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ホウケイのクジラ釣り!(흥부의 성의 고래사냥)

ホウケイじゃないのにホウケイと呼ばれる!

북한군 잠수함 타고 광주에 침투 (홍어법 위반 글)

2020-01-20 22:05:20 | 홍어법 위반 글

북한군 잠수함 타고 광주에 침투 (홍어법 위반 글)


북한군 잠수함 타고 광주에 침투


지난 해의 광우사태 때 국민 모두가 광우 폭도들을 고운 눈으로 바라보거나, 민주화운동가로 여기지는 않았다. 이점은 광주사태 때도 마찬가지였다.
5.18무장단체를 광주시민들이 민주화운동가로 바라 보았는가?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광주사태 때 서울에 올라온 광주시민들은 "시민군이 시민에게 총을 쏜다," "시민군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남자만 보면 시민군으로 징집하였다,"
"남자들을 끌고가 사격 연습을 시킨후 군인들을 향해 사격하게 하였다" 등의 말을 하였다. 그런데, 그때는 그런 말들이 도무지 실감이 가지 않았었다. 

2년 전의 영화 "화려한 휴가"는 어떤 정치 프로파겐다의 목적으로 제작되었겠으나, 일면 오히려 5.18측에 치명타를 끼치는 역효과도 있었을 것이다.
광주사태 당시 우리는 시민군의 모습을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었다.
광주사태를 처음부터 줄곧 TV로 지켜보고 있었던 북한 주민들과 달리 우리에게는 무장시민군의 모습을 사진으로조차 볼 기회가 없었다.
민간인이 총을 든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 전혀 상상힐 수가 없었으므로 광주사태는 모르는 영역으로 남아있었다.
그러기에 계엄군이 가해자라는 5.18측 주장만 먹혀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영화 "화려한 휴가"가 5.18무장단체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드러내놓고 말았다.
물론 이 영화는 시민군이라 불리는 이 무장단체를 미화시킬 목적으로 제작되었지만, 이 영화는 시민군의 모습을 천분의 일이나마 공개하고 말았다.
비록 모든 치부를 감추고, 최대로 미화시켜 천분의 일을 공개하였지만, 그 천분의 일은 국민이 전혀 시민군의 모습을 모르고 있었던 때와 전혀 다른 변화를 몰고 왔다.
2003년부터 공개되기 시작한 인터넷 자료들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국민은 시민군의 존재를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이제 알게 된 것이다.

광주사태 때 서울에 올라온 광주시민들이 서울의 친구들에게 "시민군이 시민에게 총을 쏜다"는 말을 하였을 때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아마 몇명 안될 것이다.
이것은 비록 널리 퍼진 말은 아니나, 그럼에도 광주사태의 내막을 이해하는데, 몹시 중요한 단서였다. 과연 "시민군이 시민에게 총을 쏘았을까?" 오랫동안 우리는 이것을 과장된 표현이려니 여겼었다.
그러나 시민군 증언록이 펼쳐지는 순간 그 사실이 확인되었다. 1988년 광주사태를 민주화운동으로 격상시킬 목적으로 5.18 단체들이 채증한 증언록에 시민군 총기 오발 사고였다며 그 사실이 밝혀져 있다.
그리고, 2006년부터 시작된 탈북군인들의 증언이 그 사실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위 사진을 보라. 바로 이 장면이 영화 "화려한 휴가"가 국민에게 보여주지 않는 시민군의 치부 중의 하나이다.
군복 입은 장발족 광주시민군이 시민들을 향하여 총구를 겨누고 있다. 총의 모양새도 특이하며, 곤봉을 들고 있는 시민군 모습도 보인다.
만약 저 곤봉으로 누군가를 때렸다면 어째서 타박상 입은 시민들이있었는지 설명된다.
그리고 이마에 흰띠를 둘렀음이 눈에 띈다. 그런데 바로 하루만에 광주에서 시민군이 창군되고, 온갖 군사 장비들로 무장하며, 조직적으로 편성되는 것이 가능한가? 그런 순발적인 기동력은 현역에게도 불가능하다.
탈북자들의 5.18증언록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가 바로 이런 난제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한다.
 

이 책의 증언1(45~92쪽)에서 전 함경남도 금야군 고등중학교 교원은 10.26 대통령 시해사건 직후인 1979년 11월 중순부터 북한은 광주사태(전국적 민중봉기)를 일으킬 준비를 남한 내 좌익세력과 공동으로 진행하였다고 증언한다. 과연 이 핵폭탄적인 증언이 사실일 수 있는가?
그런데, 그녀의 증언 내용의 진실성을 확인하는 방법이 있다. 그녀는 남한 정보를 몰랐으며, 우리는 북한 정보를 몰랐다. 그럼에도 쌍방간에 역사적, 객관적 사실들이 일치한다면 그 증언의 진실성은 입증된다.

그녀는 "북한의 계획대로라면 원래 광주폭동이 정상적으로 시작되어야 하는 날자는 1980년 3월경이었다고 한다"고 증언한다 (77쪽).
이 증언은 3/23 새벽 서울 한강 하류 무장간첩 3명 침투, 3/25 새벽 포항 앞바다 무장간첩 출몰, 27일 새벽 김화지구 간첩침투 등을 보도하는 아래의 뉴스 동영상과 그 사건 전개가 부합한다. 

