reconnu et présenté des excuses pour ses esclaves sexuelles". 
Lorsque les autorités du district de Berlin ont annulé l'autorisation d'installer la statue des femmes de réconfort, un porte-parole du ministère sud-coréen des affaires étrangères a répliqué en faisant référence aux excuses du Japon : "L'implication du gouvernement dans le retrait de la statue des femmes de réconfort n'a pas eu lieu. 
"L'implication du gouvernement dans le retrait artificiel de la statue de la jeune fille ne contribue pas à résoudre le problème et va à l'encontre de l'esprit d'excuses et de remords que le Japon a clairement exprimé au public. 
Il est ridicule pour la Corée du Sud de revenir sans cesse sur cette question en la transformant en une affaire de faute commise par le Japon, pour ensuite revenir en arrière parce que le premier ministre s'est excusé pour cette histoire erronée.
Nous avons fait pression sur l'accord Japon-Corée sur les femmes de réconfort pour qu'il se réconcilie avec le Japon et la Corée du Sud au plus fort de la crise nord-coréenne, mais le Japon n'aurait pas dû céder sur son histoire, même si c'était les États-Unis. 
L'ancienne administration Abe est entrée en fonction dans l'espoir de restaurer la fierté du Japon, qui avait été minée par une histoire erronée.
Or, ce qui s'est passé en 2015, 70 ans après la guerre, est tout le contraire.
En juillet, le gouvernement japonais a joué la carte de la reconnaissance du "travail forcé des travailleurs enrôlés" pour inscrire l'héritage de la révolution industrielle du Japon de l'ère Meiji sur la liste du patrimoine mondial de l'humanité.
En août, la "déclaration d'Abe" a effectivement déclaré au monde que la guerre était une guerre d'agression. 
En octobre, la Chine a demandé l'inscription du massacre de Nanjing sur la liste du patrimoine mondial de l'UNESCO.
Et en décembre, l'"accord Japon-Corée sur les femmes de réconfort" a été conclu. 
Dans une interview accordée au Sankei Shimbun (15 octobre), M. Abe a déclaré qu'il pourrait "mettre fin au problème de l'histoire" en vérifiant la déclaration de Kono. 
l'omission d'une partie centrale
Dans une lettre adressée au maire du quartier de Mitte à Berlin, l'ancien chancelier Schröder et son épouse écrivent : "L'Allemagne a réglé son histoire nazie et a gagné le respect du monde entier. L'Allemagne ne doit pas être complice de la dissimulation des crimes de guerre du Japon. 
Les gouvernements successifs et l'administration Abe se sont rendus coupables de continuer à s'excuser pour leur fausse histoire.

* J'ai écrit une réfutation avant-hier, avec une colère sincère et le plus grand mépris pour le peuple allemand, à propos d'une déclaration de feu l'ancien chancelier Schmidt que j'avais cherchée sur l'internet.
La façon dont le Japon a géré sa défaite d'après-guerre a été la meilleure de l'histoire de l'humanité.
Il a montré au monde que le Japon avait payé intégralement.
Il a payé pour toutes les exigences déraisonnables de la guerre, même celles des non-partenaires.
Simultanément, il l'a également fait savoir dans les langues du monde entier en réponse aux efforts des bienfaiteurs qui ont couvert l'ensemble de l'APD en faveur de la Corée.
La plupart des Japonais, y compris moi-même, n'étaient pas au courant de ces faits.
Bien sûr, la raison en est que jusqu'au mois d'août, il y a six ans, le Japon était dominé par l'Asahi Shimbun.
M. Yamagiwa n'a pas tort dans son éditorial, mais il ne met pas tout à fait dans le mille en suggérant que la gestion de la situation par M. Abe était problématique.
Les commentaires de feu l'ancien chancelier Schmidt, antérieurs à l'arrivée d'Abe, étaient fondés sur l'idéologie antijaponaise véritablement méprisable du peuple allemand.
En minant le Japon avec une fausse histoire de crimes nazis, l'Allemagne a détourné l'attention de la communauté internationale de son propre crime, le pire de l'histoire de l'humanité, la persécution des Juifs par les nazis.
L'Allemagne a placé le Japon dans la même position de prisonnier politique que les nazis au sein de la communauté internationale.
Le massacre de Nankin, inventé par des journalistes américains, a été récupéré par un Allemand, John Rabe.
De plus, l'Allemagne est une nation et une nation, tout comme les Coréens et les Chinois, dont la télévision d'État diffuse le massacre de Nankin inventé par John Rabe à la fin de chaque année.
Avant de condamner les efforts laborieux d'Abe, nous devrions nous indigner de la bassesse de l'Allemagne et de la méchanceté du peuple allemand, telles qu'elles sont représentées par le Süddeutsche Zeitung et d'autres.
Nous devons corriger l'Allemagne et le peuple allemand.
Comme les lecteurs le savent, j'ai corrigé le monde au sujet du nazisme au nom de l'éducation antijaponaise en Chine et en Corée du Sud depuis que je suis apparu pour la première fois sur la scène en 2010.

2024/4/12 in Kyoto


Doch was 2015, 70 Jahre nach dem Krieg, geschah, war genau das Gegenteil davon.

