ジグフリード

真実を愛する心

絡み

2021-03-30 13:17:39 | Unknown Knowns

¶1 いつも残っている時間が多くないと思って生きていました。 私を取り巻くすべてが私の生存に友好的なわけではないのです。 ただ、このように言っておきます。 それで実の母親を探す作業と並行して、普段必ず残したかった文を書くことに専念していました。 この二つは内容は別物でしたが、真実発見という共通分母があり、お互いに役に立っている側面もありました。 人文社会のほうでは、先ほどブログや以前出版した本である程度は整理していたので、2018年半ばからは、つまり本格的に母親の探索を始めてからは科学分野に集中していました。 さっき「共通分母」について言及しましたが、それは二つの共通した属性に起因します。 すべて隠そうとする勢力があって、真実が遺伝子型ならそれを隠すために人為的に作り出した表現型があります。 組織の反対概念として、どこかに属していない個人が、その中身を見極めることは不可能に近いのに、唯一の方法は表現型に見られる予想できなかった変異を逆追跡して入ることです。 例えば遺伝子が誤って撒いた自己矛盾に、そのコードの位置は現れますからね。 実際、このように「逆に」に入る方式は、彼らが嘘を構成する方式とも似ているという点で、造物主の平衡原理を再び思い出したりもします。

¶2 時間があまりなくても、時には具体的な事例に対する緻密な論証よりも、考えてみるようにする文句を提示することが大衆的にはより効果的だと思います。 これは、これまでの著述や出版作業を通じて悟ったことでもあります。 かがくは「ある時点」から数学の言語で記述されるようになりました。 それで、ある有能な数学者の言葉を紹介してみます。

  • 1910年の春の日,ベルギーの実業家エルネスト·ソルベイ(Ernest Solvay)は,科学学術会議を組織するアイデアを思い出しました。 このアイデアの背景は、やや「複雑(circuitous)」で「奇怪(bizzare)な」ことでした。 ソルベイはソーダ製法を開発して大金持ちになった人でもありました。 この商業的成功が彼に自身の能力に対してかなりの自信を与え、その後、科学に関心を持つようになり、それで彼は物理学にも挑戦してみるようになりました。 ソルベイは物質と重力に関する理論を作り上げたが、もちろん科学と実在(reality)とはほとんど関係のないものでした。 しかし、彼は非常に裕福で、人々は、さらには彼の話がでたらめだと知りながら、彼の話を聞きました。 ドイツの科学者ヴァルター·ネルンスト(Walther Nernst)はソルベイに、このような提案をしました。 彼が最高の物理学者たちのための会議を開催して、彼らに自分の理論を発表するようにと言います。 すると、人々が彼の理論に注目するでしょう。 ソルベイがこの提案を受け入れて、ソルベイ会議が誕生したのです。 最初の「ソルベイ会議(Conseil Convay)」が1911年、ベルギーのメトロポールホテルで開催されました。*


機会があれば、次のポスティングでこのテーマに内容を加えましょう。

* Amir D. Aczel, Entanglement: The Greatest Mystery in Physics, Four Walls Eight Windows: New York, pp. 109-110, 2001.

 

¶1 항상 남아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저를 둘러싼 모든 것이 저의 생존에 우호적인 것은 아니거든요. 그저 이렇게만 말해두죠. 그래서 친어머니를 찾는 작업과 병행해 평소 꼭 남기고 싶었던 글을 쓰는데 전념했었죠. 이 둘은 내용이 별개였지만 진실발견이란 공통분모가 있어 서로에 도움이 되는 측면 또한 있었습니다. 인문사회쪽에선 앞서 블로그에 올린 글이나 이전에 출간한 책에서 어느 정도는 정리한 상태여서, 대략 2018년 중반부터는, 그러니까 본격적으로 어머니에 대한 탐색을 시작한 때부터는 과학분야에 집중했습니다. 좀 전에 "공통분모"를 언급했는데요, 그 것은 두 곳의 공통적인 속성에 기인합니다. 모두 감추려는 세력이 있고, 진실이 유전자형이라면 그것을 가리느라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표현형이 있습니다. 조직의 반대개념으로서 아무런 곳에 속해 있지 않은 개인이 그 속살을 알아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데, 유일한 방법은 표현형에서 보여지는 얘기치 못한 변이를 역추적해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를 테면 유전자가 실수로 뿌려놓은 자기모순에 그 코드의 위치가 드러나는 법이니까요. 사실 이렇게 '거꾸로' 들어가는 방식은 그들이 거짓을 구성해 내는 방식과도 비슷하다는 점에서, 조물주의 평형원리가 다시 생각나기도 합니다.

¶2 시간이 많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때론 구체적인 사례에 대한 치밀한 논증보다, 생각해 보게끔 하는 글귀를 제시해 보이기는 것이 대중적으로는 더 효과적이란 생각도 해 봅니다. 이건 그간의 저술이나 출판작업을 통해 깨달은 바이기도 하고요. 과학은 '어느 시점'부터 수학의 언어로 기술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한 유능한 수학자의 글귀를 소개해 봅니다.
 

  • 1910년의 어느 봄날, 벨기에의 기업가인 에르네스트 솔베이는 과학 학술회의를 조직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립니다. 이 아이디어의 배경은 다소 복잡하고(circuitous)하고 기괴한(bizzare) 것이었지요. 솔베이는 소다 제조법을 개발해 거부가 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이 상업적 성공이 그에게 자신의 능력에 대해 꽤 큰 자신감을 주었고, 그 후 과학에 관심을 가지게 했으며, 그래서 그는 물리학에도 도전해보게 되었습니다. 솔베이는 물질과 중력에 관한 이론을 만들어 냈는데, 물론 과학과 실재(reality)와는 거의 상관없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그는 굉장히 부유해서 사람들은, 심지어 그의 말이 엉터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의 말을 들었습니다. 독일과학자인 발터 네른스트는 솔베이에게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그가 최고의 물리학자들을 위한 회의를 개최해 그들에게 그의 이론을 발표하라고요. 그러면 사람들이 그의 이론에 주목할 것이라고요. 솔베이가 이 제안을 수용해 솔베이 회의가 탄생된 것입니다. 첫 번째 솔베이 회의(Conseil Convay)가 1911년 벨기에의 메트로폴 호텔에서 개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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