아마 그녀의 독자들은 예상을 넘는 그녀의 증언에 조금은 당황해 할 것이다. 북한군 침투설의 난제는 북한군이 어떤 방법으로 침투할 수 있었겠느냐였다.
그리고 북한군이 잠수함 타고 침투하였으리라고는 전혀 우리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였었기에 많은 독자들이 반신반의해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명확히 입증해 주는 다큐 영화 동영상이 바로 아래에 있다.



문민독재자 김영삼 대통령이 1996년 여론몰이로 5.18재판을 진행하기 위함이었는지 국민에게 알리지 않았으나, 그의 간담을 서늘케 한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무장공비들이 잠수함 타고 침투한 사건이었다.
5.18재판 여론몰이에 묻혀 국민에게는 잘 보도되지 않았으나, 북한군 14명과 싸우기 위해 우리 편에서는 십만 배가 넘는 무려 150만명이 동원되어 장장 51 일간 걸린 대간첩 작전이 있었다.
위 동영상을 보면 북한군이 광주사태를 일으키기 6개월 전 잠수함 타고 목포로 침투하였을 때 (74~75쪽), 그리고 광주사태가 끝난지 두 달 후 강원도 동해안으로 이동하였을 때 (88쪽),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 수 있다.


탈북여성의 증언의 수확적 정확성은 잠수함 타고 침투한 북한군은 11영씩 한 조였다는 증언으로 확인된다:
"조 편성 발표가 끝나고 사복차림의 지휘관은 타격대장을 책임자로 하는 11명의 조는 즉시 잠수함에 승선할 것을 지시했고" (74쪽); "다른 때와 같은 가상적인 훈련이 아니라 이번만은 실제적인 상황이라는 현실이 배안에 타고 있던 11명의 전투요원들을 긴장시켰다" (75쪽).
"11명의 침투요원들은 잠수함에서 내리기 전에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해서 최후의 한명이 남을 때까지 목숨을 바치며 적들의 손에 잡히면 무조건 자폭을 한다는 서약서에 서명을 하였다고 한다" (76쪽),
"미리 침투해있던 7명의 인원들과 합류한 안창식을 비롯한 11명의 인원들은 여러 개의 소조로 분산되어 전라도 현지에서 북한의 지령을 받고 움직이는 조직들이 사전에 확보해놓은 무기고들의 위치를 재확인하는 한편 새로운 무기고들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 3개월여 동안 전라도 전 지역에 대한 정찰을 이 잡듯이 샅샅이 진행하였다고 한다" (81쪽).

위의 동영상은 1996년 김영상 정부가 한창 5.18(인민)재판을 진행시키던 무렵 일어난 사건을 보여주는데, 잠수함 타고 침투한 무장공비들은 11명씩 한조가 되어 움직였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가 광주사태에 대하여 또 하나 전혀 알지 못하고 있던 사실은 광주에 침투하였던 북한군들 중 자폭한 북한군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위의 탈북여성도 "11명의 침투요원들은 잠수함에서 내리기 전에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해서 최후의 한명이 남을 때까지 목숨을 바치며 적들의 손에 잡히면 무조건 자폭을 한다는 서약서에 서명을 하였다고 한다" 고 증언했다 (76쪽). 우리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반신반의한다.
그러나, 
http://cafe.daum.net/issue21/5304/110
 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는 아래의 동영상은 1996년 9월 17일의 강릉 북한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음을 보여준다.18일 16시30분 청학산에서 11명의 북한군이 자폭하였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교도소를 습격하였는지에 대하여 여태껏 5.18단체들이 답변을 못하고 있다.
그 답변은 시민군 편에서 전투에 참가했던 북한군 지휘관 안창식이 말할 수 있는 것이었으며 (83~84쪽), 그 지휘관이 바로 이 증언 수기를 쓴 여성의 두 자녀의 아빠이다.
그녀는 교도소 습격 작전 때 중상 입은 북한전투요원을 시민군이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후송한 사실도 증언하는데, 자신의 두 자녀의 아빠가 인솔한 부하에 대한 증언이기에 정확한 증언인 것이다.
이처럼 탈북자들의 5.18증언록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증언1의 모든 내용들이 남한 자료들과 부합하여 그 사실성과 객관성이 입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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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세탁 홍어에 친일파 김용주 첩의 자식 김무성 (홍어법 위반 글)

2020-01-19 17:18:19 | 홍어법 위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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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빨척살
 

2015.05.04 21:29:40 (*.109.*.150)
 
 
김무성 아버지, 김용주는 전라도 사람.

그리고 김무성 할아버지는 

전라도 사람으로서 친일파라고 이미 나온 사실.

종편패널들이 확인해준거다.


김용주 본처 강정순은 1908년 6월 17일생


           첩   방연숙은 1926년 9월 25일생

 
*참고로 김무성의 누나 김문희는 1928년 10월 13일생이다.