2024年04月14日 16時19分14秒 | 全般

2020/11/2
Der folgende Text stammt aus der Kolumne von Sumio Yamagiwa in der diesjährigen Ausgabe der Zeitschrift Hanada. 
Eine Statue einer Trostfrau, die von einer koreanischen Gruppe und anderen auf öffentlichem Grund in der Nähe der japanischen Botschaft im Zentrum Berlins aufgestellt wurde, hat die örtlichen Behörden dazu veranlasst, die Genehmigung zur Aufstellung der Statue zu widerrufen und ihre Entfernung zu fordern.
Aufgrund des Widerstands der koreanischen Gruppen haben die örtlichen Behörden jedoch Berichten zufolge beschlossen, die Statue vorerst aufzustellen.
Was in Zukunft geschehen wird, ist nicht vorhersehbar. 
Die Enthüllungszeremonie der Statue fand am 28. September statt, und die örtlichen Behörden widerriefen die Genehmigung zur Aufstellung der Statue am 8. Oktober.
Der japanische Außenminister Toshimitsu Motegi forderte den deutschen Außenminister auf, die Statue zu entfernen. 
Japans rasche Antwort auf die Anfrage war erfolgreich, aber die Aufgabe des Projekts zu diesem Zeitpunkt zeigt, wie tief die Problematik der Trostfrauen ist. 
In Deutschland sind koreanische Organisationen aktiv, und zwei Statuen von Trostfrauen sind auf Privatgrundstücken aufgestellt worden.
Außerdem sind Statuen von Trostfrauen in Kirchen und anderen Einrichtungen zu sehen.
Die Tatsache, dass Trostfrauen als Kriegsverbrechen beworben werden, ebenso wie der Holocaust der Nazis, ist eine ernste Angelegenheit. 
Auf dem Denkmal, das an dieser Friedensstatue in Berlin angebracht ist, steht:
Während des Zweiten Weltkriegs verschleppte das japanische Militär unzählige Mädchen und Frauen aus dem asiatisch-pazifischen Raum und zwang sie in die sexuelle Sklaverei. Diese Friedensstatue erinnert an das Leid dieser Frauen, die als Trostfrauen bekannt sind, und ehrt die mutigen Opfer, die am 14. August 1991 ihr Schweigen brachen und fordern, dass solche Gräueltaten der Welt nie wieder widerfahren. 
Trostfrauen waren natürlich keine Zwangssexsklavinnen.
Es handelte sich um Prostituierte, die während des Krieges für das Militär arbeiteten, eine Entschädigung erhielten und zu jener Zeit legal waren.
Aber Japan wird weiterhin für seine falsche Geschichte verurteilt. 
Aber warum passiert das jedes Mal, 75 Jahre nach dem Krieg?
Was war das Trostfrauenabkommen zwischen Japan und Korea von 2015, in dem sich der ehemalige Premierminister Abe während seiner Amtszeit erneut bei den Trostfrauen entschuldigte und Japan als Zeichen seiner Entschuldigung 1 Milliarde Yen aus dem Staatshaushalt ausgab? 
Die Erklärung der japanischen Regierung lautete damals wohl, dass sie die Frage der Trostfrauen nie wieder aufgreifen würde.
Die Zahl der Trostfrauenstatuen nimmt jedoch auch nach dem Abkommen zwischen Japan und Korea weiter zu. 
Nach Angaben der "Nadeshiko-Aktion", die das Thema Trostfrauen schon früh in Japan aufgriff und ihre Aktivitäten kürzlich auf die Vereinten Nationen ausdehnte, gibt es weltweit etwa 30 in den Vereinigten Staaten, Deutschland, Kanada, Australien, den Philippinen, Taiwan usw., außer in Südkorea. Es gibt eine Statue einer Trostfrau und ein Denkmal für eine Trostfrau.
Die meisten von ihnen wurden unter der Regierung Abe erweitert, und etwa die Hälfte wurde nach dem japanisch-koreanischen Abkommen aufgestellt. 
Das zeigt, dass das japanisch-koreanische Trostfrauenabkommen nichts zur Lösung des Problems der Trostfrauen beigetragen hat.
In der Welt wird Japan so wahrgenommen, als hätte es "seine Sexsklavinnen anerkannt und sich für sie entschuldigt". 
Als das Bezirksamt Berlin die Genehmigung zur Aufstellung der Trostfrauen-Statue zurücknahm, konterte ein Sprecher des südkoreanischen Außenministeriums und verwies auf die Entschuldigung Japans. 
"Die Beteiligung der Regierung an der künstlichen Entfernung der Statue des Mädchens trägt nicht zur Lösung des Problems bei und widerspricht dem Geist der Entschuldigung und Reue, den Japan der Öffentlichkeit gegenüber deutlich gemacht hat. 
Es ist lächerlich, dass Südkorea die Angelegenheit immer wieder aufwärmt, indem es sie zu einem Spiel des japanischen Fouls macht, nur um sie dann wieder rückgängig zu machen, weil sich der Premierminister für die falsche Geschichte entschuldigt hat.
Wir haben auf dem Höhepunkt der Nordkorea-Krise Druck auf das japanisch-koreanische Trostfrauenabkommen ausgeübt, um eine Versöhnung zwischen Japan und Südkorea herbeizuführen, aber Japan hätte mit seiner Geschichte nicht nachgeben dürfen, auch wenn es die USA waren. 
Die frühere Regierung Abe trat ihr Amt in der Hoffnung an, Japans Stolz wiederherzustellen, der durch die falsche Geschichte untergraben worden war.
Doch was 2015, 70 Jahre nach dem Krieg, geschah, war das genaue Gegenteil davon.
Im Juli spielte die japanische Regierung den Fehler der Anerkennung der "Zwangsarbeit von zwangsverpflichteten Arbeitern" hoch, um das industrielle revolutionäre Erbe des Meiji-Japan in die Liste des Welterbes aufzunehmen.
Im August erklärte die "Abe-Erklärung" der Welt, dass der Krieg ein Angriffskrieg sei. 
Im Oktober beantragte China die Aufnahme des Massakers von Nanjing in die UNESCO-Liste des Weltkulturerbes.
Und im Dezember wurde das "Japan-Korea Trostfrauen-Abkommen" geschlossen. 
In einem Interview mit der Sankei Shimbun (15. Oktober) sagte Abe, er könne "das Geschichtsproblem beenden", indem er die Kono-Erklärung verifiziert. 
Die Auslassung eines Mittelteils
In einem Brief des ehemaligen Bundeskanzlers Schröder und seiner Frau an den Bürgermeister von Berlin-Mitte schrieben sie: "Deutschland hat seine Nazi-Geschichte aufgearbeitet und den Respekt der ganzen Welt verdient. Deutschland darf sich nicht an der Vertuschung der japanischen Kriegsverbrechen beteiligen. 
Aufeinanderfolgende Regierungen und die Abe-Regierung haben sich schuldig gemacht, sich weiterhin für ihre falsche Geschichte zu entschuldigen.

