ぱくぱくるんるんぱくぱくるんるん 海外ドラマ & 日々雑記 

                時々、時の旅人。ぱくぱくるんるんのぱくはぱくよんはのぱく。日記兼メモのようなブログ。

ジソプの記事

2017-05-19 23:06:32 | 俳優・声優・アイドル・歌手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420&aid=0000000024

4枚目の写真の下からの文章


승헌 형과 함께 고마운 친구가 또 한 명 있다. 아니 이젠 정말 미운 친구고 너무 그리운 친구다. 뭐 지금도 자주 그 친구를 보러 간다. 그땐 꼭 나 혼자 간다. 그 녀석이 정말 좋아했던 게 있는데 그걸 꼭 손에 쥐고 간다. 그곳에 가면 그 녀석은 항상 웃는 얼굴로 날 반겨 준다. “이제 왔냐? 오늘은 좀 늦었다. 요새 새 영화 개봉했다며?” 얼마 전 ‘회사원’ 개봉 뒤에도 손에 그 녀석이 좋아하던 그걸 사들고 찾아 갔었다. “용하야 잘 지내지?”



녀석과의 첫 만남은 1998년 이었다. 녀석이 드라마 ‘보고 또 보고’로 큰 인기를 끌던 당시였다. 난 그냥 풋내기 신인 정도. 당시 경주에서 열렸던 고 ‘앙드레 김’ 선생님의 패션쇼에 용하와 난 모델로 참가했다. 내성적인 성격의 나와는 달리 용하는 해피 바이러스 그 자체였다. 먼저 내게 다가와 인사를 건네왔다. 서로 동갑인 것을 알았다. 그냥 녀석의 그 활달함에 매료됐다. 그렇게 이유가 없이 친해졌다.



누구에게나 잘 인사하고 웃는 얼굴로 대하는 용하와 낯을 많이 가리고 말수도 적은 내가 친하다는 점에 주변에선 참 의아하게 보는 시선이 많았다. 지금 내가 생각해봐도 그랬다. 그만큼 용하가 날 많이 챙겨주고 아껴줬다.



녀석이 하늘로 그렇게 떠나간 그 날 바로 전까지 우린 친형제나 다름없었다. 한때 이 생활에 회의감을 느끼고 고민하며 힘들어하던 내게 용기를 북돋아 준 것도 녀석이었다. 한편으론 내겐 애인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녀석이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 나하고도 아는 사이였다. 그런데 내 친구 용하가 여자친구와 헤어질 위기라니. 그대로 있으면 안되겠다 싶어 내가 나서서 그 여자 친구를 설득했다. 그렇게 다시 화해의 자리를 주선해줬다. 나중에 내게 고맙다고 하면서 웃는 녀석의 얼굴을 보니 나 역시 흐뭇했다. 그냥 녀석이 웃는 게 좋았고, 나 역시 그런 모습을 보는 게 좋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런 녀석이 떠나갔다. 지금도 믿겨지지 않는다. 아니 믿기 싫었다. 장례식장에 오자 사진 속에서 웃는 녀석의 얼굴에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 너무 미안했다. 그렇게 힘들어 하는 줄 몰랐단 사실에 나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자 녀석이 너무 야속하기도 했다. 내게 힘들다는 말 한마디만 해주지. 솔직히 그렇게 친하게 지내면서 우린 서로의 가족 관계라던지, 개인사에는 별다른 얘기를 주고받지 않았다. 그냥 그랬던 것 같다. 만나면 웃고 떠들고 정해진 얘기만 하면서 서로에 대해 다 안다고, 정말 친한 친구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고 싶은 친구다. 그리운 친구다. 정말 다시 한 번만 볼 수 있다면 좋겠다.



용하야, 잘 지내지?





スンホン兄と共に有難い友達がまた、1人いる。 いや今は本当に憎い友達でとてもなつかしい友達だ。 何今でもしばしばその友達を見に行く。 その時は必ず私一人行く。 その野郎が本当に好きだったことあるのにそれを必ず手に握って行く。 そちらに行けばその野郎は常に笑顔で日歓迎してくれる。 “もうきたか? 今日はちょっと遅れた。 この頃新しい映画封切りしたって?”この前‘会社員’封切りの後にも手にその野郎が好きだったそれを買って探して行った。 “ヨンハ良く過ごすだろう?”



野郎との初めての出会いは1998年だった。 野郎がドラマ‘報告また会って’で大人気を呼んだ当時であった。 私はそのまま青二才新人程度. 当時慶州(キョンジュ)で開かれたコ‘アンドレ海苔’先生のファッションショーにヨンハと出たモデルで参加した。 内省的な性格の私とは違って腕が良いハッピーウイルスそれ自体であった。 先に私にタガワ挨拶をしてきた。 互いに同い年であることを分かった。 そのまま野郎のその闊達さに魅了された。 そんなに理由がなしで親しくなった。



誰にでもよく挨拶して笑顔で対するヨンハと顔をたくさん分けてしまうことも少ない私が親しいという点に周辺では本当にいぶかしく見る視線が多かった。 今私が考えてみてもそうした。 それだけヨンハが私をたくさん用意して大切にした。



野郎が空にそんなに離れたその日すぐに前まで私たちは実の兄弟に違わなかった。 一時この生活に懐疑感を感じて悩んで苦しがった私に勇気を奮いたたせたのも野郎だった。 片方では私には恋人のような存在でもあった。 こういうこともあった。 野郎がつきあったガールフレンドと別れる危機に置かれていた。 那覇高も分かる四であった。 ところで私の友人ヨンハがガールフレンドと別れる危機だなんて。 そのままいてはいけなかったと思って私が立ち上がってそのガールフレンドを説得した。 そんなに再び和解の席を斡旋した。 後ほど私に有難いといって笑う野郎の顔を見るので私やはりほほえましかった。 そのまま野郎が笑うのが良かったし,私やはりそのような姿を見るのが良かったようだ。



ところでそのような野郎が離れた。 今でもミッキョジジしない。 いや信じ難かった。 葬儀場に誤字写真の中で笑う野郎の顔に頭が白く変わった。 とても申し訳なかった。 そんなに大変がること分からなかったという事実に私自身を許すことはできなかった。 時間が過ぎるとすぐに野郎がとても薄情なこともした。 私に大変だという言葉一言だけするだろう。 率直にそんなに親しく過ごして私たちはお互いの家族関係とか、個人史には特別な話をやりとりしなかった。 そのままそうしたようだ。 会えば笑って騒いで決まった話だけすればでお互いに対して皆知ると、本当に親しい友達だと勘違いしていたのだ。 見たい友達だ。 なつかしい友達だ。 本当に再び一度だけ見ることができるならば良いだろう。



ヨンハ、良く過ごすだろう?

















最新の画像もっと見る

コメントを投稿

ブログ作成者から承認されるまでコメントは反映されませ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