김무성 누나가 엄마보다 두살 적다~!!
 [링크] http://www.ilbe.com/5761215812
김무성 아버지, 김용주는 전라도 사람. - 정치 - 일간베스트 - 일베저장소
 
본문으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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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갱이작두
 
2015.05.05 07:57:45 (*.59.*.4)
 
 
“연찬회서 허벅지 손 짚고 무릎 앉히려 실랑이”
 

 
 
 

김명국의 5.18남파 당시 증언(펌) (홍어법 위반 글)

2020-01-18 18:32:31 | 홍어법 위반 글

광주에서 찍은사진들 .jpg

 조국의근대화
 
2013.10.09 20:52:26 (*.7.*.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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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광주사태 남파되었던

북한 대남연락소... 증언(요약)

 

 

 

 

 

 



5.18광주사태 당시 '복면부대'의 실체? 
'복면부대'의 실체는 남파된 북한군특전사들이였다. 


북한 대남연락소 임무를 받고 남파 었던 간첩 '손성모' 

* 1980년대초 남파되어 잠복중이 던 '손성모'는 5.18광주사태 당시 남파되었던 북한군 특전사의 길 안내자로 활약하였다. 
1981년 경상북도 문경시에서 체포되어 1999년 까지 수감되어 있다가 김대중정부의 특사로 석방되었고 2000년 '6.15남북공동성명'이후 비전향장기수로 다른 장기수들과 함께 북한으로 송환되었다.
 

1980년 5월 광주 사태현장에 파견 되였던 전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당 연락소 전투원의 증언 (요약)

 


증언자 약력:

 

 

◆ 5.18광주사태 참가자인 김명국(가명) 이 증언하는 북한조선인민군 부대의 명칭과

사건 연월일, 참가자 이름 등은 모두 사실임

 

다만 본인의 요구에 따라 당사자의 이름은 가명으로 밝힘  

이름 : 김명국 (가명) 

생년월일 : 1961년도 생 

증언자 고향 : 함경북도 회령시 ㅇㅇㅇ리 

1977년 8월26일 평양시 순안구역 대서리 북한대남연락소(112 훈련소) 아동훈련소에 입대 
1년후인 1978년 10월경 평양시 서포구역 대양리에 있는 중앙당 연락소(1010군부대) 2처 전투정찰 부대에 입대 

1980년 5월 19일 전라남도 광주시로 남파 

1980년 5월 27일 북한으로 철수 

1980년 10월 30일 북한 태천교도지도국(특전사)군관학교입대 

2003년 까지 북한군 특전사 교관(중좌)으로 복무 

훈련중 심한 부상으로 제대 후 2006년 중국 밀무역사건으로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에 체포 직전 가족과 함께 탈북 

5.18광주사태 당시 북한군 특전사 남파 증언 내용 

◆“고등중학교16살 때 1977년 8월26일 날 평양시 순안구역 구서리 중앙당 대남 연락소에 입대. 명칭은 112훈련소(아동훈련소)

 

◆1년 넘게 훈련을 받다가 평양시 서포구역 대양리에 있는 조선 노동당 중앙당 연락소(일명 대남 연락소) 2처 전투정찰에 배치

 

◆“ 1980년 5월 19일 날 야외 훈련 하였는데 상급 명령으로 철수

그날 오후 4시 경에 대양리 에서 50명의 전투인원이 북한에서 만든 갱생지프차로 출발 저녁9시 황해남도 장연군 장산곶 북한대남연락소 기지에서 경에 배를 타고 출발 

◆ 증언자가 속한 조성원명단 : 
조장 : 
이름 : 리상국/ 나이 : 23세 / 군사칭호 : 중위 / 고향 : 함경남도 함주군 

부조장 : 
이름 : 한광호/ 나이 : 22세 / 군사칭호 : 소위/ 고향 : 모름... 

기타 조원들 이름 : 김일룡(21살), 최길산(20살), 황보석(21살), 한철수(21살)...

◆ '270명이 남파되었다가 거의 다 죽고 살아 돌아 온 사람이 70명 정도 밖에 안 된다고 파견대장 문제심 발언 하였다'고 증언

파견대 대장 : 북한 중앙당 대남 연락소 소장 
이름 : 문 제심 

남파될 때 배 한척에 50여명씩 타고 남한에 내려왔다고 증언

 

◆“아니야, 우리 떠날 때는 대장이랑 함께 50명이 떠나고 나머지 사람들은 우리 보다 먼저 떠난 것 같아."

증언자의 조는 12명

"직속부대에는 3개조가 있었는데 증언자조가 12명이고 3조는 15명, 나머지 사람들은 16정찰에서 배속된 남한 전문가 들이였다.”고 증언 

배 길이가 20m / 외형 : 일반 고기잡이 배 / 내부 설계 : 추진기가 4개 달린 배 
최고 속도 : 시속70km이상 이라고 증언

“우리가 탓 던 배는 일반 남한의 고기 배와 꼭 같아.

길이가 20m쯤 되였을 거야.

여느 때는 일반 배처럼 고기잡이를 하는데 추진기가 4개 달린 배야.

상황이 발생하면 추진기 4개가 다 가동하는데 비행기처럼 속도가 빠르고 자체 폭파하게 되여 있어. 

21일 밤 2시경 전라남도 광주시 앞바다로 잠입하였음 

남쪽의 길 안내자 사람 몇 명이 대장한테 와서 자기들이 남한에서 이룩한 성과 부분을 보고...

그들의 파견대장 '문제심'에게 보고내용은 "무기고를 습격하여 무기를 탈취하였다는 것과 함께 트럭, 장갑.차들을 노획하였다."는 내용이였다. 