* Vorgestern schrieb ich eine Gegendarstellung zu einer Aussage des verstorbenen Altkanzlers Schmidt, die ich im Internet recherchiert hatte, und zwar mit tiefem Zorn und größter Verachtung für das deutsche Volk.
Japans Umgang mit seiner Nachkriegsniederlage war der größte und beste in der Geschichte der Menschheit.
Es hat der Welt gezeigt, dass Japan in vollem Umfang bezahlt hat.
Und zwar für alle Zumutungen des Krieges, auch für die der Nicht-Partner.
Gleichzeitig wurde es auch in den Sprachen der Welt als Antwort auf die Arbeit der Wohltäter, die die gesamte öffentliche Entwicklungshilfe für Korea übernommen hatten, bekannt gemacht.
Die meisten Japaner, mich eingeschlossen, waren sich dieser Tatsachen nicht bewusst.
Das liegt natürlich daran, dass Japan bis August vor sechs Jahren von der Asahi Shimbun beherrscht wurde.
Herr Yamagiwa hat mit seinem Leitartikel nicht unrecht, aber er trifft nicht ganz ins Schwarze, wenn er sagt, dass Abes Umgang mit der Situation problematisch war.
Die Äußerungen des verstorbenen Altkanzlers Schmidt, die vor Abes Amtsantritt erfolgten, basierten auf der wirklich verabscheuungswürdigen antijapanischen Ideologie des deutschen Volkes.
Indem Deutschland Japan mit einer falschen Geschichte nationalsozialistischer Verbrechen untergrub, lenkte es die internationale Gemeinschaft von seinem eigenen schlimmsten Verbrechen in der Geschichte der Menschheit ab, der Verfolgung der Juden durch die Nazis.
Deutschland hat Japan in der internationalen Gemeinschaft in dieselbe politische Gefangenschaft gebracht wie die Nazis.
Das Massaker von Nanking, das von amerikanischen Journalisten erfunden wurde, ist von einem Deutschen, John Rabe, übernommen worden.
Und nicht nur das: Deutschland ist ein Volk und eine Nation, genau wie die Koreaner und die Chinesen, deren Staatsfernsehen das von John Rabe erfundene Massaker von Nanking am Ende eines jeden Jahres ausstrahlt.
Bevor wir Abes mühsame Bemühungen verurteilen, sollten wir uns über die Niedertracht Deutschlands und die Bösartigkeit des deutschen Volkes, wie sie von der Süddeutschen Zeitung und anderen dargestellt wird, empören.
Wir müssen Deutschland und das deutsche Volk korrigieren.
Wie die Leser wissen, korrigiere ich die Welt über den Nazismus im Namen der antijapanischen Erziehung in China und Südkorea, seit ich 2010 das erste Mal auf der Bildfläche erschien.

2024/4/12 in Kyoto


Pero lo que ocurrió en 2015, 70 años después de la guerra, fue exactamente lo contrario de eso.

