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의 장승(長丞)
한국에는, 일본 "오지조우산"이나 "오시라사마"와 같은, 장승이라 불리는 돌이나 나무로 만들어진 조각이 마을 지킴이로서 경계선등에 세워져있습니다. "天下大将軍"나 "地下女将軍"등이라고 쓰여져 있어, 대부분 솟대라고 하는 가지에 앉아있는 새 모양의 조형물과 함께 세워져있습니다. 이것들은 매년 새로 만들어지고, 그때마다 제사가 실시됩니다. 또, 장승은 길잡이 역할을 위해 세워져 있는것도 있습니다.
이상은 대학 강의나 국립민족학박물관의 영상등으로 배운 제 지식입니다.
이러한 풍습을 보고싶어서, 다시 한국에 갔다왔습니다. 하지만, 제가 매번 갔던 부산 부근에는 이러한 장승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정보를 들었기에, 어렵게 인터냇으로 찾은 전라북도 남원시를 가기로 했습니다.
일본 국립민족학박물관(오사카후 스이타시)에 전시된 장승
전라북도 소책자
남원시 소책자(빨간 동그라미와 일본어, 그리고 A는 운영자가 표지한것 )
실제로 간곳은 실상사(實相寺)와 그곳에서 좀더 동쪽인 하동시 마천 근처 백송사(碧松寺), A부근 이라고 생각되는, 인월(引月)부터 실상사까지 가는길에 있는 장항 장류장과, 인월 장류장 사이의 한길입니다.그곳에 세워져 있던 각각의 장승을 본후, 이 지역의 장승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실상사(2013.12.26,27)
첫번째로 실상사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석장승(石長丞)
위치는 아래에있는 손으로 그리는 그림을 확인하십시오. 이들 석장승은 18세기에 만드러졌을 것이라고 합니다.
장승이 한분더 있었지만, 흥수에 떠내려 갔다고 합니다.
이들 장승은 해달교 옆에 있습니다. 이런 돌로 만든 장승은 석장승(石長丞) 다고 해있습니다. 맞은편 찻집 분에 의하면 석벅? 석박? 정확한 발음을 잊어버렸지만, 별명이 있다고 합니다. 일반적인 남녀 한쌍의 인상과 달리, 다 남성을 본떠있습니다.
석으로 만들기 때문에 매년 새로만들 수 없어서, 200년이상 세월이 지나, 중요 문화재 지정을(국가? 도? 시?) 받았습니다. 왼쪽밑의 사진은, 참고한 사이트에 의하면 ”擁護金紗逐鬼将軍"이라 쓴다고 했으나, "逐鬼将軍"밖에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이렇다고 씌면, "金紗"는 스님의 옷이라고 생각되어, 이장승은 불교를 지키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도로쪽 사원쪽 사원을 마주보고 오른쪽 사원쪽 사원을 마주보고 왼쪽
나무 장승
일반 나무 장승은 사진 중앙위 석장승의 옆에 남아있습니다. 앞서 기술한 사이트로 확인한 2011년에 찍은사진에는 솟대라고하는 가지에 있는 새의 조형물과 채색 하지 않은 장승이 네분 있었지만, 지금은 솟대가 없어서 장승 두분이 새로만들어져, 착색되어있습니다.
밑 사진 윈쪽은, 생명살림라고 씌어있어서, 불교적한 말입니다.
중앙사진의 장승들은. 2011년 당시에는 없었던 장승이여, 현재는 새로 세어진 상태입니다. 그물과 그물코라고 쓰여져 있으며, 불교 세계관을 표합니다.
오른쪽 사진은 천하똥장군이라고 쓰여 있는데, 똥은 大아니라 太를 의미해고, 한자로 쓰면 "天下太将軍"이 어우리지 않을까 합니다. 이 전에는.의전에는 지하흙장군"地下土將軍"이라고 쓰여진 장슬과 함께 세여져 있어, 종래 의 장승과 가까운 장승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생면살림 그물 그물코 천하똥장군 天下太将軍
그런대, 이들 4체 나무장승 중에 3체를 만드셨다고 하시는 사람을 만아서 이야기를 듣는 기회가 우연히 있었습니다. 이들 앞에서 들은 것이 안이라서, 어누 장승을 만드신가 모릅니다. 그분의 이야기 의해서, 이들 장승은 매년 갈라만들지 않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을을 지키는 귀신이라고 인식을 가지셨습니다. 장승의 제사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은 안 했습니다.
실상사의 가람배치과 장승의 위치
장승과 실산사의 가람배치도(각도, 축척률, 방향등을 되는대로 썼습니다.)를 봐가곘습니다.
도의 위어른쪽에 있는 극락전(極樂殿)과 따른 가람 사이에 시내가 훌립니다. 극락을 표형하는 건물을 서쪽에 놓아서, 천나 못의 번대쪽에 다른 건물을 배치하는 것은 일본에도 많이 있습니다.
극락전(極樂殿)
그러면, 이렇게 가람배치중에 장승은 어떻게 역할합니까?
버스장류장을 내리면, 서쪽에 해탈교(解脫橋)가 보입니다. 이 다리의 동쪽이 현셰이어서, 해탈교를 건너고 사원에 가는 것으로, 불님의 셰상에 가는 것을 의미하는 가람배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해탈하는 다리의 옆에 석장승이 세워서, 이 옆에서 나무장승도 있습니다.
막힘, 실상사의 장승은, 마을의 경계의있는 장승라고 하는 것보다 이 세상과 불님에 세상의 경계에 있는 장승라고 샌각됩니다.
