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重県木本で虐殺された朝鮮人労働者の追悼碑を建立する会と紀州鉱山の真実を明らかにする会

三重県木本で虐殺された朝鮮人労働者の追悼碑を建立する会と紀州鉱山の真実を明らかにする会

「国家が殺した民間人、なぜ遺族が遺骸発掘をするのか」

2017年03月24日 | 韓国で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02108&PAGE_CD=N0002&CMPT_CD=M0112
「オーマイニュース」 17.02.26 16:49 最終更新17.02.26 18:13  文: シムギュサン
■国家が殺した民間人、なぜ遺族が遺骸発掘をするのか
 慶南晋州龍山とうげで遺骸発掘を開始...政府、加害者ではなくむしろ「英雄」あつかい

【写真】25日、慶南晋州龍山とうげで掘り出された民間人の犠牲者の遺骸。 ここでは、1950年7月、晋州地域の保導連盟員と晋州刑務所に収監されていた受刑者が殺害され埋葬された。 ⓒシムギュサン
【写真】晋州市龍山とうげの民間人遺骸発掘現場。25日午後、犠牲者のものとみられる眼鏡が発見された。 ⓒシムギュサン

 いま慶南晋州龍山とうげでは、遺骸発掘が活発におこなわれている。 ここでは、1950年7月、晋州地域の保導連盟員と晋州刑務所収監受刑者が殺害され埋葬された。
 2014年の第一次発掘の結果、近くの穴ですくなくとも39人の遺骸(遺品90点)が発掘された。
 去る24日から始まった第二次発掘は、第一次発掘地点から20メートル下方で開始された。25日に発掘された遺骸の状態は悲惨だった。 傾斜が急な山のふもとの約30センチ土中に遺骸が埋蔵されている。 ほとんど腐ってなくなっている。頭部の骨は部分的に、重なっている。殺害後、むぞうさに放り込まれためだ。
 “穴もほらず、殺してそのままにした。銃殺後、遺体を薪を積み重ねるように積みあげたあと、土をおざなりにかけた”という当時の証言とも一致する。
 遺骸といっしょに出土した白いボタンや眼鏡などは、ここで犠牲になった人びとが保導連盟員であったことを推測させる。文様があるバックルも発見された。
約横11メートル、縦2.5メートルの二次発掘地には、すくなくとも数十人が埋葬されていると推定される。

★報告書 “近くの谷の5か所で718体埋葬”

【写真】‘韓国戦争期民間人虐殺遺骸発掘共同調査団’所属のボランティアが晋州龍山とうげ(第四次)で遺骸発掘作業をしている。共同調査団は、2014年から毎年、遺骸発掘作業をしている。 ⓒシムギュサン

 これで終わりではない。龍山里の谷の5か所に718体の遺体を埋めたという調査報告書があるからである。真実和解委員会は、2009年の晋州文山邑チンソンとうげで、あわせて111体の遺骸を発掘した。 近くの馬山鎮田面艅陽里サンテ谷でも、すくなくとも数百人余りが埋蔵されていることが確認された。
 慶南晋州のほかにも、全国の数百か所の山中のどこかに、鉱山の地下に、犠牲者の遺骸が太陽の光を見る日を待っている。
 1950年、戦争が勃発すると、内務部治安局は、全国道警察に保導連盟員、および要視察人の一斉検挙を指示した。 田畑で働いていた農夫がズボンと袖をまくりあげたまま連行され銃殺された。人民軍に同調する恐れがあるという理由からであった。 刑務所収監者たちも同じ理由で不法に殺害された。
 保導連盟は‘左翼思想の持主を転向させて保護する’という趣旨で、政府が主導して結成した。‘保護’するという人びとを‘不法に殺害’したのである。

★被害者が遺骸発掘...加害者は「傍観」

【写真】25日、犠牲者の遺骸といっしょに発掘された弾頭は、加害者が当時、警察であったことを物語っている。上右がカービン銃の弾頭であり、左下は45口径の拳銃の弾頭である。 ⓒシムギュサン
【写真】急峻な山麓、殺害後、ざっと土をかぶせたと見られる。 ⓒシムギュサン

 ところが、遺骸発掘作業をしているのは、政府機関ではない。民間団体である。 遺族会もふくまれている。
 「韓国戦争期民間人虐殺遺骸発掘共同調査団」(発掘団長朴善周忠北大名誉教授、考古美術史学科・体質人類学)には、4.9統一平和財団、民族問題研究所、民主社会のための弁護士会、民主化運動精神継承国民連帯、麗水地域社会研究所、歴史問題研究所、歴史正義実践連帯、李來昌紀念事業会、人権医学研究所・キムグンテ(김근태)紀念治癒センター、人権財団サラム、張俊河紀念事業会、済州4・3犠牲者遺族会、太平洋戦争被害者補償推進協議会、平和の踏み石(평화디딤돌)、フォーラム真実と正義、韓国戦争遺族会などが参加している。 ボランティアと市民の後援で遺骸を発掘している。
    “李明博政府と朴槿恵政府にいたるまで何の措置もとっていない。国家が被害者と
   遺族に当然持つべき法的・政治的責任はさておき、最小限の倫理的責任すら負わな
   い態度に、わたしたちは失望を越えて怒りを禁じえない。(...)国家が犯した過ちを国家
   が正すことはまことに常識的な要求であり、絶対的な課題でもる ”。
 2014年、遺骸発掘共同調査団を結成した民間団体は、政府と国会にむけ“不幸な歴史を記憶し癒そう”と訴えた。
 
★政府・自治体、加害者ではなくむしろ「英雄」あつかい

【写真】姜昞賢(カンビョンヒョン)晋州遺族会長が政府レベルの遺骸発掘を要求している。 ⓒシムギュサン

 しかし、慶南晋州市鳴石面龍山里(第一次遺骸発掘)、大田山内骨嶺谷(第二次遺骸発掘)、忠南洪城郡広川邑淡山里(第三次遺体発掘)に続いて、今回の第四次遺骸発掘(鳴石面龍山里)にいたるまで、政府と国会は無視、沈黙している。
 逆に、国家報勲処は、済州4.3民間人と、保導連盟員、刑務所の受刑者を無惨に殺害したり指示した民間人虐殺の責任者の一人である‘宋堯讃’を‘戦争の英雄’とし宣揚事業費(2億7000万ウォン)を青陽郡に支援することにした。 忠清南道もまた、予算(1億4000万ウォン)を支援する計画である。
 一方、2月の臨時国会で期待を集めた、中断されていた遺骸発掘など犠牲者の真実究明のための関連法案(真実和解法)通過は、いまだはるかに遠い状態である。

★民間団体主導遺骸発掘いつまで?
 国防部は、国軍戦死者遺骸発掘作業を17年間おこなっています。民間団体は、国軍の遺骸とともに、政府の誤った公権力の行使で無残に殺害された民間人犠牲者の遺骸を発掘しようという提案もした。
25日、遺骸発掘現場で会った姜昞賢韓国戦争前後晋州の民間人被虐殺者遺族会会長は、
    “民間市民団体の遺骸発掘が、今回の晋州龍山とうげ発掘が最後になることを願って
   いる。無残に親兄弟を失ったことも辛いのに、遺骸さえ民間団体と遺族がみずから収拾
   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か? 残っている民間人遺骸発掘は、加害者である政府の役
   割です”
と述べている。
                                  佐藤正人訳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02108&PAGE_CD=N0002&CMPT_CD=M0112
「오마이뉴스」 17.02.26 16:49 최종 업데이트 17.02.26 18:13 글: 심규상(djsim)
■국가가 죽인 민간인들, 왜 유가족이 유해 발굴하나
경남 진주 용산고개 유해 발굴 시작... 정부, 가해자 오히려 '영웅' 대접

 25일, 경남 진주 용산 고개에서 드러난 민간인 희생자 유해. 이 곳에서는 1950년 7월 진주지역 보도연맹원과 진주형무소 수감 재소자가 살해돼 암매장됐다.

【写真】25일, 경남 진주 용산 고개에서 드러난 민간인 희생자 유해. 이 곳에서는 1950년 7월 진주지역 보도연맹원과 진주형무소 수감 재소자가 살해돼 암매장됐다. ⓒ 심규상
【写真】진주시 용산 고개 민간인 유해발굴 현장. 25일 오후 희생자의 것으로 보이는 안경이 발견됐다. ⓒ 심규상

 지금 경남 진주 용산 고개에서는 유해발굴이 한창입니다. 이 곳에서는 1950년 7월 진주지역 보도연맹원과 진주형무소 수감 재소자가 살해돼 암매장됐습니다.
지난 2014년 1차 발굴 결과, 인근 구덩이에서 최소 39명의 유해(유품 90점)가 발굴됐습니다.
지난 24일부터 시작된 2차 발굴은 1차 발굴 지점으로부터 20m 아래에서 시작했습니다. 25일 드러난 유해의 상태는 참담합니다. 경사가 가파른 산기슭 약 30㎝ 땅 속에 유해가 매장돼 있습니다. 대부분 삭아 없어졌습니다. 일부 머리뼈는 서로 겹쳐 있습니다. 살해 후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것입니다.

 "구덩이를 파지도 않고 그냥 죽였다. 총살 후에 시신을 장작더미 쌓듯이 쌓은 뒤 흙을 대충 덮어 놓았다"는 당시 증언과도 일치합니다.
 유해가 함께 출토된 흰색 단추와 안경 등은 이 곳에서 희생된 사람들이 보도연맹원이었을 것으로 짐작하게 합니다. 문양이 새겨진 버클도 발견됐습니다.
 약 가로 11m, 세로 2.5m인 2차 발굴지에는 최소 수십여 명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보고서 "인근 골짜기 5곳에 718구 시신 매장"

【写真】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공동조사간 '소속 자원봉사자들이 진주 용산고개(4차)에서 유해발굴 작업을 하고 있는 공동조사단은 지난 2014년 부터 매년 유해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 심규상

 이게 끝이 아닙니다. 용산리 골짜기 5곳에 718구의 시신을 매장했다는 조사보고서가 있기 때문입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2009년 진주 문산읍 진성고개에서 모두 111구의 유해를 발굴했습니다. 인근 마산 진전면 여양리 산태골에도 최소 수백여 명이 매장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경남 진주 외에도 전국 수백여 곳의 산 속 어딘가에, 광산 지하에 희생자 유해들이 햇볕을 볼 날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1950년 전쟁이 발발하자 내무부 치안국은 전국 도 경찰국에 보도연맹원 및 요시찰인에 대한 일제 검거를 지시합니다. 논밭에서 일하던 농부들이 바지단과 소매를 접어 올린 채로 끌려가 총살됐습니다. 인민군에 동조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형무소 재소자들도 같은 이유로 불법 살해됐습니다.
 보도연맹원은 '좌익 사상자를 전향시켜 보호한다'는 취지로 정부가 주도해 결성했습니다. '보호'하겠다던 사람들을 '불법 살해'한 것입니다.

★피해자가 유해발굴... 가해자는 '뒷짐'

【写真】25일 희생자 유해와 함께 드러난 탄두는 가해자가 당시 경찰임을 말해주고 있다. 윗 오른쪽이 카빈소총 탄두이고 왼쪽 아래쪽은 45구경 권총의 탄두다. ⓒ 심규상
【写真】가파른 산기슭, 살해 후 대충 흙을 덮은 것으로 보인다. ⓒ 심규상

 그런데 유해 발굴작업을 하고 있는 곳은 정부기관이 아닙니다. 민간단체입니다. 유족회도 포함돼 있습니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공동조사단'(발굴단장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고고미술사학과·체질인류학)으로 4.9통일평화재단,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역사문제연구소, 역사정의실천연대, 이내창기념사업회, 인권의학연구소·김근태기념치유센터, 인권재단사람, 장준하기념사업회, 제주4·3희생자유족회,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평화디딤돌, 포럼진실과정의, 한국전쟁유족회 등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자원봉사자와 시민의 후원으로 유해를 발굴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고 있지 않습니다. 국가가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마땅히 가져야 할 법적·정치적 책임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윤리적 책임조차 지지 않는 태도에 우리는 실망을 넘어 분노를 금할 수 없습니다.(...)국가가 저지른 잘못을 국가가 나서서 바로잡는 일은 매우 상식적인 요구이자, 절대적인 명령이기도 합니다."

 지난 2014년 유해발굴공동조사단을 결성하며 민간단체는 정부와 국회를 향해 "불행했던 역사를 기억하고 치유하자"며 이같이 호소했습니다.

★정부-지자체, 가해자 오히려 '영웅' 대접

【写真】강병현 진주유족회장이 정부차원의 유해발굴을 요구하고 있다.  ⓒ 심규상

 하지만 경남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제 1차 유해발굴), 대전 산내 골령골(제 2차 유해발굴), 충남 홍성군 광천읍 담산리(제 3차 유해발굴)에 이어 지금의 4차 유해발굴(명석면 용산리)에 이르기까지 정부와 국회는 묵묵부답입니다.
 오히려 국가보훈처는 제주 4.3 민간인과, 보도연맹원, 형무소 재소자를 무참히 살해하거나 지시한 민간인 학살의 책임자 중 한 명인 '송요찬'에 대해 '전쟁 영웅'이라며 선양사업비(2억 7000만원)를 청양군에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충남도 또한 예산(1억 4000만 원)을 지원할 계획입니다.
 반면 2월 임시국회에서 기대를 모았던 중단된 유해발굴 등 희생자 진실규명을 위한 관련법안(진실화해법) 통과는 여전히 요원한 상태입니다.