2024年04月14日 16時18分37秒 | 全般

2020/11/2
A continuación reproducimos la columna de Sumio Yamagiwa en el número de este mes de la revista Hanada. 
Una estatua de una mujer de solaz instalada por un grupo coreano y otros en terrenos públicos cerca de la embajada japonesa en el centro de Berlín, Alemania, ha provocado que las autoridades locales revoquen el permiso para instalar la estatua y exijan su retirada.
Sin embargo, debido a la resistencia de los grupos coreanos, las autoridades locales han decidido instalar la estatua por el momento.
Lo que ocurra en el futuro es impredecible. 
La ceremonia de inauguración de la estatua tuvo lugar el 28 de septiembre, y las autoridades locales revocaron el permiso para instalarla el 8 de octubre.
El ministro de Asuntos Exteriores japonés, Toshimitsu Motegi, pidió al ministro de Asuntos Exteriores alemán que retirara la estatua. 
La rápida respuesta de Japón a la cuestión fue fructífera, pero abandonar el proyecto a estas alturas demuestra la profundidad del asunto de las mujeres de solaz. 
En Alemania hay organizaciones coreanas activas y se han erigido dos estatuas de mujeres de solaz en propiedades privadas.
Además, se exhiben estatuas de mujeres de solaz en iglesias y otras instalaciones.
El hecho de que las mujeres de solaz se publiciten como un crimen de guerra, al igual que el Holocausto nazi, es un asunto grave. 
El monumento adjunto a esta estatua de la paz en Berlín dice:
Durante la Segunda Guerra Mundial, los militares japoneses secuestraron a innumerables niñas y mujeres de la región Asia-Pacífico y las obligaron a la esclavitud sexual. Esta estatua de la paz es un recordatorio del dolor de estas mujeres, conocidas como mujeres de solaz, en honor de las valientes víctimas que rompieron su silencio el 14 de agosto de 1991 y exigen que estas atrocidades no vuelvan a ocurrir nunca más en el mundo. 
Las mujeres de solaz no eran esclavas sexuales forzosas, por supuesto.
Eran prostitutas que trabajaban para el ejército durante la guerra, recibían una compensación y eran legales en aquella época.
Pero Japón sigue siendo condenado por su falsa historia. 
Pero, ¿por qué ocurre esto siempre, 75 años después de la guerra?
¿Qué fue del Acuerdo Japón-Corea sobre las Mujeres de Consuelo de 2015, en el que el ex primer ministro Abe volvió a pedir perdón a las mujeres de consuelo mientras estaba en el cargo, y Japón gastó 1.000 millones de yenes del presupuesto gubernamental como muestra de su disculpa? 
La explicación del gobierno japonés en aquel momento debió ser que nunca volvería a tratar el tema de las mujeres de solaz.
Sin embargo, el número de estatuas de mujeres de solaz sigue creciendo incluso después del acuerdo entre Japón y Corea. 
Según la "Acción Nadeshiko", que abordó el tema de las mujeres de solaz desde el principio en Japón y recientemente ha ampliado sus actividades a las Naciones Unidas, en todo el mundo hay unas 30 en Estados Unidos, Alemania, Canadá, Australia, Filipinas, Taiwán, etc., excepto en Corea del Sur. Hay una estatua de una mujer de solaz y un monumento a una mujer de solaz.
La mayoría de ellos se ampliaron bajo el gobierno de Abe, y cerca de la mitad se instalaron después del acuerdo Japón-Corea. 
Esto demuestra que el acuerdo Japón-Corea sobre las mujeres de solaz no ha hecho nada para resolver la cuestión de las mujeres de solaz.
En el mundo se percibe que Japón ha "reconocido y pedido perdón por sus esclavas sexuales". 
Cuando las autoridades del distrito de Berlín rescindieron el permiso para instalar la estatua de las mujeres de solaz, un portavoz del Ministerio de Asuntos Exteriores surcoreano contraatacó, refiriéndose a las disculpas de Japón. 
"La participación del gobierno en la retirada artificial de la estatua de la niña no ayuda a resolver el problema y va en contra del espíritu de disculpa y arrepentimiento que Japón ha manifestado a la opinión pública. 
Es ridículo que Corea del Sur siga dando vueltas al asunto convirtiéndolo en una jugada de falta de Japón, sólo para que se revierta porque el primer ministro se disculpó por la falsa historia.
Presionamos para que Japón y Corea del Sur se reconciliaran con el acuerdo sobre las mujeres de solaz en plena crisis norcoreana, pero Japón no debería haber cedido con su historia, aunque fuera Estados Unidos. 
El anterior gobierno de Abe llegó al poder con la esperanza de restaurar el orgullo de Japón, minado por una historia falsa.
Pero lo que ocurrió en 2015, 70 años después de la guerra, fue exactamente lo contrario.
En julio, el gobierno japonés sacó a relucir el error garrafal de reconocer los "trabajos forzados de los trabajadores reclutados" en su intento de incluir el Patrimonio de la Revolución Industrial del Japón Meiji en la Lista del Patrimonio Mundial.
En agosto, la "Declaración Abe" dijo efectivamente al mundo que la guerra era una guerra de agresión. 
En octubre, China solicitó la inscripción de la Masacre de Nanjing en la Lista de la Memoria del Patrimonio Mundial de la UNESCO.
Y en diciembre, se alcanzó el "Acuerdo Japón-Corea sobre las mujeres de solaz". 
En una entrevista con el Sankei Shimbun (15 de octubre), el Sr. Abe dijo que podría "poner fin al problema de la historia" verificando la Declaración de Kono. 
la omisión de una parte intermedia
En una carta escrita por el ex canciller Schröder y su esposa al alcalde del distrito Mitte de Berlín, escribieron: "Alemania ha saldado su historia nazi y se ha ganado el respeto de todo el mundo. Alemania no debe ser cómplice de encubrir los crímenes de guerra de Japón. 
Los sucesivos gobiernos y la administración Abe han sido culpables de seguir disculpándose por su falsa historia.

