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641375.html
핀란드 교실 아닙니다…한국의 ‘혁신 학교’입니다
등록 : 2014.06.08 19:53
수정 : 2014.06.08 23:58
2009년 혁신학교로 지정된 뒤 경기 동남권 거점 학교로 자리잡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보평초등학교에서 지난해 5월31일 학생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음악 수업을 하고 있다. 6·4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른 교육감 선거에서 혁신학교 확대 등 공교육 내실화를 공약한 진보 교육감이 전국 17곳 시·도교육청 가운데 13곳에서 당선되자 혁신학교가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성남/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심층 리포트] 모두가 행복한 학교
➊ 혁신학교가 뭐길래
“한명도 차별·포기하지 않는다”
경쟁·주입 대신 창의 인성 교육
고교 평준화 40돌을 맞은 올해, 한국 교육현장의 ‘구별짓기’는 참담하다. 이명박 정부의 ‘고교 다양화’ 정책은 ‘고교 서열화’의 다른 이름이었다. 사립유치원-사립초등학교-국제중-특목고·자사고로 이어지는 유·초·중등 교육 서열화가 콘크리트 장벽처럼 단단해졌다. 4일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중 13곳에서 당선된 진보 교육감들은 ‘상위 몇 %’만을 위한 구별짓기의 콘크리트 장벽에 균열을 내려 한다. 균열을 내면 빛이 들어오고, 벽은 무너져내릴 터. 이들이 ‘모두를 위한 학교’라는 공교육의 새 패러다임을 열려고 내놓은 대표적 공약이 혁신학교 확대와 자율형사립고(자사고) 폐지다. <한겨레>가 모두 세차례에 걸쳐 혁신학교와 자사고가 각각 일반학교 강화와 슬럼화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살펴보고, 획일화된 평준화를 넘어 새로운 공교육을 실험하려는 ‘진화된 진보 교육정책’을 통해 ‘2기 진보 교육감 시대’의 과제를 짚는다.
서울 강북구 삼각산고등학교에 3년 전 딸이 입학하자 장우수(51·강북구 미아동)씨는 내심 마뜩잖아했다. 가까운 여고 두곳을 놔두고, 낯선 신설 ‘혁신학교’에 다니게 돼서다. 지금은 생각이 전혀 다르다. 장씨는 “혁신학교, 참 괜찮다. 자녀에게 더 잘된 길일 수 있다”고 주변에 흔쾌히 말한다. 꼭 딸이 대학에 진학해서만은 아니다. 딸아이가 혁신학교 다니는 걸 너무나 좋아했고 교사들도 믿음직스러웠다는 것이다. 장씨는 8일 “다른 일반계 고등학교들도 혁신학교처럼 운영하는 게 바람직하겠다”고 말했다.
장씨의 딸 유진(19)씨는 “혁신학교는 즐겁고 재미있는 학교”라고 했다. 학생들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의견에 귀 기울여준 점, 하고 싶은 공부나 동아리를 부담 없이 할 수 있도록 북돋워준 점 등을 꼽았다. 유진씨는 ‘두레’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친구 서넛과 함께 공부나 취미·독서 등을 하는 모둠 활동이다. 수학 두레, 세계사 두레도 꾸렸고 고전 토론 두레, 진로상담 두레도 함께 만들었다. 대학에서 학생들의 학회처럼 주제 등에 제한이 없다. 학교는 1학기 5만원씩 지원한다. 3학년 때 토론 수업이 줄었지만, 두레 활동에서 자극을 받아 스스로 공부한 게 대학 합격 비결인 듯하다고 유진씨가 말했다.