2일간 광주 근처 야산에서 잠복해 있으면서 북한과 무선연락으로 교신하였고 광주봉기의 추의사태를 살피며 차후 행동방향등 작전계획 수립 
 

23일부터 파견대장 '문제심'은 3일동안 광주시 도심에 있는 봉기군 지휘부에서 남파된 북한군 특전사부대 지휘하였음 

증언자는 파견대장의 신변호위 임무를 수행 하였음

 

 

◆1980년5월27일 새벽 북한으로 철수 시작

아침 6시경 철수 중 산 중턱에서 국군 특전사들과 전투중 3명 사살

 

◆5월30일 날 새벽에 증언자의 일행이 ‘문경고개’ 근처에서 행군 할 때

부조장이 여자애에게 발각되자 죽여 땅에 묻어 버렸다고 증언

 

◆6월4일 휴전선에 도착한때가 저녁11시경

휴전선 지뢰밭과 철조망은 정찰국 성원들이 앞서나가면서 해제

휴전선을 넘어서 보니 6월5일 아침9시 경이였는데 지역을 알아보니 북한 강원도 판교군 지하리

북한군 포사격장에 들어갔다 포탄에 맞아 2명 즉사 본인은 다리에 부상

 

◆광주봉기의 북한군 침투 총화는 6월 15일 김일성과 김정일의 직접적인 참석 하에 평양에서 하였음

남한에 침투 되였다 귀하한 군인, 전사한 군인 모두 에게는 공화국영웅 칭호가 수여

분견대 대장 2명은 조선인민군 교도지도국(특수전 사령부)작전부에 승급 배치

김일성은 소좌급인 분견대장들에게는 대좌의 군사칭호를 수여 하였음

조장들은 7명이 살아 돌아 왔는데 각 군단부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상위 급 군사칭호를 상좌로 승격시켜 배속하였음

 

◆조선인민군 1010군부대 전투원 김명국은 1980년5월 전투공로로 하여 조선로동당에 입당하였음

같은 전투공로로 하여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국기훈장1급, 자기 목숨을 바쳐 지휘관을 보위한 공로로 국기훈장1급 수여받았음(국기훈장 2개면 공화국영웅칭호와 맞먹는 대우)

태천군관학교(북한군 특수전 사령부 군관학교) 에 입학

2003년까지 북한군 특수전 부대에서 지휘관으로 복무 

◆ 증언자의 증언
 

'대남연락소 내부 규정에는 전우가 죽으면 흔적을 없애려고 땅에다 묻어 버림

마지막 남는 사람은 붙잡히게 되면 자폭하게 되여 있어.

만약 전우가 부상당해 대오의 행군에 지장을 준다고 생각되면 죽여서 땅에 묻어 묻어버림

옷 속에 여러 가지 유형의 작은 물체를 항상 가지고 다니는데 고성능 폭약 3킬로 그람이 터지는 위력과 맞먹는다.'고 증언

'광주 사태가 진압되면서 우리 부대는 모두 갈라졌는데 혹시 남한의 산속이나 도시속에 숨어 있다가 훗날 북으로 들어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남한에 이미 알고 있던 조직선과 연계하여 해외로 탈출했을 수 있고 현재 신분을 세탁하여 남한에 잠복하여 간첩임무를 수행하며 살고 있을 수 있다.'고 증언 

 2006년 7월 남한에 입국하여 '대성공사'에서 5. 18당시 남파되었던 사실 증언하였다. 

'대성공사'담당자는 김명국에게 남한사회에 나가 5.18광주사태에 북한군으로 남파되었던 사실을 절대공개하지 말것을 강요하였음 

2006년 탈북

2006년 대한민국에 입국 

현재 서울 수도권 일대에서 살고 있음 

◆◆◆ 1980년 5월에 남파되었던 북한군특전사의 임무 : 

첫째 : 
5.18광주봉기를 주동적으로 끌고나가며 봉기자들인 남한 민주세력과 진압세력인 국군사이에 쐐기를 박고 불신을 조장하여 서로 분열시키고 이간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증언 

둘째 : 
광주봉기를 폭동으로 발전시켜 남한전역에 확대시킴으로써 전국적인 폭동이 일어날 경우 북한군의 남침계획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증언 

북한군 남파 특전사는 시민봉기군과 국군으로 가장하였다. 

시민군으로 가장한 북한특전사는 국군에게 총질을 하였고 국군으로 가장한 북한특전사는 시민군에게 총격을 가하여 서로가 사상자를 발생시켜 서로의 감정을 폭팔시키는 이간책동을 하였다. 
특히 국군으로 가장한 북한특전사는 광주봉기군의 심경과 감정을 폭팔시킬 목적으로 시민군과 부녀자들을 비롯한 일반시민들을 무참히 살해하여 광주폭동을 이끌어 내는 데 결정적인 역활을 하였다. 
그들은 교도소 습격, 무기고 탈취, 경찰서 습격, 장갑차 로획등 일반인들은 상상도 못하는 특수 훈련을 받은 정규군 만이 할 수 있는 군사행동을 함으로서 무장폭동을 유발시키는 군사작전의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였다. 