★민간단체 주도 유해발굴 언제까지?
 국방부는 국군 전사자 유해발굴 작업을 17년째 벌이고 있습니다. 민간단체들은 국군 유해와 함께 정부의 잘못된 공권력 행사로 억울하게 살해된 민간인 희생자의 유해를 발굴하자는 제안도 했습니다.
 25일 유해발굴 현장에서 만난 강병현 한국전쟁전후진주민간인피학살자유족회 회장은 말합니다.
 "민간시민단체의 유해발굴이 이번 진주 용산고개 발굴이 마지막이 되었으면 합니다. 억울하게 부모형제를 잃은 것도 서러운데 유해마저 민간단체와 유가족들이 알아서 수습해야 합니까? 남아 있는 민간인 유해발굴은 가해자인 정부의 몫입니다."
コメント
この記事をはてなブックマークに追加

「晋州保導連盟員集団虐殺、韓国戦争当時軍・警よるものであったこと確認」

2017年03月23日 | 韓国で
http://www.vop.co.kr/A00001127894.html
「민중의소리」 발행 2017-02-28 09:35:33 구자환 기자 hanhit@vop.co.kr
■진주 보도연맹원 집단학살, 한국전쟁 당시 군·경에 의한 것으로 확인
 공동조사단 유해발굴 결과 카빈소총과 45구경 권총 및 M1 실탄 탄두 나와

【写真】진주시 명석면 용산고개에서 발굴된 유해들. ⓒ구자환 기자

 한국전쟁 당시 국민보도연맹원 등 민간인이 학살된 것으로 알려진 진주시 명석면 용산고개의 가해자는 국군과 경찰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단장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은 28일 “희생자는 경찰 등이 갖고 있던 카빈소총과 국군이 사용하는 45구경 권총 및 M1 등에 의해 사망했으며, 일부는 확인 사살되었을 가능성도 큰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이번 발굴한 용산고개 2지점에서는 최소 27구가 매장되어 있고, 안경, 버클, 탄두, 단추, 고무줄, 의치 등 총 31점의 유품이 나왔다”며, “유해는 매장지의 습도와 산성도가 높아 보존 상태는 매우 좋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지역은 진주지역에서 가장 많이 학살된 곳인 진주 명석면 용산리 산 425-1 용산 고개(일명 용산치)에 자리한 5개 학살 지점 중 한 곳이다. 유해매장지는 동서로 이어지는 산기슭에 15x8m 정도의 경사를 이루고 있다.
 공동조사단은 “확인 결과 유해는 산등선과 같은 방향으로 이어져 묻혀 있었다”며, “북남방향으로 8m, 동서 방향으로 2m, 깊이 0.5m 정도의 범위에서 유해들이 출토되었는데 유해는 주로 양 옆 부분에 모여 있었다”고 밝혔다.
 이 지점에서 학살된 이들은 대부분 남자 어른으로 추정된다. 특히 안경과 버클 등의 유품으로 볼 때 지식인도 다수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공동조사단은 현재 드러난 유해 아래로 한 겹의 유해들이 있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미발굴 유해가 있는지 더 조사할 예정이다.
 공동조사단은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유해들이 아직도 전국 곳곳에 방치되고 있지만 국가는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마땅히 지켜야할 국가적 책무인 법적· 정치적 책임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윤리적 책임조차지지 않고 있다”며, “민간차원에서라도 먼저 아픈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그 상처를 치유하는 일에 나서고 있다”고 정부차원의 유해발굴을 촉구하기도 했다.

【写真】진주시 명석면 용산고개 유해발굴 현장 모습. ⓒ구자환 기자

★진주 국민보도연맹원과 형무소 재소자 2,000여명 군경에 의해 학살
 당시 목격자들에 의하면 용산고개 3개 골짜기 5개 지점에 718구의 시신을 매장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진주형무소는 전쟁 당시 1,000여 명의 재소자가 수감되어 있었고, 대부분 좌익사범이었다. 이들 재소자는 1950년 7월 중순에서 진주경찰서가 후퇴하기 전날인 26일까지 진주지구 CIC, 진주지구 헌병대, 진주경찰서, 진주형무소 형무관 등에 의해 명석면 우수리 갓골, 관지리 화령골짜기 등 여섯 곳에서 집단 학살됐다.
 또한, 1950년 7월 15일경부터 국민보도연맹원들이 소집되거나 연행되어 진주경찰서 유치시설과 진주형무소와 대한통운 창고에 감금되었다가 진주 명석면 관지리, 용산리, 우수리 등지, 문산읍 상문리, 마산 진전면 여양리 등에서 희생되었다. 진주형무소로 연행된 국민보도연맹원들은 진주뿐 아니라 산청, 하동, 의령 등 인근 지역 주민도 있었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결과 가해집단은 진주 CIC파견대(대장 탁성록)와 헌병대(5사단 진주지구 헌병대장 윤기옥), 진주경찰서, 진주형무소 특공대 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군폭격사건과 부역혐의 사건을 제외한 진주형무소 재소자와 국민보도연맹원은 1,300명~2,000여 명일 것으로 판단된다.
 이번 4차 유해발굴에는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가 총괄지휘를 담당했고, 노용석 부경대 교수와 강병현 진주유족회장이 자문위원을 맡았다.
 또, 4.9통일평화재단 안경호 사무국장이 총괄조사원을 맡았고 조동문, 임영순, 홍수정, 임영순, 송장건, 김영환, 오승래, 김나경, 길가은, 김소현, 이나현, 홍성예 씨 등이 현장발굴을 담당했다. 그리고 한중경, 김병구씨가 지원팀을 맡았고, 강혁민, 김영희, 윤정하, 황미정, 채승언, 성현빈, 평화디딤돌 외 다수 시민들이 자원봉사에 나섰다.
 앞서, 공동조사단은 지난 2014년 진주시 명석면 용산고개 1차 발굴을 시작으로 2015년 대전 골령골, 2016년 충남 홍성군 광천읍에서 한국전쟁을 전후해 학살된 민간인의 유해발굴을 한 바 있다.

【写真】발굴팀이 유해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구자환 기자
【写真】진주시 명석면 용산고개에서 발굴된 민간인의 유품. ⓒ구자환 기자
コメント (1)
この記事をはてなブックマークに追加

「晋州で6・25戦争時に虐殺された民間人の遺骸27体発掘」

2017年03月22日 | 韓国で
http://media.daum.net/m/channel/view/media/20170228151728360
「뉴시스」입력 17.02.28. 15:17 정경규
■진주서 6·25전쟁때 학살 민간인 유해 27구 발굴
 공동조사단 2차 유해발굴 현장설명회

【写真】정경규 기자 =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박선주 단장은 28일 경남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 용산고개 한국전쟁때 민간인 집단 학살 2차 유해발굴 현장에서 설명회를 갖고있다. 공동조사단은 이날 민간차원의 2차 발굴작업에서 최소 27구의 유해를 발굴했다고 밝혔다. 2017.02.28. jkgyu@newsis.com

【진주=뉴시스】정경규 기자 = 경남 진주에서 진행한 한국전쟁때 집단 학살당한 민간인 유해 2차 발굴작업에서 최소 27구의 유해를 발굴했다.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은 28일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 용산고개 발굴현장에서 설명회를 열고 유해 발굴작업 결과를 설명했다.
 공동조사단은 지난 24일부터 28일까지 발굴조사를 벌여 이곳은 습도와 산성도가 높아 유해 보존상태가 매우 나쁜 상태의 유해 27구가 매장돼 있었다고 밝혔다.

【写真】정경규 기자 =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박선주 단장이 28일 경남 진주시 명석면 용산고개에서 한국전쟁때 민간인 집단 학살지 2차 유해발굴 현장에서 현장설명회을 하고있다. 2017.02.28. jkgyu@newsis.com

 머리뼈 부분을 제외하고 대부분 사지 뼈만 남아 있는 상태를 고려하면 최소 27구의 시신이 매장됐을 것으로 조사단은 추정했다.
 또 완전한 사지 뼈가 없어 키를 추정하기 어렵지만 뼈 굵기와 크기 등을 고려하면 남자 어른의 유해일 것으로 추측했다.
 안경과 버클, 탄두, 단추, 고무줄 등 모두 32점의 유품도 나왔다.

【写真】정경규 기자 =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이 지난 24일부터 28일까지 경남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 용산고개에서 발굴한 27구의 유해를 안치할 임시 컨테이너 모습이다. 2017.02.28. jkgyu@newsis.com

 희생자들은 경찰 등이 갖고 있던 카빈총과 국군이 사용하는 45구경 권총 및 M1 등에 의해 사살됐으며 일부는 확인사살됐을 가능성도 크다고 공동조사단은 추정했다.
 공동조사단장인 박선주(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명예교수는 "버클과 단추 등이 발견된 것으로 미뤄 희생자들은 당시 사회적 신분이 있는 민간인으로 추정된다“며 ”유해에는 경찰과 군인이 사용하던 카빈총과 권총 탄두가 발견돼 가해자는 경찰과 군인인 것으로 파악한다"고 설명했다.
 공동조사단은 유해와 유품 상태를 분석하고 증언들을 종합한 결과 희생자들 대다수는 '진주지역 보도연맹사건 희생자'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写真】정경규 기자 =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은 28일 경남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 용산고개 민간인 집단 학살 2차 유해발굴 현장 설명회를 가졌다. 2017.02.28. jkgyu@newsis.com

 또 이곳을 포함해 6·25전쟁 당시 용산리 골짜기 3곳에 걸쳐 모두 5곳에 718구의 시신을 매장했다고 마을주민들이 증언하고 있다.
 발굴현장에선 군인과 경찰에 의해 주민 수백여명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동조사단은 이번 발굴작업에서 찾은 유해를 감식하고 나서 발굴현장 인근의 컨테이너에 안치할 계획이다.

【写真】정경규 기자 =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박선주 단장은 28일 경남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 용산고개 한국전쟁때 민간인 집단 학살 2차 유해발굴 현장에서 설명회를 갖고있다. 공동조사단은 이날 민간차원의 2차 발굴작업에서 버클 등 유품 32점이 출토됐다고 밝혔다. 2017.02.28. jkgyu@newsis.com

 현재 발굴현잘 인근 컨테이너에는 2004년 옛 마산시 진전면 여양리에서 발굴된 진주지역 민간인 유골 163구, 2014년 2월 진주시 명석면 용산고개에서 1차로 발굴한 35구도 함께 안치돼 있다.
 공동조사단은 앞으로 미발굴 유해가 더 있는지 확인해 추가 발굴작업 및 안치계획을 세울 계획이다.
 한국전쟁 전후 진주 민간인 희생자유족회 강병현 회장은 "한국전쟁 전후해 민간인들이 뚜렷한 이유없이 죽임을 당한 채 이름 모를 산야에 버려졌다"며 "국가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의 유해를 수습해 적절한 장소에 안치해 피해자와 유족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고 이들 통해 국가가 국민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무엇인지를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고 말했다.
コメント
この記事をはてなブックマークに追加

「「日本軍が慰安婦を集団殺害」 韓国国定歴史教科書に記述へ」

2017年03月21日 | 韓国で
http://ceron.jp/url/www.chosunonline.com/site/data/html_dir/2017/02/01/2017020101152.html
『朝鮮日報』 2017/02/01 11:04  
■「日本軍が慰安婦を集団殺害」 韓国国定歴史教科書に記述へ
 韓国教育部、国定歴史教科書の最終本を公開

 韓国教育部が31日、「来年から使われる中学校・高校用検定歴史教科書で、『大韓民国樹立』と『大韓民国政府樹立』という表現をどちらも使えるようにしたい」という立場を表明した。国定歴史教科書では「大韓民国樹立」と表現したが、検定教科書ではどちらの表現を使っても許容するという。また今年3月の新学期から「研究校」で使用する国定教科書(中学校歴史1・2、高校韓国史)の最終本も、31日に併せて公開された。教育部は「昨年11月28日の現場検討本公開以降、韓国国民やメディアなどから寄せられた意見を反映させ、計760件の修正を行った」と発表した。

★国定教科書の最終本も公開
 31日公開された国定教科書最終本の修正内容は、近現代史が396件(近代252件、現代144件)と最も多く、次いで先史・古代(196件)、さらに高麗時代(82件)、朝鮮王朝時代(60件)の順だった。最大の争点になった現代史分野では「国定教科書に反対する市民団体や学界などの意見を反映させて大幅に修正した」と教育部はコメントした。
 まず、植民地時代の記述が大幅に強化された。従軍慰安婦に関しては「水曜デモ1000回を記念して平和の少女像が建立された」(中学校歴史)、「(慰安婦が)日本軍に集団殺害されることもあった」(以下、高校現代史)などの内容が追加された。また、親日行為について具体的な事例も示された。現場検討本には、売国など五つの行為が単純に羅列されているだけだったが、最終本には「売国行為(乙巳〈いっし〉五賊)、抗日運動の弾圧行為(密偵、警察、間島協助会など)」のように、各行為の具体的な事例を盛り込んだ。さらに
高校韓国史の教科書には、金九(キム・グ)暗殺の事実についての記述も細かく追加された。
 朴正煕(パク・チョンヒ)時代に起きた個別の事件についての記述も修正した。朴正煕政権美化という批判があったセマウル運動(韓国の農村改革運動)関連では「官主導の意識改革運動になっていく中で」と批判的記述を追加した。1967年の「東伯林(東ベルリン)スパイ事件」に関しても、「捜査機関の人権弾圧については説明していない」という批判を受け入れて「中央情報部が捜査の過程で多くの拷問や人権弾圧をほしいままに行い」という記述を追加した-と教育部は説明した。
 また、光復(日本の植民地支配からの解放)直後に活動した反民族行為特別調査委員会(反民特委)の限界も明示した。現場検討本(高校)では「反民特委はおよそ680件の反民族親日行為の事案を取り扱ったが、実刑が言い渡されたのはおよそ10件にすぎなかった」という記述になっていたところ、最終本では「実刑が言い渡されたのはおよそ10件にすぎず、親日派の清算は不十分だった」と修正された。被害者など関連団体が「縮小・歪曲(わいきょく)した記述」と反発していた1948年の済州4・3事件についての内容も補完された。現代グループの鄭周永(チョン・ジュヨン)、柳韓洋行の柳一韓(ユ・イルハン)など実業家に関する部分については「主観的な記述は排除した」と教育部は説明した。