삼각산고는 서울시교육청이 2010년 말 혁신학교로 지정한 서울지역 고교 세곳 가운데 하나다. “한명도 포기하지 않고 창의력과 더불어 살아가는 능력을 키운다”는 취지 아래 펼친 혁신교육을 3년 동안 지켜본 학부모들의 눈이 무엇보다 올해 대학 진학 결과에 꽂혔다. ‘인성교육에 신경을 쓰다 교과교육엔 소홀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어서다. 올해 초 지난 3년간 혁신학교 교육을 받은 첫 졸업생 306명 가운데 4년제 대학에 79명(서울지역 48명), 전문대에 89명이 모두 희망하는 전공 분야로 합격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2014 교육감선거 서울·경기·인천 민주진보교육감 후보 공동 기자회견에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후보(오른쪽 둘째)가 발언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조 후보와 이재정 후보(경기도), 이청연 후보(인천시)가 함께했다. 이들은 혁신학교 확대 및 내실화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뉴시스
공부두레·토론수업…학부모들 “아이가 학교 좋아해 흡족”
친구와 학습·취미 등 모둠활동
다양한 학습 연계 ‘프로젝트 수업’
학생들이 직접 학칙 정하기도
부모들 “눈뜨면 학교 가고싶대요”
교사는 “우리교육 미래는 이곳에”
고교 입학 당시 성적으로는 넘보기 어려운 대학들로 다수가 진학했고, 주변 자율형사립고(자사고)로 상위권 학생들이 쏠린 점 등을 고려하면 “놀라운 성과”라는 평가가 많다. 삼각산고 혁신기획부장 김정안(62) 교사는 “한명도 차별하지 않는 책임교육, 상호존중과 협력, 수업과 진학지도의 연계 전략이 대학 진학에 좋은 결과를 낸 것 같다”며 “자신의 꿈에 이르는 대학 진학뿐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미래 역량을 갖추는 기초를 닦은 점이 소중한 성과”라고 말했다.
2009년 진보 교육감인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처음 도입한 혁신학교는 ‘창의인성교육’을 지향한다. 지역에 따라 혁신학교(경기도·전북), 서울형혁신학교(서울), 무지개학교(전남), 빛고을혁신학교(광주), 행복더하기학교(강원) 등으로 다르게 불린다. 경기도교육연구원은 2012년 말 경기도의 혁신학교 154곳과 일반학교 154곳 등 308개 학교 교사·학생·학부모를 대상으로 진행한 <혁신학교 성과 분석 및 확산 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6개 시·도 혁신학교의 공통점을 추려 “공교육 혁신과 내실화를 위한 실험학교로서 교육과정과 수업, 평가, 학교문화 등을 총체적으로 바꿔 ‘일반학교에 영향을 끼치는’ 학교”라고 혁신학교를 정의했다.
특히 초·중학교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혁신학교의 특징은 ‘수업 혁신’과 ‘학교 구성원들의 수평적 의사결정’으로 요약된다. 교실 풍경이 무척 다채롭다. △2개 과목·교시를 묶어 통합 교과에 집중하고 쉬는 시간을 늘리는 ‘블록 수업’ △4~6명이 책상을 마주 대고 토론하며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모둠·토론 수업’(토론 수업은 ㄷ자형, 모둠 수업은 ㅁ자형으로 책걸상 배치) △교과서 진도 중심 수업 대신 관심 가는 주제를 정해 교과수업·체험활동·독서활동·동아리활동 등 다양한 학습 방법을 연계·동원해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는 ‘프로젝트 수업’ △수학처럼 실력차가 큰 과목은 심화 활동지를 만들어 서로 협력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등 다양하다. ‘모두를 위한 교육’에 매진하는 핀란드·스웨덴·덴마크·독일 등의 ‘미래형 학교’에서나 만날 수 있는 수업 장면이다.