◆ 비전향 장기수 손성모 자료

 

김대중 정부시절 비전향장기수 북송

 

거의 모두가 30년~40년의 옥고를 치룬 사람들 가운데 유독 단 한사람만은 17년이라는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손성모 남자 당시나이 67세 학력관계 김일성종합대학 졸업생.

거의 대부분의 비전향장기수들은 한국전쟁시기 남한에서 전투하다가 체포된 사람들인데 손성모는 달랐다.

나이로 보나 학력으로 보나 도무지 한국전쟁참가자가 될 수 없었다.

전국적으로 간부학습반에서 손성모의 투쟁업적에 대해 2003년 북한 당 기관지 ‘노동신문’ 2면에 ‘ 나는 김일성 종합대학 졸업생이다.’라는 제목을 달고 글이 실린 적이 있다.

내용 :

조국의 통일과 독립을 위해 1980년 광주봉기때 북에서 파견되어 적구에서 싸우던 중 변절자의 밀고로 여기 저기 __기다가 산속에서 몇 달 동안 숨어서 활동하다 놈들에게 체포되게 되자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해 목숨 바칠 비장한 결심을 하고 칼로 목의 대동맥을 끊어 자살을 시도했으나 공교롭게도 죽음이 쉽게 이루어 지지 않자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을 버리지 않고 “비 전향 장기수”로 17년간을 감옥에서 투쟁했다고 씌어 있다.

당, 법 간부학습반에서 ‘손성모동지의 투쟁업적을 따라 배우자!’라는 주제의 내용으로 문답식 학습경연과 궐기모임까지 진행되었다.


◆ 남한에서 손성모에 대해 소개한 자료


손성모(孫聖模, 1929년 ~ )는 대한민국의 비전향 장기수이다.

[편집] 생애

전라북도 부안군 출생이다. 가난한 가정의 막내로 태어난데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면서 교육 기회를 제대로 제공받지 못했다. 일찍부터 머슴살이를 하는 등 노동자로 일하면서 고학을 하여 서울대학교에 입학하였다.

 

1950년에 한국 전쟁이 발발했을 때 서울대학교 학생으로 재학 중이었다. 개전 사흘만인 6월 28일조선인민군 서울을 점령하자 며칠 후 인민의용군으로 지원하여 참전하였다. 이를 계기로 월북한 뒤 ! ! 1957년에 제�� 臼 , 제대 후에는 김일성종합대학 역사학부를 졸업하고 함흥시에서 대학 교원으로 근무하였다.

 

1980년대 초반에 전라남도 해안을 통해 공작원으로 남파된 뒤 승려로 위장하여 활동하다가, 1981년 ! 2월에 경상북도 문경시에서 체포되었다. 간첩 수사 기관에서 장기간 조사를 받았으며, 1987년 6월 항쟁 성공 후에야 정식으 로 구속 퓸駭

 

[1] 손성모는 법정에서 간첩 혐의를 부인하고 통일사업을 위해 내려온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후 전향을 거부함으로써 비전향 장기수가 되었다. 총 수감 기간은 만 19년이 조금 못 되어, 비전향 장기수 가운데서는 비교적 짧은 편이다. 수감 생활 후반기에는 신광수와 함께 최후의 비전향 장기수 2인으로 알려져 인권단체가 석방 운동을 벌였고

 

[2], 1999년 연말에 김대중 정부의 특사로 광주교도소에서 가석방되었다.

[3][4] 출옥 후에는 서울 관악구에서 다른 출소 장기수들과 함께 공동 생활을 하였다.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에 의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송환되고 조국통일상을 수여받았다. 송환 후 S! PAN>에 정착하여 2004년 〈화선 당세포〉라는 시를 발표[5]하는 등 조선작가동맹 소속시인 으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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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도가 시민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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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제목 김명국의 5.18남파 당시 증언(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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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들의 일상 생활속에서의 코뮤니케이션과 같다는 욕지거리!!
아따 그라지라잉 수미야~!느그들 홍어들의 일상 대화가 요로코롬 한당가요잉~! 워~메~! 

http://www.pandora.tv/view/lbk1030/60091389/#33970990_new


발정난 암컷 홍어의 발악!(임수경아~ 어쩌냐 다 캡쳐 해놓고 니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는데ㅋㅋ)(홍어법 위반 글)

2020-01-18 18:17:12 | 홍어법 위반 글

 

시비의 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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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잔 술은 건강을 위해서, 두 잔 술은 쾌락을 위해서, 세 잔 술은 방종을 위해서, 네 잔 술은 지랄을 위해서(철학자 에우리피데스). 금주는 나를 아는 세상 모두를 위해서(이외수).임수경 님이 리트윗했습니다

 

임수경 ‏@limsky02 3월 29일

@oisoo 선생님~사랑합니돠~*^^*♥술이좋은요즘입니돠~ㅍㅎㅎㅎ 

(남자여? 여자여? 뭔 지지베 웃음소리가.........)

 

 

흥부의 성의 고래사냥(ホウケイ) ‏@lbk1030 7월 7일

@limsky02 @oisoo 한모금의 대마초는 쾌락을 위하여 두모금의 대마초는 패악질을 위하여,세모금의 대마초는 사이코짓을 위하여,네모금의 대마초는 쌩쥐뢀을 위하여

 

흥부의 성의 고래사냥(ホウケイ) ‏@lbk1030 7월 7일

@limsky02 @oisoo 왼수(외)는 뽕이나 대마초를 더 좋아혀~ 멍청아!
 

