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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7 16:19 ハングル1

2014-02-17 16:19:19 | Weblog
2014.02.17 16:19


故박용하 유족 "매니저, 法심판대 세운 이유는"(인터뷰)

2010년 6월30일 박용하 사망~2014년 2월13일 前매니저 집행유예까지

서울 잠실동 요나컴퍼니 사무실에 걸려있는 고 배우 박용하의 사진들 /사진=문완식 기자





고 배우 박용하의 전 매니저 A(33, 여)씨가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사기미수, 절도 혐의로 1심에서 징역 8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지난 14일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지난해 11월 15일 열린 1심 결심공판에서 법정구속, 서울구치소에서 3개월간 수감된 지 3개월만이다. 재판부는 원심의 판단이 정당하다고 보고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했으나, 사기가 미수에 그치고 훔친 물품을 모두 유족에게 반환한 점을 참작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A씨는 지난 2010년 6월 30일 박용하가 사망하자 일주일 후 일본 도쿄의 한 은행에서 자신이 갖고 있던 박용하 도장을 이용해 예금청구서 2장을 위조, 2억4000여만 원을 인출을 시도하고, 고인이 설립한 기획사 사무실에서 고인의 사진집 40권과 2600만원어치의 음반, 사무실 비품, 카메라, 사진 등을 훔친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A씨가 예금청구서를 위조하고 인출하려고 한 금액 등을 고려할 때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며 "고인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절망감에 빠진 유족에게 또 다른 고통을 안겨줬다"고 말했다. 이어 "A씨가 충분히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았고 직을 유지하기 쉽지 않게 된 점, 사기가 미수에 그치고 절도한 물품을 모두 반환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실형 유지는 가혹하다"며 집행유예를 선고 이유를 밝혔다.

A씨에 대한 집행유예가 선고된 날 저녁 서울 잠실동 요나컴퍼니에서 고 박용하의 매형 김모씨와 과 누나 박모씨를 만났다. 두 사람은 1년이 넘는 재판 기간을 마무리하면서 할 얘기가 많아 보였다. A씨에 대해서는 "안타깝다"고 하면서도 집행유예로 끝난 법의 심판을 못내 아쉬워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지난 2010년 6월 30일 박용하가 숨진 이후 이날까지 두 사람이 왜 1년 반이 지난 시점부터 법의 심판을 받으려했는지를 말했다. 인터뷰는 2시간에 걸쳐 이뤄졌다. 김씨와 박씨의 주장을 가감 없이 옮긴다.

"범행 후 회사 자료를 가지고 태국·사이판으로 한 달간 잠적"

"용하가 갑자기 그렇게 되고 불과 일주일에서 보름 사이에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일이 벌어졌다. A씨가 저지른 일들을 저나 집사람이 거의 알고 있었지만 그 때는 경황이 없었다. 용하가 그렇게 떠났는데 공개적으로 언론에 알리면서 또 한 번 고인의 이름을 나오게 하는 게 맞는지 고민했다. 용하도 그렇게 됐고, 가족들도 당시 힘들었다. 아버지도 호스피스 병동에 계신 상황이셨고.

김씨와 박씨는 사실 A씨를 법의 심판에 올릴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박용하 때문이었다. 그런데 박용하 사후 A씨가 주위에 하는 말들이 두 사람을 격분케 했다. 고 박용하와 가족의 명예가 걸린 일이었기 때문이다.

-김: A씨가 2011년 7월에 모 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가 한 아이돌그룹의 매니저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주변인들에게 자기가 저지른 일을 정당화하기 위해서인지 사실이 아닌 얘기를 하고 다니더라. 심지어 가족들 관련 이야기도 사실이 아닌 일을 사실인양 떠들고 다녔다. 자기는 아무 잘못이 없고 자기는 매니저의 권리로서 했는데 가족들이 자기가 횡령, 절도를 했다고 하고 다니면서 자기를 괴롭힌다는 등 말도 안 되는 많은 얘기를 하고 다니더라. 참 심각한 상황이었다.