혁신학교인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흥덕고등학교에서 지난해 5월 2학년 학생들이 고전문학 수업 시간에 질문지를 만들어 토론하고 있다. 학생들이 4명씩 모둠을 이뤄 서로 마주앉아 바라보며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용인/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혁신학교 교육활동의 알짬은 ‘경쟁 아닌 협력, 주입 아닌 토론, 배제 아닌 배려’ 정신이다. 장애를 지닌 초등 2학년 수민(가명·8)이의 학부모 홍윤희(42)씨는 학교에서 ‘친구의 장점을 써오라’는 숙제를 내줘 놀랐다고 했다. 공부하면서도 친구를 이해하게 하려는 뜻이 느껴졌단다. 홍씨는 최근 인터넷매체 ‘슬로우뉴스’에 “휠체어 탄 아이도 달리기 선수로 뛸 수 있는 학교”라며 혁신학교 근처로 이사하기를 잘했다는 기사를 올렸다. 휠체어에 의존하는 아이가 앞에서 출발하도록 친구들이 배려하며 함께 달리기를 한다는 것이다. “아이가 몸이 아프다고 해 학교에 못 가게 했더니 울어요. 어떤 아이가 눈뜨면 학교 가고 싶다는 말부터 하겠어요?” 혁신학교 상원초교(노원구)의 한 학부모의 말이다.
혁신학교에선 학칙이나 규칙도 학생들이 스스로 정하거나, 교사들과 협의해 정한다. 지각 때 벌칙도 학생들이 정한다. 스마트폰 사용도 덜 신경써도 된다. 수업시간에 친구들한테 피해를 줄 때 벌칙을 학생들이 스스로 정하는 덕분이다. 이렇게 모인 벌금은 이웃돕기 등에 쓰인다. 축제와 졸업식도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준비한다. 이런 활동이 모두 교육이라는 생각에서다. 학생·학부모 만족도, ‘공부해보니 되네’ 하고 느끼는 학습 효능감 등이 여느 학교보다 높고, 학교폭력·따돌림 등은 전보다 줄었다는 조사 결과도 여럿 있다.
수업 방식과 교육과정의 혁신, 합의와 소통에 기반을 둔 학교 운영을 하느라 혁신학교 교사들은 여느 학교 근무에 견줘 무척 바쁘다. 통합교과 수업을 하려면 교사들이 토론하고 교재를 마련하는 등 수업 준비를 더 많이 해야 해서다. 혁신학교인 서울 강서구 삼정중학교의 박진교(48) 교사는 “행정 업무가 아니라 학생을 위한 수업 연구나 생활교육에 들이는 업무가 늘었다. 내면의 교육적 열망이랄까, 신념을 발휘할 수 있으니 의미와 보람이 크다. 우리 교육의 미래 방향은 이쪽에 있다”고 말했다.
혁신학교 교사 가운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교사들이 많은 편이라는 일부의 지적과 관련해, 한 학부모는 “내 아이를 맡은 교사가 전교조든, 교총(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든 무슨 상관이겠나. 아이를 잘 보살펴주는지, 아이가 학교에 만족하는지가 중요한 기준일 뿐이다. 아이가 즐거워하는 혁신학교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앞서 6·4 지방선거 기간에 서울지역 혁신학교 학부모들은 ‘혁신학교 지키기’에 나섰다. 문용린(67) 서울시교육감이 ‘혁신학교를 더는 지원하지 않겠다’고 한 것에 위기감을 느껴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모임방으로 소통하는 ‘서울형 혁신학교 학부모 네트워크’의 학부모 100여명이 자발적으로 도심 곳곳에서 릴레이 거리 연설을 한 게 대표적이다. 지난달 31일 오후 양천구 목동 거리에 선 신은초 1학년 딸을 둔 김지영(37)씨는 “경쟁과 주입 대신 협력과 배려를 존중하는 혁신학교에 대만족”이라며 혁신교육 확산을 공약한 조희연(57) 후보를 지지해달라고 호소했다. 학부모 네트워크 대표인 서울 구로구 천왕초등학교 학부모 오인환(42)씨는 “아이들이 행복해하고 학부모들이 만족하는 학교를 없애겠다니, 혁신학교를 눈으로, 몸으로 느낀 학부모들로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서울의 유권자들은 앞으로 4년간 서울 교육을 이끌 책임자로 ‘일반학교 전성시대’와 혁신학교 확대 등을 약속한 조희연 후보를 선택했다.
