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khonのノート

백봉의 공책

韓国音楽 お父さん

2016-08-12 13:19:21 | 詩・音楽



YO~ 너무 앞만 보며 살아오셨네
어느새 자식들 머리커서 말도 안듣네
한평생 처 자식 밥그릇에 청춘 걸고

새끼들 사진보며 한푼이라도 더 벌고

눈물 먹고 목숨 걸고 힘들어도 털고 일어나
이러다 쓰러지면 어쩌나
아빠는 슈퍼맨이야 얘들아 걱정마

위에서 짓눌러도 티낼 수도 없고
아래에서 치고 올라와도 피할 수 없네
무섭네 세상 도망가고 싶네
젠장 그래도 참고 있네 맨날
아무것도 모른체 내 품에서 뒹굴거리는
새끼들의 장난 때문에 나는 산다
힘들어도 간다 여보 얘들아 아빠 출근한다

아버지 이제야 깨달아요
어찌 그렇게 사셨나요
더이상 쓸쓸해 하지 마요
이제 나와 같이 가요

어느새 학생이 된 아이들에게
아빠는 바라는 거 딱 하나
정직하고 건강한 착한 아이 바른 아이
다른 아빠 보단 잘 할테니
학교 외에 학원 과외 다른 아빠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고자 무엇이든지 다 해줘야 해
고로 많이 벌어야 해 너네 아빠한테 잘해

아이들은 친구들을 사귀고 많은 얘기 나누고
보고 듣고 더 많은 것을 해주는 남의 아빠와 비교
더 좋은 것을 사주는 남의 아빠와 나를 비교
갈수록 싸가지 없어지는 아이들과
바가지만 긁는 안사람의 등살에 외로워도 간다
여보 얘들아 (얘들아) 아빠 출근한다

아버지 이제야 깨달아요
어찌 그렇게 사셨나요
더 이상 쓸쓸해 하지 마요
이제 나와 같이 가요

여보 어느새 세월이 많이 흘렀소
첫째는 사회로 둘째 놈은 대학로
이젠 온가족이 함께 하고 싶지만
아버지기 때문에 얘기하기 어렵구만
세월의 무상함에 눈물이 고이고
아이들은 바뻐보이고 아이고
산책이나 가야겠소 여보
함께가주시오

아버지 이제야 깨달아요
어찌 그렇게 사셨나요
더 이상 쓸쓸해 하지 마요
이제 나와 같이 가요 오오~
당신을 따라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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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音楽 お母さん

2016-08-12 13:08:52 | 詩・音楽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
남들 다하는 외식 몇 번 한 적이 없었고
일터에 나가신 어머니 집에 없으면
언제나 혼자서 끓여먹었던 라면
그러다 라면이 너무 지겨워서
맛있는 것 좀 먹자고 대들었었어
그러자 어머님이 마지못해 꺼내신
숨겨두신 비상금으로 시켜주신
짜장면 하나에 너무나 행복했었어
하지만 어머님은 왠지 드시질 않았어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야이야아아 그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후회하고 눈물도 흘리고
야이야아아 그렇게 살아가고
너무나 아프고 하지만 다시 웃고

중학교 일 학년때 도시락 까먹을 때
다 같이 함께 모여 도시락 뚜껑을 열었는데
부잣집 아들 녀석이 나에게 화를 냈어
반찬이 그게 뭐냐며 나에게 뭐라고 했어
창피해서 그만 눈물이 났어
그러자 그 녀석은 내가 운다며 놀려댔어
참을 수 없어서 얼굴로 날아간 내 주먹에
일터에 계시던 어머님은 또다시 학교에
불려오셨어 아니 또 끌려오셨어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며 비셨어
그 녀석 어머님께 고개를 숙여 비셨어
우리 어머니가 비셨어

야이야아아 그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후회하고 눈물도 흘리고
야이야아아 그렇게 살아가고
너무나 아프고 하지만 다시 웃고

아버님 없이 마침내 우리는 해냈어
마침내 조그만 식당을 하나 갖게 됐어
그리 크진 않았지만 행복했어
주름진 어머님 눈가에 눈물이 고였어
어머니와 내 이름의 앞 글자를 따서
식당이름을 짓고 고사를 지내고
밤이 깊어가도 아무도 떠날 줄 모르고
사람들의 축하는 계속되었고
자정이 다 되서야 돌아갔어 피곤하셨는지
어머님은 어느새 깊이 잠이 들어 버리시고는
깨지 않으셨어 다시는