★野党・市民団体は反発
 最大野党「共に民主党」の兪銀恵(ユ・ウンヘ)議員や都鍾煥(ト・ジョンファン)議員など野党側は31日「最大の問題だった朴正煕大統領の美化部分は依然として9ページもあるなど、一つも変わらなかった」「教育部は直ちに国定教科書を廃棄すべき」という声明書を出した。ソウル市のチョ・ヒヨン教育監(教育委員会の教育長に相当)は「教育部が国民的批判を意識してやや修正・補完を行ったが、全方位的批判を免れるため新たな記述を付け加えるという形で修正しただけ。国定教科書政策の廃棄のみが、韓国の歴史教育を生す事業」と主張した。


http://www.recordchina.co.jp/b163241-s0-c10.html
「Record china」 配信日時:2017年2月10日 17時10分
■韓国国定の「正しい歴史教科書」どうなる? 使用申請校ゼロ
 ネットも冷たい視線「朴大統領が使えばいい」「教科書は教師が選ぶもの」

【写真】8日、韓国・アジア経済によると、韓国政府が制作、このほど「最終版」が発表された国定歴史教科書について、使用・研究を申請した学校が1校もないことが分かった。写真は韓国の書店。

 2017年2月8日、韓国・アジア経済によると、韓国政府が制作、このほど「最終版」が発表された国定歴史教科書について、使用・研究を申請した学校が1校もないことが分かった。
 教育部は先月から研究校を公募、申請に対しては、一部教員への加算点付加や学校あたり1000万ウォン(約98万円)の予算支援などの対応を掲げていたが、最大野党「共に民主党」の金炳旭(キム・ビョンウク)議員(教育文化体育観光委員会)が同部から提出を受けた資料によると、締め切り3日前の今月7日までに研究校の申請をした学校は1校もなかったという。これについて7日、国会の委員会で報告した李俊植(イ・ジュンシク)教育副首相兼教育部長官は、「学校が冬休みのため申し込みをしなかったようだ」と釈明していた。
 この事態に教育部は申請期間を今月15日まで5日間延長すると決めたが、その分、今度は研究校の適正性を審議する期間が削られてしまった。これには野党議員から「教育部は研究校の運営に関心はなく、ただ研究校を増やすことに夢中になっている。突然の日程変更などは国定教科書普及のための手段にすぎない」との批判の声が上がっている。
 政府主導で制作が進められた国定歴史教科書「正しい歴史教科書」は、教育部が「事実に立脚したバランスのとれた教科書」とうたうも、内容が右傾化しているなど歴史観の偏った教科書であるという批判が出ていた。
 この報道に、韓国のネットユーザーからは「朴槿恵(パク・クネ)大統領が1人で使えばいい」「独裁の朴正熙(パク・チョンヒ元大統領)政権や財閥寄りの国定教科書が通じると思う?」と政府が推進する国定教科書に反対票を投じるコメントや、「みなさーん、ここにはまだ帝国主義の教育部がありますよー!」「どうか『違うものは違う』と言える教育部になって」と教育部を批判するコメントが多数寄せられている。
 また一方で、「せっかく印刷したしもったいないから、大統領を応援する人たちに配るのはどう?」「古物商:申請します!25トントラックで待機してるので、連絡ください」と教科書の使い道を提案するコメントや、「教科書は教える先生が選ぶもの」「申請したら、悪評や保護者の反対で大変になるのが目に見えてる」など学校側の視点に立ったコメントも寄せられた。(翻訳・編集/松村)



http://japanese.yonhapnews.co.kr/pgm/9810000000.html?cid=AJP20170131002200882
「聯合ニュース」2017/01/31 13:09
■国定歴史教科書に「慰安婦・親日派」記述強化=韓国
【ソウル聯合ニュース】韓国で2018年に導入される予定の中高校の国定歴史教科書の内容について、旧日本軍の慰安婦や植民地時代の親日派の行為に関する記述が強化されたことが分かった。

【写真】韓国の歴史教科書=(聯合ニュースTV提供)

 韓国の教育部は31日、記者会見を開いて検定歴史教科書の執筆基準と国定教科書の最終版の内容を発表した。
 朴槿恵(パク・クネ)政権は現行の教科書を「左派的」として、歴史教科書の国定化を重要課題の一つとして進めてきたが、市民団体や野党などは強く反発してきた。
 教育部は昨年11月に国定歴史教科書の検討用見本を公開し、現場の教師や学者、専門家、一般市民など各界の意見を集めた。国定歴史教科書が日本の植民地支配を美化しているという批判が出たことや、昨年12月に国会で朴大統領の弾劾訴追案が可決され職務停止中であることを受け、同部は国定教科書の導入時期を17年から18年に延期するとともに、中高校が国定教科書1種と複数の検定教科書の中から採択して使用できるようにした。

 検定教科書の執筆基準は今年新たにまとめる内容の記述範囲や方向などを示す「ガイドライン」となる。最大の争点だった韓国の建国時期と関連し、教育部は「大韓民国樹立」と「大韓民国政府樹立」の両方を使用できるようにした。
 同問題をめぐっては、日本による植民地時代だった1919年に中国・上海に設置された臨時政府を建国時期に認めるよう求める声が出ていた。
 「8.15光復(日本による植民地支配からの解放)以降展開された大韓民国の樹立過程を把握する」とした執筆基準は国定教科書の編纂基準と同様だが、「留意事項」に「大韓民国発足に対し、大韓民国樹立、大韓民国政府樹立などで表現する多様な見解があることに留意する」との文言を追加した。
 一方、最終版の国定歴史教科書では、日本による植民地時代の親日行為(反民族的行為)を5つの類型に分類して具体的に記述した。
 また旧日本軍の慰安婦問題について、韓国の市民団体が慰安婦問題の解決を求め毎週日本大使館前で行っている「水曜集会」が1000回を迎えたことを記念して「平和の少女像」を設置した事実や、旧日本軍により慰安婦が集団虐殺されたとする内容を追加するなど、記述を強化した。

     ynhrm@yna.co.kr



http://japanese.joins.com/article/247/225247.html
「中央日報日本語版」2017年01月31日14時50分
■韓国国定歴史教科書の最終版を公開、親日派・慰安婦の記述を強化

【写真】国定教科書の最終版。

 韓国教育部が親日派の親日行為や済州(チェジュ)4・3事件、慰安婦関連記述を強化した国定教科書の最終版を31日、確定・発表した。翌年から使う予定の検定教科書には「大韓民国樹立」や「大韓民国政府樹立」という用語をいずれも使っており、独島(ドクト、日本名・竹島)が韓国の領土という点も明確にした。
 歴史教科書の最終版には済州4・3事件当時、罪のない犠牲者が発生し、この事件に対する真相究明への努力があったことを留意点として提示した。セマウル運動についても「限界点を指摘する見解もあることに留意する」という内容を追加した。
 教育部は、旧日本軍による「慰安婦」被害者に関連した記述の中で「水曜デモ」1000回を記念して設置した平和の少女像や旧日本軍による「慰安婦」集団虐殺の事例を本文に新たに明示することで「慰安婦」関連記述をより強化した。
 また、日本の独島領有権に関する歴史のわい曲に積極的に対応するため、検定教科書の執筆基準に「独島が韓国固有の領土という事実を客観的に証明できる資料を紹介し、独島は韓国固有の領土であり、紛争地域ではないという点」を明らかにした。
 教育部は、新しい歴史教科書の導入時期を2017年から2018年に延期した。2018学年度からは各学校が国定教科書と検定教科書の中で自主的に選択できるように、国・検定混用体制に転換する方針を発表した。



http://japanese.donga.com/3/all/27/813043/1
『東亜日報』Posted December. 28, 2016 08:24
■国定歴教科書を2018年の検定
 李俊植(イ・ジュンシク)社会副首相兼教育部長官は、来年、国定歴史教科書を施行しようとしていた方針を1年間猶予し、2018学年度から検定教科書と混用すると、27日明らかにした。その代わり、2017学年度は、国定教科書を希望するすべての学校を研究学校に指定し、主教材として使わせ、ほかの学校は従来の検定教科書を再び使わせる方針だ。と混用
 これを受け、朴槿恵(パク・クンヘ)政権が力を入れてきた歴史教科書の国定化方針は撤回され、2018学年度の国定教科書使用如何の決定は、次期政府に渡されることになった。
 李副首相は同日、政府世宗(セジョン)庁舎でブリーフィングを行い、「国定教科書廃止についての意見もあるが、少なからぬ国民が前向きな評価をしていることも考慮した」と言い、「国定のみ使うことを問題視する意見が最も多いので、混用体制で多様性を強調した」と説明した。
 否定的な世論を考慮して、国定教科書の全面施行は見合わせたものの、希望する学校は先に使わせ、検定教科書と混用したいという「二股」流の対策を打ち出したことになる。これについて、国定教科書を完全廃棄したのではないという名分を生かす一方で、反対論者らの批判も避けるための急場しのぎという指摘が出ている。研究学校の指定や国会に提出された国定歴史教科書の廃棄法案を巡る議論などが絡んで、生徒たちの混乱のみ膨らむことになるだろうという批判も持ち上がっている。
 教育部は、2018学年度から各学校が、国定教科書と2015改正教育課程に基づいて新たに開発される検定教科書のうち、選択できるよう大統領令(「教科用図書に関する規定」)を改正する一方、関連規定を見直して、検定図書の開発期間を1年6か月から1年に短縮する計画だ。

         崔예나 yena@donga.com


http://japanese.joins.com/article/035/224035.html?servcode=200§code=200
http://japanese.joins.com/article/036/224036.html?servcode=200§code=200
「中央日報日本語版」2016年12月28日11時08分
■次期政権に渡された国定教科書…「事実上、廃棄の手続きへ」

【写真】李俊植社会副首相兼教育部長官が27日、政府世宗庁舎で記者会見を開き、「安定した教育が行われる方法が国定教科書の1年猶予後、国・検定教科書の混用だと考えた」と述べた。

 韓国政府が来年からすべての中高校で国定歴史教科書を使わせようとした計画を撤回した。適用時点を2018年でに1年の猶予期間を設けて各学校に国定・検定教科書の中で選択させるということだ。これは教科書の運命を次期政府に渡したもので、一部では事実上廃棄の手続きに入っているのではないかという声も出ている。
 教育部は27日、このような内容の「正しい歴史教科書」(国定教科書)の現場適用方針を発表した。まず、来年は現行通りに各学校で既存の検定教科書を使うことになる。ただ、来年も国定教科書の使用を希望する学校は「研究学校」に指定し、試験的運用を続けていく方針だ。2018年には、学校が国定と検定の中から教科書を選択する「国・検定混用」を推進する。これを受け、各出版社は2018年から中高校に適用される新教育過程(2015改正教育過程)に合わせて新しい検定教科書を作らなければならない。
 また、教育部は国・検定混用のために施行令も変えることにした。現行教科用図書に関する規定(大統領令)によると、国定教科書があれば必ず国定教科書のみを使わなければならない。教育部は規定を改正して国定と検定を一緒に使えるようにする計画だ。また、検定教科書の開発期間を最低1年6カ月から1年に短縮し、2018年3月までに開発する方針だ。
 教育部が国定教科書の強行方針を撤回したのは、反対世論のためだった。李俊植(イ・ジュンシク)社会副首相兼教育部長官はこの日、「国民・国会・教育監・市民団体などの意見を総合的に考慮した」とし「教育現場で混乱があってはならないという考えで(1年猶予を)決めた」と明らかにした。教育部のある関係者は「熱心に開発した教科書を直ちに廃棄することも、国民と政界の反対を無視することもできないことから出た苦肉の策」と説明した。また、「混用になると、国定教科書が検定教科書と競争しながら教科書の質を高めることができるだろうとの考えも反映された」と付け加えた。

 教育界では事実上、廃棄の手続きにつながるという見方も出ている。野党はもちろん、与党ですら国定教科書に対する反応が否定的であるためだ。韓国教員団体総連合会(教総)のキム・ドンソク報道官は「学校現場の声を考慮して悩んだ末に下した決定なので評価する価値はある」としつつも「バトンが次期政府へ渡っただけに政権交代の時、自然と国定教科書は廃棄になるだろう」と話した。
 国定教科書が「早期廃棄」になる可能性もある。国会で係留中の「国定教科書禁止法(歴史教科用図書の多様性保障に関する特別法)」が来年2月に成立する可能性があるからだ。国会の教育文化体育観光委員会所属の野党3党の議員らはこの日、「(教育部発表は)事実上、国定化を強硬しようとする企み」とし、「国定教科書禁止法を速かに処理する」と明らかにした。
 学校に選択権が移るといっても、学校が国定教科書に背を背けることで国定教科書の普及も難航するだろうという観測も出ている。これまで国定教科書を肯定的に評価してきた大韓私立中高校校長のパク・ジェリョン会長も「強制でない選択なら、状況は変わり得る。あえて使う必要はあるのかと疑問を投げかける学校がもっと増えるだろう」と話した。