이수범 기자 kjls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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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교실 아닙니다…한국의 ‘혁신 학교’입니다
등록 : 2014.06.08 19:53
수정 : 2014.06.08 23:58
2009년 혁신학교로 지정된 뒤 경기 동남권 거점 학교로 자리잡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보평초등학교에서 지난해 5월31일 학생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음악 수업을 하고 있다. 6·4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른 교육감 선거에서 혁신학교 확대 등 공교육 내실화를 공약한 진보 교육감이 전국 17곳 시·도교육청 가운데 13곳에서 당선되자 혁신학교가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성남/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심층 리포트] 모두가 행복한 학교
➊ 혁신학교가 뭐길래
“한명도 차별·포기하지 않는다”
경쟁·주입 대신 창의 인성 교육
고교 평준화 40돌을 맞은 올해, 한국 교육현장의 ‘구별짓기’는 참담하다. 이명박 정부의 ‘고교 다양화’ 정책은 ‘고교 서열화’의 다른 이름이었다. 사립유치원-사립초등학교-국제중-특목고·자사고로 이어지는 유·초·중등 교육 서열화가 콘크리트 장벽처럼 단단해졌다. 4일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중 13곳에서 당선된 진보 교육감들은 ‘상위 몇 %’만을 위한 구별짓기의 콘크리트 장벽에 균열을 내려 한다. 균열을 내면 빛이 들어오고, 벽은 무너져내릴 터. 이들이 ‘모두를 위한 학교’라는 공교육의 새 패러다임을 열려고 내놓은 대표적 공약이 혁신학교 확대와 자율형사립고(자사고) 폐지다. <한겨레>가 모두 세차례에 걸쳐 혁신학교와 자사고가 각각 일반학교 강화와 슬럼화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살펴보고, 획일화된 평준화를 넘어 새로운 공교육을 실험하려는 ‘진화된 진보 교육정책’을 통해 ‘2기 진보 교육감 시대’의 과제를 짚는다.
서울 강북구 삼각산고등학교에 3년 전 딸이 입학하자 장우수(51·강북구 미아동)씨는 내심 마뜩잖아했다. 가까운 여고 두곳을 놔두고, 낯선 신설 ‘혁신학교’에 다니게 돼서다. 지금은 생각이 전혀 다르다. 장씨는 “혁신학교, 참 괜찮다. 자녀에게 더 잘된 길일 수 있다”고 주변에 흔쾌히 말한다. 꼭 딸이 대학에 진학해서만은 아니다. 딸아이가 혁신학교 다니는 걸 너무나 좋아했고 교사들도 믿음직스러웠다는 것이다. 장씨는 8일 “다른 일반계 고등학교들도 혁신학교처럼 운영하는 게 바람직하겠다”고 말했다.
장씨의 딸 유진(19)씨는 “혁신학교는 즐겁고 재미있는 학교”라고 했다. 학생들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의견에 귀 기울여준 점, 하고 싶은 공부나 동아리를 부담 없이 할 수 있도록 북돋워준 점 등을 꼽았다. 유진씨는 ‘두레’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친구 서넛과 함께 공부나 취미·독서 등을 하는 모둠 활동이다. 수학 두레, 세계사 두레도 꾸렸고 고전 토론 두레, 진로상담 두레도 함께 만들었다. 대학에서 학생들의 학회처럼 주제 등에 제한이 없다. 학교는 1학기 5만원씩 지원한다. 3학년 때 토론 수업이 줄었지만, 두레 활동에서 자극을 받아 스스로 공부한 게 대학 합격 비결인 듯하다고 유진씨가 말했다.