"ㅋㅋㅋ입에 걸레를 물고 사시는군요@lbk1030@limsky02 @oisoo 왼수(외)는 뽕이나 대마초를 더 좋아혀~ 멍청아!"

 

 

흥부의 성의 고래사냥(ホウケイ) ‏@lbk1030 7월 23일       

@limsky02 @oisoo 에이~ 이정도 가쥐고 걸레라하면 운동권 쌩쥐들의 주딩이는 뭐라 해야하나?? 사람도 아닌 쌩쥐들한테 존칭을 사용해야하나???그런건 제 정신이 아닌 미친 사람이나 할수있는 말이쥐~~
 

 

13년 7월 23일 - 9:26 PM · 자세히

임수경 ‏@limsky02 2시간  

@lbk1030 Hey man!are you crazy?! Then you have to go a mental institution.Got it!! Try it right now!!Fucy you!!!

 

(I am english kam kam anytime Korean or Japanese only ^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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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같은 쌩쥐들에게 딱 어울리는 말)

 

 

혹세무민(惑世誣民)=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미혹하게 하여 속임

후안무치(厚顔無恥)=뻔뻔스러워 부끄러움이 없음

인면수심(人面獸心)=사람의 얼굴을 하였으나 마음은 짐승과 같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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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은 높아졌지만 상식은 부족하고

지식은 많아졌지만 판단력은 모자란다.

돈버는 법은 배웠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는 잊어버렸고

인생을 사는 시간은 늘어났지만 시간 속에 삶의 의미를 넣는 법은 상실했다.

- 제프 딕슨 - 

 

 

 

 

 

 

 

호남이 자랑하는 세계 최강의 퉁수  

 

 

 

 

아 C발 홍어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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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 번역

 

 

 

니혼고노트라우마데모아루노?코이츠 니혼고데 카이테 아루토 이죠오니 신케이시츠다요네.

(일본어 트라우마라도 있는거냐? 이 지지베 일어로 써져있으면 이상할 정도로 신경질적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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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법이 얼마나 대단한법이길래 조금이라도 홍어들 심기만 건드렸다하면 무조건 홍어법 적용해서 강제 삭제를 하고 그것도 모잘라 

페이스북(원숭이한테 시비 걸다가 3군데) 폐쇄

트윗(원숭이,쥐원이 무생이등등 홍어들에게 시비 걸었다고 2군데 계정 정지)

그것도 모잘라 홍어들 심기를 거스르는 글들을 자주 올린다고 좌음,좌이버 블로그계정 차단에

이젠 MSN 홈페이지의 댓글 달기까지 차단 당하니 도대체 홍어새끼들이 안 퍼져 있는곳이 어디란 말이냐?

온통 홍어 세상이 되어간다!

 

모든곳에서 홍어들을 잡아내어 몰살 시키지 않는 한 통일 대한민국의 평화는 쉽사리 오지 못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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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제목 발정난 암컷 쌩쥐의 발악!(임수경아~ 어쩌냐 다 캡쳐 해놓고 니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는데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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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청자 임수경
일자 2015.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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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듬어 홍어당

에이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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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들의 일상 생활속에서의 코뮤니케이션과 같다는 욕지거리!!
아따 그라지라잉 수미야~!느그들 홍어들의 일상 대화가 요로코롬 한당가요잉~! 워~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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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성접대 

 

 

수경이란 홍어년이 일상에서 입에 담았다하면 태반이 Sex 관련된 막말을 하는것같다.

(뭐 평소 일상이든,정치든 주둥이가 개걸레보다 더럽쥐만....)

 

아마도 이것은 평소 욕구불만에서 나오는 불만의 표출인데 이건 아마도 이북서 받았던 성접대 상대의 테크닠이 남한서 상대한 남자들보다 월등히 뛰어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렇다고 이북을 마음대로 가서 Sex를 할수도 없는것이니 날이 갈수록 불만만 생기다보니 히스테리만 늘어 가는것같다..

역으로 생각하면 수경이 주변 운동권 홍어놈들의 정력이 소리만 꽥꽥 지를줄 알쥐 형편 없으리란 반증이기도하다.

 

 

 


빨갱이년 문근영을.ARABoZA

2020-01-18 17:52:21 | 홍어+5.18폭동 (魟魚 : エイ=全羅道)

나이 들면서 전형적인 홍어형으로 변하는 문근영 면상

 

남평문씨는 문근영의 본관이며, 문재인의 본관이기도 하다.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

홍어가 경상도에 살았다고 신분세탁하듯, 문재앙도 경상도라고 주장하지만 문재앙은  뼈속까지 좆라도인 이유임.

 

문근영 대학입시 당시 뒤통수도.ARABoZA

 

 

문근영의 인기탓에 광주시교육청은 문근영을 독방에 혼자서 수능을 보게 하였고, 수험생과 네티즌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어남.

 

 

수험생 부모들의 요청이 있어 그랬다는 광주시 교육청의 해명에 따라 논란은 잠시 접어두고 문근영은 수능을 무사히 마쳤다.