* Anteayer escribí una refutación, con sincero enfado y el mayor desprecio por el pueblo alemán, sobre una declaración del difunto ex canciller Schmidt que había buscado en Internet.
La gestión que hizo Japón de su derrota de posguerra fue la mejor y más grande de la historia de la humanidad.
Mostró al mundo que Japón había pagado con creces.
por todas las demandas irrazonables de la guerra, incluso las de los no socios.
Simultáneamente, también lo dio a conocer en las lenguas del mundo en respuesta a la labor de los benefactores que habían cubierto toda la AOD a Corea.
La mayoría de los japoneses, entre los que me incluyo, desconocían estos hechos.
Por supuesto, la razón es que hasta agosto de hace seis años, Japón estaba dominado por el Asahi Shimbun.
El Sr. Yamagiwa no se equivoca en su editorial, pero no da en el blanco al sugerir que la gestión de la situación por parte de Abe fue problemática.
Los comentarios del difunto ex canciller Schmidt, anteriores a la llegada de Abe, se basaban en la ideología antijaponesa genuinamente despreciable del pueblo alemán.
Al socavar a Japón con una falsa historia de crímenes similares a los nazis, Alemania ha distraído a la comunidad internacional de su propio peor crimen en la historia de la humanidad, la persecución nazi de los judíos.
Alemania ha colocado a Japón en la misma posición de prisionero político que los nazis en la comunidad internacional.
La Masacre de Nankín, inventada por periodistas estadounidenses, ha sido cooptada por un alemán, John Rabe.
No sólo eso, Alemania es una nación y una nación, al igual que los coreanos y los chinos, cuya televisión estatal emite la Masacre de Nankín inventada por John Rabe al final de cada año.
Antes de condenar los denodados esfuerzos de Abe, deberíamos indignarnos ante la bajeza de Alemania y la vileza del pueblo alemán, representada por el Süddeutsche Zeitung y otros.
Debemos corregir a Alemania y al pueblo alemán.
Como saben los lectores, he estado corrigiendo al mundo sobre el nazismo en nombre de la educación antijaponesa en China y Corea del Sur desde que aparecí por primera vez en escena en 2010.

2024/4/12 in Kyoto


Ma quello che è successo nel 2015, 70 anni dopo la guerra, è stato esattamente l’opposto.

2024年04月14日 16時15分18秒 | 全般

2020/11/2
Quanto segue è tratto dalla rubrica di Sumio Yamagiwa nel numero di questo mese della rivista Hanada. 
La statua di una donna di conforto installata da un gruppo coreano e da altri su un terreno pubblico vicino all'ambasciata giapponese nel centro di Berlino, in Germania, ha spinto le autorità locali a revocare il permesso di installare la statua e a chiederne la rimozione.
Tuttavia, a causa della resistenza dei gruppi coreani, le autorità locali avrebbero deciso di installare la statua per il momento.
Ciò che accadrà in futuro è imprevedibile. 
La cerimonia di inaugurazione della statua è avvenuta il 28 settembre e l'8 ottobre le autorità locali hanno revocato il permesso di installarla.
Il ministro degli Esteri giapponese Toshimitsu Motegi ha chiesto al ministro degli Esteri tedesco di rimuovere la statua. 
La rapida risposta del Giappone alla domanda è stata fruttuosa, ma l'abbandono del progetto in questa fase dimostra la profondità della questione delle donne di conforto. 
In Germania sono attive organizzazioni coreane e due statue di donne di conforto sono state erette in proprietà private.
Inoltre, statue di donne di conforto sono esposte nelle chiese e in altre strutture.
Il fatto che le donne di conforto siano pubblicizzate come un crimine di guerra, proprio come l'Olocausto nazista, è una questione seria. 
Il monumento allegato a questa statua della pace a Berlino dice:
Durante la Seconda guerra mondiale, l'esercito giapponese ha rapito innumerevoli ragazze e donne della regione Asia-Pacifico e le ha costrette alla schiavitù sessuale. Questa statua della pace ricorda il dolore di queste donne, note come comfort women, in onore delle coraggiose vittime che hanno rotto il loro silenzio il 14 agosto 1991, chiedendo che simili atrocità non si ripetano mai più al mondo. 
Le comfort women non erano schiave sessuali forzate, ovviamente.
Erano prostitute che lavoravano per i militari durante la guerra, ricevevano un compenso ed erano legali all'epoca.
Ma il Giappone continua a essere condannato per il suo falso storico. 
Ma perché questo accade ogni volta, 75 anni dopo la guerra?
Che cos'è stato l'accordo Giappone-Corea sulle donne di conforto del 2015, in cui l'ex primo ministro Abe si è nuovamente scusato con le donne di conforto mentre era in carica, e il Giappone ha speso 1 miliardo di yen dal bilancio del governo come segno delle sue scuse? 
La spiegazione del governo giapponese all'epoca deve essere stata che non avrebbe mai rivisto la questione delle donne di conforto.
Tuttavia, il numero di statue di donne di conforto continua a crescere anche dopo l'accordo tra Giappone e Corea. 
Secondo la "Nadeshiko Action", che ha affrontato la questione delle donne di conforto fin dall'inizio in Giappone e ha recentemente esteso le sue attività alle Nazioni Unite, nel mondo sono circa 30 negli Stati Uniti, in Germania, Canada, Australia, Filippine, Taiwan e così via, tranne che in Corea del Sud. C'è una statua di una comfort woman e un monumento a una comfort woman.
La maggior parte di essi è stata ampliata sotto l'amministrazione Abe e circa la metà è stata installata dopo l'accordo tra Giappone e Corea. 
Questo dimostra che l'accordo Giappone-Corea sulle donne di conforto non ha fatto nulla per risolvere la questione delle donne di conforto.
Nel mondo, il Giappone è percepito come se avesse "riconosciuto e chiesto scusa per le sue schiave sessuali". 
Quando le autorità distrettuali di Berlino hanno revocato il permesso di installare la statua delle donne di conforto, un portavoce del Ministero degli Esteri sudcoreano ha replicato, riferendosi alle scuse del Giappone. 
"Il coinvolgimento del governo nel rimuovere artificialmente la statua della ragazza non aiuta a risolvere il problema e va contro lo spirito di scuse e rimorso che il Giappone ha chiarito al pubblico. 
È ridicolo che la Corea del Sud continui a rivangare la questione trasformandola in un gioco sporco del Giappone, per poi fare marcia indietro perché il primo ministro si è scusato per il falso storico.
Abbiamo fatto pressione sull'accordo delle donne di conforto tra Giappone e Corea del Sud per riconciliarci con il Giappone e la Corea del Sud all'apice della crisi nordcoreana, ma il Giappone non avrebbe dovuto cedere con la sua storia, anche se si trattava degli Stati Uniti. 
La precedente amministrazione Abe è entrata in carica sperando di ripristinare l'orgoglio del Giappone, che era stato minato da un falso storico.
Ma ciò che è accaduto nel 2015, 70 anni dopo la guerra, è stato l'esatto contrario.
A luglio, il governo giapponese ha giocato sull'errore di riconoscere il "lavoro forzato dei lavoratori di leva" nel tentativo di inserire il patrimonio della rivoluzione industriale del Giappone Meiji nella lista del patrimonio mondiale.
Ad agosto, la "Dichiarazione di Abe" ha effettivamente dichiarato al mondo che la guerra è una guerra di aggressione. 
In ottobre, la Cina ha chiesto che il Massacro di Nanchino fosse iscritto nella Lista del Patrimonio Mondiale dell'UNESCO.
A dicembre è stato raggiunto l'"Accordo Giappone-Corea sulle donne di conforto". 
In un'intervista al Sankei Shimbun (15 ottobre), Abe ha dichiarato di poter "porre fine al problema della storia" verificando la dichiarazione di Kono. 
l'omissione di una parte centrale
In una lettera scritta dall'ex cancelliere Schröder e da sua moglie al sindaco del quartiere Mitte di Berlino, hanno scritto: "La Germania ha risolto la sua storia nazista e si è guadagnata il rispetto del mondo intero. La Germania non deve essere complice nel coprire i crimini di guerra del Giappone. 
I governi che si sono succeduti e l'amministrazione Abe sono colpevoli di continuare a scusarsi per il loro falso storico".