삼각산고는 서울시교육청이 2010년 말 혁신학교로 지정한 서울지역 고교 세곳 가운데 하나다. “한명도 포기하지 않고 창의력과 더불어 살아가는 능력을 키운다”는 취지 아래 펼친 혁신교육을 3년 동안 지켜본 학부모들의 눈이 무엇보다 올해 대학 진학 결과에 꽂혔다. ‘인성교육에 신경을 쓰다 교과교육엔 소홀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어서다. 올해 초 지난 3년간 혁신학교 교육을 받은 첫 졸업생 306명 가운데 4년제 대학에 79명(서울지역 48명), 전문대에 89명이 모두 희망하는 전공 분야로 합격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2014 교육감선거 서울·경기·인천 민주진보교육감 후보 공동 기자회견에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후보(오른쪽 둘째)가 발언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조 후보와 이재정 후보(경기도), 이청연 후보(인천시)가 함께했다. 이들은 혁신학교 확대 및 내실화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뉴시스
공부두레·토론수업…학부모들 “아이가 학교 좋아해 흡족”
친구와 학습·취미 등 모둠활동
다양한 학습 연계 ‘프로젝트 수업’
학생들이 직접 학칙 정하기도
부모들 “눈뜨면 학교 가고싶대요”
교사는 “우리교육 미래는 이곳에”
고교 입학 당시 성적으로는 넘보기 어려운 대학들로 다수가 진학했고, 주변 자율형사립고(자사고)로 상위권 학생들이 쏠린 점 등을 고려하면 “놀라운 성과”라는 평가가 많다. 삼각산고 혁신기획부장 김정안(62) 교사는 “한명도 차별하지 않는 책임교육, 상호존중과 협력, 수업과 진학지도의 연계 전략이 대학 진학에 좋은 결과를 낸 것 같다”며 “자신의 꿈에 이르는 대학 진학뿐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미래 역량을 갖추는 기초를 닦은 점이 소중한 성과”라고 말했다.
2009년 진보 교육감인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처음 도입한 혁신학교는 ‘창의인성교육’을 지향한다. 지역에 따라 혁신학교(경기도·전북), 서울형혁신학교(서울), 무지개학교(전남), 빛고을혁신학교(광주), 행복더하기학교(강원) 등으로 다르게 불린다. 경기도교육연구원은 2012년 말 경기도의 혁신학교 154곳과 일반학교 154곳 등 308개 학교 교사·학생·학부모를 대상으로 진행한 <혁신학교 성과 분석 및 확산 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6개 시·도 혁신학교의 공통점을 추려 “공교육 혁신과 내실화를 위한 실험학교로서 교육과정과 수업, 평가, 학교문화 등을 총체적으로 바꿔 ‘일반학교에 영향을 끼치는’ 학교”라고 혁신학교를 정의했다.
특히 초·중학교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혁신학교의 특징은 ‘수업 혁신’과 ‘학교 구성원들의 수평적 의사결정’으로 요약된다. 교실 풍경이 무척 다채롭다. △2개 과목·교시를 묶어 통합 교과에 집중하고 쉬는 시간을 늘리는 ‘블록 수업’ △4~6명이 책상을 마주 대고 토론하며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모둠·토론 수업’(토론 수업은 ㄷ자형, 모둠 수업은 ㅁ자형으로 책걸상 배치) △교과서 진도 중심 수업 대신 관심 가는 주제를 정해 교과수업·체험활동·독서활동·동아리활동 등 다양한 학습 방법을 연계·동원해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는 ‘프로젝트 수업’ △수학처럼 실력차가 큰 과목은 심화 활동지를 만들어 서로 협력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등 다양하다. ‘모두를 위한 교육’에 매진하는 핀란드·스웨덴·덴마크·독일 등의 ‘미래형 학교’에서나 만날 수 있는 수업 장면이다.