난 당신을 사랑했어요
한 번도 말을 못했지만
사랑해요 이젠 편히 쉬어요
내가 없는 세상에서 영원토록

야이야아아 그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후회하고 눈물도 흘리고
야이야아아 그렇게 살아가고
너무나 아프고 하지만 다시 웃고

야이야아아 그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후회하고 눈물도 흘리고
야이야아아 그렇게 살아가고
너무나 아프고 하지만 다시 웃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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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音楽 窓に雨が

2016-08-07 12:23:39 | 詩・音楽



햇빛촌 - 유리창엔비
낮부터 내린비는 이 저녁 유리창에 이슬만 뿌려 놓고서
밤이 되면 더욱 커지는 시계소리처럼 내 마음을 흔들고 있네
이밤 빗줄기는 언제나 숨겨 놓은 내맘에 비를 내리네
떠오는 아주 많은 시간들 속을 헤매이던 내맘은 비에 젖는데
이젠 젖은 우산을 펼수는 없는것
낮부터 내린비는 이 저녁 유리창에 슬픔만 뿌리고 있네

이밤 마음속엔 언제나 남아있는 기억은 빗줄기처럼
떠오는 기억 스민 순간 사이로 내마음은 어두운 비를 뿌려요
이젠 젖은 우산을 펼수는 없는것
낮부터 내린비는 이 저녁 유리창에 이슬만 뿌려 놓고서
밤이 되면 유리창에 내 슬픈 기억들을 이슬로 흩어 놓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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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音楽 ソウルの月

2016-08-07 12:05:45 | 詩・音楽


김건모 서울의달


오늘 밤 바라본
저 달이 너무 처량해
너도 나처럼 외로운
텅 빈 가슴 안고 사는구나
텅 빈 방 안에 누워
이 생각 저런 생각에
기나긴 한숨 담배 연기
또 하루가 지나고
하나 되는 게 없고
사랑도 떠나가 버리고
술 잔에 비친 저 하늘의 달과
한 잔 주거니 받거니
이 밤이 가는구나
오늘 밤 바라본
저 달이 너무 처량해
너도 나처럼 외로운
텅 빈 가슴 안고 사는구나
가끔 비가 내리면
구름에 니 모습이 가려
어두운 거리 또 쓸쓸해지네
텅 빈 이 거리 오늘도
혼자서 걸어가네
오늘 밤 바라본
저 달이 너무 처량해
너도 나처럼 외로운
텅 빈 가슴 안고 사는구나
오늘 밤 바라본
저 달이 너무 처량해
너도 나처럼 외로운
텅 빈 가슴 안고 사는구나
슬픈 추억 안고 사는구나
텅 빈 가슴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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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音楽 昨日より哀しい今日

2016-08-07 11:52:11 | 詩・音楽



김건모 - 어제보다 슬픈 오늘

밤새도록 내리던 소낙비가 니 모습을 지울까
니가 떠난 어제 보다도 난 오늘이 더 슬퍼지고

나의 창에 비친 아침 햇살이 어젯밤을 다 지울까
퉁퉁 부은 내 눈 속엔 아직 너를 보낸 눈물이

*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괜찮다며 웃는데
거울 밖에 난 울고 있잖아

** 넌 괜찮니 지금도 나는 실감나지 않는다
어제 니가 쓰던 컵이 아직 나와 둘이 앉아있고
너의 사랑이 머물다 떠난 내 방안의 슬픔은
내 가슴에 스며 내게 어제보다 더 큰 아픔을 주네

밤새도록 힘들게 취한다고 니 모습을 잊을까
어제 니가 했던 이별 얘긴 도무지 기억이 안나

내 얼굴에 드리운 아침햇살 힘들게 나 눈을 뜨면
니가 없는 텅 빈 침대만이 내 이별을 말하네

*

넌 괜찮니 아직도 나는 믿어지지 않는다
문득 현관문을 열면 니가 웃으면서 올 것 같아
너의 사랑이 남겨진 여기 이 공간의 슬픔은
내 두 눈을 적셔 오늘 어제보다 더 큰 슬픔이 되어

**
어제보다 더 오늘이 아프다
작사
김창환
작곡
김건모
편곡
김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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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現代詩  鄕愁

2016-08-03 12:23:12 | 詩・音楽



향수(鄕愁 Nostalgia) -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지즐)대는 실개천이 회(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 벼개(베개)를 돋아(돋워)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함초롬) 휘적시든(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여쁠(예쁠)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아내)가
따가운 해ㅅ 살(햇살)을 등에지고 이삭 줏던(줍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석근(성긴) 별
알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집웅(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앉아) 도란 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향수는 정지용이 22세(1923년 4월)에 발표한 시이다.>

시인 정지용(鄭芝溶)은 1902년 5월 15일 (음) 충청도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현. 향수길 56)에서 아버지 정태국(鄭泰國), 어머니 정미하(鄭美河) 사이에 독자로 태어났다. 연못에서 용(龍)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태몽을 꿨다해서 어릴적 이름은 지룡(池龍)이었고, 나중에 '芝溶'을 본명으로 삼았고 필명(筆名)으로 '지용'을 썼다.