박씨는 "장례식장에서부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우리는 나쁜 사람이 돼 있었다. 그때는 A씨가 하는 행동들과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차차 알게 됐고 1년여 후부터는 더 자세히 알게 됐다. 그 1년여의 기간 동안 A씨를 여러 번 만났는데 전혀 반성이나 미안한 마음은커녕 너무나 당당했다"고 했다.

김씨와 박씨는 2011년 11월 검찰에 진정서를 냈고, 이후 A씨에 대한 검찰의 조사와 기소, 재판이 진행됐다. 그러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김: 2010년 6월 30일에 박용하가 사망하고 7월 7일에 A씨가 일본에 가서 횡령 미수를 했다. 법원에서는 2억4000여만원(1800만엔)만 다뤄졌는데, 그 외 6000여만원(400만엔) 인출한 게 또 있다. 이 400만엔은 A씨 명의의 통장에 있는 돈이었는데 실제로는 회사자금으로 회사에서 관리하던 돈이다. 그걸 사건이 벌어진 7월 7일 같은 날 인출해갔다. 회사에 관여를 안했던 우리가 모를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나중에 일본 회사와 일처리 하는 도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됐다. 한 달 후에 태국에서 돌아온 A씨를 만나 그 얘기를 하니 용하가 세상 떠나기 전 '그거 너 가지라'고 했다고 하더라. 그래서 자기가 가져갔다고 했다.

-박: 그 돈은 회사 돈 아닌가. 8월 중하순께 돌려받았는데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기의 돈인데 준다고 하더라. 뿐만 아니라 A씨가 가지고 가서 돌려주지 않았던 회사 법인도장, 법인인감, 통장 등을 태국에서 돌아온 후에야 돌려받을 수 있었다.

김씨는 "미수에 그친 2억 4000만원, 1800만엔은 1엔 단위까지 정확히 적어 은행에 냈을 정도로 모든 걸 가져가려했다"라며 "그런데 우리가 마음 아픈 것은 그 2억4000만원 보다 다른 것에 있었다"고 했다.

"절도 물품, 돌려받은 것 아니라 우리가 찾아온 것"

-김: 7월 14일에 A씨가 오후 3~4시에 서울 청담동 사무실에 와서 난리를 치고 나간 후 오후 7시쯤에 다시 들어와 한 5시간에 걸쳐 A씨, B씨, C씨, D씨 등 4명이 사무실 집기와 회사 서류 등을 가져갔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인데 수십 차례에 걸쳐 5층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물건을 나르는 모습이 CCTV에 찍혔다. 박스로 30박스가 넘는다. 우리가 분노하는 건 이때 용하의 CD나 화보집, 트로피 같은 유품들까지 싹 가져간 것이다.

-박: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 2개를 버렸는데, 회사서류를 파쇄한 거였다. CCTV를 확인하고 쓰레기장에서 가져왔다. 이건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두 사람에 따르면 A씨는 범행 이후 자기 밑에서 매니저 일을 하던 B씨와 함께 절도한 회사의 자료들을 가지고 한 달 동안 태국과 사이판으로 잠적했다.

-박: 이후에 메일로 태국에서 연락이 왔다. A씨와 B씨의 퇴직금 달라고. 그 메일이 오기 전에 다른 직원들은 퇴직금 다 정산을 해줬으니 A씨도 퇴직금 당연히 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지만 여러 가지 사건을 저지른 상태에서 어찌 그렇게 당당히 얘기할 수 있는지. 계좌이체 해달라는 데 얼굴보고 주겠다고 받으러 오라고 했다. 며칠 후 B씨가 본인의 퇴직금을 달라고 왔더라. 퇴직금을 지급한 후 가져간 회사의 자료를 내놓으라고 했다. 그랬더니 회사 그 자료가 A씨의 집에 있다고 해서 B씨와 함께 A씨의 집에 갔다. 그 집에 가니 같이 절도를 한 D씨가 그 집에 있었고 기가 막히게도 회사에 있던, 사라진 용하의 물건이 거기에 다 있었다. 변호사에게 물어보니 우리 물건이니 자력구제로 가져올 수 있다고 해서 찾아왔다. A씨가 자기가 유족에게 돌려줬다고 하는데 그렇게 우리가 찾아온 것이다. 아직까지도 A씨가 왜 물건을 가져갔는지, 짐작은 가지만, 직접 설명은 못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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