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설: (1)송덕기는 택견 기술만 알았었고 타 무도 종목은 전혀 몰랐다? (2)송덕기는 택견 기술 외에도 타 무도 종목을 알고 있었다?
*전통 표방의 경우 타 무도종목 수련 특히, 일본무도 수련 경력을 숨긴다.
비전통 표방의 경우 전통종목 수련 경력을 과장한다.
의구심 해결: 송덕기가 전통 택견 기술만을 알고 있었을거란 희망사항일 뿐, 시대적 배경으로 일제강점기를 살면서 그가 충분히 일본무도에 접하고 또, 학습했을 가능성을 깨닫지 못했었다.
송덕기에 대해서 그간 제공되는 정보는 부분적이었기 때문이다.
1973년 예용해 조사보고서상 송덕기가 총 20가지 기술이 있다, 예용해는 좌우 나누어 그러니 10여가지다 했는데
문화재 지정 이후 발간 된 책에 택견 기술 전부를 공개했다며 대폭 확대 된 그리고 이질적인 것들까지 일방적으로 전달됐다.
이후 또 다시 기술체계가 확대, 재구성 된듯한 송덕기가 시연한 것들을 두고
스승에게 조목조목 배우질 못해서 안타까워 했다는 예용해 보고서와는 전혀 다른 송덕기를 마주했던게다.
송덕기가 주장했던 택견 외 타 무도종목을 학습했을거란 가설 이었으나 합기도 도주 최용술의 고제자 김정윤의 목격과 증언, 출판 된 서적으로
더 이상 그것은 가설이 아니게 되었다.
합기도 도주 최용술의 고제자 김정윤: 1985년 송덕기 시연을 봤는데 일본 야와라(데코이) 비전기술 5가지를 능숙하게 해 보였다!
>필자가 오래 전 김정윤을 만났을때도 그는 야와라와 택견 관련 얘기를 했었는데 염두에 두질 못했었다.
송덕기가 시기적으로 택견 기술이라며 추가 했다가 빼기도 하는등 의아스런 것들과 예용해 조사 이후 추가 된 출처가 불명확 했던 송덕기의 기술들에 대해서 이해가 되지 않은 연유는
택견을 배울때 여러 사람이 모여서 잔디밭이나 개천 사장에서 도제식이 아닌 방법으로 배웠다던것과 달리 송덕기가 타 무도종목에 대한 이해가 없고는 상기와 같은 기술 추가, 배제, 확대 등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송덕기는 택견 외에도 본인이 출생해서 성장하는 동안 영향권 내 있었던 일제강점기 기간 무도를 학습 했으리라 합리적 추측에 이르렀고 소급해서 송덕기의 1973년 11가지 기술(쥬도 배대뒤치기로 여겨지는 것 포함), 83년 기술이 대폭 확대되고 체계가 세워진듯한, 당수도 느낌마저 나는, 배대뒤치기(무르팍 치기 삭제), 옆차기 후 뒤후리기 새로 포함 시키고 또, 그 이후 재구성 된 듯한 것들을 사진촬영에 대해서 이해가 됐다.
송덕기는 택견 외 일제강점기 기간 타 무도종목을 어떤 경로를 통해서이든 학습해서 알고 있었다. 즉 73년 예용해 조사당시 11가지 기술 외 타 무도종목 기술들을 모르지 않았었다! 는게다.
이것이 합기도 도주 최용술 고제자 증언으로 확인된게다.
어쩌면 자연스럽다 생각할수도 있다.
태권도 송무관 노병직의 자필 기록으로 그가 일제강점기 당수도(가라테도) 이전 수박희, 택견 관련 체기를 학습 했었다 증언,
노병직에게 도장을 빌려 줬던 송덕기 보다 18년 뒤 출생 민완식(1911년생)이 일제강점기 강도관 유도 7단의 고단자였고 씨름, 수박을 했다는 것처럼
송덕기는 택견이라 얘기 했던 것 외에도 타 종목, 후에 합기도 도주 최용술 고제자로부터 확인되는 야와라 학습이 말이다.
태권도 비판,비방하는것 대다수가 택견쪽, 관계자, 수련생 들에게서 나온다.
대한민국 국기가 태권도인데 법으로 제정된 태권도를 일본 가라테도니 뭐니 하며 즐기며
정작 내로남불 이라고, 택견이 일본 무도 어쩌고 하면 팩트체크도 하기 전에 비방부터 한다.
83년 군사정권하 국가기관(문화재관리국, 문공부)이 개입 된 가스라이팅 후과 라고도 사료된다.
어린 청소년들이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을 듣고 보는데 그것을 허위정보로 이용하는 것은 나이 든 사람들로써 해선 안될 짓이며
부도덕을 넘어 범죄행위로 지목 될 수 있다.
주: 택견 용어는 보통명사로써 송덕기 주장의 것에 한할 수 없으며 북한 민속학자 계정희 교수 발굴 개성 지역의 것과
1895년 일본에서도 했다는 것과 전체적으로 동일시 할 수는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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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덕기는 택견 외 타무도도 학습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