一部では、試験運営や国・検定混用が学校現場の混乱をあおりかねないとの懸念の声も出ている。2014年、ニューライト系学者が執筆した教科書会社「教学社」の教科書が問題となり、採択率0%を記録した事態が再現する可能性があるということだ。国定化を批判してきた徳星(トクソン)女子大学史学科の韓相権(ハン・サングォン)教授は「結局のところ、政府が学校現場に葛藤を押し付けたものとみる」と指摘した。保守陣営からも批判の声が出ている。国定教科書を擁護してきた公州(コンジュ)大学歴史学科のイ・ミョンヒ教授は「政府が当初、国定教科書を推進する哲学を明かすことができず、世論の顔色をうかがっていたところ、結局、便法を講じて国定教科書を書かせる誤った方法を取った」と批判した。
コメント
この記事をはてなブックマークに追加

「慶尚南道で5番目の「少女像」が建設される」

2017年03月20日 | 日本軍隊性奴隷
http://japan.hani.co.kr/arti/politics/26442.html
「The Hankyoreh」登録 : 2017.02.06 22:38 修正 : 02.07 06:28
■慶尚南道で5番目の「少女像」が建設される
 三一節迎え、晋州市教育支援庁の前庭で除幕

【写真】三一節に慶尚南道晋州に建てられる予定の新しい姿の少女像//ハンギョレ新聞社

 慶尚南道で5番目の「少女像」(写真)が独立記念日、晋州(チンジュ)に建設される。
 「日本軍慰安婦被害者ハルモニ(おばあさん)晋州地域記念碑建設推進委員会」(建設推進委)は6日「晋州市教育支援庁の前庭で来月1日午後2時、日本軍慰安婦記念碑を除幕する」と明らかにした。
 建設推進委は記念碑の名前を「平等平和人権像」に決めた。晋州出身の彫刻家イ・ミョンリム氏が韓服を着て裸足で立っている若い女性の姿で記念碑を製作している。この女性は身長160センチ、短い髪で、左手に「平和の鳥」をのせており、右手は拳を握っている。平和を愛する心と、日本政府から必ず謝罪してもらうという意志が込められている。
 記念碑は30センチ高さの座台の上に建てられ、晋州市教育支援庁を訪れた人なら誰でも見ることができる。建設推進委は昨年3月から記念碑の建立を推進しており、建設基金6000万ウォン(約590万)は昨年5月から晋州市民4200人以上が参加した募金によって集まった。
 建設推進委のパク・スンイ事務局長は「地方自治体の支援をまったく受けず、100%市民たち、特に多くの晋州地域の学生たちの募金で建設基金を集めた。三一節を迎え、教育支援庁の前庭に建てられるという点で、今回の記念碑の建設は、歴史的意味はもちろん、教育的意味も非常に大きいと思う」と話した。
 日本軍慰安婦被害者として政府に登録した239人のうち、晋州出身は11人に達するが、すでに全員死亡し、生存者はいない状態だ。現在、慶尚南道には統営(トンヨン)南望山公園、巨済(コジェ)の巨済文化芸術会館、昌原(チャンウォン)の午東洞(オドンドン)文化通り、南海(ナムヘ)のスギ公園など、4カ所に少女像が建てられている。河東郡(ハドングン)チュィリム市民公園にはこの地方出身の故チョン・ソウンさんを悼む追悼碑がある。

チェ・サンウォン記者
韓国語原文入力:2017-02-06 14:01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781455.html 訳H.J



http://chosonsinbo.com/jp/2017/02/09riyo-jjj02/
『朝鮮新報』2017.02.09 (15:56)
■慶尚南道で5番目の「少女像」建設
 今年の3.1節に除幕

 慶尚南道で5番目の「少女像」が3.1独立運動記念日に、晋州に建設される。
 「日本軍性奴隷被害者ハルモニ晋州地域記念碑建設推進委員会」(建設推進委)は6日、「晋州市教育支援庁の前庭で3月1日午後2時、日本軍性奴隷記念碑を除幕する」と明らかにした。
 建設推進委は記念碑の名前を「平等平和人権像」に決めた。晋州出身の彫刻家イ・ミョンリム氏がチョゴリを着て裸足で立つ若い女性の姿を象った記念碑を製作している。この女性は身長160cm、短髪で左手に「平和の鳥」をのせており、右手は拳を握っている。平和を愛する心と、日本政府から必ず謝罪してもらうという意志が込められている。
 記念碑は高さ30cmの台座の上に建てられ、晋州市教育支援庁を訪れた人なら誰でも見ることができる。建設推進委は昨年3月から記念碑の建立を推進しており、建設基金5千万ウォン(約590万円)は昨年5月から晋州市民4200人以上が参加して集められた。
 建設推進委のパク・スンイ事務局長は「地方自治体の支援をまったく受けず、100%市民たちから建設基金を集めた。特に晋州地域の学生たちが積極的に協力してくれた。3.1節を迎え、教育支援庁の前庭に建てられるという点で、今回の記念碑の建設は、歴史的意味はもちろん、教育的意味も非常に大きいと思う」と話した。
 日本軍性奴隷被害者として南朝鮮政府に登録した239人のうち、晋州出身は11人に達するが、すでに全員死亡した。現在、慶尚南道には統営南望山公園、巨済の巨済文化芸術会館、昌原の午東洞文化通り、南海のスギ公園など、4カ所に少女像が建てられている。



http://mainichi.jp/articles/20170302/k00/00e/030/216000c#csidx03a0ce124d3cbcdb38366593834b11e
『毎日新聞』2017年3月2日 10時50分(最終更新 3月2日 12時51分)
■韓国 各地に新たな少女像 独立運動記念日に次々除幕

【写真】韓国・安養市に設置された少女像=1日、聯合・共同

 日本の植民地統治下に起きた「3・1独立運動」の記念日を迎えた韓国で1日、慰安婦問題を象徴する少女像が相次ぎ設置された。韓国メディアによるとソウル郊外の京畿道安養市のほか、南部の大邱市や全羅南道麗水市で除幕式が行われた。南部慶尚南道晋州市でも慰安婦を表す女性の立像が設置され、南西部光州市では新たな設置運動が始まった。韓国内の少女像は60体前後に上っているとみられる。
聯合ニュースによると、麗水市の除幕式では朱哲鉉市長が「市民や観光客が正しい歴史認識を想起できる機会になれば」とあいさつ。安養市でも市長が祝辞を述べた。
 昨年末に少女像が設置された釜山の日本総領事館前にも市民らが集まり、2015年の日韓合意に基づき像の移転を求める両国政府に抗議。ソウルの日本大使館前でも毎週水曜の集会が通常より大規模で開かれ、主催団体の幹部は、少女像の移転を求める韓国政府と市民団体の対立を「日本は面白がって見守っている」などと批判した。(共同)
コメント
この記事をはてなブックマークに追加

「京畿道内の「平和の少女像」17体目…各市に続々と建立」

2017年03月19日 | 日本軍隊性奴隷
http://japan.hani.co.kr/arti/politics/26673.html
「The Hankyoreh」登録 : 2017.03.02 22:11 修正 : 2017.03.03 05:26
■京畿道内の「平和の少女像」17体目…各市に続々と建立
 龍仁市民たち、光復節建立を目標に募金 
 「独島少女像」は京畿道の市民団体らが推進中

【写真】3月1日午後2時、京畿道平沢市の青少年文化センター前に建てられた平和の少女像。市民の募金で建てられた=平沢平和の少女像建立推進委員会提供//ハンギョレ新聞社

 釜山の少女像の問題で日本との外交摩擦をかもしながら三一節98周年が過ぎたが、京畿道内の平和の少女像建立は続くものと見られる。
 京畿道龍仁市(ヨンインシ)は1日午後、処仁区(チョイング)の統一公園で、龍仁平和の少女像建立市民推進委員会の発足式を行った。市民など150人余りが参加したなかで開かれた発足式で、推進委は今年の8月15日に少女像を建てると明らかにした。
 オ・ヨンヒ共同代表は経過報告で「被害者の人権と名誉回復、平和を望む市民の意志を込めたい。悲しい歴史が繰り返されないよう、生きた歴史教育の現場として活用されるよう少女像を建立する」と話した。
 推進委は今年の光復節(解放記念日)に少女像建立を目標とし▽少女像の設置位置についてのアンケート調査▽韓国挺身隊問題対策協議会と連携した署名運動などを展開する計画だ。これに先立ち推進委員会は、先月15日から半月間で約1750万ウォン(約173万円)の募金を集めた。
 慰安婦被害者であるイ・オクソンさんはこの日映像メッセージを通じて「市民が苦労して募金を集め少女像を建ててくれることに感謝する」とあいさつを伝えた。
 これに先立つ1日昼12時、安養市(アンヤンシ)の坪村(ピョンチョン)中央公園では、市民の寄付金で少女像が建てられた。昨年6月から3500人余りが拠出した寄付金5000万ウォン(約495万円)を集め、この日除幕式を挙行した。独立運動家・李会栄(イ・フェヨン)の孫で共に民主党のイ・ジョンゴル議員(安養市万安区)は「先祖たちの犠牲精神を反芻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強調した。一方、安養平和の少女像建立推進委員会は少女像の除幕式に続き、寄付金を拠出した人々の名簿をまとめ、少女像の横に寄付者の名前を刻んだ定礎を立てる予定であり、このために「少女像を建てる会員」を募集中だ。
 また、同じ日に楊平郡(ヤンピョングン)では、郡単位の基礎自治体としては初めてムルマルグン市場の入り口に平和の少女像が建てられた。少女像は地域の48団体と522人の市民が3891万ウォン(約385万円)の寄付金を出し、楊平郡が2000万ウォン(約198万円)を出した。
 平沢市(ピョンテクシ)青少年文化センター前にも同日午後、少女像が設置された。この7カ月間に市民団体と市民が6500万ウォン(約644万円)の寄付を集めて建てたものだ。
 これによって、現在京畿道内で平和の少女像が建立されたところは全部で17カ所(水原・城南・華城・高陽・光明・議政府・軍浦・烏山・金浦・安山・始興・安城・富川・広州)に上る。
 一方、京畿道内の市民社会団体で行うことになる「独島少女像」設置の募金運動の民間協議体が、早ければ今月中にも発足する見通しだ。京畿道議会議員の有志の集いである「独島愛・国土愛会」は1月16日、独島(日本名・竹島)と道議会に平和の少女像を建立するための募金運動に入ったが、独島を管轄する慶尚北道と慶尚北道議会などが否定的な立場を表したのに続き、行政自治部が「道議員主導の募金運動は違法」という判断を下し、募金運動にブレーキがかかった。
 これに対し道議会は、募金運動に取り組む市民社会団体関係者らと最近非公開会合を通じて、協議体構成と今後の活動の方向性などを論議したという。

キム・キソン記者
韓国語原文入力:2017-03-02 15:33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784826.html 訳M.C
コメント
この記事をはてなブックマークに追加

「済州の大学生たちが建てた少女像」

2017年03月18日 | 日本軍隊性奴隷
http://www.chosunonline.com/m/svc/article.html?contid=2015121900615
『朝鮮日報』2015/12/19 09:59
■済州の大学生たちが建てた少女像
 「済州、大学生が建てる平和碑建立推進委員会」所属の学生たちが18日午前、済州市訪独里公園に設置された平和の少女像を清掃している。19日午後2時、除幕式が行われる予定だ。この少女像の建立費用を捻出するため、学生らは9か月にわたって募金活動を行った。


http://www.mediajeju.com/news/articleView.html?idxno=179373
「미디어제주」데스크승인 2015.12.19 18:09:26 조보영 기자
■위안부 문제 제기 발상지 제주에 '평화비' 세워졌다
 慰安婦問題提起発祥地済州に「平和碑」が建てられた
 19일 오후 2시 방일리 공원서 ‘대학생이 세우는 평화비’ 제막식 열려
 1988년 기생관광 반대운동으로 싹튼 ‘위안부’ 문제 해결의 단초 마련

【写真】제주시 방일리공원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대학생이 세우는 평화비’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19일 오후 2시 노형동 방일리 공원 내 평화광장에서 내외 귀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기억하기 위한 평화의 소녀상이 제주 땅에 첫 발을 디뎠다. 지난 3월 1일 제주 대학생 추진위원회가 결성된 후 꼬박 294일 만의 결실이다.
 이날 제막식은 제주대학교 총학생회장 원일권 씨와 제주 평화나비 대표 이민경 씨의 사회로 진행됐다. 보물섬학교 학생과 평화나비 회원들의 축하공연으로 본 행사가 시작됐고 내빈소개에 이어 지난 1년간의 활동 보고 및 축사가 이어졌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윤미향 대표는 “제주는 전대협 운동이 처음 시작된 곳이자 위안부 할머니들의 문제가 처음 제기된 곳”이라고 밝혔다.
 1988년 당시에 기생관광(70~80년대 해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성매매 산업) 문제가 가장 성행했던 장소가 바로 이곳 제주였다. 이를 계기로 전 전대협 공동대표 윤정옥 씨는 한국교회여성연합회가 주관한 세미나에서 일본인들의 기생관광 반대운동을 펼치며 처음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세상에 내놓았다.