* L'altro ieri ho scritto una smentita, con rabbia sincera e il massimo disprezzo per il popolo tedesco, su una dichiarazione del defunto ex cancelliere Schmidt che avevo cercato su Internet.
La gestione della sconfitta postbellica da parte del Giappone è stata la più grande e la migliore nella storia dell'umanità.
Ha dimostrato al mondo che il Giappone aveva pagato per intero.
È per tutte le richieste irragionevoli della guerra, anche quelle dei non partner.
Allo stesso tempo, ha anche reso noto nelle lingue del mondo in risposta alle fatiche dei benefattori che avevano coperto tutto l'APS alla Corea.
La maggior parte dei giapponesi, me compreso, non era a conoscenza di questi fatti.
Naturalmente il motivo è che fino all'agosto di sei anni fa il Giappone era dominato dall'Asahi Shimbun.
Yamagiwa non ha torto nel suo editoriale, ma non ha centrato il bersaglio nel suggerire che la gestione della situazione da parte di Abe è stata problematica.
I commenti del defunto ex cancelliere Schmidt, che hanno preceduto l'arrivo di Abe, si basavano sull'ideologia anti-giapponese veramente spregevole del popolo tedesco.
Minacciando il Giappone con una falsa storia di crimini simili a quelli nazisti, la Germania ha distratto la comunità internazionale dal suo peggior crimine della storia umana, la persecuzione nazista degli ebrei.
La Germania ha messo il Giappone nella stessa posizione di prigioniero politico dei nazisti nella comunità internazionale.
Il Massacro di Nanchino, inventato da giornalisti americani, è stato cooptato da un tedesco, John Rabe.
Non solo, la Germania è una nazione e un popolo, proprio come i coreani e i cinesi, la cui televisione di Stato trasmette alla fine di ogni anno il Massacro di Nanchino inventato da John Rabe.
Prima di condannare l'impegno profuso da Abe, dovremmo indignarci per la bassezza della Germania e per la cattiveria del popolo tedesco, come rappresentato dalla Süddeutsche Zeitung e da altri.
Dobbiamo correggere la Germania e il popolo tedesco.
Come i lettori sanno, fin dalla mia prima apparizione sulla scena nel 2010 ho corretto il mondo sul nazismo in nome dell'educazione anti-giapponese in Cina e Corea del Sud.