해탈교 이 세상쪽(동쪽)에서. 윈쪽 녹색 테속에 1체 석장승. 해탈교 위에서.
해탈교 불님의 세상(서쪽)에서 석장승과 나무장승이 여기 옆에 있습니다.
삼중석탑, 이 건너편에 부광전.
●벽송사(碧松寺)입구 장승
남원시의 바로 동쪽 하동(河東)시 마천 버스터미널의 가까운 산위에 벽송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원에 가는 도중에 비교적 새로운 나무 장승(사진 밑왼 밑가운데 )이, 사원 건물들이 있는 동쪽에 어지간해 어래된 나무장승(사진 밑오른쪽)이 남아 있습니다. 어래된 장승은 지은 지붕나로 보존되어서, 뭔가 문화재지정을 받았어 있는 것 같아서, 유간스럽지만 제가 찍은 해설반 사진은 핀트가 안 맞기 때문에, 이해할수가 없었습니다. 1체는 파선이 많습니다. 이들도 실상사 처럼 사원의 입구에 세워서, 성질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새로운 장승이 아마, 어래된 장승을 복원된 물이라고 샌각되어서, 그것은, "금호장군(禁護將軍)""호벙대장군(護法大將軍)" 이라고 각자가 씌어서, "호벙"이라는 말은대로 불방을 지키는 장승이라고 말 할 수 있겠습니다.
호벙대장군(護法大將軍) 금호장군(禁護將軍) 어래된 남장승
●인월-마향간 길에 있는 장승들
안월에서 마향까지의 길에 장승들이 몇 채 있었습니다. 장승이 갈림길나, 길옆에서 새로운 벤치가 만들어될 때도 세우다고 진안군에 사시는 분에서 들었습니다. 밑 사진의 3 체(사실은 더 있다고 모릅니다.)도 가는 갈림길이 있는 것애서 세웠습니다. 그래서 갈림길이 있어서 만들어된다고 샌각할 수가 있는데, 바로옆에서 약수사(약수암)의 간판이 있는것이 마움에 걸립니다. 하지만, 그 간판의 앞에 가도 사원이 없어서, 지도로 확인했어도, 그 갈림길의 앞에 없었습니다.
약수사의 간판과 남장승들
밑 사진들은 공원에 있는 석장승들입니다. 새롭다고 보였습니다. 십이지의 방각을 가리키는 석반을 장승?이 버텨 있습니다.
그런대, 매우 흥미로운 것은 실상사에 딸린 백장암까지 1km 다고 한 간판의 옆에 있는 남장승 입니다.
어쩌면, 머리에 용이 있습니다. 그리고 "대방사십팔방대장군(帶方四十八方大将軍)"이라고 쓰여 있는문자. 대방(帶方)는 남원에 대방군의 군치가 있던것이 유래된다고 샌각할 수가 있어서, 그 지역을 의미되겠습니다. 사십팔(四十八)는 보살사십팔원(菩薩四十八願)등 、불교에 상관있는 수자이어서, 그도 불교의 영향을 볼 수 있습니다.
백장암까지1km
머리위 용. 이거도 불교적. 帯方四十八方大将軍(체방48방대장군)
●まとめ 引月~実相寺、碧松寺の長丞
인월-실상사,벽승사의 장승은 크게 두장류에 나눌 수가 있겠숩니다. 하나가 길 갈리는 곳에있는 장승입니다.
그 위에 하나가 사원와 상광이 많이있는 호벙장승(護法長丞)다고 할 수 있는 장승입니다. 그 장승도 용두장승등 길을 갈치는 장승나, 이세상과 저세상의 갈리는 곳의 있는 장승입니다.
이 번에는 장승제사는 거의 알 수가 없었지만, 장승도 신물습합이 됐은것을 알게됀것은 흥미가 많이 있는 발경입니다.
●편집후기●
새해 처음에 발간입니다(일본어판). 비교적 한국말을 좋게 하게 됀 고도 있어서, 이 번 한국여핸도 짧지만 충실하던 여헨이 됐읍니다.
이 번에도, 현지에 살아있시는 분들에게서 신세를 많이 받았습니다. 진안궂 탑사 통약의 분, 실상사 승님들나 스타프의분들, 버스의 타는법나 내리는법을 갈치신 분등, 마니 도움을 받았습니다.
정치적한 대립도 있는 것 같지만, 대립의 분의기로 훌려서 이우 나라끼리가 이해를 거부하는 것은, 더없이 어리석음이라고 진하게 느꼈읍니다.
요즈음에는 월관"제(祭)"를 읽은다고 햇서 말씀을 받는 것도 늘어서, 아크세스 회수도 좀저럼 늘어고 있게 같습니다.
얼해도 1달 마다 1 번 속도를 게속할 수가 있면 됀다고 샌각해 있읍니다. 얼해도 잘 부탁 드립니다.
今回もまた、現地の方に大変お世話になりました。鎮安郡塔寺の通訳の方、実相寺前の喫茶店の方、実相寺の僧侶やスタッフの方々、バスの乗り方下り方を教えてくださったマチョンターミナルで乗り合わせた方など、本当にお世話になりました。
政治的な対立もあるようですが、対立の気運に流されて隣国同士の理解を拒むのは、愚の骨頂であると身にしみて感じました。
最近は、月刊「祭」見てると声をかけてくださることも増え、また、アクセスの数も少しづつふえてきているようです。
今年も、月1回のペースを死守できればと思っております。本年も何卒よろしくお願いいた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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