【写真】윤미향씨

 윤미향 대표는 “지난번 제주를 방문한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마지막 한 눈마저 실명 위기에 놓여 오늘 이 자리에 불참하셨지만 꼭 눈이 나아서 아이들과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또한 “일본군 피해의 역사적 증거가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평화비 건립을 계기로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역사의 장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국내 최초의 평화비는 지난 2011년 일본 대사관 앞에 건립, 현재까지 제1209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가 열리는 등 역사의 현장으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후 전국적으로 약 30여개의 동상이 세워졌으며 ‘대학생이 세운 평화비’는 작년 이화여자대학교 앞 대현문화공원에 건립된 소녀상에 이어 국내 두 번째다.
 하지만 역사의 진실을 눈앞에 세우는 과정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추진위가 결성된 후 평화비 건립 마련을 위한 콘서트와 캠페인 등을 진행했지만 지난 11월 말까지 모금액은 1300만원이 전부였다. 평화비를 세우기 위해서는 2000만원이 더 필요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평화비 제작의 어려움을 알린 기자회견 후 한달 만에 각계 각층의 도움으로 애초 목표인 3300만원을 거의 달성한 것이다.
 평화비 부지 문제도 난항을 겪었다. 제주도는 행정적인 이유로 일본대사관 앞 평화비 건립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청원서명과 1인 릴레이 시위 등 긴급 행동을 진행하며 협상을 벌인 끝에 일본 대사관과 10분 거리에 있고 한라대학교-탐라도서관-노형중 사이에 있는 방일리 공원이 최종 부지로 확정됐다.
 결국 제주도내 31개 학생회 및 학생단체와 평화를 사랑하는 600여명의 청소년, 대학생, 시민 건립위원 그리고 41개 후원단체가 한 뜻을 모은 결과 광복 70주년, 평화의 섬 10년 제주에 평화비가 세워질 수 있었던 것이다.

【写真】국내 최초로 일본대사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운 김서경 김운성 부부 작가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번 평화비는 국내 최초로 일본 대사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운 김운성·김서경 부부 작가가 직접 제작에 참여했다.
 이들 작가는 이번 작품의 초주물 과정에서 수정 작업을 통해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완성했다. 이는 다른 지역의 소녀상에서는 볼 수 없는 제주만의 독특함이다. 또 4.3 사건을 상징하는 동백꽃을 새겨놓고 현무암을 소재로 소녀의 그림자를 만들었다.
 김운성·김서경 부부는 “소녀상 옆의 빈 의자는 돌아가신 할머님들이 함께 한다는 뜻과 여러분들이 그 자리에서 같은 마음으로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라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마음과 같이 전쟁이 없는 평화의 바람이 이곳 제주에서 불었으면 좋겠다”고 축하의 말을 남겼다.


http://japanese.yonhapnews.co.kr/headline/2016/12/28/0200000000AJP20161228002000882.HTML
「聯合ニュース」2016/12/28 16:07
■慰安婦合意から1年 少女像めぐり韓国各地であつれき
【釜山、ソウル聯合ニュース】旧日本軍の慰安婦問題をめぐり、韓国と日本が合意してから28日で1年を迎えた。合意に基づき韓国が設立した被害者支援財団に、日本政府は10億円を拠出した。これと引き換えに被害者を象徴する少女像が撤去されるのでは、と危ぶむ声が消えないなか、韓国各地で少女像の設置をめぐるあつれきが深まっている。

【写真】ソウル・日本大使館前の少女像=(聯合ニュース)

 南東部の釜山市ではこの日、市民団体が少女像を日本総領事館前に奇襲的に重機で設置。撤去しようとする警察とにらみ合う事態となった。管轄自治体は設置に反対の姿勢を示してきたが、団体側は「韓国への慰安婦少女像の設置を行政機関が阻むとは、実にばかげたこと。日本政府の顔色をうかがっている」と批判する。
 西部の忠清南道舒川郡でも、自治体と地元団体が少女像の設置場所をめぐり対立している。市民の参加で製作された少女像は公共施設が集まる場所にある広場への設置が認められず、この広場の一角に一時的に置かれている。

【写真】広場の一角に置かれている舒川郡の少女像=(聯合ニュース)

 昨年12月に除幕した南部・済州島の少女像も、設置を推進した団体は日本総領事館前に置くことを計画していたが、済州市が外交問題などを理由に許可しなかったことから、結局は公園に設置された。
 現在、韓国国内の36カ所に少女像が設置されている。米国、日本の沖縄、カナダなど海外の11カ所にも慰安婦の記念碑や平和の碑が建てられている。
 ソウル市議会は先ごろ、旧日本軍の慰安婦被害者に関する記念事業や造形物の設置・管理などを支援する条例改正案を発議した。
 慰安婦被害者が共同生活を送る「ナヌムの家」(京畿道広州市)の安信権(アン・シングォン)所長は「韓日間の外交摩擦に飛び火しかねないことなどを懸念し、公共機関が最初から(像の設置に)反対するのは、あつれきを深めるだけ」だと指摘する。慰安婦問題は「世界が共感する女性、人権、歴史問題」だとした上で、「官民の審議委員会や議会の意見を聞いて建立場所などを決定すべきだ」と述べた。
 安氏は解決策の一つとして、公聴会と議会の投票を経て少女像を設置した米カリフォルニア州グレンデール市のケースを挙げた。また、少女像を設置するには自治体首長の意志が重要だとし、京畿道城南市など市が率先して市庁前などに像を建てた自治体もあると紹介した。
 2011年12月にソウル市の日本大使館前に設置された少女像のそばでは、韓日合意を受けた像の移転や撤去を心配する大学生たちが、すでに1年近くも交代で野宿をしながら見張りを続けている。像が安全だと確信できるまでやめないという。

         stomo@yna.co.kr

http://www.wowkorea.jp/news/korea/2015/1125/10156154.html
「WoW!Korea」2015年11月25日11時3分配信
■韓国・済州の少女像 日本領事館前ではなく公園に設置へ
【済州聯合ニュース】韓国南部の済州島の公園に、旧日本軍の慰安婦被害を象徴する平和の少女像を設置する計画が進められている。
 済州島の4大学の学生会でつくる平和の碑(平和の少女像)建立推進委員会が25日、済州市老衡洞にある公園に少女像を設置することで市と基本合意し、詳細を調整していることを明らかにした。
 当初は同じ老衡洞にある日本総領事館前への設置を計画していたが、公園に変更した。
 推進委員会は27日に記者会見を開き、推進状況を説明し、住民に財政的な支援を呼びかける予定だ。
     mgk1202@yna.co.kr


http://www.recordchina.co.jp/b120839-s0-c10.html
「Record china」配信日時:2015年10月11日 0時12分
■韓国大学生が済州島に慰安婦像設置を推進も、市が難色示す=韓国ネットの意見はさまざま
 9日、韓国メディアによると、韓国・済州島の大学生らが、済州市内に旧日本軍の慰安婦を象徴する「平和の少女像」を設置する計画を推進していることが分かった。これについて、韓国のネットユーザーはさまざまなコメントを寄せている。
 2015年10月9日、韓国・聯合ニュースによると、韓国・済州島の大学生らが、済州市内にある日本総領事館前の広場に旧日本軍の慰安婦を象徴する「平和の碑(平和の少女像)」を設置する計画を推進していることが分かった。
 済州の大学生が建てる平和の碑建立推進委員会は同日、記者会見を開き、「韓国最南端にある平和の島であり、4・3事件(1948年4月3日に済州島で起こった島民の蜂起を発端に、軍や警察が多くの島民を迫害した事件)の悲劇を体験した島に建てる平和の碑は、どこの平和の碑よりも大きな意味を持つ」と述べた。
 委員会は12月中旬に平和の碑を完成させ、設置する予定だった。しかし、同市は外交問題などを理由に敷地の使用許可に難色を示しているという。また、建立にかかる費用(約640万円)も集まっておらず、委員会は募金活動を続けているとうい。

 これについて、韓国のネットユーザーはさまざまなコメントを寄せている。
   「学生たちが国のために本当に良いことをしてくれている!」
   「市の職員らは本当に韓国人?」
   「必ず設置してほしい。みんな寄付をしよう」
   「悲しい過去を繰り返さないためにも、慰安婦像を全国に設置するべき」
   「韓国国民の慰安婦問題への関心は薄れている。彼らの活動に共感する若者がもっと増
  えてほしい」
   「韓国=慰安婦のイメージになってしまいそう…」
   「碑や像を建てるのではなく、もっと効率的に賢く日本へ謝罪を求める方法はないのか?」
   「慰安婦問題はもういいよ。正直、国民の多くがうんざりしている」
   「朴大統領はなぜ協力しない?」
   「韓国政府はこの記事を見て、がっかりしているはず」
   「日本の反応を恐れた韓国政府が建立を邪魔しようとするだろう」

                                     (翻訳・編集/堂本)


http://www.wowkorea.jp/news/korea/2015/1009/10153493.html
「WoW!Korea」2015年10月9日20時45分配信
■韓国、またも「平和の少女像」設置予定=済州島の日本総領事館前、従軍慰安婦の象徴

【写真】ソウル日本大使館前の「平和の少女像」、従軍慰安婦を象徴している。(提供:news1)

 韓国の済州島にまたも「平和の少女像」が建てられる。
 済州島は「韓国の沖縄」と言われている韓国最南端の島で、観光地としても有名。韓国国内の新婚旅行地としても有名で、日本や中国から訪れる観光客も多い島だ。
 9日、「2015済州、大学生が建てる平和碑建立推進委員会」が会見を開き、計画を発表した。済州島の日本総領事館の前の広場に、従軍慰安婦を象徴する「平和碑」と「平和の少女像」を設置するとのこと。
 材料は済州特産の玄武岩で、「済州4・3事件」を象徴するツバキの花の彫刻、済州島の海女の象徴などが設置される。済州4・3事件とは韓国独立の直後、アメリカ軍政や韓国政府に対抗した抵抗運動のことだ。当時は「反乱」と認識され、過激な鎮圧により、日本にまで逃げ込んだ済州島民も多かった。
 済州の日本総領事館前の広場に設置される予定で、日中韓の首脳会談の前に、またも外交問題が起きそうだ。
コメント
この記事をはてなブックマークに追加

「“欧州初”ドイツに建てられた平和の少女像」

2017年03月17日 | 日本軍隊性奴隷
http://japan.hani.co.kr/arti/politics/26752.html
「The Hankyoreh」 登録 : 2017.03.10 02:00 修正 : 2017.03.10 16:34
■“欧州初”ドイツに建てられた平和の少女像
 水原市民寄付とドイツ人・ドイツ同胞の協力で実現 
 除幕式に出席したアン・ジョムスンさん「険しい世の中にならないように…」 

【写真】今月8日、ドイツで開かれた平和の少女像の除幕式に出席したアン・ジョムスンさんが感謝の言葉を伝えている=水原市提供//ハンギョレ新聞社

 京畿道水原(スウォン)市民の寄付で作られた「平和の少女像」が、世界女性の日の3月8日午後3時(現地時間)、ドイツのレーゲンスブルク市近くのヴィーゼントに建てられた。これまでも米国など海外に平和の少女像が建てられてきたが、欧州に建てられるのは今回が初めてだ。
 「平和の少女像」は水原市民が参加した「ドイツ平和の少女像水原市民建設推進委員会」(水原推進委)とドイツ現地の人たちが参加した「ドイツ平和の少女像建設に向けたドイツの建設推進委員会」(ドイツ推進委)が非人間的戦争犯罪で犠牲になった人々の魂を悼み、被害女性らの名誉と人権の回復に寄与しようという意味で推進された。水原推進委が水原市民の募金で3300万ウォン(約327万円)を集めて製作費を調達した。
 平和の少女像が建てられたところはドイツ・フランクフルトから343キロメートル離れた南部バイエルン州レーゲンスブルク近くのヴィーゼントにある「ネパール・ヒマラヤパビリヨン(Nepal-Himalaya-Pavilion)公園」だ。世界水財団のヘリベルト・ヴィルト理事長が代表を務めているこの公園は、仏教を崇拝したヴィルト代表が2000年、ハノーバー博覧会に建てられたネパール館を当時500万ユーロで買い入れ、自分の土地2万4000坪に移転して造成したもので、ヒマラヤ山の花と木5千種を保有した世界最大のヒマラヤ植物庭園だ。
 除幕式には14歳で日本軍慰安婦として連れていかれて、苦難を強いられた被害者ハルモニ(おばあさん)のアン・ジョムスさんも同行し、水原推進委のファン・インソン常任共同代表、社団法人水原民主化運動継承事業会のイム・ナムギュ理事長、光復会のス・ウォンジ会長、水原牧師連帯のイ・ジョンチョル代表、スサン僧侶(大乗院の住職)、共同執行委員長であるイ・ジュヒョン牧師(梅原メソジスト教会)、水原市家族女性会館のファン・ウィスク館長と水原市企画調整室のパク・フンシク室長、韓国挺身隊問題対策協議会(挺対協)のハン・グクヨン共同代表などが参加した。
 ドイツ側からは、現地同胞以外にドイツ推進委共同推進委員長のチュ・ヨンナム牧師(ボクフム韓国人教会)をはじめとするドイツ各地の韓国人教会牧師やシュタプナウ教務(円仏教レーゲンスブルク教堂のドイツ人校務)、イ・ウンヒ(「風景」発行人)、ハン・ジョンファ(コリア協議会会長)、韓民族欧州連帯のチェ・ヨンスク議長、活動家のキム・ジンヒャン氏(コリア協議会「慰安婦」委員会)、「ネパール・ヒマラヤパビリヨン」公園の共同理事長であるマルギット・ヴィルト(Margit Wirth)、ヘリベルト・ヴィルト(Heribert Wirth)夫婦などが参加した。
 同日の除幕式に出席したアン・ジョムスンさんは「言いたいことは多いが、言うことがない。ありがとう。これから険しい世の中にならないことを望む」と話した。除幕式では、農楽団「生活の場」が慰安婦被害者と戦争で無念な死を迎えた人たちの魂を呼び寄せる「山川節」を行い、舞踏家のキム・ミソン氏が厄払い公演を披露した。
 ドイツ平和の少女像は昨年9月、水原市の姉妹都市であるドイツのフライブルク市と平和の少女像を建立することで合意したが、日本側の激しい反対で建設が白紙に戻された。以降、水原地域75の市民社会団体で構成された水原推進委員会を中心に市民の募金活動が続き、ドイツの平和運動家であるパオル・シュナイス牧師(東アジア宣教会の名誉議長、5・18母親賞者)など、少女像の建設敷地の確保に向けて積極的に取り組んだドイツ現地の韓国人団体、現地のドイツ人で構成されたドイツ推進委の努力で「平和の少女像」の建設が実現した。