2024/4/12 in Kyoto


在德國,有一位如此有才華的人是前總理。

2024年04月14日 16時10分28秒 | 全般

以下內容來自https://news.yahoo.co.jp/articles/af337fbc9727461c788636ac67df098720fc5bfc
在德國,有一位如此有才華的人是前總理。
說出「向德國人學習」的《朝日新聞》等所謂文化人士到底是怎樣的大腦?

當地時間11月11日,德國前總理施羅德的夫人施羅德·金(韓名:金素英)在Facebook上發布了她寫給柏林米特區區長斯特凡·馮·達塞爾的一封信。

施羅德夫婦在信中寫道,“區長的決定絕對令人無法理解。這是一個反歷史的決定,拋棄了作為暴力受害者的前慰安婦的痛苦”,他們批評道。

她還強調,“日本政府施壓是為了沉默,而不是清算,這種殘酷的戰爭暴力歷史是一種忘記歷史的對待”,“我們希望柏林-米特區區長不要屈服於日本的壓力,據信這是由德國外交部指揮的。

他補充說,“德國已經洗清了納粹歷史,受到全世界的尊重”,“德國當局絕不能串通掩蓋日本的戰爭罪行。獨立的民間社會組織正在公開通報和指出日本的戰爭罪行。”

此前,柏林米特區政府還設置了韓國公民團體「韓國聯盟」的雕像以及少女雕像,陳述了日本過去「強行動員慰安婦」的事實。
然而,7月7日,柏林米特區辦事處以該團體未提前通知當局為由,撤銷了安裝許可證,並下令在14日之前將雕像拆除。

同時,德國前總理施羅德對韓國歷史問題表現出興趣,包括在2017年9月任職期間參觀了前慰安婦住宅設施「納努姆之家」。 2018年,他與韓國人金素英第五次結婚,金素英擔任他的翻譯,並成為他的情人。

2024/4/12 in Kyoto


在德国,有一位如此有才华的人是前总理。

2024年04月14日 16時08分34秒 | 全般

以下内容来自https://news.yahoo.co.jp/articles/af337fbc9727461c788636ac67df098720fc5bfc
在德国,有一位如此有才华的人是前总理。
说出“向德国人学习”的《朝日新闻》等所谓文化人士到底是怎样的大脑?

当地时间11月11日,德国前总理施罗德的夫人施罗德·金(韩名:金素英)在Facebook上发布了她写给柏林米特区区长斯特凡·冯·达塞尔的一封信。

施罗德夫妇在信中写道,“区长的决定绝对令人无法理解。这是一个反历史的决定,抛弃了作为暴力受害者的前慰安妇的痛苦”,他们批评道。

她还强调,“日本政府施压是为了沉默,而不是清算,这种残酷的战争暴力历史是一种忘记历史的对待”,“我们希望柏林-米特区区长不要屈服于日本的压力, 据信这是由德国外交部指挥的。

他补充说,“德国已经洗清了纳粹历史,受到全世界的尊重”,“德国当局绝不能串通掩盖日本的战争罪行。独立的民间社会组织正在公开通报和指出日本的战争罪行。”

此前,柏林米特区政府还设置了韩国公民团体“韩国联盟”的雕像以及少女雕像,陈述了日本过去“强行动员慰安妇”的事实。
然而,7月7日,柏林米特区办事处以该团体未提前通知当局为由,撤销了安装许可证,并下令在14日之前将雕像拆除。

与此同时,德国前总理施罗德对韩国历史问题表现出兴趣,包括在2017年9月任职期间参观了前慰安妇住宅设施“纳努姆之家”。 2018年,他与韩国人金素英第五次结婚,金素英担任他的翻译,并成为他的情人。

2024/4/12 in Kyoto


이런 능력을 갖춘 사람이 전직 총리였던 것은 독일에서였습니다.

2024年04月14日 16時06分49秒 | 全般

다음은 https://news.yahoo.co.jp/articles/af337fbc9727461c788636ac67df098720fc5bfc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이런 능력을 갖춘 사람이 전직 총리였던 것은 독일에서였습니다.
아사히신문을 비롯한 소위 문화인들이 독일에게서 배우라던 이들은 어떤 두뇌를 가지고 있었는가?

슈뢰더 전 독일총리 부인 슈뢰더 김(한국명 김소영)이 11일(현지시간) 스테판 폰 다셀 베를린 미테구 시장에게 보낸 편지를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슈뢰더 부부는 편지에서 “구청장의 결정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폭력의 피해자로 고통받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을 방치하는 반역사적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그녀는 또 “이런 잔혹한 전쟁 폭력의 역사를 청산하기보다 침묵시키려는 일본 정부의 압력은 역사를 망각하는 처사”라며 “베를린 미테 구청장이 일본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독일 외무부가 지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어 “독일은 나치 역사를 청산하고 세계적으로 존경받고 있다”며 “독일 당국이 일본의 전쟁범죄를 은폐하는 데 공모해서는 안 된다”며 “독립적인 시민사회단체들이 일본의 전쟁범죄를 공개적으로 알리고 지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베를린 미테구청은 과거 일본의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언급하며 소녀상과 함께 한국 시민단체인 '한국어동원' 동상을 설치한 바 있다.
그러나 베를린 미테구청은 지난 7월 7일 단체가 당국에 사전 통보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설치 허가를 취소하고, 14일까지 동상을 철거하라고 명령했다.

한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재임 중인 2017년 9월 위안부 할머니들의 주거시설인 '나눔의 집'을 방문하는 등 한국 역사 문제에 관심을 보여왔다. 2018년은 그의 통역사이자 연인이 된 한국인 김소영과 다섯 번째 결혼이었다.