그러나 수능을 봐서 정시로 당당히 가겠다던 홍어년 문근영.

성균관대에 수시를 지원한 사실이 나중에 밝혀진다.  

수능 점수로 정정당담하게 가겠다고 해놓고 자기 추천전형으로 수시를 지원했던것이다.

결국 특례로 성균관대에 합격을 하였고 연극영화가 아닌 인문학계열로 가게 된다. (그리고 국어국문학과로 배정된다) 홍어년의 뒤통수.

 

그렇다면 문근영의 수능점수는 몇점일까? 

원점수는 300점대 후반에 등급은 언어 3등급 수리 3등급 외국어 4등급 탐구 1144라고 한다.

웬만한 인서울 대학은 갈 수 없는 성적이었음.

 

 

문근영의 집안도.ARABoZA

이적단체 범민련, 문근영 외조부에게 추모시를?평생을 적화통일에 매진해온 류낙진

홍성준 기자  |  blue@bluetoday.net
승인 2013.04.02  
   
 

 
이적단체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이하 범민련)이 2일 빨치산으로 활동해온 비전향장기수 류낙진 사망 8주기를 추모하는 글을 잇따라 게재했다. 

 

 

영화배우 문근영의 외조부로도 알려져 있는 류낙진에 대한 범민련의 추모의 글은 그가 생전에 적화통일 활동에 대한 영향력을 실감케 하고 있다.

 

범민련은 추모사를 통해 류낙진의 정신을 이어받아 적화통일에 매진할 것을 다짐했다. 범민련은 “지금 조국은 한세기하고도 반이 넘도록 진행되어 온 숙적 미국과의 마지막 대결전으로 숨가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면서 “미국은 1950년 전쟁부터 핵을 앞세워 우리민족에게 끊임없이 핵전쟁의 위협을 가해 왔으며, 단 한날 한시도 화약내가 가실 날 없이 북을 상대로 한 핵선제공격훈련을 벌이고 있다”며 미국을 강도높게 비난했다.

 

이어 “수 많은 애국자들이 나라의 자주와 통일의 제단에 자신의 삶을 기꺼이 바쳐 왔던 우리민족의 자주통일역사는 여전히 투철한 애국자, 강고한 실천가, 더 겸손한 활동가, 단결에 능한 일꾼을 절박하게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이적단체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으로 평생을 적화통일에 매진해온 류낙진. 영화배우 문근영의 외조부로 알려져 있다. ⓒ 누리꾼 블로그 캡쳐

범민련은 류낙진의 생전 활동을 “사상과 조직, 신념과 동지애를 한시도 소홀히 하지 않고 그 누구에게나 감화와 설복을 정력적으로 펼치셨다”며 추켜세웠다.

 

또 “살아 있는 사람이 먼저 가신 선배 혁명가들을 추모한다는 것은 단순히 추억의 사진첩을 펼쳐 놓는 것이 아니고 전진과 분발, 혁신과 단결을 위한 교훈과 자각을 곱씹고 결의하는 소중한 계기”라며 2013년을 우리민족끼리의 정신과 원칙, 장엄한 반미투쟁의 대열에 설 것을 촉구했다.

 

박종화 범민련 광주전남연합 부의장은 추모시에서 “민중이 근본인 생활방식과 스스로 규율을 세워 나로부터 실천하는 삶의 근본을 다시 한 번 새겨보는 선생님의 일생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라며 류낙진을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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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배우 문근영과 외조부 류낙진 ⓒ 누리꾼 블로그 캡쳐 

 

류낙진은 6.25남침전쟁이 발발하자 52년 3월까지 지리산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민간 재판소로 이양되면서 5년으로 감형되기도 했다. 57년 출소한 뒤에도 63년 ‘혁신정당’사건, 1971년 ‘호남통혁당재건위’사건, 1994년 ‘구국전위’사건, 2002년 빨치산위령비 비문작성 사건 등으로 처벌을 받는 등 대남적화통일을 위해 매진해왔다.

 

류낙진은 이적단체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으로 활동해오다 사망했고, 외손녀인 배우 문근영의 가족들은 부의금 5000만원을 통일운동에 써달라며 이적단체 범민련에 기부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 저작권자 © 블루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출처 ; http://www.bluetoday.net/news/articleView.html?idxno=3805

 

문근영은 빨치산 빨갱이 통일혁명당 류낙진의 외손녀임.

류낙진은 20살에 남조선로동당에 입당해서 한국전쟁 당시는 전라도 일대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하다가 체포, 출옥, 테러, 반국가 활동으로 다시 체포, 출옥을 반복하다 2005년 사망함.

당시 유가족(문근영가족)은 장례때 들어온 부조금 5천만원을 반국가단체 범민련 남측본부에 기부한적도 있음.

 

문근영 아역스타 당시 인터뷰.

 

요즘 언론이 문근영의 가문을 띄어줄 수록 국민이 궁금해 하는 점들이 있다. 
 
예를 들면, 문근영의 작은 외조부와 문근영의 어머니 성함이 똑같다. 
 
빨치산 류락진은 자기 남동생의 이름을 따서 자기 딸의 이름을 지었다는 말인가?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류락진의 그의 남동생 류선영의 나이차가 무려 26세이다. 류선영의 유일한 작은 외조부가 류선영인데 큰 외조부와 26세의 나이 차이가 난다는 말인가!