ホン・ヨンドク記者
韓国語原文入力:2017-03-09 13:27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785748.html 訳H.J


http://www.tokyo-np.co.jp/s/article/2017030901001170.html
『東京新聞』2017年3月9日 13時16分
■欧州初の慰安婦少女像設置 ドイツに
【ソウル共同】聯合ニュースによると、ドイツ南部バイエルン州の公園で現地時間の8日、旧日本軍の従軍慰安婦問題を象徴する少女像の除幕式が行われた。欧州での少女像設置は初めてという。像は当初、韓国・水原市が姉妹都市の南西部フライブルク市に設置を持ち掛けたが、同じく姉妹都市の松山市が反対し頓挫、今回の公園に場所を移した。
 聯合によると、像の設置は韓国市民団体やドイツ在住の韓国系住民らが主導。像の脇に設置された説明文には、韓国語とドイツ語で「非人間的な戦争犯罪で犠牲になった方々を尊ぶ」ためのものと記されている。
 除幕式は8日の「国際女性デー」に合わせて行われた。

【写真】ドイツ南部バイエルン州の公園で行われた旧日本軍の従軍慰安婦問題を象徴する少女像の除幕式=8日(聯合=共同)



http://chosonsinbo.com/jp/2017/03/16suk/
『朝鮮新報』2017.03.16 (11:09)
■欧州初、ドイツに少女像/水原市民と現地市民の協力で
 「平和の碑」(少女像)が、国際女性デー109周年に際して8日(現地時間)、ドイツ・バイエルン州ヴィーゼント市のネパール・ヒマラヤパビリオン公園に建てられた。少女像はこれまで南や世界の各地に設置されてきたが、欧州に設置されるのは初めて。日本と同じ第二次世界大戦の戦犯国であるドイツに建てられた意義は大きい。水原市民の寄付と在独同胞、ドイツ市民らの協力によって実現した。
 「ドイツ平和の少女像水原市民建設推進委員会」が主催した除幕式には関係者100余人が参加。式に参席した日本軍性奴隷制被害者のアン・ジョムスンさん(90)は、少女像をなでながら「皆さんの力で実現した」と涙を拭い、「これから険しい世の中にならないことを望む」と話した。
 碑文には「この記念物は非人間的な戦争犯罪で犠牲になった方々の魂を慰め、被害女性の名誉と人権の回復に寄与するために設置された」と朝鮮語とドイツ語で書かれている。また推進委では少女像を「スニ」と名付けた。ネパール・ヒマラヤパビリオン公園の共同理事長は、「スニは軽蔑と不法行為によって蔑視された世界のすべての女性たちを記憶するだろう」とし、少女像が世界各国に設置されることを願うと述べた。
 少女像建立については当初、水原市の姉妹都市である南部のバーデン=ヴュルテンベルク州フライブルク市に設置することで合意していた。しかし日本の姉妹都市である愛媛県松山市が設置に反対したため計画は白紙化され、現在の用地に設置することになった。
 日本による撤去要求は除幕式後にも続いている。推進委によれば、駐独日本総領事が公園理事長に対し撤去を求めた。これに対し理事長は、「世界女性平和の観点から像を公園から撤去する考えはない」との見解を示したという。



http://japanese.joins.com/article/992/226992.html?servcode=A00§code=A10&cloc=jp|main|top_news
「中央日報日本語版」 2017年03月17日11時19分
■「ドイツ少女像、日本の撤去圧迫にもその場を固く守っていく」

【写真】慰安婦被害者のアン・ジョムスンさんが8日、ドイツバイエルン州ウィーゼント「ネパール・ヒマヤラ・パビリオン公園」に設置された「平和の少女像」を撫でている。(写真=水原市)
 
 水原(スウォン)平和の少女像建立推進委員会は16日、水原オリンピック(五輪)公園内の平和の少女像の前で記者会見を開き、「日本の撤去圧迫にもかかわらず、ドイツ・ウィーゼントのある公園に建てられた欧州初の『平和の少女像」は固くその場を守っていくだろう」と明らかにした。
 これに先立ち、この市民団体は8日、ドイツ南部都市のウィーゼントにあるネパール・ヒマヤラ・パビリオン公園にドイツ推進委員会の関係者らと共に水原市民の寄付で作られた少女像を設置した。しかし、少女像設置後、駐ミュンヘン日本総領事が公園のヘリベルト・ビルト理事長に会って「2015韓日合意」を根拠に少女像の撤去を求めた。
 これに対して、水原平和の少女像建立推進委員会側は「ドイツの推進委からビルト理事長が自身の側近に女性平和と人権を象徴する少女像を撤去しないと話したと聞いた」とし「ビルト理事長は苦しい歴史を物語る少女像が公園に安らかに存在することを願う方だ。撤去をしないという立場を確認した」と伝えた。
 水原平和の少女像建立推進委員会は「今回、ドイツで平和の少女像が建てられて以来、日本政府は過去の間違った歴史を隠して糊塗するなど過去に対する反省を全くしていない」と指摘し、「韓国と水原市民、平和を愛する良心的な世界の人々と力を合わせて必ず少女像を守っていきたい」と付け加えた。
コメント
この記事をはてなブックマークに追加

「韓国首都圏の公立高校に少女像を設置」

2017年03月16日 | 日本軍隊性奴隷
http://japanese.joins.com/article/828/226828.html?servcode=A00§code=A10&cloc=jp|main|top_news
「中央日報日本語版」 2017年03月14日11時06分
■韓国首都圏の公立高校に少女像を設置
 韓国首都圏公立高校に慰安婦を象徴する平和の少女像が建てられた。
 京畿道(キョンギド)にある楊坪(ヤンピョン)高校が13日、生徒約200人と教師30人が参加した中で校庭で慰安婦少女像の除幕式を行ったことが分かった。
 楊坪高校の教師と生徒、市民などが募金を通じて建てた少女像の下には設立後援に参加した245人の名前が刻まれている。
 像を製作したパク・ヨンス作家は「まっすぐに立っている慰安婦少女像と石の上の蝶々を通じて慰安婦少女の失われた夢と希望を表現した」とし、「台座の床に垂れた少女のシルエットは腰が曲がったおばあさんの姿を表現し、歳月の苦痛とその跡を表した」と伝えた。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3/13/0200000000AKR20170313131400061.HTML
「연합뉴스」2017/03/13 15:36 송고
■'인생의 봄날 드리워진 어둠'…고교 교정에 세워진 '소녀상'
 양평고 학생·교사·시민 245명 성금모아 '위안부' 소녀상 제막

(양평=연합뉴스) 김경태 기자 = "아름다웠던 인생의 봄날 드리워진 시대의 어둠/ 이별의 아픔과 두려움 안고서 떠나야 했던 발걸음/…(중략)…놓쳐버린 빛나고 아름다운 당신의 봄날들/ 이제 행복하길 바라겠소 우리 함께 함으로"
 13일 오후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양평고등학교 교정에서 이른 봄 햇살 속에 노래가 울려 퍼졌다.
 이 학교 인권동아리 'JR가디언' 회원 학생들이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 제막식에 맞춰 가수 김광진의 '편지'를 개사해 부른 곡이다.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소녀상이 국내외 곳곳에 설치되는 가운데 이날 양평고 교정 화단에도 작은 소녀상이 세워졌다.

【写真】고등학교 교정에 세워진 소녀상(양평=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 13일 오후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양평고등학교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 제막식에서 양평고 인권동아리 'JR가디언' 학생들이 소녀상을 바라보고 있다. 소녀상은 'JR가디언'이 지난해 4월부터 연말까지 설립운동을 펼쳐 교사와 학생, 시민 등 245명이 후원자로 참여해 370여만을 모아 설립됐다. 2017.3.13 xanadu@yna.co.kr

 양평고 소녀상 설립은 2015년 12월 28월 '한일 위안부 합의'가 계기가 됐다. 당시 우리 사회에서 위안부 협상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학생들이 직접 나서 모금 운동을 시작했다.
 이듬해 학기 초 인권동아리 학생 전체회의에서 교정에 소녀상을 세우자는 제안이 나왔고 동아리 학생들이 주축이 돼 지난해 4월부터 연말까지 모금을 운동을 벌였다.
홍보 팸플릿을 만들어 학생과 교사들에게 나눠주고 동아리 활동시간에는 양평역에 나가 거리 홍보전을 펼쳤다. '위안부' 상징 팔찌를 제작해 판매하고 교내 인권 페스티벌 행사에서는 전시회를 열었다.
 이렇게 모은 성금이 370여만원으로 교사와 학생, 시민 등 모두 245명이 후원자로 참여했다.
 우연히도 국내 '위안부' 피해자는 정부에 공식 등록된 238명에다 대일항쟁위원회가 피해자로 인정한 7명(사망자)을 합치면 모두 245명이다.
 높이 107㎝의 소녀상은 화강암 포천석 하단에 소녀상 형상의 청동 작품을 세워 제작했다. 좌대에는 "잊혀진 역사가 아니라 영원히 기억하고 기록되어야 할 역사"라는 취지문과 함께 후원자 245명의 이름이 새겨졌다. 그중에는 생후 한 달 된 한 교사의 아들 이름도 있다.
 부족한 비용으로 자비를 보태 제작한 수박(박용수) 작가는 "올곧게 서 있는 위안부 소녀상과 돌 위의 나비를 통해 소녀의 잃어버린 꿈과 희망을 표현했다"며 "좌대 바닥에 드리워진 소녀의 실루엣은 허리가 굽은 할머니의 모습으로 표현해 세월의 고통과 흔적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写真】고등학교 교정에 세워진 소녀상(양평=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 13일 오후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양평고등학교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 제막식에서 양평고 인권동아리 'JR가디언' 학생들이 소녀상을 바라보고 있다. 소녀상은 'JR가디언'이 지난해 4월부터 연말까지 설립운동을 펼쳐 교사와 학생, 시민 등 245명이 후원자로 참여해 370여만을 모아 설립됐다. 2017.3.13 xanadu@yna.co.kr

 이달 초 전보되기 전까지 인권동아리 지도교사였던 하병수 양평전자과학고 교사는 "학생들이 교과서 속 역사에서 벗어나 스스로 소녀상을 세우는 과정에서 더 깊게 역사를 접하게 되고 이 문제를 둘러싼 사회 문제에도 관심을 두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JR가디언 회장 주빈(3학년) 학생은 "피해자는 제쳐놓고 양국 정부 고위층만 만나서 합의한 것에 대해 다시 되돌렸으면 좋겠다는 것이 동아리 부원들의 일치된 의견이었다"며 "이번 소녀상을 세운 것을 계기로 저희나 후배들이 잊지 않고 위안부 문제를 떠올리고 기억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런 마음은 인권동아리 부원 최리(2학년) 학생이 제막식에서 낭독한 '위안부 할머님께 드리는 편지'에도 고스란히 담겼다.
 "한일 위안부 협상을 했을 때, 고개 숙여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습니다…(중략)…제 나이 때, 혹은 제 나이보다 더 어린 나이에 그런 일을 겪으신 할머니들의 아픔이 얼마나 크셨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습니다…(중략)…저희가 완전히 해결할 수 없지만, 이렇게 조금씩 알리고 문제 해결에 노력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할머니들은 절대로 혼자가 아닙니다. 이런 작은 인식이 모여 언젠가는 큰일을 해낼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전날 밤 울면서 썼다는 편지는 외할머니에게도 하지 않았던 "사랑합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라는 말로 끝맺었다.