2024/4/12 in Kyoto


Foi na Alemanha que um homem deste calibre foi um antigo primeiro-ministro.

2024年04月14日 16時06分13秒 | 全般

O seguinte é de https://news.yahoo.co.jp/articles/af337fbc9727461c788636ac67df098720fc5bfc
Foi na Alemanha que um homem deste calibre foi um antigo primeiro-ministro.
Que tipo de cérebro tinham o Asahi Shimbun e outras chamadas figuras culturais que disseram: "Aprenda com os alemães"?

Em 11 de novembro (hora local), Schröder Kim (nome coreano: Kim So-young), esposa do ex-chanceler alemão Schröder, publicou no Facebook uma carta que enviou a Stefan von Dassel, prefeito do distrito de Mitte, em Berlim.

Na carta, o Sr. e a Sra. Schröder escreveram: "A decisão do prefeito do distrito é absolutamente incompreensível. É uma decisão anti-histórica abandonar a dor das antigas mulheres de conforto que sofreram como vítimas de violência", criticaram.

Ela também enfatizou que “a pressão do governo japonês para silenciar, em vez de liquidar, a história de uma violência de guerra tão brutal é um tratamento que esquece a história” e “esperamos que o prefeito do distrito de Berlim-Mitte não sucumba à pressão japonesa, que se acredita ser dirigido pelo Ministério das Relações Exteriores alemão.

Ele acrescentou: "A Alemanha limpou a sua história nazista e é respeitada em todo o mundo" e "as autoridades alemãs não devem ser cúmplices no encobrimento dos crimes de guerra do Japão. Organizações independentes da sociedade civil estão informando e apontando abertamente os crimes de guerra do Japão.

Antes disso, o escritório distrital de Berlin Mitte havia instalado uma estátua de um Verband coreano, um grupo cívico coreano, junto com uma estátua de uma jovem, afirmando o fato da "mobilização forçada de mulheres de conforto" pelo Japão no passado.
No entanto, em 7 de julho, o escritório distrital de Berlin Mitte revogou a licença de instalação alegando que o grupo não notificou as autoridades com antecedência e ordenou que a estátua fosse removida até o dia 14.

Entretanto, o antigo chanceler alemão Schröder demonstrou interesse em questões da história coreana, incluindo uma visita à "Casa de Nanum", uma instalação residencial para antigas mulheres de conforto, em Setembro de 2017, quando estava no cargo. 2018 marcou seu quinto casamento com a coreana Kim So-young, que serviu como sua intérprete e se tornou sua amante.

2024/4/12 in Kyoto


C’est en Allemagne qu’un homme de cette envergure était ancien Premier ministre.

2024年04月14日 16時03分24秒 | 全般

Ce qui suit provient de https://news.yahoo.co.jp/articles/af337fbc9727461c788636ac67df098720fc5bfc
C’est en Allemagne qu’un homme de cette envergure était ancien Premier ministre.
Quel genre d'intelligence possédaient les Asahi Shimbun et d'autres soi-disant personnalités culturelles qui disaient : « Apprenez des Allemands » ?

Le 11 novembre (heure locale), Schröder Kim (nom coréen : Kim So-young), l'épouse de l'ancien chancelier allemand Schröder, a publié sur Facebook une lettre qu'elle a envoyée à Stefan von Dassel, maire du quartier berlinois de Mitte.

Dans la lettre, M. et Mme Schröder ont écrit : "La décision du maire du quartier est absolument incompréhensible. C'est une décision anti-historique d'abandonner la douleur des anciennes femmes de réconfort qui ont souffert en tant que victimes de violence", ont-ils critiqué.

Elle a également souligné que "la pression exercée par le gouvernement japonais pour faire taire, plutôt que liquider, l'histoire d'une violence de guerre aussi brutale est un traitement qui oublie l'histoire", et "nous espérons que le maire du district de Berlin-Mitte ne succombera pas à la pression japonaise". qui serait dirigé par le ministère allemand des Affaires étrangères.

Il a ajouté : « L'Allemagne a effacé son histoire nazie et est respectée dans le monde entier », et « les autorités allemandes ne doivent pas être complices de la dissimulation des crimes de guerre du Japon. Des organisations indépendantes de la société civile informent et dénoncent ouvertement les crimes de guerre du Japon.

Avant cela, le bureau du district de Berlin Mitte avait installé une statue d'un Verband coréen, un groupe civique coréen, ainsi qu'une statue d'une jeune fille, affirmant le fait de « la mobilisation forcée des femmes de réconfort » par le Japon dans le passé.
Cependant, le 7 juillet, le bureau du district de Berlin Mitte a révoqué l'autorisation d'installation au motif que le groupe n'avait pas averti les autorités à l'avance et a ordonné que la statue soit retirée avant le 14.

Pendant ce temps, l'ancien chancelier allemand Schröder a montré son intérêt pour les questions d'histoire coréenne, notamment en visitant la « Maison de Nanum », un établissement résidentiel pour anciennes femmes de réconfort, en septembre 2017, alors qu'il était en fonction. 2018 a marqué son cinquième mariage avec le Coréen Kim So-young, qui lui a servi d'interprète et est devenu son amant.

2024/4/12 in Ky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