옥천 공립보통학교(현 죽향초등학교)와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를 나와 일본 동지사대학(同志社大學)을 졸업했다. 귀국후에는 모교인 휘문고보에서 평교사로 영어를 가르쳤으며 1945년 이화여자전문학교(현 이화여대) 교수, 경향신문 주간(主幹)을 역임 했다. 또한 서울대학교 강사로 출강(出講)한 바 있다.

지용은 천재적 기질(氣質)과 소박한 인품을 가지고 향수, 고향, 백록담 등 주옥(珠玉)같은 명시를 연이어 발표했고 문장지(文章誌)를 통하여 이른바 청록파(靑錄派) 시인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과 김종한, 이한직, 박남수 등을 등단(登壇)시키는 등 현대 시문학의 선구자(先驅者)로 시사(詩史)를 장식했다.

지용의 시와 글은 '정지용시집', '지용시선', '문학독본', '백록담' 등의 간행본(刊行本)에 수록(收錄)되어 있으며 그에 대한 연구논문은 계속 나오고 있다.

1988년 3월 "지용회"가 창립 되었고 그해 5월 15일에 " 제1회 지용제"가 거행된 이래 해마다 5월초 옥천군 생가지 일원에서 "지용제"가 전국적인 문학축제로 이어져 오고있다.

…………………………

8.15 해방이 되자 정지용은 누구보다 목청껏 애국의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이땅의 진정한 해방과 통일을 갈망하며 각종 사회적인 문제에 개입한다. 시 보다는 신문 활동에 주력하며 우리 민족의 앞날을 걱정했다. 그러던중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지용은 서울 녹번리 초당에서 전쟁을 맞게된다. 그해 7월 지용의 집을 자주 드나들던 문인 4~5명이 찾아와 한참을 이야기하다 그들과 함께 나간뒤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월북설, 납북설, 미군에 의한 처형설, 미군의 폭격에 의한 사망설, 보도연맹 학살에의한 희생설 등 소문만 무성한채 그의 행적은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이 또한 분단의 비극에 희생된 천재시인의 최후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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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音楽 彼女は

2016-08-03 11:43:16 | 詩・音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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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音楽 そうだったらいいね

2016-08-02 13:46:52 | 詩・音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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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に沁みた言葉

2016-07-29 14:00:22 | ハングル・雑文
数か月前のある酒席で、宗教家になっておられる恩師の「生きて行くということは過酷ことだ。特に在日として生きて行くには本当にいんどいことだ。だから今を楽しみなさい」とのお言葉があった。
ここ1年、心身ともにいろいろと大変だったので、その言葉が心に沁み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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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音楽 さようなら

2016-07-25 12:43:15 | 韓国



조금 더 볼륨을 높여줘 비트에 날 숨기게
오늘은 모른 척 해줘 혹시 내가 울어도
친구여 그렇게 보지마 맘껏 취하고 싶어
밤 새도록 노랠 부르자

이 밤이 지나면 잊을께 너의 말처럼 잘 지낼께
가끔 들리는 안부에 모진 가슴 될 수 있길
어떤 아픔도 견딜 수 있게..

소중했던 내 사람아 이젠 안녕
찬란하게 반짝이던 눈동자여
사랑했던 날들이여 이젠 안녕
달빛 아래 타오르던 붉은 입술
떠난다면 보내드리리
뜨겁게 - 뜨겁게 - 안녕

너를 품에 꼭 안고서 처음 밤을 새던 날
"이대로 이 세상 모든 게 멈췄으면 좋겠어"
수줍은 너의 목소리 따뜻한 너의 체온
이 순간이여 영원하라

이 밤이 지나면 잊을께 너의 말처럼 잘 지낼께
앞만 보고 달려가자 바보처럼 울지 말자
너를 위해서..나를 위해서..

소중했던 내 사람아 이젠 안녕
찬란하게 반짝이던 눈동자여
사랑했던 날들이여 이젠 안녕
달빛 아래 타오르던 붉은 입술
떠난다면 보내드리리
뜨겁게 - 뜨겁게 - 안녕

부디 행복한 모습이길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나도
모른 척 스쳐 갈 수 있게 멋있게 살아줘
뜨겁게 - 뜨겁게 - 널 보낸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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