그리고 언론은 류선영을 1980년 5월27일 도청을 사수하였던 시민군으로 미화하지만 사실을 그러하지 않다. 
 
문근영의 외조부는 도청 사수 시민군이 아니었는데, 왜 언론이 거짓말을 한다는 말인가? 
 
도청 사수 시민군은 이른바 친일작가라는 김완섭씨였지, 류선영이 아니었다. 
 
그리고, 5.18측의 요청으로 시행되었던 1995년 검찰의 조사에 따르면 류선영은 도청사수 시민군은커녕 시민군도 아니었다. 
 

 

1980년 5월 27일 도청진압작전 때의 시민군 편의 경험에 대해서는 실제로 도청사수 시민군이었던 이의 증언에 의존해야 한다. 
 
그러나, 세간에 알려진 유일한 도청사수 시민군은 김완섭씨이다. 
 
이 경우 문제는 그의 증언의 정확성이다. 김완섭씨는 도청사수 시민군이었기에 5.18측의 대표적 유공자이다. 
 
그러나, 한쪽으로 쉽게 치우치며 과장하는 경향이 있는 그의 증언의 정확도는 과연 얼마인가? 
 
한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 좌익언론이 민주화 투사로 미화하고 있는 도청사수 시민군은 이른바 친일작가 김완섭이었지, 문근영의 작은 외조부가 아니었다.
 

 

여기 그러면 문근영의 작은 외조부는 누구였느냐의 의문점이 있다. 
 
그는 1954넌의 태어났으며, 그때 류락진은 27세의 지리산 빨치산이었다. 
 
'민중의 소리'는 <지리산 대성골에서 열린 '빨치산 추모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류락진의 1954년 회고담을 이렇게 보도한다.

"오늘 우리 지리산의 동지들이 50년이 훨신 넘는 세월을 건너뛰어 여기, 대성골의 칠성봉 아래에 모였습니다. 수많은 해방전사들의 넋을 기리고 그때의 가열찬 해방전쟁의 투쟁을 되새기며 이곳에 서 있습니다. 여기 모인 동지들 중에는 구빨치산 때부터 해방전쟁에 복무했던 동지도 있고 조국해방전쟁 이후 미제와 그 주구들에 대항하여 싸우다가 전략적 후퇴시기에 빨치산 대오에 들어와 활동했던 동지들도 많이 있습니다."


전라도를 대표해 추도사를 낭독한 류락진(76세) 선생은 "박헌영, 이승엽의 종파반당분자들이 심어놓은 차일평과 그 졸당들의 반역행위로 많은 아지트가 파괴되고 미제의 세균전에 의하여 많은 동지들이 재귀열이라는 병으로 죽고 시달린" 조직적 우여곡절과 함께 빨치산 전몰 당시를 회고했다.

"남은 빨치산 대부분이 전사하거나 체포되어 1954년 가을, 지리산은 총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체포된 많은 동지들이 고문과 학대로 죽어나갔고, 그대로 질긴 목숨을 이어온 동지들은 인류 역사에 없는 비전향장기수라는 이름을 달고, 30년 40년을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전향공작이라는 갖은 살인적인 고문과 학대를 이겨낸 동지들은 조국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면, 그해 1954년에 남동생 류선영이 태어난 셈이니 1954년에 대한 그의 회고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이 29세에 얻은 동생과의 관계는 외형적으로는 형과 동생의 관계라기보다 부자지간의 관계로 보인다. 
 
류락진이 빨치산으로서의 첫 생애를 끝냈을 무렵, 동생 류선영은 빨치산이 사라진 조국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 
 
문제는 그 후 50년이 지난 2004년에도 류락진은 조국이 북조선이라고 말하고 있다는데 있다. 
 
그에게 남동생의 조국은 어디였는가? 그에게 외손녀의 조국은 어디였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 여하에 따라 문근영이 류락진이 관계했던 통일단체(이적단체)에 기부한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다. 

실제로는 류선영이 도청사수 시민군은커녕 시민군도 아니었음에도 좌파 언론이 그를 도청사수 시민군으로 미화할 때 그 의미는 통일운동가 류락진의 정신을 이어받은 시민군이 된다. 
 
그러나, 그런 미화는 류락진이 자기 동생 류선영의 조국을 어디로 보았느냐의 질문으로부터 독립될 수 없다. 사실, 한국전 이후의 세대는 한국전이 종전되었기 때문에 태어날 수 있었다. 류선영 역시 한국전이 종전되고 빨치산이 사라져 치안이 안정된 조국에서 1954년에 태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실탄 30만발을 보유한 무장시민군이 하루 만발씩 아무데나 쏘아대어 광주의 치안이 불안하던 때에 사망하였다. 그러면 무엇이 그의 사망사고 원인이었는가? 
 

 
문근영이 거액을 기부하던 단체도.ARABoZa
 

 

북한과 싱크율 100%를 보이는 주장을 하고 다니는 이적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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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뒤졌을 때 범민련 남측본부 ㅋㅋㅋ

 

 

 

이제 빨갱이년 문근영은 그만.ARABoZA
 
 

[출처] 빨갱이년 문근영을.ARABoZA
[링크] http://www.ilbe.com/11059513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