【写真】소녀상 설명 듣는 학생들(양평=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 13일 오후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양평고등학교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 제막식에서 양평고 인권동아리 'JR가디언' 학생들이 소녀상을 만든 작가의 설명을 듣고 있다. 소녀상은 'JR가디언'이 지난해 4월부터 연말까지 설립운동을 펼쳐 교사와 학생, 시민 등 245명이 후원자로 참여해 370여만을 모아 설립됐다. 2017.3.13 xanadu@yna.co.kr

                  ktkim@yna.co.kr
コメント
この記事をはてなブックマークに追加

「铭记历史 珍爱和平——琼海(琼东、乐会)抗日战争历史展举行」

2017年03月15日 | 海南島史研究
http://hnqh.wenming.cn/ldhd/201509/t20150916_1988947.html
「琼海文明网」发布时间:2015-10-08 来源:琼海通讯 周祖君
■符宣朝等市四套班子领导成员参观抗日战争历史展
 铭记历史 珍爱和平——琼海(琼东、乐会)抗日战争历史展举行
 符宣朝符平等市四套班子领导成员参观

【相片】琼海市委书记符宣朝、市政协主席符平等市四套班子领导成员在参观抗日战争历史展。(琼海通讯 袁铭舒摄)

  8月29日,琼海(琼东、乐会)抗日战争历史展在市青少年文化宫开展。
  琼海市委书记符宣朝、市政协主席符平等市四套班子领导成员,彬村山华侨经济区工委书记、管委会主任,各镇委书记、镇长,市直机关各单位主要负责人列队参观抗日战争历史展。
  发生在20世纪三四十年代的中国人民抗日战争,是中华民族抵抗日本帝国主义侵略的一场规模巨大的战争,是世界反法西斯战争的重要组成部分和东方主战场,是近代以来中国反对外敌入侵第一次取得完全胜利的民族解放战争。
  琼海(琼东、乐会)人民殊死抗战的历史,是一部光辉的取得抗日战争彻底胜利的民族斗争史,是中国共产党领导下的人民战争史,是民族团结抵御外敌的英雄史。在这场伟大的人民战争中,涌现出许许多多可歌可泣的抗战英雄集体和个人,他们为民族的解放事业前仆后继、英勇奋战的光辉事迹,将永远记载于琼海人民革命斗争的史册。但是,在这一伟大胜利的背后,是琼海(琼东、乐会)人民为这场战争的胜利作出的巨大贡献,在这场战争中付出的巨大牺牲。
  为纪念中国人民抗日战争暨世界反法西斯战争胜利70周年,经琼海市委批准,举行“琼海(琼东、乐会)抗日战争历史展”。该展分为日军侵占琼东、乐会两县的血腥罪行;中共琼东、乐会县委是两县抗战的中流砥柱;国民政府参加抗战;华侨支持抗战;抗日战争的最后胜利五大部分。历史展以图片、表格和文字资料作为主要表现形式,让参观者了解琼东、乐会两县人民的抗战历史。据历史资料记载,琼海市抗战时期直接人口死亡14391人,含被日军杀害和作战牺牲人数;间接人口伤亡626人,含被捕、劳工、灾民病饿死人数;被烧毁渔船130艘吨位近3000吨;被烧、拆毁房屋2882间,财产损失折算290万银元,计算单位为法币。中共领导下的琼东、乐会军民抗日战绩为:与日伪军作战近百次;击毙击伤日伪军300多人;缴获长短枪200支,轻机枪4挺,掷炮筒1具,弹药及物质一大批。
  举办该史展目的是希望能帮助人民了解琼海(琼东、乐会)抗日战争时期的历史,“铭记历史,缅怀先烈,珍爱和平,开创未来”,以此激励人们振奋民族精神,为实现中华民族伟大复兴的中国梦而奋斗。
  琼海市委党校常务副校长翁超群参观历史展后说:“通过参观,感到国家落后就会被挨打,抗日战争的胜利是中国共产党坚强领导社会各界紧密团结英勇作战取得的,我们要倍加珍惜今天来之不易的和平生活,弘扬抗日民族精神,为加快田园城市建设,实现我们的中国梦而努力工作。”
  抗日战争历史展由市委宣传部、市委党史研究室联合主办。
コメント
この記事をはてなブックマークに追加

「日军占领海南全面血洗扫荡 多半村民惨死屠刀下」

2017年03月14日 | 海南島史研究
http://www.154155.com/yidusan/hz/bang/html/149/157/n3577668/p0.html
「五五信息网」 2017/2/16 11:37:32 来源:E都市
■日军占领海南全面血洗扫荡 多半村民惨死屠刀下
 日军占领海南全面血洗扫荡 多半村民惨死屠刀下少数逃出生天。1939年2月10日凌晨,日军向海南岛发起进攻,当天佔领琼山府城和海口。日军侵略海南6年间,制造了诸多惨案。1937年7月7日夜晚,驻华日军发动“七七事变”(亦称“卢沟桥事变”),日本开始全面侵华,抗日战争爆发。
  为隆重纪念全民族抗战爆发七十七週年,揭露日军在我省所犯下的战争罪行,让我们牢记侵略战争给海南人民和世界人民造成的深重灾难,同时珍惜来之不易的和平,即日起,本报推出专题报道,将以史料和受害人为证,揭露抗战时期日军在我省制造的一系列惨绝人寰、骇人听闻的惨案。
  1939年2月10日凌晨,日军向海南岛发起了进攻。日本海军第5舰队司令长官近藤信竹中将和陆军第21军司令官安藤利吉中将指挥下的“台湾混成旅团”数千人。
  在海军第5舰队30余艘舰艇护卫和50余架飞机的掩护下,从海口西北角琼山县天尾港约2公里长的海岸强行登陆。为强化对海南岛的佔领,日军在海南环岛沿海地带及内陆山区,建立360多个军事据点,形成军事统治网路。
  日军为实施“以华制华”方针,网罗汉奸、卖国贼,于1939年7月17日在海口成立傀儡政权“琼崖临时政府”,由赵士桓为主席;成立伪“自卫军”,詹松年为伪军司令。
  日伪重编户口、发放良民证,建立保甲制,采取连坐及限制人身自由等办法,强化对佔领区民众的日常监控体制。这些伪政权与日军系统纵横交错,组成严密的法西斯殖民统治网路,残酷地统治、压榨和摧残沦陷区的人民。

  日军占领海南全面血洗扫荡 多半村民惨死屠刀下少数逃出生天。据介绍,日军在海南实行野蛮的“三光”(烧光、杀光、抢光)政策,肆意杀戮无辜民众,血腥镇压抗日军民,制造一桩桩骇人听闻的惨案、血案。
  日军屠杀海南军民的手段极端残忍,有活埋、剥皮、割肉、斩首、抛杀、集体枪杀、绳绞、挖眼、肢解、挖心、狗咬、水烫、棒打、电击、铁丝吊、插竹籤、钉四肢等多种手段。日军侵略海南6年间,制造多起惨案,其中文昌南阳乡、琼海互助乡(今海南省琼海市中原镇长仙行政村)“三·一”惨案、澄迈沙土峒三起惨案,因被害人数众多,在诸多惨案中性质最恶劣。
  48个自然村中18个被夷为平地,3000多人近一半被日军杀害,因属琼文抗日根据地一部分,日军将南阳乡列为“无人区”,进行150多天的“扫荡”与“蚕食”,记者从省委党史研究室查阅有关史料获悉,南阳乡位于海南文昌市的西南部,离文城约13公里。
  抗战时期,该乡有下市尾村、罗衣陈村、罗廓村、托盘坑村、美鳌村、美文山村、金花村等48个自然村,有697户3000多人。在经过日军150多天“扫荡”和“蚕食”后,18个自然村被日军夷为平地,成为废墟。全乡1549位村民被日军杀害,200多位妇女被日军奸污,全家都被杀死的有79户,700多头耕牛被抢劫或杀掉,其他财物损失难以估计。
  日军将抗日根据地所在乡列为“无人区”施行“三光”政策,1939年,中共琼崖组织在琼山三区、四区各乡和五区部分乡和文昌西部各乡创建了海南的第一个抗日根据地——琼文抗日根据地,南阳乡属于该根据地的一部分。为了摧毁琼文抗日根据地,日军把位于该根据地内的各乡列为“无人区”。
  1942年11月至1943年4月,驻文昌县城和文昌新桥据点的日军及文昌南阳乡金花村日军“远征讨伐队”在飞机、大炮的掩护下,对琼文抗日根据地南阳乡进行“扫荡”和“蚕食”。

  日军占领海南全面血洗扫荡 多半村民惨死屠刀下少数逃出生天。驻在南阳乡金花村的100多名日军“远征讨伐队”士兵在军官小野(眼小心毒,被当地民众称为“小眼狼”)的指挥下,在南阳乡施行“三光”政策,对南阳乡进行为期150多天的“扫荡”与“蚕食”,制造了多起惨案,造成重大人口伤亡和财产损失。日军见人杀人、逢屋烧屋、遇物抢物南阳乡变成人间地狱。
  在“扫荡”与“蚕食”中,日军分片轮番进行“围剿”,今天摧残这个村庄,明天去烧那几个村庄。见人杀人,逢屋烧屋,遇物抢物,并把带不走的东西和可供食用的植物统统毁掉。日军还四处出动,寻找山中烟火、路边脚印、山中声响,一有动静就搜山。
  搜到人便杀人,搜不到人便放火烧山,跟踪追杀,包围堵截。在“扫荡”与“蚕食”中,日军的摧残手段灭绝人性,令人髮指。南阳乡一时成为有田无人耕、有路没人走、有村无屋入、断鸡啼无炊烟的人间地狱。来不及逃跑的村民或被用来进行屠杀比赛或被活活烧死。
  1942年12月5日上午8点多,20多名日军包围了下市尾村,有18位村民来不及逃走被日军抓住。日军将他们押进村民陈如汉的厨房内,把他们捆起来。2名日军士兵手握军刀,分别站在村民们的两旁,进行屠杀村民比赛。他们指定在门口站岗手端机枪的士兵充当裁判,余下的日军在一边目睹2名日军用军刀杀人。
  在日军狰狞的笑声中,18位村民均被日军杀害,身首异处。不久,日军又一次进入该村,抓住来不及逃跑的陈序琚伯父、伯母、堂姐、堂兄和邻居沈家3人。
  并将他们拖到陈序琚老祖屋前的一棵老树下,用刺刀将他们7人全部杀死。在下市尾村,日军将30多位村民关进一间房屋内纵火焚烧,活活把他们烧死。拥有50多人的罗廓村在日军屠杀后仅存5男3女
  罗廓村是一个仅有8户50多人的村庄。12月28日,驻金华村据点的日军20多人在“小眼狼”小野指挥下血洗了罗廓村,王茀召等村里不少男人被日军割下阴茎塞进嘴里惨死。村中的妇女不分老少均被日军先奸淫后被日军用木棍插入阴道直通内臟而死,王茀召的妻子至死还瞪着惊恐的双眼。
  多半村民被砍头、吊死、打死、烧死,个别还被挖去肝臟。几个小孩被扔进水井里活活淹死。村民陈金花大哥一家4人被日军捆在一起活活烧死。在日军屠杀后,全村仅存5男3女,房屋全部被烧燬,耕牛被杀或抢走,土地荒芜,活着的村民只好到外地谋生。
コメント
この記事をはてなブックマークに追加

「海南88岁“慰安妇”受害者符美菊去世」

2017年03月13日 | 日本軍隊性奴隷
http://www.chinanews.com/sh/2017/03-08/8169070.shtml
「中国新闻网」2017-03-08 23:15:53
■海南88岁“慰安妇”受害者符美菊去世
中新社海南儋州3月8日电 (陈厚志) 海南“慰安妇”受害者,儋州妇女符美菊于3.8国际妇女节11时在家中与世长辞,终年88岁。
  符美菊是海南省儋州市大成镇南迁村人,生于1929年,16岁时被日本兵抓去修公路,之后又被抓到慰安所20余日,身心遭受巨大摧残。
  符美菊生前回忆,是她父亲向邻里乡亲借几十块大洋送给慰安所才将其赎回,回到家后开始发高烧生病,一个多月后才慢慢好起来。
  符美菊逃离魔窟后于22岁成亲,共生养六个子女,她的丈夫于20多年前去世。点击进入下一页点击进入下一页
  符美菊生前与孙子一同生活,因早年受日军摧残,晚年致瘫痪,生活不能自理。
  据了解,目前海南省仅有7名二战“慰安妇”幸存者。(完)


http://ngdsb.hinews.cn/html/2017-03/13/content_16_1.htm
『南国都市报』2017年03月13日
■海南88岁“慰安妇”受害者符美菊去世
 晚年与孙子相依为命

【相片】符美菊

  南国都市报3月9日讯(记者 梁振文 文/图)3月8日,海南“慰安妇”受害者,儋州妇女符美菊在家中去世,终年88岁。
  符美菊16岁时被日军以招工名义抓到儋州大成镇附近的慰安所。期间,疲劳、虐待和病痛让符美菊差点死去。后来,父亲谎称治病才带其逃离魔窟。
  之后,符美菊嫁到澄迈,将那段痛苦的经历深埋心中,丈夫直到去世都不知情。

★16岁被以招工名义抓当慰安妇
  据符美菊阿婆回忆,16岁那年,她被日军以招工修建营房和机场为名,抓至大成镇附近的慰安所。白天要挖土搬石头,晚上则成为“慰安妇”,只要她不顺从就会遭到毒打。
  疲劳、虐待和病痛,很快将符美菊的身体击垮,她曾一度以为自己会死在慰安所。“我躺在床上都动不了,也吃不下东西。”符美菊曾在受访时说,直到一个多月后,她父亲向他人借了几十个大洋送给慰安所的“头头”,谎称将她带回家治病再送回去,这才将她救了出来。之后她一病不起,直到一个月后身体才逐渐康复。
  22岁那年,符美菊嫁到澄迈县中兴镇土龙村。她与丈夫一共生下6个孩子,其中三个因病夭折,仅剩一儿两女。两个女儿后来嫁了人,儿子也娶妻有了后人,即王财强。但不幸的是,在王财强出生之前,这唯一的儿子又因打井触电而死,王财强则由奶奶符美菊和大姑拉扯长大。