혁신학교인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흥덕고등학교에서 지난해 5월 2학년 학생들이 고전문학 수업 시간에 질문지를 만들어 토론하고 있다. 학생들이 4명씩 모둠을 이뤄 서로 마주앉아 바라보며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용인/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혁신학교 교육활동의 알짬은 ‘경쟁 아닌 협력, 주입 아닌 토론, 배제 아닌 배려’ 정신이다. 장애를 지닌 초등 2학년 수민(가명·8)이의 학부모 홍윤희(42)씨는 학교에서 ‘친구의 장점을 써오라’는 숙제를 내줘 놀랐다고 했다. 공부하면서도 친구를 이해하게 하려는 뜻이 느껴졌단다. 홍씨는 최근 인터넷매체 ‘슬로우뉴스’에 “휠체어 탄 아이도 달리기 선수로 뛸 수 있는 학교”라며 혁신학교 근처로 이사하기를 잘했다는 기사를 올렸다. 휠체어에 의존하는 아이가 앞에서 출발하도록 친구들이 배려하며 함께 달리기를 한다는 것이다. “아이가 몸이 아프다고 해 학교에 못 가게 했더니 울어요. 어떤 아이가 눈뜨면 학교 가고 싶다는 말부터 하겠어요?” 혁신학교 상원초교(노원구)의 한 학부모의 말이다.
혁신학교에선 학칙이나 규칙도 학생들이 스스로 정하거나, 교사들과 협의해 정한다. 지각 때 벌칙도 학생들이 정한다. 스마트폰 사용도 덜 신경써도 된다. 수업시간에 친구들한테 피해를 줄 때 벌칙을 학생들이 스스로 정하는 덕분이다. 이렇게 모인 벌금은 이웃돕기 등에 쓰인다. 축제와 졸업식도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준비한다. 이런 활동이 모두 교육이라는 생각에서다. 학생·학부모 만족도, ‘공부해보니 되네’ 하고 느끼는 학습 효능감 등이 여느 학교보다 높고, 학교폭력·따돌림 등은 전보다 줄었다는 조사 결과도 여럿 있다.
수업 방식과 교육과정의 혁신, 합의와 소통에 기반을 둔 학교 운영을 하느라 혁신학교 교사들은 여느 학교 근무에 견줘 무척 바쁘다. 통합교과 수업을 하려면 교사들이 토론하고 교재를 마련하는 등 수업 준비를 더 많이 해야 해서다. 혁신학교인 서울 강서구 삼정중학교의 박진교(48) 교사는 “행정 업무가 아니라 학생을 위한 수업 연구나 생활교육에 들이는 업무가 늘었다. 내면의 교육적 열망이랄까, 신념을 발휘할 수 있으니 의미와 보람이 크다. 우리 교육의 미래 방향은 이쪽에 있다”고 말했다.
혁신학교 교사 가운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교사들이 많은 편이라는 일부의 지적과 관련해, 한 학부모는 “내 아이를 맡은 교사가 전교조든, 교총(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든 무슨 상관이겠나. 아이를 잘 보살펴주는지, 아이가 학교에 만족하는지가 중요한 기준일 뿐이다. 아이가 즐거워하는 혁신학교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앞서 6·4 지방선거 기간에 서울지역 혁신학교 학부모들은 ‘혁신학교 지키기’에 나섰다. 문용린(67) 서울시교육감이 ‘혁신학교를 더는 지원하지 않겠다’고 한 것에 위기감을 느껴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모임방으로 소통하는 ‘서울형 혁신학교 학부모 네트워크’의 학부모 100여명이 자발적으로 도심 곳곳에서 릴레이 거리 연설을 한 게 대표적이다. 지난달 31일 오후 양천구 목동 거리에 선 신은초 1학년 딸을 둔 김지영(37)씨는 “경쟁과 주입 대신 협력과 배려를 존중하는 혁신학교에 대만족”이라며 혁신교육 확산을 공약한 조희연(57) 후보를 지지해달라고 호소했다. 학부모 네트워크 대표인 서울 구로구 천왕초등학교 학부모 오인환(42)씨는 “아이들이 행복해하고 학부모들이 만족하는 학교를 없애겠다니, 혁신학교를 눈으로, 몸으로 느낀 학부모들로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서울의 유권자들은 앞으로 4년간 서울 교육을 이끌 책임자로 ‘일반학교 전성시대’와 혁신학교 확대 등을 약속한 조희연 후보를 선택했다.
이수범 기자 kjls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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