★晚年与孙子相依为命
  王财强说,他从小跟着奶奶符美菊过着贫困生活。后来,奶奶为了让他过上好日子,将他送到大女儿家。2006年,在镇上读初二的王财强放心不下独居的奶奶,于是辍学回家照顾老人。当时16岁的王财强想得清楚:“小时候奶奶带我,现在我要照顾她。”
  之后,王财强一边照顾奶奶,一边打工挣钱。但符美菊不忍孙子如此操劳,也帮人清洗装橡胶的塑料桶挣钱补贴家用。三年前开始,符美菊患有风湿的双膝无法站立,只能靠轮椅活动。以种植橡胶和打零工为生的王财强,成为她唯一的依靠。
  “奶奶就坐在这张轮椅上,让我推出去晒太阳的。”看着空空的轮椅,王财强哽咽地说。
  “好在社会上关注慰安妇的人越来越多。”王财强说,前些年一年最多两拨人上门探望,但后来上门的爱心人士越来越多。2014年年末,中国慰安妇问题研究中心为慰安妇幸存者筹措的5000元捐款,也送到了符美菊的手中。除来自社会的关注之外,澄迈县民政局的工作人员也前来慰问老人。
  “随着腿部病情加重,岁月侵蚀,奶奶终于撑不住了。”王财强哭着说,愿奶奶一路走好,在另一个世界无灾无难快乐安好。

コメント
この記事をはてなブックマークに追加

「67年ぶりに現れた民間人集団虐殺現場」

2017年03月13日 | 韓国で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02866&CMPT_CD=SEARCH
「OhmyNews」 17.02.28 16:06 최종 업데이트 17.02.28 16:06 윤성효(cjnews)
■[사진] 67년만에 드러난 민간인 집단학살 현장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진주 용산고개 2차 발굴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은 28일 오후 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리 용산고개에서 '2차 발굴 현장'을 공개했다.
 공동조사단은 지난 23일부터 이곳에서 발굴작업을 벌였다. 그 결과 최소 27구의 유해와 안경, 버클, 단추, 탄두, 고무줄 등 유품 31점을 찾았다.
 이곳에서는 한국전쟁이 난 1950년 6월부터 서너달 안에 군인과 경찰 등에 의해 민간인들이 집단 학살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해와 유품은 67년만에 드러난 것이다.

【写真】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리 용산고개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2차) 유해. ⓒ 윤성효
【写真】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리 용산고개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2차) 유해. ⓒ 윤성효
【写真】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리 용산고개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2차) 유해. ⓒ 윤성효
【写真】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리 용산고개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2차) 유해. ⓒ 윤성효
【写真】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리 용산고개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2차) 유해. ⓒ 윤성효
【写真】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리 용산고개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2차) 유해. ⓒ 윤성효
【写真】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리 용산고개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2차) 유해. ⓒ 윤성효
【写真】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리 용산고개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2차) 유해. ⓒ 윤성효
【写真】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리 용산고개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2차) 유해 발굴터. ⓒ 윤성효
【写真】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리 용산고개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2차) 유품. ⓒ 윤성효
【写真】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리 용산고개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2차)에서 나온 치아. ⓒ 윤성효
【写真】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리 용산고개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2차) 탄두로, 왼쪽부터 M1, 45구경(가운데 2개), 카빈이다. ⓒ 윤성효
【写真】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리 용산고개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2차)에서 나온 고무줄. ⓒ 윤성효
【写真】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리 용산고개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2차)에서 나온 안경. ⓒ 윤성효
【写真】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리 용산고개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2차) 유품으로, 한자 '체'자와 '조선체육회'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 윤성효
【写真】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리 용산고개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2차) 유품의 버클로, 고등학교의 '고'자가 도안되어 있다.  ⓒ 윤성효
【写真】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리 용산고개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에서 나온 유품. ⓒ 윤성효
コメント
この記事をはてなブックマークに追加

「67年ぶりに出てきた遺骸、安置する所なくコンテナに保管」

2017年03月12日 | 韓国で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03388&CMPT_CD=SEARCH
「OhmyNews」 17.03.02 11:18 최종 업데이트 17.03.02 11:18 윤성효(cjnews)
■67년만에 나온 유해, 안치할 곳 없어 컨테이너 보관
 진주 용산고개 2차 발굴 결과 ... 유족회 등 '학살지 보존, 안치소 대책 필요'

【写真】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고개 있는 '한국전쟁 전후 민주 민간인 희생자 임시 유해 안치소'. ⓒ 윤성효
【写真】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고개 있는 '한국전쟁 전후 민주 민간인 희생자 임시 유해 안치소' 내부.  ⓒ 윤성효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학살 피해자의 유해가 67년만에 발굴되었지만, 편안하게 잠들지 못하고 컨테이너에 보관되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2일 한국전쟁유족회 진주유족회(회장 강병현)와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은 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고개에서 2차 발굴한 유해와 유품을 컨테이너에 임시보관했다고 밝혔다.
 임시보관소는 2009년 진주 진성고개와 2014년 2월 용산고개 1차 발굴 때 나온 유해와 유품이 보관되어 있다. 이들은 모두 한국전쟁 전후 진주지역 민간인 집단학살 피해자들이다.
 공동조사단은 지난 2월 23일부터 3월 2일까지 용산고개 2차 발굴을 마무리지었다. 공동발굴단은 최소 27구의 유해와 안경, 버클, 탄두, 단추, 고무줄 등 유품 31점을 수습했다.
 공동조사단은 이번 발굴 결과에 대해 "희생자는 경찰 등이 갖고 있던 카빈소총과 국군이 사용하는 45구경 권총 및 M1 등에 의해 사망했다"며 "일부는 확인사살되었을 가능성도 큰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했다.
 공동조사단은 "유해와 유품의 상태를 분석하고, 많은 증언들을 종합한 결과, 이곳 희생자들 다수는 '진주지역 보도연맹사건 희생자'들로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용산고개 학살지는 현재 사유지다.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희생자 유족들은 땅이 훼손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민간인 학살지를 보존하고, 유해와 유품을 안치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강병현 회장은 "유해를 발굴했지만 편안하게 모시지 못하고 컨테이너에 임시 보관하게 되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진주시와 중앙정부에 유해 발굴과 안치 등에 대한 대책을 요구했지만, 서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빨리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 했다.
 이번 유해발굴을 담당했던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는 "유해와 유품이 나온 학살지를 보존해야 한다. 자라나는 어린이들을 교육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며 "자치단체가 매입해서 보존할 수 있는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 말했다.
 이번 학살지 발굴은 민간단체가 벌였다. 진주유족회는 진주시에 재정 지원 등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진주에는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조례'와 '진주인권조례'가 만들어져 있다.
 서은애 진주시의원은 "관심을 갖고 있다. 진주시에도 이야기를 해서 보존 대책 등을 세우도록 하겠다. 유족들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며 "진주에는 관련 조례가 많음에도 유해 발굴에 지원이 되지 않았고, 학살지 보존 대책이 세워지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写真】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리 용산고개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2차) 유해. ⓒ 윤성효
【写真】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리 용산고개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2차) 유품. ⓒ 윤성효
コメント
この記事をはてなブックマークに追加

「晋州龍山とうげ民間人虐殺地、‘とどめの一発’まで撃たれた」

2017年03月11日 | 韓国で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02868&CMPT_CD=SEARCH
「OhmyNews」 17.02.28 17:25 최종 업데이트 17.02.28 17:25l 윤성효(cjnews)
■진주 용산고개 민간인 학살지, '확인사살'까지 당했다
 한국전쟁기 민간인 집단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2차 학살지 발굴 공개

【写真】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가 28일 오후 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리 용산고개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2차) 발굴 현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写真】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리 용산고개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2차) 유해. ⓒ 윤성효

 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고개에서 한국전쟁 전후 집단학살 되었던 민간인들은 확인사살까지 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은 현장에서 나온 '45구경' 탄두 2점을 근거로 이같이 추정했다. 공동조사단은 지난 23일부터 이곳에서 발굴작업을 벌이고, 28일 현장을 공개했다.
 공동조사단은 2014년 2월 1차 발굴 때 유해 39구와 유품 90점을 발굴했다. 이번 2차 발굴조사는 1차 현장에서 100m 아래 쪽에서 진행됐다.
 허벅지뼈와 정강뼈, 위팔뼈, 머리뼈 등이 나왔고, 주인공은 남아 어른으로 추정된다. 유품은 버클 5개와 탄두 6개, 안경 1개, 고무줄, 단추 등이 나왔다. 탄두는 카빈 3점, 45구경 2점, M1 1점이다.
 유해와 유품은 가로 8m, 세로 2m 넓이에 깊이 30~50cm 정도의 범위 안에서 나왔다. 박선주 발굴단장(충북대 명예교수)은 유품으로 나온 '45구경' 탄두에 주목했다.
 박 교수는 "45구경이 나왔다는 것은 확인사살로 추정되는 증거"라며 "45구경은 권총으로 유효 거리가 가깝다. 확인 사살할 때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유해와 탄두 숫자가 일치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박 교수는 "세월이 지나면서 빗물에 씻겨 내려갔거나 이전에 이 장소에 대해 파낸 흔적이 있어서 상당수가 없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안경은 도수가 없다. 박 교수는 "1950년대 발굴지에서 나온 안경은 대부분 도수가 없는데, 멋으로 썼던 것 같다"고 말했다.
 단추는 둥근 모형 4개, 4열 흰색 11개, 2열 녹색 2개, 4열 검정색 1개가 나왔다. 박 교수는 "형무소 재소자는 죄수복을 입고 있어 단추가 거의 일치하는데, 이곳에서는 다양한 단추가 나왔다"며 "이는 재소자가 아니라 국민보도연맹원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단추의 색깔이 흰색이 많아 여름 옷을 입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학살 시기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뒤인 1950년 6~8월 사이로 추정된다"고 했다.
 버클 2개 앞면에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한자 '고(高)'자를 새겨 놓은 버클은 고등학교 마크로 추정되고, 다른 하나는 한자 '체(體)'자와 함께 '조선체육회'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写真】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가 28일 오후, 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리 용산고개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2차)에서 나온 유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윤성효

 치아도 관심거리였다. 금, 은, 동으로 보철했던 것이다. 박 교수는 "1950년대만 해도 먹고 살기가 힘들었고, 그 때 금보철을 했을 정도였다면 형편이 다소 나았던 사람으로 보인다"며 "어느 정도 사회적 신분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주민 증언 등에 의하면, 진주 명석면 용산리 골짜기에는 당시 718명이 집단학살되었다고 한다. 1차와 2차 발굴 결과, 수습된 유해는 66구뿐이다.
 박 교수는 "아직 발굴되지 않은 곳 이외에 더 집단학살지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 정도 구덩이라면 27명이 들어가기에 충분하다"며 "다른 지역 학살지의 증언을 보면, 당시 재소자를 30~35명 정도 트럭에 태워 싣고 갔다고 한다"고 말했다.
 또 박 교수는 "뼈가 나온 위치 등을 볼 때, 사람이 구덩이 안에서 서 있는 상태에서 총을 쏜 것 같다"며 "총을 쏘니까 사람들이 우왕좌왕했던 것 같고, 뼈는 가운데는 적고 양 옆으로 많이 몰려 있다"고 말했다.
 진주유족회 몇몇 회원들 눈물 훔치기도
 이날 현장설명회에는 진주유족회 회원들도 지켜봤다. 박선주 교수가 설명하는 동안 몇몇 유족들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강병현 진주유족회 회장은 "목이 메인다. 유해를 보고 이게 우리 아버지인가 하는 생각을 하니, 말이 나오지 않는다. 이게 나라냐, 우리가 국민이냐"며 "지방자치단체도 중앙정부도 다 정부인데,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사람이 죽었는데, 그것도 국가에 의해 죽임을 당했는데 왜 국가가 나서지 않느냐. 비참하다"고 말했다.

【写真】강병현 진주유족회 화장이 28일 오후 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리 용산고개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2차) 유해 발굴 현장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윤성효

 김종현 대전유족회 회장은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시민사회가 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가 고맙다. 고마움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며 "아직 정부는 나몰라 하며 손을 놓고 있다. 옛날에는 연좌제로 인해 우리 아버지가 여기서 죽었다는 말도 못했다. 비통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안경호 총괄조사원은 "유품으로 안경이 한 점 나왔다. 그 안경의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보았던 하늘은 맑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증언과 기록에 의하면 진주지역에서만 7곳에서 2200여명의 민간인이 1950년 6~8월 사이 학살되었다고 한다. 추가 발굴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선주 교수는 "저는 1997년부터 민간인 학살지 유해 발굴을 시작했다. 어떤 분은 왜 유해 발굴을 하느냐고 묻는다. 그러면 저는 '국가 정체성 확립'과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 신장'을 위한 것이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곳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하는 문제가 있다. 다시는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교육이 중요하다. 이곳을 학생 교육 현장으로 활용되어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진주시가 이 땅을 매입해서 보존 방안을 찾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에는 진주유족회 회원들과 류재수·서은해 진주시의원 등이 함께 했다. 공동조사단은 3월 2일까지 유해 발굴을 마무리한다.

【写真】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가 28일 오후 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리 용산고개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2차)에서 현장설명하고 있다. ⓒ 윤성효
コメント
この記事をはてなブックマークに追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